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28,127건)

▲ 김제 금산사.백제 법왕 때 창건된 금산사는 신라 경덕왕대 진표 율사가 주석하며 미륵도량으로 발돋움한다. 사적 제496호.전북 전주시와 김제시를 허리에 끼고 김제·만경의 너른 들(김만평야)을 굽어보고 있는 모악산(母岳山)은 높이가 793.5미터에 불과한 그리 크지 않은 산입니다. 여느 명산처럼 웅장한 모습이나 기암괴석을 자랑하지는 않지만 이 산은 고된 삶 속에서도 평화롭고 평등한 미륵의 세상을 꿈꾸며 살아간 이 땅의 민초들을 품은 넉넉한 산입니다.민초들 품은 넉넉한 어머니 같은 산 ‘모악산’평온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경쟁해야 합니다. 때로는 남의 불행을 발판 삼아 딛고 올라서야 하고, 때로는 내가 상대의 재물이 되어야 합니다. 삶이 어느 방향으로 향할지 가늠하기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사방을 분간하는 것만큼이나 어렵습니다. 욕망의 그물에 사로잡힌 삶은 늘 고통과 두려움의 연속이기 마련입니다.두려움과 고통이 없는 평화롭고 평등한 미륵의 세상은 어쩌면 어머니 품안에 안긴 어린 아이가 마주하는 세상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머니 산〔母岳〕’이라는 이름에는 모든 위험과 두려움으로부터 자식을 지켜내는 어머니의 깊고 너른 품처럼, 고통스러운 삶을 위로 받고 지친 마음을 기댈 수 있는 넉넉한 품이 되어주길 바라는 민초들의 바람이 담긴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아기를 안은 우리네 어머니를 닮은 큰 바위가 산꼭대기에 있어 ‘엄뫼(어머니산)’라 불렸다는 이야기를 마냥 흘려들을 수 없었던 이유입니다.참회·점찰법으로 민중 교화한 진표 율사신라 경덕왕 때의 일입니다. 모악산 자락 만경현(지금의 김제시)에는 활을 잘 다루는 한 소년이 살았습니다. 이 소년이 열한 살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사냥에 나선 소년은 나중에 먹을 요량으로 개구리 수십 마리를 잡아 버들가지에 꿰어 물속에 두었습니다. 하지만 사냥에 정신이 팔린 소년은 개구리를 잊었고, 이듬해 다시 사냥에 나서서야 그 사실을 떠올렸습니다. 자신이 버들가지에 꿰어둔 개구리가 그때까지 살아서 울고 있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지요. 충격을 받은 소년은 잘못을 뉘우치고 발심합니다. 금산사 숭제 스님에게 출가한 소년은 보안현(지금의 전북 부안) 선계산 부사의암(不思議庵)에서 피나는 참회 고행 끝에 지장보살에게서 계법(戒法)을, 미륵보살에게서 본각(本覺)과 시각(始覺)을 상징하는 두 개의 나무 간자(簡子)와 수기를 받습니다. 이 소년이 망신참(亡身懺)과 점찰법(占察法)이라는 수행법으로 독특한 미륵신앙을 확립시킨 진표(眞表, ?~?) 율사 입니다.▲ 정유재란 때 불탄 것을 인조 13년 다시 지었다. 법당 내부에는 본존의 높이가 12미터 가량 되는 미륵삼존이 모셔져 있다. 국보 제62호.금산사로 돌아온 율사는 경덕왕과 왕실의 후원을 받아 중창불사를 시작합니다. 진표 율사는 미륵장육존상을 조성해 주존으로 모시고, 금당 남쪽 벽에 미륵보살이 도솔천에서 내려와 계법을 주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모악산과 금산사가 미륵불의 용화세상을 기원하는 민초들의 도량으로 자리매김하는 순간이었습니다.진표 율사가 출가를 결심하게 된 버들가지에 꿰인 개구리의 모습은, 알게 모르게 지은 업보로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고통에 허덕이는 우리네 중생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율사는 부사의방에서 자신이 지은 악업을 철저히 참회하는 수행으로 지장, 미륵 두 보살의 수기를 받습니다. 진표 율사는 자신의 경험을 살려 점찰법회로 중생 교화에 나섭니다.점찰법회는 지장보살이 고통 받는 말세중생을 구제하려고 설했다는 《점찰경(占察經)》에 따라 ‘목륜상(木輪相)’이라는 나무 막대기를 던져 선업과 악업을 점친 후 악업을 철저히 참회하여 없애고 선행을 스스로 실천하도록 하는 법회라고 합니다. 진표 율사는 점찰법회에 참여한 대중 스스로가 선행을 실천하는 주체로서 악업을 버리고 자신과 다른 이의 안락을 위해 선업을 짓도록 가르치고 용화세계, 즉 미륵의 세상으로 나아가도록 인도하였습니다.진표 율사가 일구려 한 미륵의 세상은 이곳 금산사에서 1200여 년의 세월을 이어가며 새 세상을 향한 꿈으로 영글어 갔습니다. 조선 선조 때의 문신 정여립(1546~1589)이 ‘천하는 공물(公物)인데 어찌 주인이 있겠는가?’라며 대동계를 조직해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꾼 곳, 동학농민혁명의 주역 녹두장군 정봉준(鄭鳳俊, ?~?)이 어린 시절을 보내며 ‘사람이 곧 하늘〔人乃天〕’인 세상을 꿈꾼 곳, 스스로 금산사 미륵이라 칭하며 후천개벽의 세상을 역설한 강일순(姜一淳, 1871~1909)이 증산교를 창시한 곳이 바로 이곳 금산사 주변입니다.▲ 김제 금산사 혜덕왕사탑비. 혜덕왕사 소현(慧德王師 韶顯, 1038~1096) 스님은 금산사의 면모를 일신시켜 전각·당우 80여 동, 산내 암자 40여 곳에 이루는 대가람을 일구었다. 보물 제24호.금산사, 백제 법왕의 자복사찰로 창건《금산사지(金山寺誌)》에 따르면 금산사는 백제 법왕(法王) 원년(599)에 왕의 복을 비는 사찰로 창건되었습니다. 진표 율사가 창건했다는 설(《송고승전》 <백제국금산사진표전>)과 후백제 왕 견훤(甄萱)이 창건했다는 설(《신증동국여지승람》), 가섭불(迦葉佛)시대의 옛 절터를 재건했다는 설(<금산사오층석탑중창기>)도 있지만, 대체로 진표 율사가 출가하기 이전인 경덕왕 대에 이미 금산사가 경영됐다고 보고 있습니다.진표 율사가 금강산 발연사에서 입적한 이후 금산사가 다시 역사의 전면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견훤이 금산사를 원찰로 삼으면서입니다. 견훤은 금산사를 보호하려고 주변에 성곽을 쌓았는데, 이 때 쌓은 성문이 지금도 금산사 진입로 변에 남아있습니다.혜덕왕사 중창…당우 80여 동·산내암자 40여 곳고려시대에 이르면 혜덕왕사 소현(慧德王師 韶顯, 1038~1096) 스님이 금산사의 면모를 일신합니다. 혜덕 왕사는 지광국사 해린(智光國師 海麟, 984~1070) 스님으로부터 유식학을 배운 유가업(瑜伽業, 법상종)의 큰스님입니다. 스님은 고려 문종 33년(1079) 금산사 주지로 부임한 이후 퇴락한 가람을 보수하고 새로운 법당을 증축하는 등 중창에 힘씁니다. 스님은 원래 절을 사찰 전체를 관장하는 대사구(大寺區)로 삼고, 대사구 남쪽에 간경(刊經)과 법석(法席)을 주관하는 광교원구(廣敎院區)를, 동북쪽에 원로들이 주석하는 봉천원구(奉天院區)을 설치했습니다. 스님의 중창으로 금산사는 대사구 62동, 봉천원 13동, 광교원 11동 등 80여 동의 당우와 40여 곳의 산내암자를 둔 대찰이 되었다 합니다.금산사는 서산대사 휴정(西山大師 休靜, 1520~1604), 사명대사 유정(泗溟堂 惟政, 1544~1610) 스님과 함께 임진왜란 당시 3대 승병장으로 꼽히는 뇌묵 처영(雷默 處英, ?~?) 스님이 출가하고 머문 사찰입니다. 스님은 서산대사가 팔도에 격문을 보내 궐기할 것을 호소하자 1000여 명을 모아 승병을 일으켰습니다. 이 때문에 금산사는 왜란 기간 중 왜적의 보복을 받아 경내 당우와 산내 암자 40여 곳이 모두 불탔다고 합니다. 금산사는 선조 34년(1601) 수문(守文) 스님 등이 시작해 34년간 진행된 불사로 법등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귀신사 대적광전 뒤 언덕에서 바라본 전경. 귀신사는 의상 스님이 화엄사상을 펼치기 위해 창건한 화엄십찰 중 한 곳이다.▲ 귀신사 전경.의상 화업십찰 중 한 곳 화엄도량 ‘귀신사’김제 모악산 마실길 2코스는 금산사 주차장에서 출발해 귀신사와 금평저수지를 거쳐 주차장으로 되돌아오는 길입니다. 이 길은 전라북도가 선정한 전북천리길 중 금산사길이기도 합니다. 금산사주차장에서 산길을 따라5km쯤 가면 귀신사(歸信寺)에 다다릅니다.귀신사는 문무왕 16년(676) 의상(義湘, 625~702) 스님이 창건한 사찰이라 합니다. 당시 이름은 국신사(國信寺)였습니다.의상 스님은 당나라 지상사에 주석하던 지엄(智嚴) 스님 문하에서 수학한 후 귀국해 화엄학을 널리 소개하고 알린 분입니다. 이 때문에 스님을 ‘해동화엄의 초조’라고 일컫기도 합니다.스님 이전에도 화엄은 우리나라에 전래됐습니다. 자장 스님은 《화엄경》을 강설했고, 원효 스님도 《화엄경종요》와 《화엄경소》 같은 저술을 10여 권 지었습니다. 그럼에도 의상 스님을 우리나라 화엄종의 시조로 삼는 것은 스님에 의해 화엄교학이 체계화되고 교맥(敎脈)이 이어졌기 때문입니다.이곳 귀신사는 화엄사상을 널리 전하기 위해 의상 스님이 창건했다는 사찰 10곳, 즉 ‘화엄십찰(華嚴十刹)’ 중 한 곳입니다. 화엄십찰은 《삼국유사》 <의상전교(義相傳敎)> 조와 최치원의 <법장화상전(法藏和尙傳)>에 소개돼 있는데, 두 기록이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팔공산 미리사, 지리산 화엄사, 북악 부석사, 가야산 해인사 및 보광사, 가야협 보원사, 계룡산 갑사, 금정산 범어사, 비슬산 옥천사, 무산〔母山〕 국신사, 부아산 청담사, 원주 비마라사 등이 그곳입니다.화엄십찰 중 일부 사찰의 창건 시기가 후대인 걸 보면 의상 스님이 전국에 산재해 있는 열 곳의 사찰을 모두 창건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아마도 의상 스님의 문도가 주석하며 화엄사상을 널리 알린 대표적인 사찰이라고 하는 게 옳을 것입니다. 어찌됐든 최치원의 기록대로라면 창건 당시 국신사로 불린 귀신사는 의상 스님 또는 그의 제자들이 주석하며 화엄사상을 널리 알린 화엄도량이었습니다.최치원은 이곳 귀신사에 머물면서 <법장화상전>을 지었다고 합니다. 이같이 알려진 근거는 《한국불교사찰전서》인데, 이 책을 지은 권상로 박사는 그 전거를 따로 밝히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귀신사 삼층석탑과 석수. 삼층석탑은 귀신사 창건 당시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철감 선사, 원명 국사, 현오 국사 등 주석귀신사는 통일신라 말 사자산문의 개조 철감선사(澈鑒禪師) 도윤(道允, 798~868) 스님이, 고려시대에 들어서는 원명국사 징엄(圓明國師 澄儼, 1090~1141) 스님이 각각 중창했습니다. 원명 국사는 고려 숙종의 넷째 아들로 대각 국사 의천의 제자입니다. 스님은 예종 17년(1122) 오교도승통(五敎都僧統)이 되었지만, 이자겸의 횡포를 보고 귀신사로 들어왔다 합니다. 인종의 아들인 현오국사 종린(玄悟國師 宗璘, 1127~1179) 스님도 한 때 이 사찰 주지를 역임했습니다.고려시대까지만 해도 귀신사는 사세가 꽤 컸습니다. 절에서 400미터쯤 떨어진 곳에 사리탑이 있는 것으로 보아 청도마을 일대가 모두 귀신사 경내였음을 알 수 있지요.귀신사는 선조 34년(1601) 부분 중수 이후 여러 차례의 중수되었으나 옛 영화를 되찾진 못했습니다. 사찰 경내에는 보물로 지정된 대적광전과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삼층석탑과 석수, 소조석가삼존상과 나한상, 소조지장보살좌상과 시왕상이 옛 영화를 말없이 전할 뿐입니다.석탑과 석수가 있는 절 뒤편 언덕에 오르면 대적광전 지붕 위로 청도마을의 고즈넉한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귀신사를 배경으로 <숨은 꽃>이란 작품을 쓴 양귀자 작가는 이 절을 ‘영원을 돌아다니다 지친 신(神)이 쉬러 돌아오는〔歸〕 자리’라고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 서서 청도마을 너머 모악산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두 절은 ‘돌아올 것을 믿는(믿음으로 돌아가는)’ 곳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삶에 지친 민초들이 돌아와 미륵 세상을 꿈꾸며 의지하는 절, 의상과 그의 법손들이 돌아와 세상을 향해 다시 화엄의 바다를 펼쳐 보일 절이라는 믿음 말이지요.※ 이 기사는 제휴매체인 <불교저널>에도 실렸습니다.[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제보 budjn2009@gmail.com]

종합 | 이창윤 기자 | 2020-07-15 11:35

MBC PD수첩 '나눔의 집에 후원하셨습니까' 갈무리. 경기도(도지사 이재명)가 '사회복지법인 대한불교조계종 나눔의집'을 특별점검하고  12가지 지적사항을 사전통지했다.경기도는 지난 5월 나눔의집을 특별점검했다. 6월 30일자로 나눔의집에 사전통지된 내용은 ▷현금 후원금 관리 부적정 ▷후원금으로 토지구입 ▷대표이사 사회보험료 지출  ▷후원금 용도 외 사용(소송비용, 과태료 등) ▷후원금 전용계좌 관리 부실 ▷후원금 수입사용내역 통보 및 사용결과 공개 미준수 ▷법당 관련 지출 부적정 ▷역사관 직원 및 관장 급여지출 부적정 ▷법인이사회 회의록 미공개 ▷정관상 목적사업 일부 미이행 ▷중요재산 등기 보조금 관련 등 모두 12가지이다.경기도는 대표이사 월주 스님의 사회보험료와 상근하지 않았으면서 역사관 관장으로 급여를 받았던 원행 스님(조계종 총무원장)과 출근한 적 없다고 알려진 직원 A 스님의 급여를 환수케 하거나 환수를 확인했다. 이를 포함해 경기도는 나눔의집에 시정명령하고 과태료 2400만원을 부과할 예정이다.원행 스님은 최근 이용수 할머니를 만난 자리에서 "급여는 모두 돌려주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한편, 조계종 기관지를 비롯한 친 총무원 성향의 불교계 언론들은 20여 년 운영해온 나눔의집이 법인이사회 회의록 미공개, 후원금 계좌 관리부실 등 기본적인 내용도 지키지 않고 운영해온 사실이 또 다시 드러났는데도 "횡령은 없었다"면서 고무적인 보도 행태를 보였다.

종합 | 조현성 기자 | 2020-07-14 17:13

▲ 재단법인 선학원 이사회가 ‘(가칭) 선학원 100년사’ 편찬을 결의하고 편찬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재단법인 선학원 설립 100주년을 맞아 민족불교 중흥과 불교계 독립운동의 구심점이자 정화불교의 산실이었던 선학원 100년 역사를 집대성하는 작업이 시작된다.재단법인 선학원(이사장 법진)은 7월 13일 오후 1시 서울시 종로구 AW컨벤션센터에서 임시이사회를 열어 ‘(가칭) 선학원 100년사 편찬위원회’를 구성하기로 결의했다. 편찬위원장은 이사장 법진 스님이 맡는다.선학원은 이사회 결의에 따라 이달 중 재단 이사 15명과 학계 인사 수 명을 각각 간행위원과 편찬위원으로 하는 준비위원회를 구성, ‘(가칭) 선학원 100년사’ 편찬 작업을 본격화 할 예정이다.추진위는 7월 중 간행위원과 편찬위원을 위촉한 후 편찬위원 회의와 원고 집필 등 과정을 거쳐 내년 가을까지 간행을 마무리하고 고불식을 봉행할 계획이다.‘선학원 100년사’는 200자 원고지 3000매 분량으로 편찬되며, 1000부 가량 제작·배포할 예정이다.추진위는 선학원의 설립과 운영, 선학원의 중흥, 선학원과 불교정화운동을 다룰 ‘역사편’과 설립조사와 역대 이사장의 삶과 사상을 다룬 ‘인물과 사상편’, 선학원과 관련된 각종 사진, 문서자료를 집대성한 ‘자료편’으로 ‘선학원 100년사’를 구성하고, △한국 근·현대 불교사에서 선학원이 지닌 가치와 위상 △선학원 미래 100년의 비전 △설립조사와 역대 이사장 스님의 행적과 가치 등을 담아낼 계획이다.한편, 이날 이사회에서는 재단법인 선학원 제20대 이사장으로 송운 스님을 만장일치로 선출하고, 9월 17일로 임기가 만료되는 이사 7명을 재선출했다. 또 감사 영은 스님을 신임이사로 선출했다. 신임이사장과 재선출 이사, 신임이사의 임기는 9월 18일부터 4년간이다.이사회는 또 부산 대원선원과 대구 길상선원이 건물 노후화와 도시공원조성사업 편입 등을 이유로 각각 신청한 기본재산 멸실의 건과 부산 장지공원 내 재단 소유 토지에 도시공원을 조성하겠다며 부산시 공원운영과가 요청한 ‘도시공원 조성사업 동의 요청의 건’을 승인했다.또 창건주 입적으로 사고사찰로 지정된 은곡선원을 공사찰로 전환하기로 결의했으며, 서울 삼원선원 창건주 위임의 건을 승인했다.이날 이사회에는 담교 스님을 제외한 이사 13명과 감사 2인 등 15명의 임원이 참석했다.※ 이 기사는 제휴매체인 <불교저널>에도 실렸습니다.[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제보 budjn2009@gmail.com]

종합 | 이창윤 기자 | 2020-07-13 18:15

▲ 송운 스님.재단법인 선학원 제20대 이사장에 송운 현보 스님 선출됐다.재단법인 선학원 이사회(이사장 법진)는 7월 13일 오후 1시 서울시 종로구 AW컨벤션센터에서 재적 이사 14명 중 담교 스님을 제외한 13명이 참석한 가운데 임시 이사회를 열어 송운 스님을 만장일치로 신임 이사장에 선출했다. 송운 스님의 임기는 오는 9월 18일부터 4년간이다.송운 스님은 인사말에서 “이사 스님께서 이사장 후보로 추천하시니 여러 걱정이 앞선다.”며, “재단에 산적한 여러 문제를 풀어가는 데 경륜과 안정이 필요하다. 여러 이사 스님들의 뜻을 받들어 재단 발전을 위해 힘쓰겠다.”고 말했다.제20대 이사장 송운 스님은 평창 월정사에서 만화 희찬(萬化 喜贊) 스님을 은사로 득도했다. 1960년 월정사에서 탄허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73년 석암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와 보살계를 수지했다.동국대학교 불교대학 승가학과와 같은 대학 대학원 불교학과를 수료한 스님은 1974년 선학원 제6대 이사장을 역임한 석주 정일(昔珠 正一) 스님을 법사로 입실 건당했다.스님은 1979년 재단법인 선학원 이사를 시작으로 1980년 선학원 상무이사, 1981년 선학원 부이사장, 2010년 선학원 총무이사, 2016년 재단법인 선학원 범행단 총괄단장, 2020년 사회복지법인 선학원복지재단 이사장을 역임하는 등 재단법인 선학원의 운영과 발전에 기여해 왔다.송운 스님은 한평생 포교와 역경, 도제양성에 힘쓴 석주 스님의 뜻을 잇는 데 힘썼다.스님은 석주 스님을 도와 1970년대 칠보사 어린이법회와 칠보어린이합창단을 설립·지도하였고, 1970년과 1976년 대한불교청소년교화연합회 교화위원장, 2011년 한국불교청소년문화진흥원 이사장을 역임하는 등 한국불교의 동량을 기르는데 어린이·청소년 교화에 한평생 진력해 왔다.스님은 해외 포교에도 힘써 1982년 미국 하와이 대원사 총무, 198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여래사 주지, 199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불광사 설립 이사장 및 주지, 1998년 미국 서부 승가연합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미주에 한국불교를 알리는데 힘썼다.2000년 석주 정일 스님이 말년에 주석한 아산 보문사 주지 소임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2001년 아산시 불교사암연합회 회장과 2007년 보문사 불교대학 학장 등 소임을 맡아 가람 수호와 지역 포교, 불자교육에 힘쓰고 있다. 이밖에 1975년 재단법인 부전장학회 이사, 1979년 중앙승가대학 이사, 2007년 동국대학교 석림동문회 회장, 2010년 동국대학교 총동창회 부회장을 역임하는 등 도제 양성에도 관심을 기울였다.한편, 재단법인 선학원 이사회는 이날 9월 17일로 임기가 만료되는 정덕, 철오, 현보, 혜광, 보운, 영주, 담교 스님을 재선출하고, 감사 영은 스님을 신임이사로 선출했다. 이들 스님의 임기도 오는 9월 18일부터 2024년 9월 17일까지이다.※ 이 기사는 제휴매체인 <불교저널>에도 실렸습니다.[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제보 budjn2009@gmail.com]

종합 | 이창윤 기자 | 2020-07-13 14:22

조계종 중앙종회 본회의.(자료사진)조계종 중앙종회가 수행력과 지도력의 상징인 ‘대종사’ 자격 요건을 사판의 핵심인 ‘종무원’ 직위를 역임한 경력을 대거 포함하는 ‘법계법 개정안’을 다룰 예정이다.법계는 조계종의 수행력과 지도력의 상징으로 불린다. 2001년 9월 전면 개정 이후 조계종의 법계법은 수행 중심이기보다 ‘승가 고시’ 중심으로 변화했다. 여기에 ‘사판 이력’을 갖춰야 종단 지도력의 상징인 대종사 법계를 품수할 수 있다. 현재 대종사는 상당수가 조계종 최고의결기구인 ‘원로회의’ 구성원들이다.법계법 개정안, 총무원 부장급 4년 재직 등 자격 추가여기에 조계종 중앙종회 종헌종법제개정특별위원회(위원장 심우 스님)가 법계법을 다시 손대려 하고 있다. 핵심은 대종사 법계 특별전형 자격 요건을 고치려는 것이다. 자격 요건을 구체화하고, 누구나 동의할 만한 경력을 갖춰야 대종사 법계 지원 자격을 부여한다는 것이지만, 개정안은 주로 사판의 이력을 갖추어야 대종사 법계자격을 주도록 갖추려고 하고 있다. 나아가 대종사 법계 특별전형 방법까지 바꿔 ‘법계위원회’의 역할을 확대하려 한다.대종사 법계 특별전형은 그동안 ‘중앙종회 동의’와 ‘원로회의 심의’로 해 왔다. 법계위원회는 종사까지의 법계를 심의해 왔다. 개정안은 대종사 특별전형을 ‘법계위원회에서 적격 대상자를 심사해 선정하고, 선정된 대상자만 중앙종회 동의와 원로회의 심의 및 의결’을 거치도록 바꾸려 한다. 또 종사 법계 역시 법계위원회가 심의하는 것을 넘어 ‘의결’을 거치도록 하고 있다.종헌종법제개정특위가 준비한 개정안의 ‘대종사 특별전형 지원 자격은 중앙종무기관에서 부실장급 종무원으로 4년 이상 재직한 경력과 사회복지기관의 장으로 20년 이상 재직한 경력이 포함된다.개정안은 △총무원장, 중앙종회의장, 호계원장, 교육원장, 포교원장을 재직한 경력 △원로의원, 법계위원, 계단위원을 재직한 경력 △전계대화상, 총림방장을 재직한 경력 △교구본사 주지를 4년 이상 재직한 경력 △중앙종무기관 부실장급 이상 종무원으로 4년 이상 재직한 경력 △중앙종회의원을 8년 이상 재직한 경력 △종법에 의해 구성된 각급 위원회 위원장을 4년 이상 재직한 경력 △중덕 법계를 수지한 후 선원법에 의해 규정된 전문선원에서 20안거 이상 성만한 경력 △교육법 제47조에 해당하는 교육기관에서 교육교역자로 20년 이상 재직한 경력 △사회복지기관의 장으로 20년 이상 재직한 경력 가운데 어느 하나에 해당되어야 특별전형에 지원할 수 있다.개정안은 대종사 자격을 구체화한 것으로 보이지만, 종단 고위 종무원들의 대종사 법계 자격을 부여하는 효과를 강화하는 안으로 보인다. 일부에서는 대종사 법계 특별전형 과정에서 자격 미달자가 포함됐다는 지적이 일기도 했지만, 특별전형 지원 자격은 사판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조계종 입법기구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임의단체의 ‘명사추대위’에 추천 권한 주나법계법은 대종사 특별전형 외에도 논란거리가 일 것으로 보인다. 비구니 대종사 법계인 명사 법계 특별전형이 논란이다. 종헌종법제개정 특위에는 비구니 대종사 법계인 ‘명사 법계 특별전형에 지원하는 자는 전국비구니대표(명사법계 추대위원회)이 추천을 받아 재적 교구본사에 신청하고, 교구본사 주지가 교구종회의 동의를 얻어 총무원에 제출하는 명사 법계 특별전형 절차와 자격기준을 규정하는 안이 제출됐다. 이 안은 임의단체인 조계종 전국비구니회(회장 본각 스님)이 요구하는 안이다.전국비구니회는 지난 6월 12일 제13차 정기총회에서 정관을 개정하면서 비구니회에 ‘원로·명사 법계추대위원회를 두는 안을 신설했다. 비구비회의 명사법계추대위원회는 비구니회장을 당연직으로하는 7~11인 이내의 원로추대위원회를 구성하고, 이 추대위에서 선출된 원로의장과 비구니회장 등 7~11인 이내 추대위원으로 구성된 ’명사법계 추대위원회‘에서 ’명사 특별전형 지원자를 선출해 재적 교구본사의 동의를 얻어 조계종 총무원에 접수하도록 하는 안을 신설했다. 전국비구니회의 이 같은 신설 조항은 조계종 중앙종회가 마련한 대종사 특별전형 심사절차에서 법규위원회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에 다시 비구니회의 권한을 덧붙여 절차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더구나 전국비구니회의 명사법계추대위원회의 절차를 조계종 종헌기구들이 인정하게 되면 조계종의 종헌기구 내지 종법기구가 아닌 전국비구니회의 권한을 강화해 주는 것이어서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서는 이미 비구니 중앙종회의원 추천권을 전국비구니회에 주고 있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인식도 있다. 하지만 임의단체에 계속 권한을 확대해 줄 경우 갈등과 분열이 반복되어 온 전국비구니회를 더욱 혼란하게 만들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여기에 세계유일의 비구니 교단이 존재하는 한국불교에서 비구니 스님들의 차별을 줄이고, 비구니 스님들의 권리를 신장하는 차원에서 조계종단 내부에 비구니 스님들의 역할을 확대해 해야 한다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법계’를 다루는 일을 비구니 스님들에게 내놓아야 한다는 것에 비구승단 내부의 불편한 인식마저 작동하고 있어 논란은 더욱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비구니회는 명사법계추대위를 구성하고, △전국비구니회장을 4년 이상 재직한 경력 △중앙종무기관 부실장급 이상 종무원으로 4년 이상 재직한 경력 △중앙종회의원을 8년 이상 재직한 경력 △정덕 법계를 수지한 후 선원법에 의해 규정된 전문선원에서 20안거 이상 성만한 경력 △교육법 47조에 해당하는 교육기관에서 교육교역자로 20년 이상 재직한 경력 △사회복지기관의 장으로 20년 이상 재직한 경력 가운데 어느 하나를 갖춰야 명사법계 추대위원회에 지원할 자격을 부여하도록 했다. 문제는 비구니회 명사법계추대위원회를 통과하더라도 재적 교구본사의 동의는 지원자인 본인이 직접 얻어야 하고, 직할교구의 재적승은 총무원 총무부의 동의를 얻도록 했다는 점이다. 절차도 복잡한 데다 명사법계추대위를 거쳐 지원서를 내더라도 재적 교구본사나 총무원의 동의가 구하지 못하면 지원자격이 발생하지 않는 상황이 생긴다. 때문에 명사추대위원회를 둬 전국비구니회와 회장의 권한만 강화하는 상황을 초래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또 비구니 문중 간 갈등이 있는 경우 전국비구니회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업무처리를 할 힘이 없는 임의단체여서 전체 비구니 스님들을 끌고 가기 어려운 데도 모임과 임의단체 대표의 권한만 강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일고 있다.종헌종법제개정특위는 비구니 명사 특별전형 절차 및 자격을 입법화하는 것에 대해 오는 14일 예정된 교구본사주지협의회의 논의결과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만약 종헌종법제개정특위가 전국비구니회가 원하는 명사 특별전형 지원절차 입법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비구니종회의원 발의로 본회의에 제출될 가능성이 높다.어쨌든 종헌종법제개정특위는 7월 23일 개원하는 제218회 임시회에 ‘법계법 개정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사판 종무직의 대종사 법계 진출을 강화하는 데다 비구니회의 요구까지 겹치면서 법계법 개정안은 논란이 가중될 게 뻔해 보인다.말사주지 1회 이상 안거 참여, 아쉬운 철회종헌종법제개정특위는 ‘종무원법 개정안’과 ‘총림법 개정안’, ‘종무원법 개정안’, ‘승려법 개정안’, ‘선원법 개정안’은 이번 본회의에 제출하지 않기로 했다.종무원법 개정안은 말사 주지 스님들의 참선 의무화를 규정하려던 것이다. 말사 주지 스님들이 재임기간 중 전문선원에서 1회 이상 안거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법안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평가였다. 종무원에 해당하는 말사 주지가 특별한 이유 없이 사찰을 비울 수 없는 현실에서 안거를 하지 않으면 주지를 맡을 수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었지만 탁상공론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다만 말사주지가 재임기간 동안 수행을 의무화하는 것은 수행전통을 구성원들이 실천하게 한다는 꽤 유의미한 부분도 있지만,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총림제도개선특위 제치고 종법특위가 총림법 개정안 마련?총림법개정안은 총림 임회 위원에 교구신도회장 1인을 포함하도록 하는 안이었다. 취지는 종합수행도량인 총림의 운영을 책임지는 임회에 신도를 포함해 운영을 공개하고, 투명화하자는 것이다. 스님들의 수행공동체인 총림의 운영에 재가불자가 참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인식도 있지만, 총림이 사부대중공동체를 지향해는 모범 사례를 만들 수 있다는 긍정적 반응도 있다.하지만 종헌종법제개정특위는 ‘총림법 개정안’을 철회했다. 이유는 개정안의 취지와 별개로 총림제도개선특위가 총림 운영 전반을 논의해 입법안을 성안하도록 권한을 중앙종회가 부여하고도, 종헌종법특위가 나서 총림법개정안을 내는 것은 마땅치 않다는 지적 때문이다. 종헌종법제개정특위의 총림법 개정안 논의는 중앙종회 내 조율 기능이 현저히 떨어진 것을 드러낸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승려법 개정안도 철회했다. 승려법 개정안은 승랍 기산을 어느 시점부터 할 것이냐는 해묵은 논란이다. 승랍(僧臘)은 스님의 출가 이후 나이를 셈하는 방법이다. 현행 승려법은 ‘승랍은 비구 비구니계 수계일로부터 종단 기본교육 이수기관인 4년을 더하여 기산한다’고 규정한다.하지만 개정안은 교육기간 4년을 빼고 사미·사미니 수계일부터 그대로 기산한다는 방안이다. 문제는 승가교육제도 개혁이라는 성과를 훼손한다는 지적이 있지만, 사미·사미니를 종단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것이어서 마땅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은사 스님을 시봉하는 등 교육을 받지 못할 사정이 존재하고, 선배가 후배를 윗사람으로 모시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찮다.봉암사 억압해 눈 밝은 수좌들 통제하려나선원법 개정안도 철회됐다. 강남원장으로 불리는 자승 전 총무원장과 수좌회의 논의에 따른 결과라는 분석이다. 선원법 개정안은 현 조계종을 태동한 봉암사 결사의 역사가 오롯한 종립특별선원 봉암사를 자율적 운영권을 박탈하고, 정치승의 개입을 확대하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종헌종법제개정특위가 일단 개정안을 철회했지만, 11월 정기회에 다시 제출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선원법 개정안은 봉암사 주지를 추천하는 별도의 위원회를 두고, 매년 정기적인 감사를 받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개정안은 총무원이 ‘종립특별선원의 업무와 회계의 관리감독을 위해 연 1회 정기감사를 실시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것이다. 현행법은 총무원이 필요한 범위 내에서 종립특별선원의 업무와 회계를 감독할 수 있다고 정해 왔다.또 개정안은 종립특별선원의 주지는 법계 중덕 이상, 승랍 15년 이상, 전문선원에서 15안거 이상 성만한 자로 종립특별선원 주지추천위원회의 추천을 받도록 하고 있다. 주지추천위는 관할 교구본사 주지가 위원장이 되고 전국선원수좌회 대표, 특별선원 수좌, 중앙종회의장단이 지명한 인사가 참여하도록하고 있다.선원법 개정안은 종립특별선원을 관리감독하는 방안을 좀 더 구체화하고 검증된 대표자(주지)를 뽑겠다는 것이지만, 결국 자승 전 총무원장 등 부당한 종권에 저항할 마지막 보루인 수좌 스님들을 통제하겠다는 목적이 강하다는 지적이다. 또 종단에서 재정적 지원을 받는 대신, 그에 대한 의무도 해야 한다는 것이지만, 속내는 조계종 적폐로 지목되어 온 자승 전 총무원장에게 대항할 눈 밝은 수좌 스님들을 사판 중심의 법제화를 통해 통제하겠다는 것이라는 지적이다.종헌종법제개정특위는 ‘제적’의 징계를 받은 스님은 멸빈 징계자와 함께 종정스님이 시행하는 사면·경감·복권의 대상에서 제외하는 ‘사면·경감·복권에 관한 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지만, 법 취지를 훼손하고, 정치적 징계자들을 영원히 복권할 수 없도록 제한해 승려의 인권을 말살하는 법안을 추진해 물의를 빚고 있다.[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제보 mytrea70@gmail.com]

종합 | 서현욱 기자 | 2020-07-13 13:29

광양 백계산 옥룡사지_ 도선국사께서 주석하였던 절 구녕은 풍수 전문용어로는 혈이다. 용의 분류는 보이지 않는 기를 기준으로 분류를 하는데 반해 혈의 분류는 보이는 모양에 따라 분류를 하는 것이 다르다. 살아있는 기운이 가득하다는 생룡, 죽은 기운의 사룡, 병든 기운의 병룡, 미친 기운의 광룡 등등으로 분류한다. 혈은 용의 여의주이므로 용의 기운을 그대로 전달받는다. 즉 생룡에 있는 혈이면 생혈이 되고, 사룡에 있는 혈이면 사혈이 되며, 병룡에 있는 혈이면 병혈이고, 광룡에 있는 혈이면 광혈인 것이다. 선각국사 도선 증성혜등탑_ 도선국사가 입적하자 신라 효공왕이 세우게 한 탑이다. 고려 인종이 국사로 추대했다. 혈을 찾는 것이 풍수술의 목표이고, 혈은 용의 기운이 맺혀 있는 곳이다. 따라서 혈을 찾기 전에 용의 성향을 먼저 분석하는 것이 풍수술의 순서가 된 것이다. 이것이 풍수의 사과(四科) 또는 오결(五訣)을 말할 때 용이 첫째로 거론되는 이유이다. 풍수의 사과[오결]은 용혈사수[향]을 말한다.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탑과 쌍사자석등 혈은 낭중지추의 원리에 따라 혈의 내공이 은연중에 드러난다. 혈은 땅 속에 있지만 혈은 특정적인 지형에 숨어 있는데, 풍수전문가들은 혈이 위치한 지형과 모양에 따라 상세하게 분류하였다. 크게 4가지로 분류하는데, 소쿠리 모양에 위치한 혈은 와혈, 젓가락 지형에 위치한 경혈, 젖가슴 모양의 지형에 위치한 혈은 유혈, 굴뚝처럼 불쑥 솟은 지형에 위치하면 돌혈이라고 한다. 이러한 분류는 혈이 위치한 지형만을 묘사한 것이지 진짜 혈인지의 여부를 알려주는 준거는 되지 못한다. 모양이나 지형적 특징으로 혈을 찾고자 하지만 실질적으로 진짜 혈의 여부는 발복에 달려 있다는 점이 장점이자 단점이다. 양주 회암사지 따라서 풍수지형을 적용할 수 없는 구녕에서 발복이 나타나면 이를 괴이한 구녕이라는 의미로 괴혈(怪穴)이라고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아몰랑’이며, 천장지비(天藏地秘) 즉 하늘이 숨기고 땅이 비밀로 한 것이라고 전해지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풍수사들이 글로써 배운 지식으로 찾은 혈은 작은 구녕에 불과하다는 것이 결론이다. 따라서 이런 작은 구녕들은 사대부 풍수이다. 큰 구녕 즉 힘찬 리더를 생산해내거나 만인에게 혜택을 주는 구녕은 여전히 찾기 힘든데 이를 천장지비라고 한다. 양주회암사지 역사적으로 많은 혈자리를 잡아주었던 두 분의 풍수사가 있다. 작은 혈은 한 집안의 위안에 되겠지만 풍수의 경지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방법은 없을까 고민한 선지식인이었다. 도선국사는 왕건이 태어난 생가를 구축해준 것으로, 무학대사는 한양을 조선의 도읍지로 선정해 준 것으로 자기의 역할을 극대화시켰다. 풍수사라면 이 정도의 선지식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종합 | 김규순 | 2020-07-13 09:16

▲ ‘만해사상의 계승’을 주제로 열린 만해 스님 76주기 세미나 모습. 《조선불교유신론》으로 만해 스님의 포교관과 한국불교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했다.재단법인 선학원 설립조사 중 한 분인 만해 한용운 스님의 76주기 기일을 맞아 대표적인 저술 중 하나인 《조선불교유신론》을 통해 스님의 포교관을 살펴보고, 한국불교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한 학술세미나가 열렸다.재단법인 선학원 부설 한국불교선리연구원(원장 법진)은 ‘만해 한용운 스님 76주기 추모사업’의 일환으로 6월 24일 오후 2시 한국근대불교문화기념관 지하 3층 만해홀에서 추모학술회의를 열었다.‘만해사상의 계승 - 《조선불교유신론》과 한국불교의 지향점’을 주제로 열린 이날 학술회의에서는 차차석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교수가 ‘만해의 《조선불교유신론》에 나타난 포교관과 그 지향점’을 주제발표하고, 오경후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교수가 토론했다. 이어 김종인 경희대학교 교수가 ‘만해의 《조선불교유신론》과 한국불교의 현재 - 조계종을 중심으로’를 주제발표하고, 한동민 수원화성박물관 관장이 토론했다.▲ 차차석 교수.차차석 교수는 주제발표에서 그동안 연구자들이 주목하지 않은 ‘만해의 포교 사상’을 다뤄 눈길을 끌었다.차 교수는 주제발표문에서 만해 스님이 주장했던 포교의 의미와 중요성, 포교를 중시하게 된 이유, 만해의 포교관이 한국불교의 발전을 위해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를 살폈다.“교육·역경·대중불교운동과 연계”차 교수는 “《조선불교유신론》에 나타난 만해의 포교에 대한 입장은 매우 간략하지만 전체적으로 교육, 역경, 대중불교운동 등과 연계돼 있다.”고 분석하고, “초기에는 불교 세력을 확장하고 부정적 이미지를 개선하거나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포교의 중요성을 역설지만, 세월이 흐름에 따라 대중과 소통하고 불교적 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포교를 인식했다.”고 주장했다.포교 항목 설정…중요성 인식 반증차 교수는 “《조선불교유신론》에는 ‘포교’라는 항목이 별도로 설정되어 있다.”며, “(만해 스님이) 그만큼 포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고 강조했다.차 교수는 만해 스님이 《조선불교유신론》에서 포교를 주창하게 된 원인의 하나로 불교가 사회적으로 천대받던 현실을 들었다. “조선시대 불교는 세력이 없어서 경멸을 받는 것”이며, “세력이 부진한 원인은 가르침이 포교되지 않은 데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만해 스님은 “처음에는 포교로부터 세력이 이루어지고 나중에는 세력으로부터 포교가 이루어져서, 이런 식으로 세월이 흐른다면 그 축적된 결과가 더욱 커질 것”이라며 포교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이것은 포교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것”이라는 게 차 교수의 설명이다.“포교의 목적은 중생제도”하지만 차 교수는 “《조선불교유신론》에서는 포교의 목적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대신 《불교》 86호에 게재한 <불교청년동맹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불교의 본의가 중생을 제도함에 있다면, 불교를 선포할 대상은 일반의 대중이 아니고 무엇인가?”라고 주장한 것에서 보듯, “만해는 포교의 목적과 당위성이 중생제도에 있다고 주장했다.”고 밝혔다. 또 “(만해는) ‘불교는 마땅히 自未得度 先度他人(자신은 아직 제도하지 못했을 지라도 남 먼저 제도하라)을 體認하여 스스로 入泥入水(진흙탕 물어 들어감), 교화의 衝(부딪침, 마주섬)에 당하지 않으면 안 될 것’(<조선불교의 개혁안>)이라며, 적극적으로 포교의 실천과 목적을 강조했다.”고 지적했다.차 교수는 “만해가 포교를 강조하고, 포교를 통해 중생을 제도해야 한다고 인식한 것은 시대 상황의 변화에 따른 것이자 합리성, 시민의식, 자유, 자율 등 서구 사상의 영향임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하면서도, “만해가 세계 불교계나 종교계 동향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관심을 가진 것이 포교에 대한 사고를 확대하는 결과가 되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포교의 문제는 승려교육의 문제”차 교수는 또 《조선불교유신론》에서 교육을 강조하면서 전통적인 승려교육이 훈고학에 집중되어 있고, 그것도 사자상승의 전통에 묶여 자유스럽지 못함을 비판한 점을 근거로 “만해 스님은 포교가 승려 교육과 직결되어 있다고 여겼던 것”으로 보았다.차 교수는 “대중과 소통하면서 지도적인 사회 역량을 확장하고자 염원한 만해 스님은 전통교육에서 탈피해 현대적인 교육시스템으로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고 인식했다.”고 밝히고, 《조선불교유신론》에서 세 가지 승려교육, 즉 △보통학(기초교양학) △사범학(교육학 혹은 상담심리학) △외국유학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차 교수는 ‘외국유학’이 포함된 것을 “외국의 학문적 흐름을 통해 시대정신을 이해하고, 대중과 소통할 학문적 공간을 지속적으로 확보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결과”로 분석했다.차 교수는 만해 스님이 세 가지 승려교육을 제시한 것에 대해 “전통불교의 범주에 안주해 있었던 조선불교의 개혁을 위해서도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지만, 포교를 통해 불교의 본령을 구현한다는 점에서도 승려교육을 근본적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바람직한 포교는 쌍방향 소통”그러면 만해 스님 어떤 포교 방법은 제시하였을까?차 교수에 따르면 《조선불교유신론》에는 포교 방법이 매우 간단히 언급돼 있다. 만해 스님은 1931년에 발표한 <조선불교의 개혁안>에서 설법, 매스미디어, 문서, 역경, 사회사업 등 구체적이고 진전된 포교방법을 제시했는데, 이는 “자기중심적이고 일방적인 교화의 방식이 아니라, 대중과 소통하고 대중의 생활 문제와 직결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쌍방향의 소통 속에서 바람직한 포교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경전 한글 번역의 중요성 강조만해 스님은 이어 1931년 《불교》지에 발표한 <유신회>라는 기고문에서는 역경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불교가 민중으로 더불어 동화하는 첫째 길이 무엇인가. ① 그 교리를 민중화함이며, 그 경전을 민중화함이다. ②그 제도를 민중화함이며, 그 재산을 민중화함이로다.”라고 하여, 《조선불교유신론》에서는 볼 수 없던 ‘역경(譯經)’을 강조했다. 불교의 근본 목적이 중생을 교화하고 제도하는 것이란 점에서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글로 경전을 번역하는 작업이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한 것이다.만해 스님은 또 《불교》 제88호에 발표한 <조선불교의 개혁안>에서 역경의 의의를 “불교교리의 시대사조에 적응한 점을 많이 지적하고 논거하여 광대심원한 불교교리의, 중생을 제도하는 방편에 있어서 갖추지 않음이 없는 것을 일반에게 알려주는 것이 가장 필요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시대 따라 포교방식도 변해야”만해 스님은 시대 상황의 변화에 따라 포교방식도 변해야 한다는 사실도 강조했다. 차 교수에 따르면 만해 스님은 “조선 불교의 유신 이래 교육으로, 포교로, 기타 모든 방면으로 다소의 진보가 없는 것은 아니로되, 역경에 있어서는 요요무문(寥寥無聞)”이라고 탄식하고, “천불만탑을 조성하고 거사 대찰을 건립하더라도 교리를 선포하여 중생을 제도치 아니하면 삼세제불의 본원과는 십만 팔천 리의 거리뿐”이라며 역경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차 교수는 끝으로 “만해는 불교의 본령이 무엇인가 늘 생각하고, 시대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중생을 계도하는 불교의 모습을 염원하고 있었다.”며, “만해의 주장처럼 일체중생을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 포교의 목적이라면, 사회의 변동 속에서 효과적인 포교를 극대화할 수 있는 연구가 지속되어야 하고, 사찰 운영이나 설법의 방식, 신도 교육, 효과적인 조직 운영 등등 여전히 전근대적인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현실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차 교수는 또 “만해의 주장처럼 대중을 위해 사찰이 존재한다는 발상의 전환, 대중을 깨우치기 위한 법회 등 대중을 위한 불교로 전환되지 않으면 포교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하기 어렵다.”며, “이 시점에서 돌아보면 만해의 외침은 간절하게 다가오지만, 한국불교의 현실은 여전히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고 있지 못하다.”고 평가했다.※ 이 기사는 제휴매체인 <불교저널>에도 실렸습니다.[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제보 budjn2009@gmail.com]

종합 | 이창윤 기자 | 2020-07-10 19:31

ⓒ2014 불교닷컴 생명나눔실천본부(이사장 일면 스님)이 박원순 시장의 죽음을 애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박 시장은 지난 2008년 장기기증 희망등록을 통해 생명나눔을 몸소 실천했다.다음은 박원순 시장 애도문 전문이다.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황망한 죽음을 애도합니다.고인은 위안부 국제전범재판 검사로 활약하며 대한민국 인권 운동사에 한 획을 남겼습니다.고인은 아름다운재단을 창립하며 나눔과 기부문화의 새 지평을 열고 풀뿌리 민주주의로 독립된 민간싱크탱크 운동의 성공을 보여주었습니다.고인은 ‘국정의 축소판’이라고 불리는 서울특별시정을 경영하며 1000만 서울시민의 얼굴이 되었습니다.고인은 또한, 2008년 ‘장기기증 희망등록’을 통해 몸소 생명나눔을 실천하였습니다. 병마와 싸우는 환자, 장애인, 노인 등 사회적 약자의 아픔을 대변해 왔습니다. 생명나눔 활성화와 인식 개선을 위해 아낌없는 노력을 해 왔습니다.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스스로 앞장 서 왔으며, 가장 먼저 촛불을 들고 광장에 뛰어들어 시민과 함께했으며, 비난과 반대도 수용하며 늘 낮은 곳에 위치했던 故 박원순 서울시장.일팽생을 민주주의 가치와 공공성 확대를 위해 헌신해 온 故 박원순 서울시장.사회적 약자들의 아픔에 공감하며 생명나눔 운동을 외쳐 온 故 박원순 서울시장.황망한 죽음 앞에 비통한 마음을 더욱 금할 수 없지만 이제 고인을 보내드려야 할 시간입니다.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애통한 죽음에 다시 한 번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평안히 영면하소서.2020년 7월 10일

종합 | 조현성 기자 | 2020-07-10 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