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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4일 오후 윤희근 경찰청장의 예방을 받고 환담했다.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어려운 시기에 소임을 맡아 힘들겠지만, 국민을 위한 봉사이니 국민이 편안하도록 해달라”면서 “청장 소임을 긍지로 삼고 어렵고 힘들 때는 참선과 절 수행으로 이겨내도록 하라”고 했다.윤희근 경찰청장은 “청장직을 국민을 위한 봉사의 자리라는 소명으로 보람되게 일하겠다”고 했다.진우 스님은 경찰 조직 내 불자와 법회 등에 관심을 보였다.윤 청장은 “각 경찰에 불자회가 있고 매주 법회도 보고 있다. 경찰청은 조계사가 서울청은 보은사가 법회를 도와주신다”면서 “최근 봉정암 사리탑에서 108배를 했다”고 했다.진우 스님은 “경찰은 법 집행을 하는 분들이다. 사람 사이 대척점에서 마음이 무겁고 힘들 때도 있을 것”이라며 “참선과 절 수행을 하게 되면 스스로 정돈할 힘이 생기고 마음을 다스려 고유 업무를 걸림 없이 집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이에 윤 청장은 “총무원장 스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경찰의 역할을 상생, 화합, 그리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것으로, 이는 불교의 가르침에 일치한다”면서 “총무원장 스님이 일선 경찰관들을 위해 법문해 주실 것”을 요청했다.진우 스님은 “취임법회를 앞두고 방문해 줘서 고맙고 든든하다”고 했고, 윤 청장은 “취임법회에 차질이 없도록 잘 살피겠다”고 했다.윤 청장 예방에는 총무부장 호산 스님, 호법부장 현민 스님, 경찰청 경승실장인 지현 스님(조계사 주지), 강화 청련사 주지 정현 스님 등이 함께했다.[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 제보 mytrea70@gmail.com]

종합 | 서현욱 기자 | 2022-10-04 16:58

불교 수행공동체 ‘정토회’(대표 김은숙. 지도법사 법륜 스님)는 2일 도문 스님을 모시고 새로 건립한 정토사회문화회관 개관을 축하하는 기념법회를 개최했다.정토사회문화회관 (서초동 소재) 3층 설법전에서 열린 이날 개관기념법회는 ‘세상을 행복하게’라는 메인 슬로건으로 열렸으며, 불교계 인사들과 정토회 수도권 회원 300여 명이 참석했다.기념버보히에서 혜총 스님(조계종 전 포교원장)과 이선재(BBS 방송국 사장)이 축사했고, 도문 스님(대한불교조계종 명예원로의원. 죽림정사, 서울 대각사 조실)이 법문했다.도문 스님은 용성 조사로부터 법륜 스님에 이르는 법맥 인연과 탐애를 버리는 부정관, 진에를 버리는 자비관 등 오정심관(五停心觀) 등의 부처님 법을 마치 시조를 읊듯, 창을 곁들여 설법했다.정토회는 맑은마음 좋은벗 깨끗한 땅을 추구하는 수행공동체로서 1988년(불기 2532년) 붓다의 삶(불), 붓다의 가르침(법), 수행공동체(승)의 원형에 기초하여 창립했다. ‘개인을 행복하게’하는 수행 운동과 ‘세상을 행복하게’하는 환경, 평화, 복지 운동을 통해 새로운 문명사회, 즉 정토를 구현하는 것이 목표다.정토사회문화회관 기념법회에서 법문하는 도문 스님.서울 창덕궁 부근 15평에서 출발한 정토회는 홍제동 정토포교원과 용두리 비닐하우스 법당 시대를 거쳐 1999년에 정토회관(서초동 3층 건물)을 건립해 정토회 산하 단체들을 한 곳으로 모은 바 있다. 그러나 활동력이 급속히 커지면서 공간 부족으로 결국 5~6개의 건물로 다시 나뉘게 되었다.새로 개관한 정토사회문화회관은 15층 복합건물로, 정토회 제2차 만일결사 (2023-2052)의 세계전법(해외포교)과 사회공헌 활동의 중심 공간으로 역할을 하게 된다.정토회는 “정토사회문화회관 건립은 국내외 정토회 회원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정성이 결집됐다”며 “용성진종조사(1864~1940)의 불교혁신운동과 3.1독립운동의 정신을 계승해 수행을 통한 개인의 행복과 사회공헌활동을 통한 세상의 행복을 구현하고자 하는 정토회 회원들의 만일결사(30년 수행)와 사회 실천의 염원이 담겼다”고 설명했다.1일 개관식에는 정치, 종교, 사회 인사 160여 명이 참석해 축하와 격려의 시간을 가졌다. 도법(인드라망생명공동체 상임대표), 박종화(경동교회 원로목사), 윤여준(전 환경부장관), 김덕룡(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 정세균(노무현재단 이사장) 등의 축사와 슐락 시바락사(국제참여불교네트워크 INEB 창립자), 니와노 히로시(니와노평화재단 이사장), 그리고 조셉 디트라니(전 미 국무부 대북담당 특사) 등이 영상으로 축하 인사를 전했다. 그밖에 정토회 30년의 여정을 담은 세 편의 영상과 경동교회 김홍태 집사(테너)의 축하공연이 이어졌다.정토사회문화회관은 지상 15층, 지하 5층 연 면적 3,550평(11,759㎡)의 건물로 즉문즉설 전용 500석 규모의 대강당(지하 2~3층)과 설법전(3층), 정토불교대학·정토사회대학·정토경전대학(4~5층), 방송 스튜디오와 국제회의장(6층), 평화재단·좋은벗들·한국JTS·에코붓다 등 사회공헌활동기구 사무소(지상 9~11층), 그리고 대성초당(15층 옥상법당. 용성조사가 3.1독립선언에 대한 의견을 나누던 우면산 대성초당에서 유래한 이름) 등이 있다.[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 제보 mytrea70@gmail.com]

종합 | 서현욱 기자 | 2022-10-04 16:56

 제9교구 동화사(주지 능종스님)가 오는 14일부터 16일까지 '제12회 팔공산 산중장터 승시'축제를 개최한다. 승시(僧市)란,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사찰의 전통물품을 교역하며 번성했던 스님들의 산중장터를 뜻한다. 조선시대 초기에 그 맥이 끊겼던 승시를 동화사가 지난 2010년 재현했다. 승시축제는 14일 오후 1시 'K-트롯 장구난타 페스티벌'을 시작으로 스님과 함께하는 '승시 토크 콘서트', '승시 버스킹' 등이 진행되며, 오후 6시 통일대불 앞에서 개막식과 함께 초대가수 진성, 박혜신, 조명섭, 양하영 등이 출연해 공연한다. 15일에는 전통 불교문화의 진수를 볼 수 있는 불교문화대전을 통해 법고, 찬불, 승무 시연이 펼쳐지며 팔공산 승시의 하이라이트인 '천하장사 시념인(씨름-스님, 일반, 여성부) 대회'와 사찰음식 체험, 국화체험 등 다양한 공연과 'K-POP 신인그룹 콘서트' 등 다채로운 행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시념인(時念人)이란, 동화사 영산전 출입문 위에 그려진 씨름하는 모습에 쓰여진 글귀로 '시시때때로 생각, 생각 놓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축제 마지막 날인 16일 오후 1시 부도전 주차장 앞에서는 초대가수 유지나, 장혜리, 서지오 등이 출연해 관람객들의 흥을 유발시킨다. 이어 이날 2시부터는 '동화사 행화비 제막식'이 있을 예정이고 이어 '사명대사 수장고 기공식·다례재'가 봉행된다. 축제 동안에는 국화꽃 전시전, 스님들의 산중장터인 승시 재현 마당, 사찰음식 체험 등 다양한 불교문화체험 행사가 진행된다. 이번 승시축제는 팔공총림 동화사가 주최하고 팔공산 승시축제 봉행위원회가 주관하며 문화체육관광부, 대구광역시, 대한불교조계종, 대구불교총연합회 등이 후원한다.

종합 | 김원행 기자 | 2022-10-04 16:56

 “참회의 바람으로 번뇌의 구름을 몰아버리면 천지가 빛나는 것 같고, 참회의 물로 악업을 씻어 버리면 청정한 법의가 인천에 복전을 이루게 된다.”한국불교태고종 청련사 주지 상진 스님은 4일 청련사가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66호 지정 후 첫 설행한 ‘청련사 생전예수시왕생칠재’에서 이같이 인사말씀을 했다.상진 스님은 “행복한 미래를 원한다면 생각과 말과 행동 하나나나를 통해 새로운 공덕을 쌓아야 할 것이요, 전생의 행동으로 인한 악업 소멸을 위해 청정한 마음으로 부처님 전에 참회기도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태고종 총무원장 호명 스님은 법석에 올라서 예수재 의미를 설명했다 앞서 태고종 총무원장 호명 스님은 “여기에 한 물건 있는데 본래부터 밝고 밝으며 신령스러워서/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으며/ 우러라 미름 지을 수도 없고 모양을 그릴 수도 없다”고 법어를 했다.스님은 “예수재를 지내는 불자들은 이 육신이 진짜 내가 아니고 이 영원한 생명의 근원인 법신이 내게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 법신을 깨닫게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김동연 경기도지사는 미리 보내온 축사에서 “이번 행사는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66호로 지정 후 처음 열리는 생전예수재이다. 이 자리를 통해 우리 사회 고통과 아픔이 부처님 자비로 치유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정성호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은 미리 보낸 축사를 통해서 “살면서 덕을 쌓고, 현세열반을 추구하는 청련사의 생전예수재는 우리의 부족함을 돌아보며, 인간의 이기심이 만들어 놓은 어두운 현실을 밝히는 법회”라고 했다.강수현 양주시장은 “양주시 자랑인 청련사 생전예수재가 인류문화의 자산으로서 한단계 더 도약하려면 우리 모두의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필요하다. 소중한 문화유산 보존과 전승을 위해 양주시가 최선을 다하겠다”고 축사했다.윤장철 양주시의회 의장은 “청련사 생전예수재가 자랑스러운 양주의 문화유산으로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고 했다.  생전예수재는 전생에 쌓은 업을 참회하고 살아있을 때 미리 자신의 칠칠재(49재)를 지내 스스로 업을 소멸시키고 복을 짓는 불교의례이다. 청련사는 서울 왕십리에 있던 '안정사' 시절부터 조선 초기 ‘동청련 서백련’의 양 열반계 사찰이었다. 청련사는 백련사와 함께 도성의 비보사찰이자 왕생발원사찰로서 왕실과 국태민안을 위한 다양한 재회(齋會)를 열었다. 청련사는 예수재를 매년 음력 9월 9일(중양절)에 칠칠재로 회향하는 방식으로 1960년대부터 설행을 시작했다.청련사는지난 2010년 청련사범음범패보존회 발족 후, 청련사는 이 단체를 2014년 '청련사예수시왕생칠재보존회'로 명칭을 바꾸고, 2019년에는 사단법인 등록을 했다. 청련사 범음 법맥은 1910년 청련사로 출가했던 능해 스님(1892~1979), 덕봉 스님(1911~1994), 청호 스님(1915~1999), 춘담 스님(1915~1960), 벽파 스님(1939~2011), 백우 스님(1934~2015) 등을 거쳐 현재 주지 상진 스님에 이어지고 있다. 상진 스님은 '청련사 생전예수시왕생칠재' 체계를 다지며 범음범패 전통 계승에 힘썼고, 그 결과 청련사는 지난 5월 경기도로부터 '경기도 무형문화재 보유단체 인정서'를 받았다.   청년사는 이날 생전예수재를 우천으로 실내에서 설행했다.행사는 오전에는 ▷예수도량을 옹호할 시방의 호법성중을 모시는 시련 ▷혼령을 대면하는 재대령 ▷영가의 삼업과 삼독심을 청정케 하고 해탈복을 구하는 관욕 ▷신중에 법회 도량 옹호를 부탁하는 신중작법 ▷괘불을 이운해 모시는 괘불이운(생략) ▷지전을 명부세계에 통용되는 금은전으로 전환하는 조전점안 ▷경전을 담은 경함을 옮기는 경함이운 ▷불보살 등 성현을 청해 공양을 올리는 운수상단 순으로 생전예수재를 봉행했다.이어 오후에는 ▷복청게 ▷천수바라 ▷도량게 ▷홍고 ▷사방요신 ▷요집바라 ▷법고무 ▷소청사자 봉송사자 ▷소청중위 ▷소청고사 ▷마구단 불공 ▷관음시식 ▷전시식 ▷경신봉송 봉송회향 순으로 예수시왕생칠재를 설행했다.   청년사는 오는 8일 오후 2시 청련사는 대적광전에서 '경제 동교범패 청련사(구. 안정사) 범맥과 어장 상진 범음성 세계' 주제 불교음악학회 제4회 학술세미나를 개최한다.[불교중심 불교닷컴, 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제보 cetana@gmail.com]

종합 | 조현성 기자 | 2022-10-04 12:45

조계종사회복지재단 산하 군포시장애인종합복지관(관장 이광석)은 지난 9월 23일 복지관 이용 장애인 및 보호자 등 19명과 자원봉사자 10명이 참여한 행복나들이를 가졌다.나들이는 군포신협(이사장 김윤식)과 율목자원봉사단(회장 김선희)의 후원으로 진행했다. 율목자원봉사단이 자원봉사로 참여했다.신협은 전국적으로 신협사회공헌재단을 만들어 다양한 사회공헌 캠페인 및 경영혁신, 교육기회의 보편화 등 우리사회의 변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중 군포신협은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의 여가지원 프로그램 및 아동을 위한 스포츠 교육 프로그램 등 다양한 활동을 지원하며 2021년에 지역사회공헌 인정기업에 선정됐다.율목자원봉사단은 지역사회의 취약 계층 및 지역복지 발전 등 관심이 있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임을 만들어 장애인 및 어르신 나들이, 각종 사회복지 행사 지원, 장애인 및 경로 식당 운영 지원 등 각계각층에서 약 30년이란 기간 동안 꾸준히 봉사를 전개하고 있다.김영진 군포신협 전무는 “그동안 코로나19 예방 차원에서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행사 및 사업이 축소되어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없었는데, 많은 장애인분이 안전하고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어 좋았다”라며 소감을 전하기도 하였다.이광석 관장은 “항상 지역사회에서 관심을 갖고 함께 해주시는 분들이 있어 원활하게 장애인복지 사업을 수행할 수 있었다”라며, “앞으로도 지역의 다양한 관심과 장애인들의 다양한 욕구를 반영하여 함께할 수 있는 복지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전했다.[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 제보 mytrea70@gmail.com]

종합 | 서현욱 기자 | 2022-10-04 12:04

지리산 대화엄사(주지 덕문 스님)가 차일현 경무관 추모비 앞에서 추모식을 엄수했다. 주지 덕문 스님은 내년부터는 각황전에서 차일혁 경무관 추모제를 봉행하겠다고 밝혔다. 화엄사 등 지리산 사찰을 지켜낸 차일혁 경무관을 사실상 중창조로 모시겠다는 뜻에서다.30일 2022화엄문화재 ‘화엄, 붓다의 길에 서다’의 개막을 ‘구례사찰 명상순례길 걷기대회’로 열었고, 작음음악회로 첫날 문화제를 성료했다. 이어 1일 오전 수미산 원정대와 일반인 참가자들이 화엄사 화엄원에서 출발, 연기암을 왕복하는 ‘제2회 어머니의 길 걷기대회’를 열었다. 연기암에서는 성각 스님의 강의로 연기조사의 창건과 연기조사의 효심을 강의했다.이어 오전 9시께 경내 차일현 경무관 추모비 앞에서 화엄사를 6.25때 위기에서 지킨 차일혁 경무관의 추모식을 추모비 앞에서 처음으로 거행했다. 차일혁 경무관은 “절을 태우는 데는 한나절이면 족하지만, 절을 세우는 데는 천년 이상의 세월도 부족하다”며 상부 지시를 거부하고 지리산 일대 천년고찰을 지켜낸 인물이다.이날 오후 3시 보제루 앞마당에서는 국보 제301호인 화엄사 괘불을 내걸고 어산종장 동환 스님(어산종장)의 집전으로 영산재를 봉행했다. 이어 저녁 6시 30분부터 8시까지 화엄제의 백미로 꼽히는 화엄음악제(김주연 음악감독)가 보제루 앞 특설무대에서 국내 정상급 연주자(피아니스트 박진우, 국악인 김주리, 팬텀싱어 우승팀 라포엠 등)들이 가을 지리산을 클래식과 세미클래식으로 장엄했다.화엄문화제 셋째 날 스님인 2일 천은사 공영주차장에서 화엄사까지 상월선원평화방생순례걷기를 가졌다. 교구본사주지 스님 500여명과 강승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 김대현 문화관광부 종무실장, 김순호 구례군수, 유시문 구례군의장, 주윤식 중앙신도회장 등 2,000명이 참석했다.[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 제보 mytrea70@gmail.com]

종합 | 서현욱 기자 | 2022-10-04 12:03

(재)대한불교진흥원은 10월 화요열린 강좌를 ‘명상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를 주제로 25일 오후 7시 서울 마포 다보원에서 갖는다. 화용열린강좌는 매월 한 가지 주제 아래 저자 및 문화 예술가를 초청해 열고 있다.10월 강좌는 세계 최초의 마음챙김 의료 명상인 MBSR(마음챙김에 근거한 스트레스 완화) 프로그램을 개발한 세계적인 명상가인 존 카밧진 박사가 이야기하는 현대인들이 일상에서 마음챙김 명상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번역자 안희영 소장을 초청해 듣는다.안희영 소장(한국 MBSR 마음챙김연구소)은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MBSR 지도자 교육 과정을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성인 학습 및 리더십 전공). 현재 한국 MBSR 마음챙김연구소 소장이다. 2005년부터 마음챙김에 근거한 스트레스 완화(MBSR) 프로그램을 한국에 보급하고 있다. 국내 유일의 국제 MBSR 지도자 및 티처 트레이너로서 한국 MBSR 마음챙김연구소(http://www.mbsrkorea.com)를 중심으로 스트레스, 명상, 리더십과 관련된 교육을 하고 있다.강좌 대상 도서는 존 카밧진(Jon Kabat-Zinn) 박사의 <온전히 깨어 있기>(학지사 刊)이다.존 카밧진(Jon Kabat-Zinn) 박사는 매사추세츠 의과대학의 MBSR(마음챙김에 근거한 스트레스 완화) 프로그램과 스트레스 완화 클리닉(1979년) 및 의학, 의료 및 사회에서의 마음챙김 명상센터(1995년) 설립자이며 의학 명예교수이다. 그는 의료 전문가, 기술 및 비즈니스 커뮤니티 그리고 전 세계 일반 청중을 위한 마음챙김에 관한 워크숍과 집중 수련을 지도하고 있다.이 강좌는 영상 촬영 후 BBS-TV와 유튜브 ‘헬로붓다tv’에 업로드할 예정이다.문의 및 참가 신청 : 02-719-2606, 네이버 카페(화요 열린 강좌, http://cafe.naver.com/dharin.cafe)[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 제보 mytrea70@gmail.com]

종합 | 서현욱 기자 | 2022-10-04 11:58

강원 홍천 공작산 기슭 수타사(주지 화광 스님) 산사에서 전통 떡메치는 소리가 10월 첫 연휴의 관광객들을 하하호호 웃게 하는 체험 마당이 열렸다.수타사 신도회(회장 오승훈)는 1일과 2일 수타사 입구에서 신도와 관광객들이 직접 떡메를 치고 인절미를 맛보는 체험을 전개해 오감 만족과 사랑의 봉사를 전개하는 두 마리를 토끼를 잡고 있다.수타사 신도회는 지난 4월과 5월 전통 떡메치기를 열어 인절미 판매 수익금과 신도회 기금으로 홍천군노인복지관으로부터 복지사각지대 소외계층을 추천 의뢰받아 지난 6월 18가구에 2,500만원 상당의 주거환경개선 집수리 봉사활동을 펼쳤고, 8월에는 홍천군청을 방문 어려운 이웃돕기 성금으로 1,500만원을 기탁했다.서울에서 수타사를 방문한 한 가족 관광객은 “아이들에게 처음으로 전통 떡메치기 체험과 함께 직접 자기가 친 인절미에 콩고물을 묻혀 먹는 모습이 재밌었다”면서 “맛난 인절미도 맛보고 체험도 하고 이웃을 돕는 좋은 일도 할 수 있는 의미있는 수타사 기행이 되었다”며 밝게 웃었다.공작산 기슭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수타사는 홍천 최대 관광지로 월인석보 권17·18 두 권이 발견된 사찰이며 수타사생태숲도 조성되어 있어 지역주민이 즐겨 찾고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사찰로 유명하다.오승훈 수타사 신도회장은 “단풍이 절경인 10월 매주말 한달간 전통 떡메치기가 전개되며, 이 번 인절미 판매 수익금은 오는 12월 학생 장학금과 주거환경개선 집수리 등으로 계획되어 있다”며 “수타사와 생태숲에 오셔서 가을풍광도 즐기시고 오감을 즐기시기 바란다”고 말했다.[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 제보 mytrea70@gmail.com]

종합 | 서현욱 기자 | 2022-10-04 11:52

평택불교사암연합회(회장 적문 스님)는 15일 오후 1시 30분부터 수도사 내 원효대사깨달음체험관에서 ‘제2회 평택 역사문화로드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아울러 평택호예술공원에 혜초·원효·의상의 구법을 향한 원력을 기념하는 조형물을 조성한다.평택은 원효대사가 깨달음을 얻은 오도성지(悟道聖地)가 자리한 곳이며, 혜초 대사가 머나먼 구도(求道) 여행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역사적 현장이다. 옛부터 평택에 국제교류의 터전이었던 ‘대진(大津)’이란 포구가 있었다. 학술대회는 평택의 찬란한 역사문화 전통을 온전히 계승하고, 더욱 발전된 미래를 설계하기 위한 자리로 지난해부터 개최하고 있다.학술대회는 1부 개회식, 2부, 3부 학술발표, 토론회로 진행한다.이날 발표에는 백승종(전 서강대 사학과, 역사칼럼리스트) 교수는 <역사문화도시 평택을 꿈꾸며 - ‘괴태곶 문화권역’> 주제발표로 괴태곶을 비롯한 서평택 지역을 하나의 “문화권역”으로 설정하고, 그 역사 지리적 배경과 불교와의 특별한 인연을 소개한다.김영수 교수는 <혜초 『왕오천축국전』의 잃어버린 전반부를 찾아서> 주제발표에서 혜초의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에 전반부가 유실된 점에 주목하여, 해외의 문헌을 광범위하게 조사하여 잃어버린 역사적 고리를 찾아 이를 복원할 방법을 찾아 나선다.김영덕 교수(전 위덕대 불교문화학과)는 <심복사(深福寺) 소가 가는 길>을 통해 불교학자로서 심복사 창건설화를 깊이 있게 분석한다. 김 교수는 우보살(牛菩薩) 설화가 중심이라는 점에 착안해, 불교 경전에 나오는 ‘소’와 관련된 비유와 설화를 종합적으로 검토한다.혜장 스님은 심복사 창건설화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했다. 애니메이션은 <1022년 그해 가을-빛 따라>는 불교 교리를 전혀 모르는 일반 시민도 한 번 보기만 하면 알기 쉽도록 접하게 한 작품이다.박기철 교수(평택대)는 <평택항의 과거-현재-미래>를 통해 물류학자의 입장에서 평택항의 과거와 현재를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기왕의 논의를 종합한다. 박 교수는 평택항이 외적 성장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지역과 함께 상생할 방안을 살필 예정이다.평택호에 평택 정신문화의 조형물 설치를 발의한 심복사 주지 성일 스님은 “심복사 설화를 펼쳐보면 결국 자신이 부처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한 이야기”라며 조형물이 순탄하게 설치되어 많은 사람이 그 조형물을 보고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어 주길 바란다.”라고 했다.평택불교사암연합회 회장 적문(수도사 주지) 스님은 “꼭 조형물이 설치되어 평택에 정신문화가 뿌리내리는 데에 일조하길 바란다.”고 했다.[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 제보 mytrea70@gmail.com]

종합 | 서현욱 기자 | 2022-10-04 11:51

종교인 실효세율은 근로소득자의 1/8 수준에 불과했다. 종교인에 유리한 제도에 기인한다는 분석이다. 종교인은 일반 노동자들과 달리 기타소득과 근로소득 중 하나를 골라 신고할 수 있으며, 기타소득으로 신고하는 경우에는 필요경비율이 80%까지 인정되어 높은 공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정의당 장혜영 의원(기획재정위원회)이 국세청 제출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20년 종교인과세 실효세율은 0.7%로 근로소득자 실효세율 5.9%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2020년 한 해 9만 명의 종교인이 1조 6609억 원의 소득을 신고했다. 이들의 납부세액은 120억 원에 그쳤다. 종교인 1인당 납부한 세액은 13만 3천 원이었다. 전체 근로소득자 1949만 명의 납부세액은 44조 1640억 원으로 1인당 평균세액은 227만 원이다.장혜영 의원은 “종교인들의 세금 부담이 낮게 나타나는 이유는 이들의 소득신고액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종교인들에게 유리한 제도에 기인하는 측면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또 “종교인은 일반 노동자들과 달리 기타소득과 근로소득 중 하나를 골라 신고할 수 있으며, 기타소득으로 신고하는 경우에는 필요경비율이 80%까지 인정되어 높은 공제를 받을 수 있다”며 “실제로 소득세 부과 대상 종교인의 94.1%인 8만 4800명이 기타소득으로 신고했고, 이들의 평균경비율은 70.9%로 2020년 노동자 평균근로소득공제율 24.4%를 크게 상회한다. 이는 원천징수액을 크게 낮추는 효과가 있다. 또한 기타소득으로 신고하더라도 근로장려금과 자녀장려금 혜택은 받을 수 있다”고 해다.2020년 신고 종교인소득 상위 100명의 평균소득은 2억 8791만 원이었고 원천징수분 세액은 3493만원으로 실효세율은 12.1%다.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20년 근로소득자 중 1억 원 초과 3억 원 이하 구간의 실효세율은 14.6%, 3억 원 초과 5억 원 이하 구간의 실효세율은 27.5%에 달해 고소득 종교인들의 세금 부담 역시 고소득 근로소득자들의 부담보다 다소 낮은 것으로 나타난다.종교인 소득세 과세는 2018년 처음 시행됐다. 2019년에는 종교인 퇴직금 과세 범위를 2018년 이후 분으로 축소하는 개정안이 통과됐다.장혜영 의원은 “세금에서 종교인들이 특별히 우대받을 이유는 없다”며, “근로소득으로 일원화하거나 기타소득의 과세 기준을 형평에 맞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2020년 종교인 과세현황 구분 종교인 수 (천 명) 지급총액 (총급여액) 필요경비 또는 근로소득공제 세액 실효세율 종교인 1인당 세액 기타소득신고 84.8 1,548,232 1,096,960 11,145 0.7% 131,427 근로소득신고 5.3 112,719 41,896 816 0.7% 153,962 합계* 90.1 1,660,951 1,138,856 11,961 0.7% 132,752 (단위는 천 명, 백만원, 종교인 1인당 세액은 원 단위. 국세청 자료를 장혜영 의원실에서 정리) * 종교인소득과 타 소득을 합산하여 신고한 종교인에 대해서는 종교인소득을 따로 구분할수 없어 부득이 제외. 이들은 총 6300명으로 전체소득신고액은 1585억 원임.[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 제보 mytrea70@gmail.com]

종합 | 서현욱 기자 | 2022-10-04 11:49

제1053주년 개산대재에서 주지 초격 스님은 내년부터 교리경시대회를 전국대회로 개최하겠다고 했다 교종본찰 봉선사가 조선 세조 임금 승하 후 능침사찰로 지정되며 운악사에서 봉선사로 절 이름을 바꾼 뒤 처음으로 개산대재에 세조 위패를 처음 모셨다.남양주 봉선사(주지 초격 스님)는 2일 경내 청풍루에서 개산 제1053주년 개산대재를 봉행했다.  행사는 우천으로 대웅전 앞마당이 아닌 실내에서 진행됐다. 행사에는 봉선사 조실 월운 스님, 원로 수월·덕수·화범 스님 봉선사 대중 스님들, 등문화원장 성일 스님, 현등사 주지 도암 스님, 자재암 덕암 스님 등 봉선사 말사 스님 등과 민성진 회장(운암김성숙기념사업회), 김한정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도의원, 시의원 등 500여 사부대중이 참석했다. 봉선사 능엄학림 학장 정원 스님이 봉선사 개산대재에 모셔진 탄문 스님, 세조 등 위패에 차를 올리고 있다 봉선사 회주 밀운 스님은 개산대재 관련한 법문을 했다 주지 초격 스님은 인사말에서 "봉선사는 고려 전기인 969년 '운악사'로 법인국사 탄문 스님이 창건한 이후, 조선시대 세조 승하 후 광릉을 조성하면서 정희왕후에 의해서 능침사찰로 중창됐다. 세조가 조선 불교에 끼친 영향이 지대하다. 올해부터 개산대재에 세조대왕 위패를 모시겠다"고 했다.이어 "봉선사 사격에 맞는 일주문을 건립하고 있다. 수행연금 조성, 의료복지, 재가불자 수행환경 조성 등에 힘쓰고 있다. 봉선사가 미래 한국불교를 이끌 포교 개발을 하는 등 교종본찰로서 역할을 다하겠다"고 했다.봉선사 회주 밀운 스님은 법어를 통해서 "그동안 사찰들이 살기 어려워 개산대재가 없었다가 근래 절마다 개산대재를 열고 있다. 그동안 천년 전 선배스님들이 얼마나 섭섭했겠느냐. 한국불교가 나날이 발전할 것"이라고 했다.봉선사 이도피안 신도회장은 "봉선사가 후세에도 아름답게 남을 수 있도록 스님들을 외호하고 가람을 수호하고 정진하고 또 정진하겠다"고 발원했다.전날 봉선사는 교리경시대회 제1회 도전, 큰말씀 겨루기를 어린이부·청소년부를 개최했다.  봉선사 이도피안 신도회장이 사부대중을 대표해 발원문을 낭독하고 있다 개산대재 후에는 일반부 교리경시대회를 개최했다.일반부 수상자는 ▷대상 송병화(수미정사, 100만원) ▷금상 신중렬(조계사, 50만원) ▷은상 윤옥자(봉선사, 30만원) ▷동상 민병훈(수미정사, 20만원), 길병옥(봉선사, 20만원)이다.봉선사는 '도전. 큰말씀 겨루기'를 내년 한글날 즈음 전국대회로 확장 개최할 계획이다.[불교중심 불교닷컴, 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제보 cetana@gmail.com]   

종합 | 조현성 기자 | 2022-10-04 08:35

일명 동북공정은 2002~2007년까지 중국 국가 차원에서 추진한 ‘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东北边疆历史与现状系列研究工程, 간체자)이 원래 명칭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토인 청나라 때 흥기했던 중국 동북방, 즉 만주의 나라들이 처음부터 중국에 속해 있었다고 주장하는 중국 정부 주도의 수정주의형 역사 왜곡 정책이다. 글자대로라면 동북 계획이지만, 풀어서 보면 ‘동북변방 지역의 역사 및 현 상황에 대한 연구사업 계획’이다.2007년에 공식적으로 끝난 동북공정 프로젝트는 삼한의 역사를 이은 대한민국뿐만이 아니라 근현대 중화민국 시절부터 2022년까지 이어지고 있는 현재진행형으로, 동북 지방의 모든 역사를 중국 역사로 규정하려는 역사 왜곡 시도이다. 우리나라 언론에서조차 이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과 동북지역에 대한 중국의 전반적인 역사 왜곡에 관한 설명이 뒤섞여 있다. 그간 동북공정을 말한 중국 학술・문화계 인사들의 주목적은 어떤 방식을 사용해서든지 “고구려 정권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지방정권이었다.”라는 중국 정부 주장을 관철하는 데 있었다. 하지만 동북공정의 근본적 이유는 중국 둥베이(Dōngběi, 東北) 지역에 대한 안정을 위한 것이다. 즉, 하나의 중국을 위해 소위 중화민족으로 대표되는 소수민족 분쟁의 실마리를 제거하는 데 있다.속지주의 역사관을 주요논리로 한 동북공정은 과거 조공・책봉・위소・토사제도 등을 수정주의적으로 재해석하고, 현 중화인민공화국 내지는 청대 영토를 기준으로 흥기하고 가변적으로 팽창, 축소했던 중국 왕조들의 영토 및 인접했던 세력들을 모두 지방정권 및 소수민족으로 규정하며, 중화민족이라는 큰 틀에서 묶으려는 연구사업이다. ‘하상주단대공정’(1996~2000년)과 ‘중화문명탐원공정’(2002~2005년)을 통해 중국문화의 역사성과 우월함을 주장한 이후로 타이완, 조중관계의 영향을 받는 둥베이, 민중운동이 잦은 신장 위구르 자치구와 티베트 자치구, 영유권 분쟁 중인 남중국해 통킹만 등 국가안전에 영향을 미치는 변방지역으로 시선을 옮겼다.중국이 국가 차원의 영토적인 역사화 정책과 더불어 종교적인 세계화 전략으로 추진한 것이 바로 2006년 개최한 ‘제1차 세계불교포럼(首届世界佛教论坛)’이다. 중국 정부가 세계불교 통합을 목적으로 개최한 세계불교포럼 행사는 중국 정부의 수립 후, 자국에서 처음 열린 국제종교 회의였다. 남북을 비롯한 아시아와 유럽 등 37개국 및 지역에서 온 1,000명 이상의 승려와 전문가들이 참석해 “조화로운 세계는 마음에서 시작된다.”라는 주제로 연설과 토론을 가졌다.중화인민공화국 정부 수립 후, ‘중화불교의 부활’을 세계에 선포한 세계불교포럼의 개최 취지와 행사 그리고 남북불교계가 참여하여 교류한 실무 내용을 다시 살펴본다.제1차 세계불교포럼 개막식(首届世界佛教论坛, 2006.4.13. 중국 저장성 항저우 인민대회당). 사진: 중국불교협회 홈페이지중국불교협회 결성식, 조박초 회장의 결성보고(1953.5.30. 베이징 광제사). 사진: 중국불교협회 홈페이지중국과 세계불교포럼중국 근현대의 불교 모습은 첫째로 1949년~1966년의 사회주의 변혁 시기, 둘째로 1966년~1976년 문화대혁명 시기, 셋째로 1978년부터 부흥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1949년 중국 신정부 건국 후, 중화불교의 주창은 정부 주도로 결성된 중국불교협회로부터 시작됐다. 중국불교협회는 1953년 6월 유명 불교계 인사들의 발의로 베이징 서성지구에 위치한 광지사원(廣濟寺)에서 결성됐다. 1954년 5월 30일~6월 3일 광제사에서 중국불교협회 성립대회 및 중화불교협회 제1차 대표회의를 개최했다. 이때부터 광제사는 중국불교협회의 총본산 절이다.그 후 중국불교협회는 1966년 문화대혁명 이전까지 불교 인재의 육성・사찰 관리・학술연구 등 관련 부문에 역할을 담당했다. 문화대혁명 10년 동안에는 중국불교가 크게 쇠퇴했다. 1979년 이후, 중국불교협회가 활동을 재개하면서 전국정치협상회의 부주석을 지낸 쟈오푸츄(赵朴初) 회장을 중심으로 인간불교의 이념을 실천하기 위해 불학원 설립 등 불교인재의 육성과 사찰의 관리, 학술적 연구 등 분야에서 사업을 전개했다. 1956년 9월 28일 중국불교협회가 설립한 불학원은 문화대혁명 때인 1966년에 강제 폐쇄되었다가 1980년 9월 재개관했다.중국에서 불교 사찰은 약 3만 3천여 개소가 현존하고 있으며, 전국에 약 22만 2천여 명의 승려가 있다. 불교 신도 수의 공식 통계치는 없지만, 1980년부터 중국 대륙의 비구와 비구니 숫자는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오늘날 중국에서 비구, 비구니 수계를 받은 승려는 약 5만 명으로, 1993년부터 비구와 비구니의 수계 비율은 2:1로 유지하고 있다.지난 시기에 중국 공산당 제16기 6중전회(2006년 10월)가 ‘결정’을 내린 바와 같이 사회의 조화는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본질적인 속성이라고 했다. 후진타오 국가주석 체제가 ‘사회주의 조화사회 건설 관련 약간의 중대 문제에 관한 결정’을 공식 채택함으로써 이행됐다. 이러한 국정 기조에 복무해야 하는 중국불교협회가 새로운 노선을 채택했다. 즉, ‘조화로운 세계와 모든 인연의 화합’(和諧世界 衆緣和合)을 대주제로 세계불교포럼을 처음 개최했기 때문이다. ‘조화로운 세계’라는 슬로건은 중국의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당시 대내외적 정치 목적에서 내세웠던 정치 구호와 맥락이 같다. 당시 중국 국가종교사무국 예샤오원(葉小文) 국장이 주제인 ‘조화로운 세계’는 ‘조화로운 사회 건설’을 주창한 후진타오 주석 캠페인의 연장선상이라고 설명한 것과 같이 ‘제1차 세계불교포럼’의 성격 내지 정치적 목적이 내포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그 당시 영국의 저널 《더스코츠맨》은 “중국 정부가 불교포럼을 종교 탄압국이라는 세계 여론의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 이용하고 있다.”고 비평했을 정도다. 세계불교포럼은 2004년 중국 베이징에서 본토, 홍콩, 대만에서 온 8명의 명사들이 세계불교 행사 개최를 처음 제안했고, 한국과 일본 불교계의 지지로 제안됐다. 2004년 10월부터 2005년 11월까지 홍콩, 마카오, 대만의 불교계가 공유하고, 중국 본토에서 불교포럼 개최를 40여 개국에서 제안하여 보편적인 지지와 적극적인 반응을 얻었다. 중국 정부도 역사적 사건을 주최하는 불교 공동체를 지원할 것이라는 공문으로 보증함에 따라 1차 세계불교포럼은 2006년 4월 13일~16일까지 중국 저장성 항저우 및 저우산 시티, 절강성 푸퉈샨(普陀山)에서 중국불교협회 주최로 열렸다.1차 포럼에는 티벳불교 2인자로 중국 정부에 의해 11위 판첸 라마로 인정받은 기알텐 노르부(Gyaincain Norbu, 당시 16세)과 조박초 중국불교협회장, 지관 조계종 총무원장 등을 비롯한 37개국 및 지역에서 온 1,000명 이상의 승려와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1차 세계불교포럼은 세상을 사랑하고 생명체를 돌보고, 불교를 존중하고 보호하며, 교류와 협력을 위한 사랑의 마음으로 평등과 다원주의에 대한 열린 대화를 논의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조화로운 세상’(和諧世界 從心開始)을 대회 슬로건으로 1차 포럼은 불교 주제에 대한 열린 대화를 달성하기 위해 전통이나 종교적 배경과 관계없이 모든 불교도와 비불교도에게도 개방됐다.제2회 세계불교포럼 남북불교대표단(2009.3.28. 중국 저장성 우석시 호텔 환영만찬장, 우측부터 심상진 조불련위원장, 지관 조계종총무원장, 운산 태고종총무원장) 사진: 《불교포커스》 (2009.3.30.)제2회 세계불교포럼 사찰순례(2009.3.28. 중국 저장성 우석시 보타산 관음원, 가운데 양복차림의 심상진 조불련위원장). 사진: 다음카페 '일향전념'(2012.8.28.)국제무대로 나온 조불련2006년부터 격년제로 열리는 중국 세계불교포럼은 북측 조불련의 또 다른 경험이었다. 1차 포럼에 불참했던 조불련은 2009년 3월 28일~4월 2일 중국 장쑤성 우시(無錫) 영산범궁(靈山梵宮)과 대만 타이페이에서 열린 ‘제2차 세계불교포럼’에 심상진 위원장 등이 직접 참가했다.당초 2008년 11월 중국 우시와 홍콩에서 열기로 했던 세계불교포럼은 베이징 올림픽으로 인해 3년 만에 개최됐다. 2009년 3월 28일~30일까지 중국에서, 3월 31일~4월 2일까지 대만에서 열렸다. 양안 관계의 긴장을 풀고 ‘하나의 중국’(One China)을 알리자는 중국 정부의 취지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제2차 세계불교포럼은 중국불교협회・중화종교문화교류협회・대만 국제불광회・홍콩불교연합회가 공동 주최했다. 중국 본토와 한국・일본・인도・태국 등 50여 개국 607명의 대표와 1,700여 명의 불교도가 참석한 가운데 개막식을 가졌다.‘세계화합과 모든 인연의 화합을’(和諧世界 眾緣和合) 주제로 열린 2차 세계불교포럼은 중국불교협회 이첸(一诚) 회장과 중화종교문화교류협회 예샤오원(葉小文) 회장 등은 연꽃 장엄물에 각국에서 마련해 온 물을 붓는 합수 행사로 시작됐다. 이첸 회장은 개막사에서 “이번 제2차 세계불교포럼은 중국과 대만불교가 화합하는 자리일 뿐만 아니라 세계불교의 큰 잔치이다. 16개 주제의 포럼에서 인류의 화합을 위한 지혜들이 쏟아져 나오길 기대한다.”고 대회 의미를 설명했다. 중국 인민정치협상회 뚜칭린(杜靑林) 부주석은 환영사에서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하고 세계평화를 이룩하려면 평등과 상호존중, 조화 등의 미덕을 통해야 한다. 개방과 포용, 중생 평등의 종교인 불교가 자비로써 그 역할을 펼쳐나갈 것으로 확신한다.”며 포럼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했다.지관 조계종 총무원장의 기조연설과 정산 천태종 총무원장이 인사말을 발표하는 등 조계종・태고종・천태종・진각종・관음종 등 종단에서 41명이 참석했다. 남측 불교계의 제안으로 참가한 심상진 조불련 위원장, 한성기 국제부장 등 북측 불교인사들은 그해 3월 27일 우시 시내 관광코스에서도 남측 종단대표들과 거리 인사를 나눴다. 또 우시의 링산범궁(靈山梵宮) 참배와 간담을 가지고, 그날 저녁에 세계 및 남북불교 대표단들과 함께 환영만찬을 했다.중국 장쑤성 우시에서 열린 2차 세계불교포럼의 남북불교 교류는 2008년 8월 5일 제5대 조불련 위원장으로 선출돼 2012년 11월 1일 사임한 심상진 위원장의 국제활동 공식 무대였다. 이때 심 위원장의 기조연설 기록은 중국불교협회 홈페이지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 “불교 연구를 위해 팔만대장경을 소장하고 있으며, 이에 관한 연구도 활발하다. 또한 중국으로부터 전래한 불교의 역사를 잘 알고 있다. 이에 감사드린다.”라고 말했다. 법봉 심상진 위원장은 1991년 10월 미국 LA에서 열린 남북불교도 합동법회를 비롯한 1994년 5월 중국 베이징에서 남북불교 교류를 재개할 때 서기장 등의 직책으로 참가한 실무형 교류 인사로 꼽힌다. 이때 함께한 한성기 조불련 국제부장은 영어에 능통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994년 6월 일본 교토회동에 처음 참여하면서 얼굴을 알린 인물이다.이날 남북불교 대표단 회동으로 2008년 7월 11일에 발생한 금강산 민간인 피격사건으로 금강산관광이 전면 중단된 가운데, 신계사 및 개성 영통사 복원 기념행사 등에 관한 현안이 교류 테이블에서 재론됐다. 그때 3월 30일까지 북측 조불련과의 릴레이 회동으로부터 금강산・개성관광 중단과 달리 신계사(10월 13일)와 영통사(10월 말 또는 11월 초)에서 각기 기념법회를 개최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했다. 한편, 2008년 12월부터 금강산 신계사 관리인(주지)으로 삭발승 진각대사와 부전 1명이 배치되었고, 2007년 상반기에 개성 영통사 관리인으로 혜명대사가 배치됐다. 그 후 영통사 관리인은 2010년 상반기에 삭발승으로 교체되어 현재까지 근무하고 있다.2009년 3월, 제3국에서의 남북불교 회동은 심상진 조불련 위원장의 국제무대 등장이란 점 이외에도 당시 파국으로 치닫던 남북 교류에 작은 소통의 길을 낸 ‘신뢰의 테이블’이었다. 비록 동아시아 불교국가들과 별도의 교류는 갖지 못했지만, 북측 조불련은 남북불교 교류의 파트너십을 일구어낸 역사를 만들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정치적 대립의 길이 아닌 종교적 화해의 길을 통해 남북 교류를 이어갈 힘이 우리에게 남아 있었다.# 다음 편은 ‘2009년 남북한 합동법회’가 이어집니다.-------------------------------------------------------------------------------------#이지범은경북 경주 출생으로 1984년부터 불교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에 참여하다가 1990년 초, 법보종찰 해인사에 입산 환속했다. 1994년부터 남북불교 교류의 현장 실무자로 2000년부터 평양과 개성·금강산 등지를 다녀왔으며, 현재는 평화통일불교연대 운영위원장과 북한불교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남북불교 교류 60년사’ 등과 논문으로 ‘북한 주민들의 종교적 심성 연구’ 등이 있다.[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 제보 mytrea70@gmail.com]

종합 | 이지범 북한불교연구소 소장 | 2022-10-03 14:54

어둠이 내린 동굴 같은시간이 멈춘 버린 엘리베이터에서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도손전화가 살아 있어 아들에게 전화한다아빠 나한테 하면 어떻게911에 전화해911 안내가 주소를 묻는다. 나 주소 모르는데전화 목록에 주소를 적어 두고도생각은 나지 않고 어린아이처럼 뜨거운 눈물만 주룩 흐른다우울감과 두려움 때문일까, 얼굴 반쪽이 마비되고다리에 힘도 풀려 털푸덕 구석 바닥에 앉아시끄러운 소음이 들리고 태양을 처음 마주하듯밝아졌다괜찮냐고 부축한 소방대원 손에 끌려 밖으로 나와하염없이 엠블런스를 기다린다응급 처치 요원 교육받을 때 스트로크 증세를 확인한다양손에 힘줘봐라. 눈을 감고 손들어 봐라. 힘껏 밀어봐라. 손가락 몇개? 이거 따라와봐.스트로크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엘리베이터에 갇혀 한 시간엠블런스 기다리느라 또 한 시간뉴웨스트 병원으로 가는 응급차 안에서 정맥에 주사기를 꼽고병원 도착하자마자 전쟁 통에 널브러진 패잔 병 같은 환자가 즐비한병원 복도를 고속도로처럼 응급 요원이 잘도 달린다.곧바로 씨티 찍고 피검사하고 구석에 기다리는데나 벌써 죽은 건가 싶다 가도 응급 요원이 보디가드수호신 같다.써리 병원으로 다시 오는 중에그래도 중증이 아니어서 다행이고 빨리 발견해 다행이다나 저녁 못 먹어 배고픈데 했더니샌드위치와 크래커 얻어다 준 응급 요원이천사 같다.#작가의 변지난 월요일에 엘리베이터 사고로 스트로크 즉 뇌경색을 다시 얻었다. 사람 일이란 참으로 모를 일이다. 같은 회사에서 지역이 다른 지점으로 이동한 지 이틀 만에 그것도 퇴근길에 엘리베이터에 갇혀 있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새로 옮긴 곳이어서 아직 전화도 개통되지 않았고 와이파이도 사고 당일에 연결이 되었다. 사고가 있고 집에 돌아와서 아내가 말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꿈자리가 안 좋아서 전에 일하던 곳으로 돌아가라고 했다고 했다.지나 보니 그런 결과가 있었을 뿐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았다면 그거 개꿈이라고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아파도 엠블런스를 부르는 일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엠블런스를 탄다는 것은 별로 달가운 일도 아니다. 가능하다면 엠블런스를 안 타는 것이 좋다. 눈에 빤히 보이는 병원을 가지 못하고 계단에 앉아서 1시간을 엠블런스를 기다리는 것은 불안한 시간이었다. 그래도 소방서 구급대원 5명과 다른 회사 직원들이 함께 엠블런스를 기다려 주고 있었지만 불안함은 가시지 않았다. 엠블런스가 오고 엠블런스 침대에 실려 써리를 떠나 뉴웨스트로 가면서 써리엔 스트로크 수술이 가능하지 않아서 간다는 말을 듣고 3년 전 리치몬드 병원에서 밴쿠버병원으로 가던 일이 떠올랐다. 그로부터 일 년은 치료하느라 지나갔다. 아니 2년이 거의 치료과정에 있었다. 올해부터 일을 제대로 하나 싶었지만, 툭하면 직장을 더 이상 다니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고 힘든 한 해였는데 결국 마무리는 또 이렇게 되는구나 싶다 가도 그래도 이만하길 다행이라면서 스스로 위로한다.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아파서 병원에 간다. 하지만 평소엔 그것을 잊고 지낸다. 그것을 평소에도 생각하면 얼마나 괴롭겠는가? 침대 위에서 병원 복도를 지나치며 다양한 환자들이 다양한 신음소리를 내면서 기다리고 치료받는 것을 봤다. 나도 분명 환자인데 나는 그 순간 제3자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소설의 전지적 작가 시점이나 제3자적 시점이었달까? 나는 내가 환자 임을 순간적으로 잊고 있었는지 모른다. 저승사자에게 이끌려 이승에서 저승을 가듯.씨티 스캔을 하면서 침대를 옮기고 주사를 맞고 뜨거운 것이 온 몸을 타고 흐를 때 살아 있음을 느낀다. 나도 치료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돼지 저울에 달듯 나를 싸서 달아 올려 몸무게를 잴 때는 흡사 내가 돼지 잡는 날 돼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엘리베이터 안에서 처음엔 밖에 누군가 있을 거고 금방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불이 꺼지고 아무도 곁에 오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 누군가에게 전화를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집으로 전화했고, 회사 전화도 했지만 헤드 오피스였던 것 같다. 911을 부르라는 말에 그제야 911을 부르게 된 것이다. 폐쇄로 인한 두려움과 공포가 밀려오고 숨은 점점 가빠오고 불안함과 이러다 갑자기 엘리베이터가 툭 떨어져 죽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공포가 엄습했다. 그렇다고 해도 2층이어서 고층보단 충격이 덜할 것인데 2층이라는 생각조차 잊었다. 그저 불안할 뿐.살면서 땅이 꺼지는 싱크홀 증상이나 지진, 태풍, 건물의 무너짐 등 자연재해는 언제든 일어 난다. 특히 교통사고는 운전하면서 가장 자주 대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을 잊고 산다. 그것을 평소에 생각하고 두려움을 느낀다면 생활 자체가 불가능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엘리베이터에서 갇히니 별의별 생각이 들고 두려움에 떨었다. 결과적으론 죽음이 두려웠던 것이다. 어둠이 죽음과 가까워서일까? 가장 불안한 순간에 믿는 종교에 기대어 기도한다는데 기도는 하지 않은 것 같다. 그저 불안에 떨었던 생각뿐. 그리고 내가 아프면 우리 가족은 어떻게 하나 렌트비와 생활비 걱정을 가장 먼저 하게 되는 것은 여유가 없는 도시민의 일반적인 걱정 중 하나이다. 그리고 이미 2번째라서 앞으로 일은 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살아야 한다. 살아 내야 한다. 나를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전재민(Terry)은캐나다 BC주 밴쿠버에 사는 ‘셰프’이자, 시인(詩人)이다. 경희대학교에서 전통 조리를 공부했다. 1987년 군 전역 후 조리 학원에 다니며 한식과 중식도 경험했다. 캐나다에서는 주로 양식을 조리한다. 법명은 현봉(玄鋒).전재민은 ‘숨 쉬고 살기 위해 시를 쓴다’고 말한다. ‘나 살자고 한 시 쓰기’이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고, 감동하는 독자가 있어 ‘타인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밥만으로 살 수 없고, 숨만 쉬고 살 수 없는 게 사람이라고 전재민은 말한다. 그는 시를 어렵게 쓰지 않는다. 사람들과 교감하기 위해서다. 종교인이 직업이지만, 직업인이 되면 안 되듯, 문학을 직업으로 여길 수 없는 시대라는 전 시인은 먹고살기 위해 시를 쓰지 않는다. 때로는 거미가 거미줄 치듯 시가 쉽게 나오기도 하고, 숨이 막히도록 쓰지 못할 때도 있다. 시가 나오지 않으면 그저 기다린다. 공감하고 소통하는 사회를 꿈꾸며 오늘도 시를 쓴다.2017년 1월 (사)문학사랑으로 등단했다. 2017년 문학사랑 신인 작품상(아스팔트 위에서 외 4편)과 충청예술 초대작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문학사랑 회원이자 캐나다 한국문인협회 이사, 밴쿠버 중앙일보 명예기자이다. 시집 <밴쿠버 연가>(오늘문학사 2018년 3월)를 냈고, 계간 문학사랑 봄호(2017년)에 시 ‘아는 만큼’ 외 4편을 게재했다.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 밴쿠버 중앙일보에 <전재민의 밴쿠버 사는 이야기>를 연재했고, 밴쿠버 교육신문에 ‘시인이 보는 세상’을 기고했다.[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 제보 mytrea70@gmail.com]

종합 | 전재민 시인 | 2022-10-03 14:46

훈민정음의 창제원리조선왕조실록(1443년 12월 30일)에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篆字)를 모방하고, 초성(初聲)·중성(中聲)·종성(終聲)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문자(文字)에 관한 것과 이어(俚語)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하지마는 전환(轉換)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일렀다.”라는 명백한 기록이 남아있어서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훈민정음은 세종의 독자적인 창작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많은 언어학자는 세종이 아무리 천재라도 홀로 훈민정음을 창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세종을 모셨던 신하 성삼문은 <직해동자습>(直解童子習)에서 “우리 세종과 문종께서 이점을 염려하시여 훈민정음을 창제하시니(我世宗,文宗慨念於此)”라고 밝히고 있듯이 세종 혼자서 훈민정음을 창작했다는 것에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또한 <훈민정음해례본>, <동국정운> 서문, <홍무정훈역훈> 서문 등을 통해서 훈민정음의 창제 원리가 범어와 중국 운서를 많이 참조하였다는 것이 드러나 있다. 범어가 들어오기 전까지 중국에는 운서가 없었다. <개원석교록>(開元釋敎錄730)에 서진(西晋) 시대(265~316)에 인도에서 들어온 범어를 소개한 ‘실담모(悉曇慕)’가 2권으로 번역되어 있음을 볼 수 있고, 당나라 지광은 ‘실담자기(794)’에서 범어의 자음을 소개하며 칠음(牙音·歯音·舌音·喉音·唇音)의 순서로 소개하고 있다.그 뒤 ‘광운’(1008)에서는 자음 36자를 칠음의 순서를 바꾸어 우리에게 익숙한 ‘아설순치후반설반치’로 소개하고 있다. 정초(鄭樵)가 편찬한 통지(通志,1161년)의 <칠음략>(七音略)에는 “칠음의 운(韻)은 서역으로부터 생겨서 하(夏)나라 때 모든 나라로 유입되었다(七音之韻起自西域流入諸夏)”라고 말하고 있고, <홍무정운역훈>(洪武正韻譯訓,1455) 서(序)에서 신숙주도 “칠음은 서역(西域)에서 기원하였는데, 송대 선비가 운보(韻譜)를 만들자 씨줄과 날줄이 비로소 하나가 되었다.(七音起於西域 至于宋儒作譜 而經緯始合爲一)”라고 적고 있다. <홍무정운>(洪武正韻1375)에서는 ‘아설순치후반설반치’의 칠음은 같은데 자음은 31개로 줄었다. 홍무정운(洪武正韻)을 본받아 ‘아설순치후반설반치’의 칠음 순서로 초성 23자를 만들고 그 자음들을 기존 운서에서 유행하던 오행(목화토금수)과 오음(각치궁상우)과 사시(봄여름늦여름가을겨울)로 배대하여 설명하는 것이 <훈민정음 해례본>(1446)이다. 아래 사진에서는 훈민정음과 홍무정음이 칠음과 오행(목화토금수)과 오음(각치궁상우)과 청탁에서 각각 어떻게 대응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사진1)사진 1.위 그림에 대한 설명은 중국 최고(最古)의 운서(韻書)인 <절운지장도>(切韻指掌圖)에도 잘 나타나 있다. 절운에서 오음(아설순치후)을 오행(목화토금수)과 오음(각치궁상우)과 네 계절(봄여름늦여름가을겨울)로 배대하여 설명하는 것이 훈민정음 해례의 설명과 완전히 같음을 알 수 있다. 절운과 훈민정음해례의 설명을 비교하면 아래와 같다.(절운)故始牙音春之象也, 其音角, 其行木 처음의 아음(牙音)은 봄(春)이며 각(角)음이고 목(木)행이다.(훈민정음해례)牙錯而長 木也. 聲似喉而實 如木之生於水而有形也. 於時爲春 於音爲角.어금니는 어긋나고 길어서, 오행의 나무(木)에 해당한다. 어금니 소리는 목구멍 소리와 비슷해도 실하기 때문에 나무가 물에서 생겨나지만 형체가 있는 것과 같다. 계절로는 봄(春)에 속하고, 5음으로는 각(角)음에 속한다.(절운)次曰舌音夏之象也, 其音徵, 其行火. 다음의 설음은 여름(夏 )이며 치(徵)음이고 화(火)행이다.(훈민정음해례)舌銳而動 火也 聲轉而颺 如火之轉展而揚揚也. 於時爲夏 於音爲徵 혀는 날카롭고 움직여서 오행의 불(火)에 해당한다. 혓소리가 구르고 날리는 것은 불이 이글거리며 활활 타오르는 것과 같다. 계절로는 여름(夏 )에 속하고, 5음으로는 치(徵)음에 속한다.(절운)次曰唇音季夏之象也, 其音宮, 其行土. 다음의 순음은 늦여름(季夏)이며 궁(宮)음이고 토(土)행이다.(훈민정음해례)脣方爲合 土也. 聲含而廣 如土之含蓄萬物而廣大也. 於時爲季夏 於音爲宮. 입술은 모나지만 합해지므로 오행의 흙(土)에 해당한다. 입술소리가 머금고 넓은 것은 흙이 만물을 감싸고 넓은 것과 같다. 계절로는 늦여름(季夏)에 속하고, 5음으로는 궁(宮)음에 속한다.(절운)次曰齒音秋之象也, 其音商, 其行金. 다음의 치음은 가을(秋)이며 상(商)음이고 금(金)행이다.(훈민정음해례)齒剛而斷 金也. 聲屑而滯. 如金之屑而鍛成也. 於時爲秋 於音爲商. 이는 단단하고 (무엇을) 끊으니 오행의 쇠(金)에 해당한다. 이 소리가 부스러지고 걸리는 것은 쇳가루가 단련되어 쇠를 이루는 것과 같다. 계절로는 가을(秋)에 속하고, 5음으로는 상(商)음에 속한다.(절운).次曰喉音冬之象也, 其音羽, 其行水. 다음의 후음은 겨울(冬)이며 우(羽)음이고 수(水)행이다.(훈민정음해례)喉邃而潤 水也. 聲虛而通 如水之虛明而流通也.於時爲冬 於音爲羽. 목구멍은 깊은 곳에 있고, 젖어 있으니 물(水)이다. 소리는 허하고 통하여, 물이 맑아 훤히 들여다보이고, 두루 통하는 것과 같다. 계절로는 겨울(冬)에 속하고, 5음으로는 우(羽)음에 속한다.이와 같이 훈민정음의 해례본에서 오음을 오행(목화토금수), 오음(각치궁상우), 사시(봄여름늦여름가을겨울)으로 설명하는 것이 운서와 똑같다. 그러므로 세종은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 등에게 “네가 운서(韻書)를 아느냐. 사성 칠음(四聲七音)에 자모(字母)가 몇이나 있느냐?”라고 물었던 것이다. 그때 세종이 말한 운서는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나 홍무정운(洪武正韻) 등 중국의 운서였고 사성칠음(四聲七音)은 홍무정운(洪武正韻) 등에서 설명하는 사성칠음(四聲七音)이었다.이러한 이유로 성현은 <용재총화>(慵齋叢話1525)에서 언문은 “초성·종성 8자, 초성 8자, 중성 12자의 글자체는 범자(梵字)를 본받아 만들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수광은 <지봉유설>(芝峯類說1614)에서 “우리나라 언서(諺書)는 전적으로 범자를 모방했다(我國諺書字樣篆倣梵字)”고 전하고 있으며, 이익도 <성호사설>(星湖僿說1760)에서 “원나라 파스파(巴思八)가 몽고 글자를 만들었는데, 평성 상성 거성 입성의 운(韻)을 7음에 넣어 빠뜨림이 없었고…이것이 언문의 기원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황윤석(1729-1791)의 <운학본원>(韻學本源)에도 “우리 훈민정음의 연원은 대저 여기에 근본 하였으되, 결국 범자 범위 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유희(柳僖)의 <언문지>(1824)에서도 “언문은 비록 몽고에서 시작되었으나 우리나라에서 완성되었다.”라고 전한다. 불교학자 이능화 역시 <조선불교통사>(1916)에서 “우리 훈민정음의 연원은 범자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諺文字法源出梵天)”고 적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미국 출신의 선교사 호레이스 언더우드는 “한글의 기원은 산스크리트어에 근거한 문자라고 생각된다”라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고, 일본의 나자와 쇼사부로(金澤廣三郞) 박사도 “한글은 범자를 모방하여 만든 것”이라 말하고 있다.몽고 글자인 파스파는 범어를 모방한 것이므로 파스파를 언문의 기원으로 보는 것은 범어를 기원으로 본다는 말과 같다. 우리는 한글을 배울 때 ‘가나다라마바사...’라는 순서로 배우다 보니 한글이 다른 나라 문자 체계와 닮았다는 것을 알 수 없었다. 나는 훈민정음 해례본을 읽으며 훈민정음이 ㄱ ㅋ ㄲ ㆁ, ㄷ ㅌ ㄸ ㄴ, ㅂ ㅍ ㅃ ㅁ, ㅅㅈ ㅊ ㅆㅉ, ㆆ ㅎ ㅇ ㆅ라는 순서로 설명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훈민정음은 범어의 ka그룹(ka kha ga gha ṅa), ta그룹(ta tha da dha na ṉa), pa그룹(pa pha ba bha ma), ca그룹(ca cha ja jha ña)과 일치되게 발음되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범어와 빨리어를 배운 사람이나 미얀마, 태국, 라오스, 스리랑카, 캄보디아, 티벳사람들이 한글이 ㄱ ㅋ ㄲ ㆁ, ㄷ ㅌ ㄸ ㄴ, ㅂ ㅍ ㅃ ㅁ, ㅅㅈ ㅊ ㅆㅉ, ㆆ ㅎ ㅇ ㆅ라는 순서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면 그리고 그 순서대로 한글을 가르치면 한글의 자음체계가 자기네 말과 같다는 것에 깜짝 놀랄 것이다.범어의 칠음과 청탁에 맞추어 자음들을 음사한 것이기에 운서에서 사용한 한자와 해례본에서 사용한 한자는 발음이 모두 같아야 한다. 그런데 범어의 ka그룹(ka kha ga gha ṅa)을 중국의 <홍무정운>과 <절운>에서는 아음(牙音) 견(見) 계(溪) 군(群)의(疑)의 한자로 옮겼는데 <훈민정음 해례본>에서는 君(군) 快(쾌) 虯(뀌) 業(업)으로 옮겼다. 이것은 중국에서는 아음(牙音)을 견(見)계(溪) 군(群) 의(疑) 순서로 발음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 한자의 발음이 ㄱ ㅋ ㄲ ㆁ로 발음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거나, 훈민정음이 중국의 운서를 그대로 베꼈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였다는 생각이 든다. ta그룹(ta tha da dha na ṉa)을 운서는 단(端) 투(透) 정(定) 니(泥)순서로 옮겼는데 <훈민정음 해례본>에서는 斗(두) 呑(탄) (땀) 那(나)의 초성 ㄷ ㅌ ㄸ ㄴ을 보여주고있다. ca그룹(ca cha ja jha ña)을 운서는 지(知) 철(徹) 징(澄) 양(孃)으로 옮겼는데, pa그룹(pa pha ba bha ma)을 운서는 방(幫) 방(滂) 병(竝) 명(明)으로 옮겼는데 <훈민정음 해례본>에서는 彆(별) 漂(표) 步(뽀) 彌(미)의 초성 ㅂ ㅍ ㅃ ㅁ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신숙주는 <동국정운> 서문에서 "아음(牙音)으로 말할 것 같으면 계모(溪母) 의 글자가 태반(太半)이 견모(見母) 에 들어갔으니, 이는 자모(字母)가 변한 것이고, 계모(溪母)의 글자가 혹 효모(曉母) 에도 들었으니, 이는 칠음(七音)이 변한 것이라."라고 운서의 사성과 칠음의 변화를 지적하고 있다. 훈민정음을 적을 때 사성(평성,상성,입성,거성)을 각각 점 하나,점 두 개, 점 없음 등으로 표기하는 것과 글자 간의 사이를 두지 않고 한문처럼 붙여 쓰는 방식도 한문의 표기 방식을 답습한 것이다.청탁의 원리도 마찬가지다. 범어는 무성무기음, 무성유기음, 유성무기음, 비음으로 구별되는데 <홍무정운>과 <훈민정음>은 이것을 전청, 차청, 전탁, 불청불탁(비음)으로 나눈다. <훈민정음>에서 “ㄱㄷㅂㅈㅅㆆ는 전청이 되고, ㅋㅌㅍㅊㅎ는 차청이 되고, ㄲㄸㅃㅉㅆㆅ는 전탁이 되고, ㆁㄴㅁoㄹㅿ는 불청불탁”이 된다. 운서의 견모(ka) 계모(kha) 군모(ga) 의모(ṅa)의 발음은 <훈민정음>의 ㄱ(군모) ㅋ(쾌모) 뀌모(ㄲ) 업모( ㆁ)의 발음과 같고, 운서의 아음(牙音) 치음(歯音) 설음(舌音) 후음(喉音) 순음(唇音)에서 나는 발음이 <훈민정음>의 아음(牙音) 치음(歯音) 설음(舌音) 후음(喉音) 순음(唇音)의 조음 위치에서 나는 발음과 같다. (사진2)사진 2.범어의 자음은 연구개음, 경구개음, 권설음, 치음, 순음의 순서로 조음 위치에 따라 그룹별로 묶었는데 그것을 중국의 운서는 아설순치후반설반치(牙音·舌音·脣音·齒音·喉音·半舌·半齒)로 옮겼다. 훈민정음은 아음 ‘ㄱㄲㅋㆁ’, 설음 ‘ㄷㄸㅌㄴ’, 순음 ‘ㅂㅃㅍㅁ’, 치음 ‘ㅈㅉㅊㅅㅆ’, 후음 ‘ㆆㅎㆅㅇ’, 반설음(ㄹ), 반치음(ㅿ)으로 정확하게 칠음을 모방했다. 힌디어, 미얀마, 캄보디아,태국어는 ka 그룹에 5개의 자음(ka kha ga gha ṅa)이 있는데 파스파어, 티벳어, <훈민정음>은 4개의 자음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발음하기 어려운 ‘유성유기음’(gha jhaḍha dha bha) 4개가 사라진 결과이다. 훈민정음이 왜 하필 ㄱ으로부터 시작하는가를 묻는다면 범어가 ka로 시작하기 때문이고 운서가 견모(見)로 시작하기 때문이고, 일본어, 미얀마어, 태국어, 캄보디아어, 스리랑카어, 티벳어가 ka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사진3)이 유성유기음이 사라졌기 때문에 파스파어, 티벳어, 훈민정음은 같은 브라흐미 계열의 문자 중에서도 더욱 닮아 보인다.사진 3.훈민정음의 자음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살펴보자. 훈민정음에서 “아음 ㄱ은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을 본뜨고, 설음 ㄴ은 혀가 윗잇몸에 붙는 모양을 본뜨고, 순음 ㅁ은 입 모양을 본뜨고, 치음 ㅅ은 이빨 모양을 본뜨고, 후음 ㅇ은 목구멍 모양을 본 떴다.”고 설명하는데 이것이 기본자(ㄱ ㄴ ㅁ ㅅㅇ)이다. 이 기본자를 5음에 따라 소리 나는 위치와 혀의 모양이나 구강구조를 모방한 것이다. 하지만 아음 ㄱ을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을 본뜨고, 설음 ㄴ은 혀가 윗잇몸에 붙는 모양을 본 떳다는 설명은 이해가 쉽지 않다. 운서의 견(見)·계(溪)·군(群)·의(疑)는 범어 ka kha ga ṅa를 나타내기 위한 중국인들의 표시였다. 세종은 운서에 맞추어 아음(牙音)이 견(見)·계(溪)·군(群)·의(疑)로 발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세종은 견(見)·계(溪)·군(群)·의(疑)에서 각각 초성을 분리하여 각 자음에 맞는 기호를 만들어야 했다. 그러니까 아음(牙音)은 ㄱㄲㅋㆁ으로 발음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던 세종은 그 소리에 해당하는 부호 ㄱㄲㅋㆁ을 만든 것이다. <동국정운> 서문에서는 “글자의 초성을 만든 것은 소리에 맞출 뿐이다.(且字母之作 諧於聲耳)”라고 그 제자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견모(見)에서 초성을 분리하여 ㄱ, 계모(溪)에서 초성을 분리하여 ㅋ, 군모(群)에서 초성을 분리하여 ㄲ, 의모(疑)에서 초성을 분리하여 ㆁ을 만들었다면 이 부호들은 어디서 왔을까?정초(鄭樵)가 한자의 자획을 해설한 <육서략>(六書略)의 기일성문도(起一成文圖)에는 ㄱ ㄴ ㅁ ㅂ ㅅ 등 정음의 자음과 똑같은 부호들이 있다.(사진3) 세종실록 세종 25년 12월에 “이 달에 임금께서 친히 언문 28자를 만드시니, 그 글자가 고전을 본떴다(是月上親製諺文二十八字 其字倣古篆).”라고 되어 있다. 견(見) 계(溪) 군(群) 의(疑)에서 각각 초성을 분리하여 쓴 기호는 세종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고 고전을 본 떴는데(其字倣古篆), 그 고전이 기일성문도(起一成文圖)에 나오는 ㄱ ㄴ ㅁ ㅂ ㅅ 이었을 것이다. 기본자 다섯 개 중에서 순음 ㅁ은 입 모양을 본뜨고, 치음 ㅅ은 이빨 모양을 본뜨고, 후음 ㅇ은 목구멍 모양을 본떴다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순음 ㅁ, 치음 ㅅ, 후음 ㅇ을 빼고 나면 이제 남은 것은 견모(見)와 계모(溪)뿐이다. 여기에서 세종은 견모(見)에 ㄱ, 계모(溪)ㅋ을 대응시키고 가획의 원리를 더해서 훈민정음 23자를 만든 것이다. 만약 세종이 이 다섯 개의 기본자와 나머지 가획자를 손수 창작했다면 “그 글자는 고전을 본떴다(其字倣古篆)”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사진 4. 한글 기본자와 기일성문도(起一成文圖)범어와 훈민정음은 자음과 모음이 일대일로 결합하여 다양한 음을 만들어 낸다. 이것은 브라흐미 계열의 문자 영향을 받은 빨리어 범어 미얀마어 태국어 티벳어 등과 같다. ka그룹에서 범어는 5개(ka kha ga gha ṅa)의 자음인데 훈민정음의 자음은 4개(ㄱ ㄲ ㅋ ㆁ)이다. 이렇게 자음 하나가 축소되는 현상은 미얀마어, 스리랑카, 태국어등에서도 나타나는 것으로 유성유기음(gha)을 발음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언어는 지역과 사용자들의 편리성을 따르기 때문이다. <동국정운> 서문에 “설두(舌頭)·설상(舌上)과 순중(唇重)·순경(唇經)과 치두(齒頭)·정치(正齒)와 같은 종류는 우리나라 글자 음으로 분별할 수 없고 또한 분명 그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에 구태여 36자에 구애될 필요가 있겠는가(如舌頭舌上唇重唇輕齒頭正齒之類 於我國字音未可分辨 亦當因其自然何必泥於三十六字乎)”라고 말하고 있다. 세종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발음하기 어려운 설두(舌頭)·설상(舌上)을 설음으로 합치고, 순중(唇重)·순경(唇經)을 순음으로, 치두(齒頭)·정치(正齒)를 하나의 치음을 만든 것이다. 범어에는 치음을 설두(舌頭)·설상(舌上) 그리고 순음을 순중(唇重)·순경(唇經)으로 나누지 않았었는데 중국인들이 나누어 놓았고 훈민정음은 다시 이것을 원래대로 하나로 만들었다.범어를 표기하는 가장 오래된 브라흐미 글자와 <훈민정음 혜례본>에 나타나는 자음과 모음을 결합하는 방식도 같다. 훈민정음에서 “ㆍ, ㅡ, ㅗ, ㅜ, ㅛ, ㅠ는 초성 아래에 붙여 쓰고, ㅣ, ㅏ, ㅓ, ㅑ, ㅕ는 오른쪽에 붙여 쓴다.”라고 되어 있는데, 브라흐미 문자도 그 법칙을 따르고 있다. 예를 들어 Ka에서 장음 Kā가 되려면 오른쪽에 점을 찍고 ka에서 ku로 바뀌면 획을 아래쪽에 점을 찍으면 된다. 브라흐미 자음()에 모음 ㅜ를 더하여 ‘구쿠구누, 쭈추주누, 뚜투두누’를 만들고 싶으면 훈민정음처럼 자음 아래에 점을 찍으면 된다. => , , , .모음 ㅣ를 붙이면 ‘끼키기니, 찌치지니, 띠티디니’가 된다.=> ,,,,.이러한 방식은 현대의 데와나가리와 티벳어들을 적을 때도 이어지고 있다. 다만 브라흐미 문자의 자음에 ㅓ,ㅔ를 결합할 때는 자음 왼쪽에 점을 찍어야 하는데 훈민정음은 자음에 ㅓ를 결합할 때도 자음 오른쪽에 점을 찍는 것이 다르다.사진 5.얼마 전 KBS ‘역사스페셜’에서 “소리 문자 훈민정음 어떻게 만들어졌나”라는 프로그램을 보았는데 배대온 경상대 교수, 이재돈 이화여대 교수, 강창석 충북대 교수 등은 훈민정음이 범어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극구 부인했다. 부인하는 논리는 “범어와 파스파문자의 원리를 받아들였다고 하는 적극적인 증거는 확인할 수 없다." "힌디어의 문자인 데와나가리가 훈민정음과 닮지 않았다는 것이다.”는 것이다. 너무 피상적인 이유를 들어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세종은 칠음과 사성의 틀을 이용하여 훈민정음을 만들었다. 범어와 운서와 훈민정음은 칠음체계, 조음체계, 발음체계, 청탁체계가 같다. 범어와 운서와 훈민정음의 아음(牙音)이 (ka,見,ㄱ) (kha,溪,ㅋ) (ga,群,ㄲ) (ṅa,疑,ㆁ)로 정확하게 일치한다. 특히 범어의 ka그룹 ta그룹 pa그룹 ca그룹의 마지막 자음이 비음( ṅa ña ṇa ma)으로 끝나고, 운서도 비음(疑 泥 娘 明)으로 끝나고, 훈민정음도 비음( ㆁ ㄷ ㅁ ㄴ)으로 끝난다. 범어는 무성무기음, 무성유기음, 유성무기음, 비음의 구별은 운서와 훈민정음에서는 전청, 차청, 전탁, 비음이다. <절운지장도>(切韻指掌圖)'와 <홍무정운>에서 설명하는 오음(아설순치후), 오행(목화토금수), 오음(각치궁상우), 사시(봄여름늦여름가을겨울)의 설명과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설명하는 것이 완전히 같다.오행(목화토금수), 오음(각치궁상우) 등은 인도에서는 없었던 것으로 이것은 전적으로 중국 운서의 영향이다. 범어와 빨리어를 배운 사람이나 미얀마, 태국, 라오스, 스리랑카, 캄보디아, 티벳 사람들은 한글이 ㄱ ㅋ ㄲ ㆁ, ㄷ ㅌ ㄸ ㄴ, ㅂ ㅍ ㅃ ㅁ, ㅅㅈ ㅊ ㅆㅉ, ㆆ ㅎ ㅇ ㆅ 순서라는 것을 알면 자기네 나라 자음체계와 똑같아서 깜짝 놀란다. 세종이 홀로 독창적으로 창제한 것이 아니라 범어와 운서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서 <훈민정음>의 가치가 낮아지는 것은 아니다. 문화는 바람처럼 흐르는 것이어서 미얀마, 태국, 라오스, 스리랑카, 캄보디아, 티벳어가 범어의 영향을 받은 것처럼 훈민정음이 범어의 영향을 받은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영향을 받았지만 <훈민정음>은 다섯 개의 기본자(ㄱ ㄴ ㅁ ㅅㅇ)에 가획하여 눈으로도 보아도 같은 그룹이고, 소리로 들어도 같은 그룹임을 알 수 있는 쉽고 사용하기 편리한 글자이다. 범어나 중국의 운서를 모방했지만 자모와 운모로 구별하는 2분법을 넘어서 초성 중성 종성이라는 3분법으로 언어의 차원을 한 단계 높여 놓았다. 훈민정음은 자음과 모음의 형태 자체가 발음기호이기 때문에 어떤 나라의 언어이든, 어떤 동물의 소리든, 바람 소리 물소리와 같은 어떤 자연의 소리든 표기할 수 있는 탁월한 문자이다. 다만 세종대왕이 만드신 23자 중에서 사라진 4자(사진4)와 합용병서의 규칙, 그리고 ㅂ순경음 등의 연서 규칙을 다시 살려야 한다. 이것을 살리면 세종이 의도한 대로 훈민정음의 정교함과 편리성은 더욱 커진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만든 의도대로 한글을 잘 활용하는 것이 훈민정음을 존중하는 일이지 단독 창제를 고집하는 것만이 세종을 존중하는 태도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종합 | 허정 스님 | 2022-10-03 14:32

구름으로 산문을 지은 청량사 5층 석탑 위 어둑한 하늘에 차오르기 시작한 초승달이 흰 분 바른 듯 미소 짓고, 청량산 연화봉에 범종의 천년 메아리가 허공에 떨어져 온 중생을 품어 안았다.3년 만에 열린 2022 청량사 산사음악회는 청량산 연화봉 기슭 열두 암봉을 무대로, 그 한 가운데 자리한 청량사의 모든 공간이 객석이 됐다. 공연 네 시간 전부터 산비탈, 장독대, 경내 모든 길에 앉은 사람들, ‘성소(聖所)’인 유리보전에서 심우당, 지장전까지, 범종루에서 5층 석탑으로 오르는 길목마다 관객이 넘쳤다.R석도 A석도 없다. 누가 찾아와도 특별석이 없다. 스님들도 서성이며 공연을 본다. 청량사 경내 모든 공간이 객석이다. 손님들에게 절을 통째로 내줬다. 무대가 보이지 않는 곳에 앉은 관객들은 스크린으로 공연을 볼 수 있다. 음악은 청량사 어느 곳에서나 잘 들리지만, 출연진을 직접 못하는 공간에 앉은 이들을 위한 것이다. 조명도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다. 한 마디로 색의 향연이다. 열두 암봉이 조명의 색에 취했다. 연화봉이 무대 배경이 되고 열두 암봉도 연화봉을 도와 청량 판타지아를 완성했다.원조 산사음악회에 목마른 이들은 많았다. 산사음악회는 국민의 안전을 위해 잠시 멈췄지만, 청량사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리움과 갈증으로 공연을 기다려왔다. 서울에서 7시간이 걸려 산사음악회에 왔다는 손님부터, 30분도 채 걸리지 않는 봉화에서 청량산공원관리사무소까지 2시간이나 걸려 왔다는 신도까지 1만 3천명을 훌쩍 넘는 관객이 ‘청량산 객석’을 가득 메웠다. 공연을 시작한 7시 이후에도 관객들이 계속 산으로 올랐다.이를 알았는지 유난히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완연한 가을 냄새가 가득 찬 시간, 청량사 산사음악회는 삶을 정성껏 살아가는 이 시대 모든 이들이 다시 희망을 노래하고 꿈을 향해 내달릴 수 있도록 공연을 준비했다.먼저 사시사철 합을 맞춘 둥근소리 합창단이 청량사를 찾은 모든 이들을 노래로 환영했다. 청량사 중근소리 합창단은 청량사 산사음악회의 주인공이자 주빈으로 무대에 올랐다. 공연 세 시간 전부터 리허설을 마치고 흰 셔츠와 검은 바지로 노래할 자태를 매만진 합창단원들은 지휘자 이종만의 움직임에 맞춰 ‘산은 산, 물은 물이로다’로 2022 산사음악회의 문을 열었다. 5층 석탑을 경계로 공연 자리가 만들어졌고, 무대 앞 노송은 짙은 적갈색 빛을 뿜어 무대를 비췄다.소프라노 박선영과 테너 오상택의 공연.관객과 활발히 만나 온 소프라노 박선영은 섬세한 울림을 노래하는 테너 오상택이 3년 만에 산사음악회에 관객에게 ‘좋은 인연’으로 환영했다. 박선영은 ‘넬라 판타지아(nella fatasia)’로 환상적인 무대에서 빛나는 세계를 선사했고, 컴컴한 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날아다니는 구름처럼 자유로운 영혼을 꿈꾸게 하며 세상이 덜 어둡고 평화롭길 희망했다.오상택은 ‘공주는 잠 못 이루고(Nessun dorma)’로 연화봉 열두 기슭 사이 가려진 청량사의 신비로움을 비유하고, 밤하늘 떨리는 별빛 아래에서 사랑과 희망을 노래했다. 관객은 노래마다 앵콜을 소리쳤고, 곡을 마칠 때마다 박수와 환호로 호응했다. 박성영과 오상택은 ‘축배의 노래’로 꿈의 무대인 청량 판타지아에서의 환희로운 아름다운 밤과 웃음을 즐기도록 같이 열창했다.청량사는 ‘뮤지션이라면 누구나 서고 싶고 다시 한번 오르고 싶다’는 찬사에 걸맞게 무대를 꾸밀 뮤지션을 초청해 왔다. 어려운 상황에도 절대 좌절하지 않고 가족의 행복을 지키며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모든 분의 등을 토닥이고, 산을 오르는 것과 같은 굽이진 삶에서 때론 뒤에서 밀어주고, 때론 땀을 식혀주는 청량한 바람과 같이 여러분의 삶을 위로하고 응원하며 음악회를 준비한 청량사는 올해는 안방 TV에 접한 트로트 열풍의 주역들과 함께 한바탕 흥겨운 놀이마당을 펼쳤다. 미스트롯2의 양지은·김의영·은가은과 미스터트롯의 강태관이 무대에 올라 관객들에게 흥에 흥을 더하고, 어깨춤을 보탰다.가수 김의영은 “장관도 이런 장관이 없다. 영화 같은 공연은 처음”이라고 했다.가수 김의영이 시원시원한 목소리로 ‘도찐개찐’을 비롯해 ‘찔레꽃’ 등 메들리로 청량산을 들썩였다. 김의영은 “장관도 이런 장관이 없다. 영화 같은 공연은 처음”이라며 열성을 다해 노래하고, 무대 끝자락에서 깎아지른 낭떠러지 아래 관객들과도 호흡했다. 국악인 출신 가수 강태관은 ‘한오백년’ 등 곡으로 관객을 사로잡았고, 장독대에 앉은 관객과도 눈을 맞추며 노래했다.회주 지현 스님은 무대에 올라 “해발 650미터 정상에 아름다운 무대가 열렸다. 20년 넘게 음악회를 여는 것은 모두 여러분 덕분이다. 내년에도 함께 멋진 음악회를 만들겠다”며 10초 인사말로 관객이 듣고 즐길거리에 시간을 더 배려했다. 사회자 정유탁 역시 관객들과 출연자의 호흡이 끊어지지 않게 간단히 가수 이름만 소개했고, 공연한 출연진은 공연과 공연의 틈을 메우며 노래했다.10초 인사말을 하는 지현 스님.열두 암봉은 전통 트로트와 타장르과 결합한 트로트 곡들의 향연에 너울댔고, 암봉 기슭마다 자리 잡은 관객들은 저마다 손에 쥔 야광봉을 흔들고 손뼉을 치며 노래와 하나가 됐다.미스트롯2 결승전에서 “관세음보살”을 이야기해 절집 사랑을 독차지하며 ‘절통령’으로 불리는 은가은이 무대에 올라 열창했다. 은가은은 노래 사이 자신의 휴대폰으로 관객들과 셀피를 찍으면서 호흡했다. 은가은은 “많은 사찰에 가고 공연하지만, 가 본 사찰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며 ‘옆집누나’ ‘티카타카’ ‘당나귀’ 등을 보조 댄서와 합을 맞춰 열창했다.강태관의 공연.관객들는 한 곡이 끝날 때마다 “앵콜”을 반복했고, 출연진은 “앵콜”에 노래했고, 또 “앵콜”에 노래했다. 김의영은 트로트 메들리로, 강태관은 ‘사랑의 트위스트’로 은가은은 신중현의 ‘미인’으로 앵콜에 화답했다.이날 음악회 엔딩은 미스 트롯2 진의 양지은이 장식했다. 김순자 명창의 제자인 양지은(미스트롯 1위)은 ‘사는 맛’을 시작으로 ‘빙빙빙’까지 노랬고, 음악회가 끝나는 것을 아쉬워하는 관객들은 다시 앵콜로 양지은을 붙잡았다. 양지은은 ‘영암 아리랑’으로 청량사 산사음악회 마지막을 장식했다.2시간이 훌쩍 지났다. 몇 분 되지 않은 것 같았지만, 2022산사음악회를 아쉽게 작별을 고했고, 내년 음악회를 약속했다. 관객들은 차도 오르기 힘든 일주문까지 1Km 산길을 발에 힘주어 걸으며 내려왔고, 다시 1.5 Km를 더 걸어 청량산공원관리사무소를 지나 강 넘어 숙박지구까지 걸었다. 숙박지구 넘어 삼거리는 안동 방향과 봉화 방향으로 갈라지는 차들의 기다림이 길었다.

종합 | 서현욱 기자 | 2022-10-02 16:46

삼보를 묻는 문제에 저마다 답한 어린이들 Q. 대한불교조계종의 종조는 누구일까요?A. "정희왕후?"A. "조계사"Q. 염라대왕이 갖고 있는 거울로 살아온 내용을 모두 보여준다는 이 거울은 무엇일까요?A. "몰라요"A. "업경대"OX문제를 포함한 19문제 풀이 후 20번째 문제에서 어린이부 대상 금상의 우열이 가려졌다. 제1회 봉선사 '도전, 큰말씀 겨루기' 어린이부 금상은 의정부초교 6학년 이진우 학생이 차지했다.봉선사 주지 초격 스님은 "봉선사는 승가고시를 치루던 곳이다. 부처님 말씀을 보다 쉽게 더 많은 사람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도전, 큰말씀 겨루기'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본사 봉선사(주지 초격 스님)는 1일 경내 청풍루에서 개산 1053주년 기념 교리경시대회 '도전, 큰말씀 겨루기'를 개최했다.대회 첫날인 이 날은 초등학생까지 참가한 어린이부와 중고등학생이 참가한 청소년부 대회가 열렸다. 어린이부는 봉선사 어린이법회 어린이 20명이 참가했다. 청소년부는 광동중고, 동대부중 등 종립학교 학생 가운데 100여 명이 참가했다. 경시대회 문제는 ▷부처님의 생애 ▷불교 일반상식 ▷봉선사의 역사와 인물 등 3개 주제에서 출제됐다.봉선사는 문제를 두번씩 들려주되 20번 문제까지는 프리젠테이션을 통해 글로도 읽을 수 있게 했다. 문제 제출 후 다섯을 세고 정답을 가렸다. 오답으로 탈락해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던 참가자들은 패자부활전을 통해 다시 문제를 풀 기회를 얻었다.청소년부 학생들은 등에 "부처님 정답을 알려주소서" 등 재치 넘치는 문구를 써 붙이기도 했다 어린이부 대회에는 20명이 참가했다. ▷대상 이진우(20만원) ▷금상 김도연(15만원) ▷은상 이의정(10만원) ▷동상 박나연(5만원) 어린이가 상장과 상금을 받았다.청소년부에서는 ▷대상 하정우(30만원) ▷금상 서현건(20만원) ▷은상 김슬아(15만원) ▷동상 강수연(10만원) 학생이 뽑혔다.봉선사 주지 초격 스님은 "봉선사는 서산·사명 대사 등 스님들이 스님이 되기 위해 승가고시라는 시험을 치루던 곳"이라고 했다.이어서 "훌륭한 법이 있고 뛰어난 문학, 학문이 있어도 이것을 알기쉽게 하지 않는다면 널리 알려질 수 없다. 오늘 '큰말씀 겨루기'를 개최한 이유이다"고 했다.스님은 "내년부터는 한글날 전국대회로 경시대회인 '도전, 큰말씀 겨루기'를 개최하겠다"고 했다. 봉선사는 이날 행사에 이어 2일 오전 제1053주년 개산대재를 봉행한다. 오후에는 일반인 대상 '도전, 큰말씀 겨루기' 대회를 한다.  일반부는 대상 100만원, 금상 50만원, 은상 30만원, 동상 20만원의 상금을 수여한다. [불교중심 불교닷컴, 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제보 cetana@gmail.com]

종합 | 조현성 기자 | 2022-10-01 23:50

사진=봉선사 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회장 민성진)는 지난달 24~25일 봉선사와 용문사에서 ‘제1회 운암로드 탐방’을 개최했다.행사는 봉선사 스님이자 독립운동가로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역임한 운암 김성숙 선생(태허 스님)을 기리고 템플스테이를 통해서 독립운동과 민주화 강연을 체험 프로그램이다. 행사에는 모집정원보다 2명 많은 72명이 참석했다. 사진=봉선사 이들은 24일 봉선사 청풍루에서 입소식 후 봉선사와 용문사에서 고행의 삶을 체험했다.입소식에서는 밀운 스님(봉선사 회주)이 법문, 선우 스님(전 봉선사 부주지)이 환영사, 송영길 전 국회의원(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 이사)과 김한정 국회의원이 축사를 했다.탐방단은 첫날 입소식 후 사찰탐방, 108배체험, 범종타종 체험, 초격 스님(봉선사 주지)의 ‘독립운동의 산실 봉선사와 태허 스님’ 강연, 일각 스님(btn라딩 울림 진행자)과 함께 촛불 불멍과 명상을 했다.이튿날 탐방단은 봉선사 새벽예불 후 광릉수목원 비밀의 숲 걷기 후 운암 김성숙 선생의 출가사찰인 양평 용문사로 이동해 양평친환경농업박물관을 찾아 특별전 ‘양평의병의 항일운동! 동아시아의 빛이되다’를 관람했다. 사진=봉선사 탐방단은 용문사에서 호국불교 역사적 가치를 기억하며 염주만들기, 소원지 쓰기 등 체험과 선우 스님(보광사 주지)의 ‘선우 스님이 들려주는 태허스님 이야기’ 강연을 들었다. 이후 다시 봉선사로 돌아와 미륵전에서 회향했다.운암 김성숙(태허 스님)선생은 의열단, 임시정부 내무차장·국무위원으로 항일투쟁에 참여했다. 선생은 해방 후 독재정권에 맞서 신민당 창당 주역으로 활동했고, 1969년 4월 12일 동지들이 비나 피하라고 마련해준 ‘피우정’에서 서거했다.[불교중심 불교닷컴, 기사제보 cetana@gmail.com]

종합 | 조현성 기자 | 2022-10-01 23:13

화엄의 바다에 색과 소리가 어우러졌다. 웅대하고 우아한 유서 깊은 지리산 대화엄사 경내는 한국과 인도, 그리고 서구의 음악이 한데 어우러졌고, 청광, 백광, 적광의 오색찬란한 불빛이 천년고찰을 물들였다.30일 저녁 6시 30분 화엄사(주지 덕문 스님) 운고각(雲鼓閣)에서 법고가 울렸다. 3명의 스님이 번갈아 법고를 울렸다. 나무 북채가 법고와 맞닿을 때마다 어둑어둑한 대화엄사 경내를 넘어 삼천대천세계에 퍼졌다. 북채를 쥔 스님들의 손길을 따라 장삼 자락이 너울댔고, 이를 지켜보는 이들의 가슴은 법고의 울림과 같이 박동했다. 법고의 마지막 울림을 운판(雲版)이 받았고, 운판의 쟁쟁임이 사그라들 때 목어(木魚)를 두드리는 스님의 손길이 분주했다.목채와 목어의 맞닿음이 만들어 낸 소리가 뚝 끝날 범종(梵鐘)이 울리며 ‘화엄(華嚴), 붓다의 길에서다’를 주제로 열린 2022 화엄문화제 첫날 저녁 ‘작은 음악회’가 시작했다. 이날부터 2일까지 열리는 화엄문화제는 매일 저녁 음악회를 갖는다. 이에 첫날 음악회는 ‘작은 음악회’라는 이름 붙였다. ‘작은 음악회’라지만 화엄사의 역사에 격조를 더하는 큰 음악회였다.보제루 앞마당에 펼쳐진 무대는 국보 제301호 영산회 괘불이 장엄했다. ‘작은 음악회’는 ‘빛과 소리’의 향연이었다. 어떤 인위적인 장치가 없는 불교의 대표 의식물인 사물(四物)이 지리산 화엄사의 밤을 울렸고, 유명 가수의 익숙한 노래 없이 타악기, 관악기 등이 어울렸고, 불교의 탄생지 인도의 전통악기와 서구의 악기가 조화를 이뤘다. 여기에 더해 우리 전통 창(唱)이 더해져 화합을 이뤄냈다.박소현 학생의 '배 띄워라'불종(佛種)으로 어머니를 좇아 국악인의 길을 걷는 박소현(광주예고 1) 학생이 음악회의 문을 본격적으로 열었다. 박소현 학생은 농익지 않았지만 청아한 소리로 사찰 명상의 길에 설 화엄문화제 참가자들에게 한국의 서정을 담은 ‘배 띄워라’를 불러 응원했다.요가대축제 등을 열어 인도 전통문화를 ‘사랑’해온 화엄사는 이날 공연의 메인 게스트로 인도 전통음악과 무용단을 초대했다. 화엄사가 사랑(愛)한 음악과 춤 등은 ‘사랑(sarang)’으로 관객들을 사로 잡았다. ‘사랑’은 힌디어로 ‘다채로움, 다양성’을 의미한다. 아밋 쿠마르 주한 인도대사와 소누 트리베디 주한인도문화원 원장이 직접 내려와 공연단을 이끌었다. 2023년 인도와 한국 양국 수교 50주년를 앞두고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사랑(sarang) 문화 축제’를 화엄사에서 시작한 것이다. 주한인도대사관은 이날 화엄문화제를 시작으로 ‘사랑-인도문화축제’를 서울과 인천 등 수도권을 비롯해 부산, 경남 김해, 충북 청주, 강원 춘천, 전남 구례, 충북 영동 등 전국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행사를 갖는다.인도전통음악은 저명한 바나라스(바라나시) 가라나 가수 수난다 샤르마가 인도 전통 악기인 타블라, 하모늄, 사랑기, 탐푸라의 선율에 맞춰 공연했다. 수난다 샤르마는 “한국의 성스러운 장소에서 공연하게 돼 매우 기쁘다”며 “오늘 공연은 인도의 전통적인 기도의식에서 부르는 곡”이라고 소개했다. 낯선 인도의 전통음악이지만 타블라의 두드림과 하모늄 등의 울림에 참석자들은 바자를 맞췄고, 지루할 틈 없이 이어지는 인도 전통악기의 음율에 흠뻑 빠져들었다.수난다 샤르마의 노래와 인도전통악기의 어울림.인도 전통악기의 리듬과 음율이 남긴 여운이 가시기 전에 인도 전통무용단이 무대에 올라 시선을 사로잡았다. 화엄사를 찾은 인도 무용단은 인도에서 영예로운 브라즈 라트나 상과 브라즈 가우라브 삼만 상을 수상한 ‘오디시’ 무용가 쿤자라타 미슈라가 이끄는 팀이다. ‘오디시’ 무용은 인도 동북부 오리사 지역의 전통춤으로 신을 경배하는 무용이며, 구도(求道)의 성격이 강하다. 직선적인 인도의 여느 춤과 달리 부드러운 곡선미에 우아한 정형미가 뛰어나고 신의 형상을 딴 분장은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종합 | 서현욱 기자 | 2022-10-01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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