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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청련사 예수시왕칠재 (사진=청련사) 한국불교태고종 청련사 생전예수재가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66호로 지정됐다. 예수재는 사후 정토왕생을 위해 미리 복을 짓는 불교의례이다.경기도는 청련사(이사장 상진 스님)에 '경기도 무형문화재 보유단체 인정서'를 지난달 20일자로 발급했다.청련사는 지난 2010년 청련사범음범패보존회 발족 후, 이 단체를 2014년 '청련사예수시왕생칠재보존회'로 명칭을 바꿨다. 2019년 사단법인 등록을 했다. 청련사는 서울 왕십리에 있던 '안정사' 시절부터 조선 초기 ‘동청련 서백련’의 양 열반계 사찰이었다. 청련사는 백련사와 함께 도성의 비보사찰이자 왕생발원사찰로서 왕실과 국태민안을 위한 다양한 재회(齋會)를 열었다. 청련사는 예수재를 1960년대부터 설행을 시작했다.1910년 청련사로 출가했던 능해 스님(1892~1979) 스님, 덕봉 스님(1911~1994), 청호 스님(1915~1999), 춘담 스님(1915~1960), 벽파 스님(1939~2011), 백우 스님(1934~2015) 등을 거쳐 현재 상진 스님에 이어지고 있다. 청련사는 서울 왕십리 재개발 후 현재 양주로 옮긴 후 보존회와 안정불교대학을 중심으로 예수재의 체계적 전승과 교육에 힘쓰고 있다. 청련사는 예수재 활성화를 위해서 '윤달이 든 해' 설행하던 것을 해마다 '중양절'(백중) 설행하고 있다.청련사 예수시왕생칠재(예수재)는 법고무와 탑돌이 때, 어장의 북가락을 더해 동참재자의 신심을 돋우는 것이 특징이다. 법고무를 추는 스님은 대개 단순박으로 연속해서 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청련사예수재는 어장 상진 스님의 장엄염불 축원화청, 법성계 등의 예술성, 어장 상진 스님이 법고를 하나 더 타주해 법고의 울림에 화룡정점의 역할을 하는 점 등이 특징이다. 이 북가락은 법고무의 여법미를 헤치거나 번다함이 되지 않도록 적절한 절제와 음향적 조화를 유지한다는 평가를 받는다.청련사예수재는 다른 사찰에서는 전승이 끊긴 지전 위에 꽂는 ‘총명지’ 장엄을 한다. 총명지는 나뭇잎 모양으로 작게 접은 색지 두 장을 겹쳐 새싹처럼 만든 다음 맨 위의 지전에 꽂는다. 한 판에 45개 정도를 쓴다. 청련사예수재는 범패․작법무와 피리ㆍ태평소ㆍ대금ㆍ해금ㆍ아쟁ㆍ장구로 구성된 10년 이상 경력의 전문악사가 동참해 여법하고 완성도 높은 불교의례를 보여준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청련사예수재 연주 악곡은 전통가락을 연주하되 변주의 묘미를 보여준다. 이 점은 청련사가 온고창신의 좋은 본보기를 보여준 것으로 평가 받는다.특히, 청련사예수재는 다른 사찰과 달리 '독설판예수재(獨設辦預修齋)'로 옛 예수재 전통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예수재 초기기록은 조선 중기 보우 스님이 청평사에서 치른 왕실발원 예수재이다. 이는 초기의 예수재가 왕실 주도의 독판 형태로 설행됐음을 보여준다. 근대에 이르러 일반 사찰에 예수재가 확산되면서 합동예수재가 설행됐다. 광복 전까지 재가 독불공이 많았고, 오늘날 같은 합동 개념이 없었다고 알려져 있다.태고종 총무원장 호명 스님은 "청련사 예수시왕생칠재는 <청련사지>를 비롯한 여러 유물과 사적에서 나타나듯이 당풍범패와는 다른 한국적 율조를 지닌다. 바깥채비 활동보다 사찰 내 의례전통에 따라 독자적으로 설행하는 전승능력을 갖춰 전통 범패와 장엄의 맥을 잇는 사찰"이라면서 경기도 지정 무형문화재 등재 추천 이유를 밝혔다.[불교중심 불교닷컴, 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제보 cetana@gmail.com]

종합 | 조현성 기자 | 2022-06-16 23:23

익산 미륵사지 목탑지 보완 발굴조사 전경. 사진 제공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익산 미륵사지 중원에 있었던 목탑이 서원 석탑(국보 미륵사지 석탑)보다 먼저 조성됐으며, 가람배치는 목탑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발굴조사 결과가 나왔다.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소장 임승경)는 6월 15일 “지난 3월부터 익산 미륵사지 목탑지 보완 발굴조사를 벌여 백제시대 목탑지 기단 내․외부 축조 공정의 순서와 방법, 중원 목탑과 서원 석탑의 축조 순서, 목탑의 평면 규모를 추정할 수 있는 근거를 확인했다.”고 밝혔다.연구소가 서원 석탑보다 중원 목탑이 먼저 조성된 것으로 판단할 수 있었던 것은 대지 조성층을 파고 기초를 마련한 서원 석탑과 달리, 중원 목탑은 대지 조성 이전에 기초 터파기와 성토가 이루어진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발굴조사에서는 또 목탑지 기단 내·외부 축조공정 순서와 방법도 확인했다.연구소에 따르면 목탑지는 지면을 고르게 한 뒤 기단 맨 밑에 깬 돌과 흙을 쌓아 물 빠짐이 잘 되도록 하고, 기단 기초부를 단단히 다져 올렸다. 그 뒤 기초부 윗부분에 바깥 5~6단, 안 2단의 석축을 다진 흙과 함께 쌓아 올렸다. 석축 내부 기단부는 성질이 서로 다른 흙을 시루떡처럼 수평으로 다짐 쌓기해 만들었고, 외부 주변부 경사지게 흙을 쌓아 조성했다.연구소는 상․하층 기단부에서 목탑 평면 규모를 추정할 수 있는 굴광 흔적을 확인했으며, 북쪽 기단 일부에서 후대에 개축 되었을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익산 미륵사지 목탑지에 대한 발굴조사는 1981년과 1994년도에도 있었으나 당시에는 남아있는 기단에 대한 현황을 확인하고, 탑지 중앙부 하강조사만 시행해 목탑지 전체 규모와 내외부 축조 공정은 확인하지 못했다.

종합 | 이창윤 | 2022-06-16 18:03

▲ 진제 법원 대선사, 우크라이나 난민과 국내 산불피해자 지원에 성금 8억원 쾌척대한불교조계종 제13대, 제14대 종정을 역임한 진제 법원 대선사가 우크라이나 난민과 국내 산불피해자를 돕기 위해 8억원의 성금을 쾌척했다.부산시는 16일 오후 시청 의전실에서 대한불교조계종 진제 법원 대선사와 함께 ‘우크라이나 난민 및 국내 산불피해자 지원 성금 전달식’을 개최했다고 밝혔다.이날 전달식에는 박형준 부산시장과 대한불교조계종 진제 법원 대선사, 최금식 부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 발원사 주지 호법스님, 해운정사 도원 스님, 발원사와 해운정사 신도회장 등이 참석했다.진제 스님은 이 자리에서 전쟁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우크라이나 난민과 국내 산불피해자 지원을 위해 각각 4억원씩 총 8억원의 성금을 부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전달했다.전달된 성금은 부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우크라이나 전쟁 난민과 국내 산불피해자 지원을 위해 쓰여질 예정이다.박형준 시장은 이날 전달식에서 진제 스님에게 “한국 불교계의 큰 어르신인 진제 법원 대선사께서 직접 시청을 방문해주셔서 큰 영광이다”며 “우크라이나 난민과 국내 산불피해자를 위해 8억원이라는 큰 금액의 성금을 쾌척해주셔서 깊이 감사드린다”고 환영의 인사를 전했다.진제 스님은 “전쟁, 재난 등으로 어려운 시기가 계속되고 있지만, 부산시민과 재가불자들이 부단히 정진하고 한마음 한뜻으로 힘을 모으면 지금의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고 화답했다.박 시장은 전달식을 마치며 “진제 법원 대선사님의 따뜻한 마음이 우크라이나 난민과 국내 산불피해자 모두에게 널리 전달될 것”이라며 “오늘날 전세계가 맞이하고 있는 위기들도 끝까지 헤쳐 나갈 수 있도록 진제 법원 대선사께서 잘 이끌어주시길 바란다”고 전했다.[불교중심 불교닷컴. 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제보 dasan2580@gmail.com]

종합 | 이혜조 기자 | 2022-06-16 17:54

경주 낭산 출토 십일면관음보살상, 통일신라, 사진 제공 문화재청.경주 낭산 출토 약사불 좌상, 통일신라, 사진 제공 문화재청.경주 능지탑 출토 벽전과 전, 통일신라, 사진 제공 문화재청.경주 능지탑 출토 상륜부 장식, 통일신라, 사진 제공 문화재청경주 능지탑 출토 석조불 좌상, 고려, 사진 제공 문화재청.경주 망덕사지 출토 연꽃무늬 수막새, 통일신라, 사진 제공 문화재청.경주 망덕사지 출토 청동 정병 등 공양구, 고려, 사진 제공 문화재청.경주 사천왕사지 및 전 황복사 출토 용얼굴무늬 기와, 통일신라, 사진 제공 문화재청.경주 사천왕사지 출토 각종 금속 장식, 통일신라, 사진 제공 문화재청.경주 사천왕사지 출토 녹유 신장상 벽전, 통일신라, 7세기 후반, 사진 제공 문화재청.경주 사천왕사지 출토 수정과 유리 구슬, 통일신라, 사진 제공 문화재청.경주 사천왕사지 출토 토제 탑, 통일신라~고려, 사진 제공 문화재청.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 사리 장엄구, 통일신라, 692년 및 706년, 사진 제공 문화재청.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 사리 장엄구의 금제 불상, 통일신라, 692년 및 706년, 사진 제공 문화재청.경주 황복사지 출토 비편, 통일신라, 사진 제공 문화재청.경주 황복사지 출토 신장상, 통일신라, 사진 제공 문화재청.문무왕릉비, 통일신라, 681~682년, 사진 제공 문화재청. 

종합 | 이창윤 | 2022-06-16 17:22

전 황복사 삼층석탑에서 출토된 사리 장엄구와 금제 불상(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입상, 금제여래좌상). 출토된 지 80년 만에 처음으로 모두 일반에 공개된다. 사진 제공 문화재청.경주 황룡사지 동남쪽에 야트막한 산이 있다. 신라 실성 마립간 12년(413), 이 산에서 누각 모양의 구름이 일어나고 향기가 가득 퍼졌다. 실성 마립간은 신이한 현상이 일어난 이곳을 ‘신선이 노니는 숲〔神遊林〕’으로 여겨 나무 베는 것조차 금했다. 낭산은 그 뒤 국가의 큰 제사〔大祀〕를 지내는 곳이자 삼산(三山)의 하나인 신령스러운 산으로 여겨졌다.220여 년이 흐른 뒤 선덕여왕은 생전에 “내가 죽거든 도리천에 묻어 달라”고 유언했다. 어딘지 모른 신하들은 왕에게 물었고, 선덕여왕은 “낭산의 남쪽”이라고 알려주었다. 다시 30여 년의 세월이 흘러 문무왕 19년(679)에 낭산 남쪽 기슭에 사천왕사가 창건되자 신라인들은 비로소 선덕여왕의 능지가 도리천임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욕계 11천 중 사천왕천 위의 하늘이 도리천이었기 때문이다.신라가 국가차원의 제사를 지내던 곳〔祭場〕이자 사천왕사, 전 황복사, 망덕사 등이 터 잡은 불교성지였지만, 그동안 ‘노천박물관’으로 일컬어지는 경주 남산에 비해 주목 받지 못한 경주 낭산의 의미와 그곳에 산재한 문화유산을 소개하는 전시회가 열린다.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김성배)와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최선주), 재단법인 성림문화재연구원(원장 박광열)은 함께 6월 15일부터 9월 12일까지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관에서 ‘낭산, 도리천 가는 길’ 특별전을 개최한다.전시회에는 전 황복사지 삼층석탑 출토 사리장엄구 등 389점이 출품됐다.경주 사천왕사 출토 녹유 신장상 벽전. 통일신라, 7세기 후반. 사진 제공 문화재청.전시는 프롤로그 ‘낭산으로의 초대’, 1부 ‘신들이 노닐던 세계’, 2부 ‘왕들이 잠든 세상’, 3부 ‘소망과 포용의 공간’, 에필로그 ‘전시를 마치며’로 구성됐다.프롤로그 ‘낭산으로의 초대’는 낭산의 위치와 그곳에 흩어져 있는 문화유산을 소개하는 공간이다.1부 ‘신들이 노닐던 세계’는 사천왕사지와 전 황복사지에서 출토된 신장상을 소개하고, 토착신앙의 성지에서 불교성지로 변해 가면서도 신라인에게 낭산이 신성한 공간이라는 인식과 호국의 상징이었음을 조명했다.2부 ‘왕들이 잠든 세상’에서는 진평왕릉과 선덕왕릉 등 왕릉과 사천왕사, 전 황복사지 등 왕의 명복을 빈 사찰을 통해 낭산이 돌아간 왕들을 위한 공간이었음을 살펴본다.2부에서는 1942년 황복사지 삼층석탑에서 수습된 사리장엄구가 발견된 지 80년 만에 처음으로 모두 일반에게 공개된다. 황복사지 삼층석탑은 효소왕이 부친인 신문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건립했다. 효소왕의 뒤를 이어 즉위한 성덕왕은 석탑에 사리장엄구와 금제여래좌상과 입상을 봉안하고 왕실 번영과 태평성대를 기원했다.황복사는 사천왕사와 봉성사, 감은사, 봉덕사, 봉은사, 영묘사, 영흥사 등과 함께 한 때 왕실 원찰인 성전사원(成典寺院)이었던 사찰로 추정되는 사찰이다.낭산 출토 십일면관음보살상. 통일신라. 사진 제공 문화재청.3부 ‘소망과 포용의 공간’에서는 나라와 왕실의 안녕을 빌던 곳에서 개인의 소망을 기원하는 공간으로 확장된 낭산을 소개한다. 국립경주박물관과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에 보관된 능지탑 발굴 유물과 낭산 서쪽에서 발견된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십일면관음보살상,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진 약사불상을 선보인다. 이중 벽전(甓塼)과 상륜부 장식은 문무왕 화장터로 알려진 능지탑의 원형을 짐작할 수 있는 유물로 이번에 처음 대중에게 공개된다.에필로그 ‘전시를 마치며’에서는 절터 대부분이 발굴되었는데도 이름조차 확정하지 못한 전 황복사지의 사례를 통해 낭산의 문화유산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함을 보여준다.‘낭산, 도리천 가는 길’ 특별전 포스터. 사진 제공 문화재청. 

종합 | 이창윤 | 2022-06-16 17:03

황룡사지 남쪽 광장(가칭) 전체 조감도. 사진 제공 문화재청.신라 최대의 사찰이었던 경주 황룡사지와 주변에 대한 정비사업이 본격화될 전망이다.문화재청(청장 최응천)은 “지난달 24일 열린 문화재수리기술위원회 심의에서 황룡사지 남문과 중문 등 6개 건물지 기단 복구와 남쪽 광장(가칭) 정비계획이 통과됐다.”며, “황룡사지와 주변정비 사업을 올해 안으로 착수할 예정”이라고 2일 밝혔다.문화재청은 첫 사업으로 중문지와 남문지, 회랑지 2동, 동․서건물지 3동의 기단을 복구한다는 방침이다. 탑지, 금당, 강당 등 중심건물 기단복구는 다음으로 미뤄졌다.문화재청은 발굴조사 결과와 수습 석재 유물에 대한 국립문화재연구원의 고증․연구를 토대로 중문은 탱주와 면석이 있는 가구식 기단으로, 회랑지 2동은 외벌대 장대석 기단으로, 기단석 유구가 확인되지 않은 남문지와 동·서편 건물지 3동은 기단 위치를 목재로 표시하는 방식으로 정비하기로 했다.중심건물 기단복구까지 마무리되면 황룡사의 규모와 배치, 각 건물의 형태와 특징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황룡사지 남쪽 광장(가칭) 및 진입부 기단 정비계획. 사진 제공 문화재청.남쪽 광장은 유적지를 1m 높이로 복토하고 그 위에 당시 모습에 최대한 가깝게 재현․정비한다. 광장은 마사토로 다짐하고, 광장 남부 끝 지하 담장유구 상부에 담장을 일정 구간 재현한다. 담장은 국립문화재연구원이 수행한 ‘황룡사 판축담장 축조기법 실험 및 설계’(2014년) 결과를 반영해 축조하고, 주변에 탐방로를 개설하고 수목을 심는다는 방침이다.문화재청은 남쪽 광장을 정비하면 황룡사지 진입 방식이 ‘광장 - 남문 - 중문 - 탑 - 금당 - 강당’의 정면 진입 방식으로 회복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현재 황룡사지에는 들어가려면 유물전시관이 있는 측면이나 북쪽 분황사 쪽을 이용해야 한다.문화재청은 기술지도단을 구성해 사업 진행단계별로 지도․자문을 받아가며 사업을 진행할 방침이다. 복구 사업은 경상북도와 경주시가 맡는다.

종합 | 이창윤 | 2022-06-16 15:14

코액터스 송민표 대표(왼쪽)와 서울노인복지센터 부설 서울시어르신취업지원센터 희유 센터장이 6월 14일  시니어 드라이버(운전기사) 일자리 창출 협약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제공 서울노인복지센터 서울노인복지센터 부설 서울시어르신취업지원센터(이하 취업지원센터)와 ESG 모빌리티 플랫폼 '고요한M' 운영사 코액터스 주식회사(대표이사 송민표)가 6월 14일 시니어 일자리 창출을 위해 시니어 드라이버(운전기사) 일자리 창출 협약을 체결했다.'고요한M' 드라이버는 일정 수준 이상의 운송수입 금액을 채워야 하는 기존 택시기사와 달리 ‘완전 월급제’로 운영되고 있다. 또한, 고요한M 플랫폼을 통한 자동배차 시스템으로 운행하기 때문에 고객 영업에 대한 부담이 없어 높은 직업 안정성과 직무 만족도를 보이고 있다. 이와 더불어 주말근무가 없고 주 4일(07:00~17:00) 근무가 가능하다.이번 일자리 협약을 통해 취업지원센터와 코액터스는 시니어 일자리에 걸맞는 직무 설계를 하고 지속적인 일자리 연계를 진행할 예정이다. 취업지원센터와 코액터스는 오는 7월 19일에 시니어를 위한 채용설명회를 진행 예정이며, 이를 통해 취업에 관심 있는 시니어를 대상으로 직무조건 설명과 실제 근무지 및 차량 체험, 현직 드라이버와 만남 등으로 설명회를 구성할 예정이다.서울노인복지센터 부설 서울시어르신취업지원센터 희유 센터장은 “드라이버 직종을 신규 개발하려 노력했으나 시니어에 적합한 직무 조건을 찾지 못했지만 금번 협약을 통해 주말과 저녁이 있는 워라벨 시니어 드라이버를 배출할 수 있다고 하니 기쁘고 이에 운전경험 많은 시니어가 적극 지원했으면 한다"고 말했다.코액터스 송민표 대표는 "이번 협약을 통해 장애인을 비롯해 어르신도 마음껏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도록 하겠다"고 밝혔다.고요한M 드라이버로 지원 시 서류평가, 면접, 운전능력 평가를 거쳐 채용 심사 과정을 거치게 되며, 운전이 가능한 서울 시 거주 만 55세 이상 어르신은 누구나 지원 가능하다. 취업에 관심 있는 구직자는 서울시어르신취업지원센터(02-735-1919)로 문의하면 된다.

종합 | 임상재 | 2022-06-16 13:11

오늘(15일) 오전에 정부 측과 국민의 힘 그리고 대통령실은 국회에서 경제정책 방향에 대하여서 논의를 한다고 한다. 현재 미국 등 세계가 인플레이션 현상으로 초비상이며, 금융위기를 예측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미 물가가 상승을 넘어 폭등세다.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고물가가 예상된다고 한다. 국민경제가 어려워지거나 무너지면 국민의 일상은 도탄에 빠지게 된다.대통령이 진정으로 나라를 걱정 한다면 용산 집무실에서 숙식을 하면서라도 경제 등 관련분야의 전문가들을 만나서 의견을 듣고 적극적으로 대안을 창출하는 노력을 해야 마땅하다. 결코 예하 공무원이나 당정에만 위임할 일이 아니다. 국정은 대통령이 독려를 하지 않으면 정체되고 역공을 받게 된다. 대통령은 국방과 경제와 외교에서 만큼은 늘 공부하고 연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이왕 자판에 손을 얹은 김에 대통령실 명칭에 대하여 한마디 하고자 한다. 국방부로 이전한 대통령집무실에 대하여 마땅한 명칭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보도다. 국민적 공감대와 이해가 쉬우며, 미래 지향적이고 탈권위적인 철학이 담기면서도 국가 중앙통제기능으로써의 권위가 있는 명칭이어야 하니 작명이 어려울 것이다. 나는 새로운 대통령 집무건물의 명칭을 우리의 가옥 명칭에서 차용했으면 한다.조선시대 전통한옥은 안채(여성 주인 거주), 사랑채(남자주인 거주 공간), 행랑채(하인 등이 거주), 사당채(조상의 신주를 모신 곳) 등으로 거주 공간이 구분된다. 각 채에 딸린 마당도 건물의 명칭을 빌어서 안마당, 사랑마다, 행랑마당으로 불리었다.행랑채(行廊─)에 주목을 한다. 행랑채에 대하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행랑은 대문간에 붙어 있는 방을 뜻하므로 행랑채는 행랑방이 시설된 집채라고 할 수 있다. 보통 대문을 중심으로 마구간, 하인들이 기거하는 방, 광 등으로 되어 있고 주택의 경계선에 따라 세워지는 경우가 많다.”라 소개 하는바 한 마디로 집안의 일을 돌보는 머슴 등 하인의 거소인 동시에 창고며 울타리의 역할이다. 행랑아범이라는 단어도 행랑채에서 사는 어른 남성을 의미한다.고 박경리 여사의 토지에 ‘싸리비를 치켜들고 사랑 뜰에 들어온 행랑아범 전 서방은 새벽녘에 내린 눈을 담장 곁으로…쓸어 붙인다.’라는 대목이 나온다.‘행랑살이’라는 말이 있으니 “남의 집 행랑에 살면서 그 집의 일을 해주는 대신 생계를 꾸려가는 생활”을 의미한다. 대통령은 임기 5년 동안 잠시 국민을 대신하고 대표해서 국가의 일을 꾸려가니 행랑살이라 해도 무리가 아니다. 권위적 대통령에서 국민 일꾼의 이미지화에도 부합된다고 본다.해서 용산의 새로운 대통령집무처의 명칭을 국가의 중심과 통제기능의 권위를 부여해서 ‘행랑대行廊臺)’ 또는 ‘국가 행랑대’로 하면 어떨까 한다.행랑채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그 집안의 안전에서부터 농사, 물건구입, 주인의 각종 심부름 등을 도맡아서 하는 일꾼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는 공직자와 비교하면 무리일까? 공직자를 민복(民僕) 즉 국민(國民)의 공복(公僕)이라 했으며, 공직자가 국민의 공복이 아닌 정권을 위한 머슴으로 전락함을 경계하기도 한다.‘행랑’이라는 단어가 현대인과 가옥구조에서는 좀 낮선 단어이나 우리의 전통문화의 명칭이고 망각해서는 안 되는 단어인 동시에 친근감도 있다. 모든 명칭은 처음에는 어색하나 사용하다보면 익숙해진다./法應

종합 | 법응 스님 | 2022-06-16 09:03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이 오영훈 제주도지사 당선자에게 존자암과 무오년 법정사 항일운동 발상지 등 잃어버린 불교역사 복원을 당부했다.오영훈 제주지사 당선자는 15일 오후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4층 접견실에서 총무원장 원행 스님을 예방해 환담했다. 오 당선자는 송재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등과 함께 왔고, 총무원 총무부장 삼혜 스님과 기획실장 법원 스님, 문화부장 성공 스님이 함께했다.원행스님은 “당선을 축하드린다. 불자로서 큰일 하셨다”고 덕담한 뒤, “제주 지역은 불교가 강한 곳이다. 존자암은 물론이고 3‧1운동 보다 먼저 무오년에 최초 항일투쟁이 시작된 법장사와 같은 역사를 찾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존자암의 역사를 복원하면 한국불교의 역사는 2500여년 전으로 올라가게 된다. 또 법장사는 입구에 ‘무오법장사’라는 현판만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무슨 말인지 일반인들이 알기 어렵다. 무오년 법장사 항일투쟁지라는 정확한 현판이 잇어야 한다. 법장사 항일투쟁지는 천안의 독립기념관 보다 더 역사적 의미가 큰 곳이다. 있는 역사를 헌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원행 스님은 “이런 역사를 찾는 일은 없는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있는 역사를 찾는 일에 이다. 앞으로 제주에서 잃어버린 불교 역사를 찾는 일에 관심을 가져 달라”고 당부했다.오영훈 당선자는 “제주도는 불교역사문화와 인연이 깊은 곳이다. 한라산 영실 등 많은 곳에 불교역사문화가 있다.”며 “총무원장 스님 말씀대로 불교역사문화를 복원하는 데 노력하겠다. 무오 법장사는 대한민국을 지속하게 한 매우 중요한 일이다. 법장사의 최초 항일투쟁지의 역사를 복원하고 기념하는 사업을 하겠다.제주 존자암은 한반도의 불교문화가 제주도에서 시작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일부 학자들의 견해가 있는 곳이다. 또 무오법장사는 지난 1991년 즈음부터 제주 지역의 불교계와 일부 학자들은 한반도의 불교문화가 제주도에서 시작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무오법정사항일운동은 '기미(1919년) 3·1운동'보다 5개월 먼저 일어난 제주도 최초 최대의 항일운동이자 1910년대 종교계가 일으킨 전국 최대 규모의 무장항일운동이다. 1918년 10월 7일(월) 서귀포시 도순동 산1번지에 있는 법정사에서 평소 일본제국의 통치를 반대하던 불교계의 김연일(金連日) · 방동화(房東華) 등 승려들이 중심이 되어 법정사 신도와 ·선도교도 · 민간인 등 400여명이 집단으로 무장해 2일 동안 조직적으로 일본에 항거한 항일운동이다. 1919년대의 3·1운동을 비롯하여 민족항일의식을 전국적으로 확산시켜나가는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이에 대해 오영훈 당선인은 “도움을 주셔서 감사드린다. 제주는 불교 역사와 인연이 있는 곳이 많다”며 “법장사지 복원사업 등 지역 불교 역사를 찾는 일에 힘쓰겠다”고 말했다.[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 제보 mytrea70@gmail.com]

종합 | 서현욱 기자 | 2022-06-15 20:54

박대섭 국군예비역불자연합회장이 백만원력 결집불사 기금을 희사했다. 불기 2566(2022)년 불자대상 수상자인 박 회장은 불자대상 상금 1,000만원을 백만원력 결집불사 중 미래 군포교를 위해 호국 홍제사 건립 기금으로 내놓았다.박대섭 회장은 15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4층 접견실에서 아름다운동행 이사장 원행 스님(총무원장)을 찾아, 기금을 전달했다. 이 자리에는 총무원 총무부장 삼혜 스님, 재무부장 탄하 스님, 백년대계본부 불교사회연구소장 원철 스님이 배석했다.원행스님은 “명예로 사시는 분께서 예비역불자연합회를 이끌어 가느라 힘드실 텐데 상금을 기부해 주셨다. 불교를 위해 헌신하고 앞장서 주셔서 감사하다”고 밝혔다.원행 스님은 “충정사 관련 일들이 결과가 잘 나오길 바란다. 연등회전승관도 해야 하는 데 무무리를 잘 하시라”고 했다.이에 대해 박대섭 회장은 “많지 않은 금액이라 부끄럽다. 앞으로 더 많이 기부하고 더 열심히 봉사하겠다”고 했다.또 “로펌과 여러 업무를 완벽히 하도록 하고 있다. 총무원장 스님 덕분에 충정사 관련 일이 잘 진행되고 있어 기쁘다. 올해 잘 마무리 하도록 하겠다”며 “연등회 전승관까지 건립되면 한국불교 전통문화를 알리는 곳이 될 것”이라고 했다.[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 제보 mytrea70@gmail.com]

종합 | 서현욱 기자 | 2022-06-15 20:51

‘만해와 심우장’을 주제로 열린 만해학술제에서 한국불교선리연구원 원장 법진 스님이 ‘만해 한용운의 만년과 심우장’을 주제발표하고 있다.재단법인 선학원의 설립조사 중 한 분인 만해 한용운 스님은 55세가 되던 1933년 성북동 심우장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곳에서 재정난으로 휴간됐던 《불교》지를 속간했으며, 마포형무소에서 옥사한 일송 김동삼 선생의 장례를 치르고. 단재 신채호 선생의 묘비를 세우는 등 민족독립과 불교개혁을 위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1920년대 선학원에서 주석할 당시 신간회와 물산장려운동 등 항일민족운동으로 여러 번 형무소에 투옥된 이력이 있는 만해 스님은 조선총독부와 일경의 삼엄한 감시를 받고 있어서 심우장 시기 스님의 삶과 활동은 편린으로만 전할 뿐이다.만해 스님이 심우장에서 보낸 만년 10년 동안의 삶과 활동을 복원한 논문이 발표됐다. 한국불교선리연구원(원장 법진)이 6월 9일 오후 2시 한국근대불교문화기념관 만해홀에서 ‘만해와 심우장’을 주제로 개최한 만해학술제에서 법진 스님이 발표한 ‘만해 한용운의 만년과 심우장’이 화제의 논문이다.법진 스님은 같은 시대를 살아간 인물들의 증언과 각종 기록을 통해 만해 스님의 생애 마지막 10년을 입체적으로 복원해냈다. 특히 한영숙 여사의 증언은 만해 스님과 동고동락했던 딸의 증언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는 평가다.만해 스님은 1933년 심우장으로 거처를 옮겼다. “쇠약해진 몸과 유숙원과 혼인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김관호의 증언에 따르면 <동아일보> 김연국이 일본 오사카 지국장으로 가면서 비어 있던 곳을 김철중과 벽산(碧山) 스님의 배려로 집을 짓게 되었다.건립비용 1000원 중 700원은 부인 유 씨의 소지금과 선학원 적음 스님, 방응모 사장 등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마련하고, 모자란 300원은 월부로 상환하기로 하고 금용조합에서 차용했지만 끝내 갚지 못하고 입적했다.심우장은 앉은 방향이 북향인 것으로 유명하지만, 이를 부정하는 사람도 있다. 이에 대해 한영숙 여사는 집의 방향을 북향으로 한 것은 만해 스님이 조선총독부 건물과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였다고 확인했다.논문 부록 ‘달이 기억하는 만해와 심우장’에 수록된 증언에 따르면 한영숙 여사는 “그 양반(만해 스님)이 그렇게(총독부가 싫어서 북향으로 집을 지은) 거지요.”라고 분명히 밝혔다.만해 스님은 경봉 스님과도 오랜 인연을 맺었다. 심우장을 두고 두 스님 사이에 “언제 소를 잃었느냐”, “소를 얻고 잃는 일이 없다. 다만 부질없이 심우장을 지었다”, “일이 많다고 하니 상으로 차 한 잔 줄만하다” 등의 법거량이 오갈 정도였다.경봉 스님은 만해 스님에게 ‘화엄’을 배웠다. 그런 인연으로 경봉 스님은 심우장으로 만해 스님을 찾아가기도 하고, 만해 스님이 입적한 이후에는 추도비문을 직접 쓰고 비를 탑골공원에 세우는 일을 주도하기도 했다.만해 스님은 좋고 싫음이 분명해 뜻을 함께한 동지들에게 깊은 의리를 보여주었다. 만주에서 독립투쟁하다 피체되어 마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김동삼 선생이 1937년 3월 순국하자 유해를 심우장으로 옮겨와 5일장을 치른 일은 유명하다.한영숙 여사의 증언에 따르면 “밖에서 돌아가신 김동삼 선생의 유해를 방안으로 모시지 못하고 심우장 앞마당에 제상(祭床)을 차렸”고, “일제의 감시가 혹독해 조문을 위해 찾아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만해 스님은 선생의 유언에 따라 유해를 화장해 한강에 뿌렸다. 만해 스님은 영결식에서 “다시 이런 인재가 없을 것”이라며 통곡했는데, 스님이 일생에서 눈물을 흘린 것은 이 때 뿐이었다고 한다.만해 스님은 변절한 인사와는 단호히 절교하고 일체 상대하지 않았다.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최린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만해 스님은 최린이 변절하자 심우장으로 찾아와도 일절 만나주지 않았다. 스님이 집에 없을 때 최린이 딸에게 준 돈을 명륜동 그의 집으로 찾아가 집어던지고 돌아온 일화는 유명하다.한국불교선리연구원 원장 법진 스님이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만해 스님은 심우장으로 거처를 옮긴 뒤에도 민족의 독립과 불교개혁을 위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스님의 발걸음은 항일․독립을 위한 청년불교운동과 불교개혁을 통한 대중화운동으로 나아갔다.심우장으로 옮기기 전 조직된 만당(卍黨)은 청년불교운동의 대표적인 사례다. 이용조와 박영희의 증언에 따르면 만당은 1930년 5월 조학유, 김상호, 김법린, 이용조 4인이 조직한 비밀결사체다. 두 차례에 걸쳐 동지를 규합한 이들은 만해 스님을 당수로 추대하면서도 스님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만당 결사와 당수 추대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만당의 활동과 중요 사건에 대해 만해 스님에게 자문을 구했다.만당과 관련된 대표적인 인물이 김법린이다. 민중본위적이고 현실참여적인 불교사상을 가진, 일제강점기를 대표하는 지식인이었던 김법린은 만해 스님에게 사상적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인물이다. 김법린은 불교중앙학림 재학 시절 강사였던 만해 스님에게 지도를 받았는데, 파리 유학 시절 스님이 주석하던 선학원을 한국 주소지로 적을 정도로 스님을 정신적 지주로 여겼다. 1938년 만당 사건으로 진주에서 검거돼 옥고를 치른 김법린은 1939년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해 만해 스님에게 전달하기도 했다.선학원의 중흥조 적음 스님 또한 재정비된 만당 활동으로 1938년 10월 최범술·김범부 등과 함께 경기도 경찰부 감옥에 투옥되기도 했다. 1942년에는 해인사를 중심으로 한 만당 당원 17명이 친일파 승려 변설호의 밀고로 합천경찰서에 검거되기도 했다. 이처럼 만해 스님의 독립정신을 계승하고자 했던 불교계 애국청년과 승려들은 모두 여섯 차례에 걸쳐 일경에 검거됐다.만해 스님이 재정난으로 휴간됐던 《불교》지를 인수해 운영한 것은 불교개혁을 통한 대중화운동의 대표적 사례다. 스님은 <반종교운동의 비판>, <불교와 효행>, <불교청년운동을 부활하라>, <역경(譯經)의 급무>, <선외선(禪外禪)>과 같은 글을 통해 정교분립을 주장하고, 불교행정을 비판하는 등 불교포교와 대중화, 개혁을 실현하고자 했다.심우장 시절 만해 스님은 역사적 위인의 업적을 선양하여 무기력한 백성들에게 민족문화의 우수성을 강조하고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기도 했다.독립지사 김동삼 선생의 유해를 장사지내고, 단재 신채호와 대종교 초대교주 나철의 유고집을 간행하고자 했다. 다산 정약용의 서세(逝世) 100주년을 맞아서는 정인보, 안재홍과 함께 대서관(大西館)에서 기념회를 개최하기도 했다.만해 스님은 일제 말기 총동원 체제 아래 자행된 황민화정책의 거센 파도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민족적 자존심을 꺾지 않았다.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1935년 신사참배 반대운동, 1940년 창씨개명 반대운동, 1943년 조선인 학병 출정 반대운동 등 항일운동을 이어갔다.법진 스님은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 생활은 이전 10여 년 동안 선학원에서 전개했던 항일독립운동의 연속이었으며, 그동안 불교계에서 진행한 청년운동과 대중화를 점검하고 더욱 체계적으로 대응하고자 한 것이었다.”며, “만해의 삶은 격랑과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가 61세를 맞이해 읊은 한시 <즉흥>에서 말한 것처럼 ‘풍상 속에서도 일편단심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일’이 그가 세속에서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집착이었다.”고 말했다.종합토론 모습.법진 스님이 발표한 ‘만해 한용운의 만년과 심우장’의 부록 ‘달이 기억하는 만해와 심우장’에는 조선총독부와 마주하지 않으려고 심우장을 북향으로 지었다는 증언과 김동삼 선생의 장례에 관한 일화 외에도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거나 잘못 알려진 사실이 여럿 수록돼 있다.증언에는 만해 스님이 거처를 옮길 당시 심우장의 모습이 담겨있다. 한영숙 여사는 “처음에는 방, 광, 목욕탕, 화장실 그랬어요. 그런데 광이 없어지고 이상야릇하게 모두 신식으로 가면서 변형됐다.”면서도 “그래도 그냥 거기에서 살 때가 좋았다”고 회고했다.한영숙 여사는 만해 스님이 심우장으로 거처를 옮긴 이듬해인 1934년 태어났다. 증언에 따르면 만해 스님은 일본어를 배우게 된다고 딸을 소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대신 딸에게 병풍에 적힌 한자를 신문에 써서 익히고, 구구단을 외우도록 했다. 한영숙 여사는 광복이 되고 나서야 초등학교 3학년에 편입할 수 있었다.심우장 시절 만해 스님의 생활은 가난하기 그지 없었다. 구공탄을 살 돈이 없어서 불을 때지 않았다. 생활비는 지인(친구분들)이 주는 생활비와 <조선일보>에 연재하던 <흑풍> 원고료로 충당했다.당시 삼시 세끼는 부인 유숙원 여사가 장만해서 준비했는데, 유 여사는 “세상 떠나시면 손을 내놓고 묻으시라”고 말을 들을 정도로 음식 솜씨가 좋았다.유숙원 여사는 간호사로 알려졌는데, 증언에 따르면 “의사였던 (한영숙 여사의) 이모가 운영하던 삼선교 병원에 잠시 머물렀던 것이 와전된 것”이다.항일독립운동의 상징이었던 만해 스님이 주석한 심우장은 일경들의 감시가 삼엄했다. 일경들은 산에서 심우장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일일이 체크하고 감시했다. 그 탓에 찾아오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심우장에는 만공 스님과 춘성 스님, 적음 스님이 자주 드나들었다. 만공 스님은 상경할 때면 늘 심우장에서 잤다. 어린 한영숙 여사는 아침마다 놋대야에 세숫물과 발 씻는 물을 떠다 드리며 만공 스님을 시중했다.만해 스님은 말년에 중풍을 앓았다. 한영숙 여사는 중풍의 원인을 “(만주에서 총격을 받았을 때) 총알을 빼지 않고 그대로 두었기 때문”이라고 증언했다. 적음 스님이 심우장에 와 만해 스님에게 침을 놓기도 했다. 선학원 중흥조인 적음 스님은 침술이 뛰어나 신도들이 많이 따랐다.만해 스님은 1944년 6월 29일 입적했다. 장례는 5일장(7일장)으로 치러졌는데, 여름인데도 장례기간 동안 부패 없이 깨끗했다. 일경은 만해 스님의 장례 또한 감시했다. 만해 스님의 유택인 망우리 묘지는 스님 지인들의 주선으로 마련했다. 안장할 때도 애국지사들은 일경의 감시 때문에 오지 못했다.한편, 만해학술제에서는 법진 스님 외에 고병철 한국학중앙연구원 수석연구원이 ‘한용운의 지적 흐름과 실천, 그리고 근대불교적 가치’를 주제로 주제 발표했다.만해학술제가 끝난 뒤 발표자와 논평자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함께한 기념촬영. 

종합 | 이창윤 기자 | 2022-06-15 20:44

 불교환경연대(상임대표 법만 스님)는 기후위기, 생태위기 시대에 불교적 세계관으로 삶과 사회의 전환을 이끌어 갈 녹색불교지도자 양성과정 교육생을 모집한다. 녹색불교지도자 양성과정은 6월 25일부터 8월 20일까지 매주 화요일(온라인), 토요일(오프라인)에 기후위기 정책과 시민운동, 토양학, 동물권, 생명 다양성,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대안, 제로웨이스트, 식량과 농업, 생태민주주의, 청년운동, 에코페미니즘 등 주제의 20회 강의(각 2시간), 현장 교육(4시간), 워크샵(24시간) 등 프로그램으로 진행한다. 강사진으로 빗물을 연구하는 한무영 서울대 명예교수, 토양을 연구하는 윤성택 고려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 국내 에코페미니즘의 선구자 최형미 여성학 박사, 초대 국립기상과학원장 조천호 박사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였다. 화요일 교육은 오후 7:30~9:30 온라인 ZOOM을 통해, 토요일 교육은 오전 10:00~12:00, 오후 1:00~3:00, 오후 3:00~5:00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사단 내 교육장(동대입구역)에서 진행할 예정이다. 교육 수료자에 한해 녹색사찰 및 불교단체 환경교육 강의 진행 시 본회에서 소정의 강사비가 지원된다. 녹색불교지도자로서 사찰 및 불교계 각 분야에서 환경교육 및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기를 원하는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를 바란다. 녹색불교지도자 양성과정 교육 신청은 구글 폼 링크(bit.ly/3xpsdWH)로 접수할 수 있다. 접수 기간은 6월 24일까지며 선착순 40명, 교육비 40만원, 단체장 및 사찰 주지스님의 추천 시 30% 할인 혜택이 주어진다. 

종합 | 임상재 기자 | 2022-06-15 16:38

한국근대불교문화기념관에 있는 만해 한용운 스님의 동상. 불교저널 자료사진.재단법인 선학원 설립조사 중 한 분인 만해 한용운 스님이 일제 강점의 역사를 헤쳐 가며 겪은 냉혹한 현실과 고난, 끝끝내 잃지 않은 조국 독립의 희망, 말년을 보낸 심우장에서의 일화를 다룬 뮤지컬이 무대에 오른다.재단법인 선학원(이사장 지광)은 만해 한용운 78주기 추모 예술제의 일환으로 뮤지컬 ‘심우애서(尋牛愛書)’를 6월 18일 오후 7시 서울시 성북구 심우장에서 개최한다.만해 스님이 입적한 심우장에서 만해예술제가 열리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심우장은 만해 스님이 1933년 적음 스님으로부터 땅을 기증받고 주변 사람의 도움을 받아 지은 집이다. 총독부를 보지 않겠다면 스님이 동북 방향으로 집을 지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뮤지컬 ‘심우애서’는 김상남 작가가 대본을 쓰고, 이원조 씨가 곡을 썼다. 뮤지컬 ‘바람소리’와 ‘귀를 기울이면’ 등을 연출한 이주영 레이젠 엔터테인먼트 대표가 연출을 맡았다.주인공 만해 역은 조정환, 유심 역은 차석준, 현재 역은 강웅곤, 미래 역은 최윤정, 홍명희 역은 김기난 뮤지컬 배우가 각각 출연한다.뮤지컬 ‘심우애서’는 만해 스님의 시 <행복>에서 가져온 올해 만해 추모행사 주제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행복을 사랑합니다. 나는 온 세상 사람이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행복을 사랑하기를 바랍니다’를 이야기를 관통하는 뼈대로 삼았다. 뮤지컬에서는 만해 스님이 품었던 사랑과 좌절, 스님이 꿈꾸었던 미래가 심우장을 배경으로 펼쳐진다.뮤지컬 ‘심우애서’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만해 스님이 가졌던 꿈과 사랑, 겪었던 현실과 고난, 한계 등을 의인화한 것이다. ‘현재’는 엄혹했던 일제 강점기 아래 현실과 고난, 한계, 그리고 스님이 겪었던 번뇌를, ‘유심’은 스님이 사랑했던 조국과 청년을 상징한다. 또 ‘미래’는 만해 스님이 꿈꾸었던 조국의 독립과 내일에 대한 희망을 뜻한다.1막 ‘길을 찾아’에서는 심우장을 찾은 청년이 만해 스님의 시집을 읽으며 시간을 돌아 과거로 향한다. 만해 스님이 일제의 모진 탄압과 엄혹한 현실에서도 굳은 결의로 민족의 독립을 위해 뚜벅뚜벅 걸어간 길의 끝에 심우장이 있음을 보여준다.2막 ‘심우에서’에서는 일제 강점기 만해 스님이 겪었던 조국의 현실과 조국독립의 희망, 좌절을 다룬다. 일제의 감시와 연이어 들리는 변절자 소식에도 만해는 사랑을 꽃피워가는 청년 유심과 미래를 보며 희망을 꿈꾼다. 하지만 심부름을 떠난 유심이 순사에게 잡혀 고문을 당하고, 설상가상으로 독립투사 김동삼 선생은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한다.3막 ‘바라밀다’에서는 모진 현실에도 독립을 향한 꿈과 희망을 잃지 않은 만해 스님의 풍란화 매운 향기 같았던 삶을 다룬다. 김동삼 선생의 장례는 찾는 이가 없고, 청년 유심은 막막한 현실에 희망을 놓아버렸다. 하지만 만해는 모두가 떠나간 심우장에서 자신이 사랑하고, 또 사랑할 것들을 결코 놓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고 만해가 심우장에 아로새겼던 사랑을 모두가 함께 노래한다.재단법인 선학원 이사장 지광 스님은 “만해 한용운 선사는 강인하고 정의로웠지만 삶은 소박했다. 심우장은 그 분의 소박한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며, “선사께서 남기신 삶의 향기를 담은 뮤지컬 한 편을 올린다. 혼돈의 시대,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뜻깊은 시간이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뮤지컬 ‘심우애사’는 재단법인 선학원과 BTN 불교TV 유튜브 채널을 통해 생중계 된다.재단법인 선학원은 만해 스님의 기일이 있는 6월 한 달 동안 만해학술제와 만해예술제, 만해추모재, 전국청소년문예공모전 등 다양한 추모행사를 진행해 오고 있다.이창윤

종합 | 이창윤 기자 | 2022-06-15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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