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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경부[뉴스렙] 환경부는 종교단체와 함께 22일 오전 10시부터 서울 원불교 소태산 기념관에서 환경교육과 기후행동 실천을 위한 ’종교인 대화마당‘을 온라인으로 개최한다.이번 행사는 지난해 환경부와 5대 종교단체가 환경교육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각 종단별 환경강좌 개설 등 환경교육 활동사항과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실천방안을 공유하기 위해 마련됐다.행사방식은 코로나19 상황을 감안해 비대면 영상회의로 진행하며 유튜브 등을 활용한 현장 생중계와 수어통역을 제공하며 종교인뿐만 아니라 국민들도 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종교인 대화마당은 1부 개회식과 2부 ’생태공동체 회복을 위한 종교인 삶’을 주제로 하는 특별강연 등으로 진행된다.1부 개회식에서는 종교인들이 기후위기에 의해 고통을 받고 있는 모든 생명을 위로하는 연출공연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종교인 선언발표가 있다.2부에서는 ‘기후위기 시대 생태공동체 회복을 위한 종교적 삶’을 주제로 하는 특별강연 종단별 행동과 실천방안 과제, 사례발표 등이 선보인다.이번 종교마당 행사에는 전 세계적으로 화두가 되고 있는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종교인의 실천의지를 담은 ’종교인 기후 행동 선언식‘이 열린다.선언식에는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이홍정 총무, 원불교 오도철 교정원장, 천도교 송범두 교령,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강우일 주교 등 5대 종단 대표가 참여한다.이번 ’종교인 기후행동 선언‘은 한국어, 영어, 일어, 중국어 등 4개 국어로 국내외에 동시에 발표가 되어 세계 종교인이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친환경 행동에 참여토록 독려한다.조명래 환경부 장관은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5대 종단이 친환경적인 삶의 실천을 다짐하는 기후행동 선언의 취지에 깊이 공감하면서 이날 종교인부터 시작한 기후행동이 우리 모든 국민에게로 확산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종합 | 이혜조 기자 | 2020-09-22 13:15

▲ 서산 보원사지 전경. 법인국사탑과 탑비가 보인다.조선 후기 실학자 이중환(李重煥, 1690~1756)은 저서 《택리지》에서 “충청도에서 내포(內浦)가 가장 좋은 곳”이라고 했습니다. 내포는 서산과 예산의 경계를 이루는 가야산(伽耶山)이 품은 열 고을을 이르는 말입니다. 서산, 해미, 태안, 면천, 당진, 홍주, 덕산, 예산, 신창 등이 그곳이지요. 이중환은 “이곳(내포)의 땅은 기름지고 평평하면서 넓다. 또한 소금과 물고기가 많아서 대를 이어서 사는 사대부가 많다.”고 평했습니다. 그만큼 문물이 풍부하고 살기 좋은 곳이란 의미겠지요.아흔아홉 암자 번성한 내포의 중심 가야산가야산은 내포의 중심이자, 내포를 상징하는 산입니다. 가야산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지내던 중사(中祀)의 대상 중 하나였습니다. 중사는 국토의 네 방위에 있던 명산에 지내던 제사인데, 서쪽 명산이 가야갑악(伽耶岬岳), 즉 가야산입니다.‘가야’라는 이름은 부처님이 깨달음을 성취한 부다가야(Buddhagaya) 인근 가야산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가야산’은 ‘상왕산(象王山)’으로도 불립니다. 원래 가야산과 상왕산은 서로 맞닿은 다른 산이지만, 예로부터 두 산을 아울러 가야산이라고도 불렀습니다. ‘가야’라는 이름이 불교에서 유래했듯, ‘상왕’이라는 이름도 불교에서 기원했습니다.《불교대사전》(홍법원 펴냄)에 따르면 ‘가야(伽耶, gayā)’는 소의 일종입니다. 코끼리는 ‘gaja’인데, 산스크리트어가 방언화된 프라크리트어에서 ‘ya’와 ‘ja’의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에 ‘가야’를 관례적으로 ‘코끼리〔象〕’로 번역했다 합니다. ‘대상왕’은 부처님을 의미합니다.산 이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가야산 그 주변에는 상왕산, 원효봉, 보현동 등 불교와 관련 있는 지명이 여럿 남아있고, 가야사지, 보원사지, 원효암지, 백암사지, 개심사, 일락사,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예산 화전리 석조사면불상 등 여러 불교유적과 유물이 전하고 있습니다. 흔히 가야산을 ‘호서불교의 성지’라고 부르는 것도 ‘가야’, ‘상왕’이라는 이름의 두 산과 그 품에 자리한 수많은 불교유적과 유물 때문일 것입니다.내포문화숲길은 내포의 역사와 문화, 생태를 보고 느끼고 체험할 수 있도록 서산시와 당진시, 홍성군, 예산군 등 4개 시군이 함께 개설한 숲길입니다. 내포문화숲길은 ‘백제부흥군길’, ‘원효깨달음길’, ‘내포천주교순례길’, ‘내포역사인물동학길’ 등 4개 테마길로 나뉘는데, 그중 ‘원효깨달음길’ 제5코스는 예산 덕산도립공원 주차장에서 예산 가야사지(伽耶寺址)와 서산 보원사지(普願寺址),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을 거쳐 서산 용현계곡 입구에 이르는 약 10km 거리의 숲길입니다.내포문화숲길 홈페이지(www.naepotrail.org)를 보면 “해양으로부터 전해지는 불교가 처음 도착하여 융성한 곳이 가야산”이라며, “(원효깨달음길은) 원효 대사의 깨달음 흔적을 따라 걸을 수 있도록 절과 절, 옛 절터와 옛 절터를 연결한 길”이라고 소개돼 있습니다. 하지만 ‘불교가 처음 도착한 곳’(뒤에 언급하겠지만 내포지역이 중국과의 교역로였으니 중국에서 백제로 전해진 불교가 처음 도착한 곳이라는 뜻이면 이해됩니다)라거나 ‘원효 대사의 깨달음 흔적’을 거론하니 그 작명법이 생뚱맞다 싶습니다.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덕산도립공원주차장에서 출발해 800m쯤 오르면 가야사의 옛터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발굴조사 후 한 곳에 모아둔 석조 부재와 안내문이 이곳이 절터임을 알려줄 뿐 절의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남연군 묘에서 바라본 가야사지 전경.나옹 스님이 조성한 금탑이 있던 가야사가야사지는 절보다는 흥선대원군 이하응(興宣大院君 李昰應, 1820~1898)의 아버지 남연군 이구(李球, 1788~1836)의 묘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하지만 가야사는 통일신라 말 고려 초 수미산문(수미산문)의 개산조 진철대사 이엄(眞澈 大師 利嚴, 270~936) 스님이 출가한 사찰이자 동리산문(桐裏山門)의 3조 광자 대사 윤다(廣慈 ⼤師 允多, 864~945) 스님이 구족계를 받은 유서 깊은 절입니다. 한때는 수덕사보다 규모가 컸다고 전하지요. 《고려사절요》에 고려 명종 7년(1177) 국가의 과도한 수탈에 반발해 난을 일으킨 공주 명학소(鳴鶴所, 소는 특산물을 생산해 국가에 공납하는 지역을 말합니다.)의 천민 망이(亡伊), 망소이(亡所伊)가 황리현(⿈驪縣, 지금의 여주), 진주(鎭州, 지금의 진천) 등과 함께 가야사를 점령했다는 기사가 기록된 것을 보면, 당시에도 가야사는 규모가 꽤 크고 중요한 사찰이었던 듯합니다.절터에는 다른 절과 달리 작은 언덕이 하나 있는데, 그 위에는 고려 공민왕 7년(1358)에 나옹 스님이 조성한 오층금탑이 있었다고 합니다. 조선 영조 때 각 읍에서 편찬한 읍지를 모아 엮은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윗머리 부분에 구리를 씌웠고, 네 구석에 철사 줄을 매달아 풍경을 드리웠다. 장대한 모양과 기묘한 생김새가 평범한 탑과는 다르다.”고 금탑이 묘사돼 있습니다. 또 정조 23년(1799)에 왕명으로 편찬된 《범우고》에는 “매우 빼어난 철첨석탑(鐵尖石塔)으로 탑의 사면에 감실을 만들어 석불을 봉안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이 오층금탑은 조선 헌종 때 파괴되고, 가야사도 방화로 함께 폐사됩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참 어이없습니다. 흥선군이 ‘2대에 걸쳐 천자가 나올 자리〔二代天子之地〕’라는 이곳에 경기도 연천에 있던 부친의 묘를 이장하려고 금탑을 부수고 절을 불지르는 훼불한 것이지요.▲ 흥선대원군 이하응은 가야사를 폐사시키고 오층금탑지에 아버지 남연군 묘를 이장했다. 남연군 묘.부친 묘 이장하려고 훼불 자행한 흥선대원군그 전말은 경술국치를 당하자 죽음으로 항거한 문인인 매천 황현(梅泉 黃玹, 1855~1910)의 저서 《매천야록(梅泉野錄)》에 비교적 소상히 전하고 있습니다.안동 김씨 일가의 세도정치에 숨죽이며 파락호(破落戶)로 지내던 흥선군은 당대의 명지관 정만인에게 부탁해(일설에는 한 지관이 찾아왔다고도 합니다.) 2대에 걸쳐 천자가 나올 명당자리를 얻었습니다. 당초 정만인은 만대에 영화를 누릴 자리〔萬代榮華之地〕를 함께 알려주었는데, 흥선군은 주저 없이 2대 천자가 나올 자리를 선택했다 합니다. 그 자리가 바로 가야사지 금탑지입니다.흥선군은 헌종 10년(1844) 남연군의 묘를 오층금탑 뒤 기슭으로 옮깁니다. 그리곤 재산을 모두 팔아 마련한 2만 냥 중 1만 냥을 주지에게 주어 절을 불태우도록 했다(일설에는 충청감사에게 선물을 주어 가야사 스님들을 내쫓고, 마곡사 승려들을 강압해 불을 지르게 했다고도 합니다.) 하지요. 그리고 이듬해 오층금탑을 부순 후 그 자리에 남연군 묘를 다시 옮겼습니다. 오층금탑에는 백자 두 개, 단지 두 개, 사리 세 과가 있었다고 합니다. 흥선군이 뒷날 이건창에게 말하길 “오층금탑을 쓰러뜨리니 그 속에 백자 두 개와 단지 두 개, 사리 3과가 있었다. 사리는 작은 머리통만한 구슬이었는데 매우 밝게 빛났다. 물속에 잠겨도 푸른 기운이 물을 꿰뚫고 끊임없이 빛났다.”고 말했다 합니다.오층금답을 부순 흥선군은 지관의 조언에 따라 도굴을 막고자 철 수 만 근을 붓고 강회를 비벼 넣었다 합니다.석문봉을 주산으로 하고, 원효봉과 옥양봉 줄기가 둘러싼 남연군 묘에 올라서면 풍수지리에 문외한인 이가 봐도 한 눈에 명당임을 알 수 있습니다.가야사지에서 북쪽으로 200m 남짓 떨어진 곳에 ‘상기리 미륵불’로 불리는 석조관음보살입상이 있습니다. 이 입상은 북쪽을 바라보고 서 있는데, 가야사가 불 탈 때 그 모습이 보기 싫어 돌아섰다고 하지요. 또는 절터의 기가 골짜기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세웠다거나, 북쪽 계곡에서 들어오는 병마(兵馬)를 물리치려고 조성했다는 설도 있습니다.독일 상인 오페르트의 남연군 묘 도굴 사건흥선군이 묘를 이장한지 7년 만인 철종 3년(1852) 흥선군은 둘째 아들 재황(載晃)을 얻었습니다. 그가 바로 고종입니다.남연군 묘는 이장 23년만인 고종 5년(1868) 통상을 요구하던 독일 상인 오페르트(Oppert, E. J.)가 도굴하면서 역사의 현장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오페르트는 두 번이나 통상을 요구하다 실패하자 남연군 시신과 부장품을 볼모로 뜻을 이루고자 합니다. 오페르트는 미국인 젠킨스(Jenkins, F.)로부터 자금을 지원받고, 병인사옥 때 탈옥한 프랑스 선교사 페롱(Feron)과 조선인 천주교도, 선장 묄러(Moeller), 조선인 모리배 2명, 백인 8명, 말레지아인 20명, 유럽, 필리핀, 중국선원 등 140명에 이르는 도굴단을 구성해 덕산면 구만포에 상륙합니다. 러시아군을 사칭한 이들은 덕산군청을 습격해 군기를 탈취하고 민가에서 도구를 약탈한 뒤 도굴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덕산군수 이종신(李鍾信)과 묘지기, 주민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게다가 흥선군이 이장할 때 단단하게 비벼 넣은 석회를 부수지 못해 성공하지 못하고 철수합니다.오페르트가 저지른 도굴 사건은 국제적으로도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젠킨스는 미국인에게 고발당하고, 페롱은 본국으로 송환됐습니다. 오페르트가 남연군 묘를 도굴하려 한 사실을 알게 된 흥선군은 이후 쇄국정책과 천주교 탄압을 더욱 강화했습니다.▲ 흥선군 이하응이 가야사를 불태우자 뒤돌아 섰다는 ‘상기리 미륵불’. 미륵불로 불리나 관세음보살이다.2대 천자 ‘영화’ 얻었으나 조선왕조 멸망 ‘비극’권력을 향한 흥선군의 욕망은 천년 고찰을 폐사시키는 악행으로 이어졌고, 고종의 즉위와 집권의 디딤돌이었던 남연군 묘는 이방인이 도굴하는 참담한 일을 겪었습니다. 지관의 말대로 흥선군은 후손이 2대에 걸쳐 천자가 되는 영화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2대 천자를 끝으로 500년 왕조가 멸망하고, 부친의 묘소가 파헤쳐지는 것을 보았으니, 그것은 영화가 아니라 비극이자 오욕이겠다 싶습니다. 욕망은 타오르는 불꽃처럼 모든 것을 불태우고야 맙니다. 남연군 묘 이장 사건은 욕망의 끝은 늘 파멸이요, 비극임을 보여줍니다.남연군 묘가 파헤쳐지는 것을 지켜본 흥선대원군은 절을 불 태우고 오층금탑을 파괴한 것에 죄책감을 느낀 것일까요? 흥선대원군은 도굴 사건 3년 뒤(1871) 멀지 않은 곳에 보덕사를 지어 가야사를 잇도록 했습니다. 흥선대원군은 한 때 어린 아들 명복(命福, 고종의 아명)을 맡긴 인연이 있는 영도사(永道寺, 지금의 개운사) 벽담 도문(碧潭 道文, ?~?) 스님에게 수호일품대승(守護一品大僧)이라는 칭호를 내리고 보덕사 주지로 삼아 남연군 묘를 지키도록 했다고 합니다.가야산은 한때 아흔아홉 곳의 암자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할 정도로 불교가 융성했던 곳입니다. 그런데 가야산의 암자가 100곳이 되면 모두 망한다는 전설이 있었다고 합니다. 100번째 암자가 백암인데, 이 암자가 창건되자 가야사를 비롯한 주변 모든 암자가 불타 없어졌다고 합니다. 일설에는 백암이 폐사된 것은 이인좌의 난 때 반역에 가담한 황진기가 승려로 위장해 이 절에 숨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흥성했던 가야산의 불교가 일순간 망했다는 전설의 이면에는 가야사를 불태운 흥선군처럼 불교 외적인 세력의 훼불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아니면 훼불의 원인과 책임을 불교계에 덮어씌우려는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닐까요? 진실은 역사의 그늘 뒤에 숨어 모습을 쉽게 드러내지 않습니다.▲ 서산 보원사지 전경.통일산라 말 이전 창건 화엄사찰 보원사가야사지에서 내포문화숲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잣나무쉼터를 지나 퉁퉁고개를 넘어 7km쯤 가면 보원사지(普願寺址)에 다다릅니다.보원사가 언제 창건되고 어떻게 법등이 이어졌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소소한 기록마저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지요. 문화재청 누리집(http://www.heritage.go.kr) ‘문화유산검색’에서도 “창건 연대는 확실치 않지만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 전기 사이인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도, “백제의 금동여래입상이 발견되어 백제 때의 절일 가능성도 있다.”고 애매하게 설명할 뿐입니다. 하지만 가지산문의 제3조 보조 체징(普照 體澄, 804~880) 스님의 탑비에 이 절에서 구족계를 받았다고 기록돼 있는 것으로 보아 통일신라 말 이전에 이미 경영되고 있었던 것은 확실합니다.보원사는 화엄종 사찰이었습니다. 최치원이 효공왕 8년(904)에 지은 <법장화상전(法藏和尙傳)>에 의상 스님의 화엄교학을 널리 알린 화엄십찰(華嚴十刹) 중 하나로 ‘웅주(熊州) 가야협(伽耶峽) 보원사’를 언급하고 있고, 고려 화엄학의 대가 법인 국사 탄문(法印 國師 坦文, 900∼975) 스님이 입적하기 전 1년 간 이곳 보원사에 주석한 사실에서도 그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우리나라 화엄학은 의상 스님이 중국에서 들여온 뒤 화엄십찰을 중심으로 교맥을 이어갑니다. 그러다 통일신라 말에 이르러 남악(南岳)과 북악(北岳) 두 파로 나뉘어 사상적으로대립합니다. 탄문 스님은 균여(均如, 923∼973) 스님과 함께, 서로 대립하던 화엄학파가 고려 광종 이후 다시 일가를 이룬 뒤 배출한 걸출한 학승입니다.▲ 서산 보원사지에서 주석한 고려 초 화엄학승 법인국사 탄문 스님의 사리탑.걸출한 화엄학승 법인 국사 탄문탄문 스님은 장의사 신엄(信嚴) 스님에게 출가해 화엄을 배웠습니다. 스님이 구룡산사에 머물며 《화엄경》을 강의할 때 새가 날아들고 범이 뜰에 와서 엎드리는 일이 있어서 ‘별대덕(別大德)’으로도 불렸다 합니다. 고려 태조도 스님을 ‘별화상(別和尙)’이라고 칭하며 존숭했고, 뒤를 이은 혜종, 정종, 광종 또한 스님을 지극히 공경했습니다. 특히 광종은 귀법사(歸法寺)를 지어 스님을 주지로 삼고, 이어 왕사와 국사에 봉했을 정도였습니다.탄문 스님은 태조의 왕후 유 씨가 광종을 임신했을 때 편히 출산할 수 있도록 기도해줄 것을 부탁할 정도로 왕실과 가까웠습니다.탄문 스님이 보원사로 거처를 옮길 때 “선교승(禪敎僧) 1000여 명이 영접하여 절로 들어갔다.”고 ‘법인국사탑비(法印國師塔碑)’에 묘사된 것이나, “쌀을 씻은 물이 흐르는 냇물을 마을 사람들이 끓여 숭늉으로 마셨다.”는 구전이 있는 것으로 보아 보원사는 사세가 매우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지금도 보원사지에는 탄문 스님의 사리탑과 탑비, 오층석탑, 당간지주, 석조 등 여러 유물이 남아 묵묵히 보원사의 사격(寺格)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탄문 스님이 주석할 시절 법당에 봉안돼 있었을 두 분의 철불은 일제 강점기 반출돼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습니다.보원사가 언제 폐사됐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조선 광해군 때 한여현(韓汝賢)이란 이가 지은 《호산록(湖山錄)》에 “보원사 경내에는 주전인 2층 고각 법당과 부도전, 나한전, 탑비 등이 배치돼 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임진왜란 이후 어느 때인가 법등이 끊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백제의 미소’로 유명한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 위키백과. CC BY-SA 4.0‘백제의 미소’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보원사지를 나와 1.6km 가량 내려가면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입구에 다다릅니다. 입구에서 계곡물을 건너 비탈을 150m 가량 올라가면 마애여래삼존상을 친견할 수 있습니다. 고 김원룡 박사가 《한국미의 탐구》라는 저서에서 ‘백제의 미소’라고 칭송한, 흔히 ‘서산 마애삼존불’로 불리던 백제시대 마애불입니다. 지긋한 눈으로 순례자를 바라보는 본존불의 미소가 재롱을 피우는 어린 자식을 지켜보는 부모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온화한 미소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신라의 미소’로 불리는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가 떠오릅니다. 두 미소 모두 중생의 마음을 따뜻하고 평온하게 해줍니다.10m가 넘는 암벽 동쪽 면을 깎아 조성한 마애여래삼존상은 《법화경》의 수기삼존불(授記三尊佛), 즉 석가모니불과 미륵보살, 제화갈라보살이라고 합니다. 《법화경》 사상이 백제사회에 유행한 사실을 입증해 주는 중요한 자료라 하지요. 그러고 보니 이곳에서 멀지 않은 수덕사에 주석했던 혜현(慧顯, 573~630) 스님도 법화와 삼론(三論)에 통달했다 하지요. 스님은 당 도선 스님이 지은 《속고승전》에도 기록된 백제의 학승입니다.중국 오가는 마지막 기착지이자 첫 관문 내포마애여래삼존상이 있는 용현계곡은 예로부터 백제와 중국을 잇는 교통로였다고 합니다. 중국에서 태안반도를 거쳐 백제의 수도인 공주와 부여로 가는 지름길이 용현계곡이었다 하지요. 원래 백제는 인천시 연수구에 있었던 능허대(凌虛臺)에서 서해를 건너 중국과 교류했습니다. 이 항로는 고구려에 막혀 육로를 이용할 수 없었던 백제 사람들이 중국을 오갈 때 가장 짧은 뱃길이었다 합니다. 그러나 이 항로는 개로왕 21년(475) 고구려가 한강 유역을 점령하면서 이용할 수 없게 됩니다. 이후 공주와 사비로 천도한 백제가 새로 개척한 뱃길이 태안반도에서 덕물도(지금의 옹진군 덕적도)를 거쳐 북서진하는 항로였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가야산 자락의 내포지역은 중국으로 출발하는 마지막 기착지이자 백제로 들어오는 첫 관문 역할을 했습니다. 학자들은 장거리 뱃길을 떠나는 이들이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도록 기원하려고 이 마애여래삼존상을 조성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마애여래삼존상은 1959년에야 비로소 학계에 알려졌습니다. 마을사람들은 이전에도 마애불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본존불을 산신령으로, 두 협시보살을 산신령의 부인으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건방지게 앉아있는 둘째 부인에게 첫째 부인이 돌을 던지려고 산신령의 눈치를 보는 형상으로 이해했다는 것이지요.▲ 서산시 운산면 용현계곡 초입에 서 있는 강댕이 미륵불.입구로 다시 나와 500m 쯤 내려가면 길 한쪽에 돌부처님이 한 분 서 있습니다. 원래 강댕이마을에 서 있었는데, 고풍저수지가 생기면서 마을이 잠기자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합니다. 원래 있던 마을 이름을 따 ‘강댕이 미륵불’이라고 부릅니다. 고려 후기 조선 초 즈음에 조성한 불상으로 추정합니다. 마을사람은 중국을 왕래하던 이들의 무사안위를 빌기 위해 모신 불상이라고도 하고, 옛 보원사를 수호하는 비보장승으로 조성한 불상이라고도 합니다.고려 말에 이르면 내포지역에는 미륵신앙이 널리 퍼집니다. 미륵불에 공양할 침향을 바다에 묻고 그 사실을 기록한 당진 안국사지 매향암각이나 해미매향비, 덕산매향비 등 내포지역 매향비(암각)에서 그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기사는 제휴매체인 <불교저널>에도 실렸습니다.[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제보 budjn2009@gmail.com]

종합 | 이창윤 기자 | 2020-09-22 11:30

PD수첩 예고편 갈무리 지난 5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위한 나눔의집 운영 실태를 폭로해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던 PD수첩이 '나눔의 집' 관련 후속 방송을 한다.MBC 탐사프로그램 PD수첩은 22일 오후 10시 40분 '스님께 다시 묻습니다'편을 방송한다. PD수첩 예고편 갈무리 이번 방송에서는 나눔의 집 제보자들의 내부고발 이후가 조명된다. 김대월 학예실장은 나눔의집 측으로부터 10건이 넘는 고소 고발을 당했다. 일본인 직원 야지마 츠카사 씨는 나눔의집 측이 내세운 정상화위원회 유가족에게 폭언과 막말을 들어야했다. 나눔의집 새 시설장 우용호 씨는 PD수첩에 "제보자를 겁박하는 게 아니라 정상화 하는 과정"이라고 했다.PD수첩 예고편 갈무리 내부고발 이후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당시 나눔의집 상임이사) 관련 새로 밝혀진 사실도 방송된다. 나눔의 집 측은 원행 스님이 부당수령했던 급여 관련 "원행 스님은 헌신적으로 업무를 수행했다. 나눔의 집은 월주 스님 이하 원행 스님 중심으로 그 영향력을 통해서 많은 후원을 유도해 나눔의집이 안정적으로 운영됐다"고 했다.이어서 "원행 스님은 2001년부터 월주 스님을 대리해 일을 했다. 법인 운영규정 제60조(비상근 상임이사 급여)에 예산 범위 내에서 비상근 상임이사 급여를 지급할 수 있다"고 했다.그러면서 "원행 스님은 2001~2018년까지 17년 동안 많은 활동을 했다. (1억여 원은) 활동에 비해 적은 보수"라고 했다.원행 스님은 급여 부당수령 지적에 지난 5월 25일 나눔의집 통장으로 1억3445860원을 돌려놨다. PD수첩 예고편 갈무리 앞선 지난 5월 19일 PD수첩 '나눔의 집에 후원하셨습니까?'편에서는 '나눔의 집' 직원 7명이 출연해 '나눔의 집'의 방만하고 부당한 운영을 폭로했다.PD수첩 보도 후, 청와대 게시판에 나눔의집 관련 청원이 올라왔다. 나눔의집은 현재, 경기도 민관합동조사단 조사 후 보고서 발간과 이재명 지사 결단을 남겨두고 있다.

종합 | 조현성 기자 | 2020-09-21 16:18

지난 시간에 이어 남오성 교회개혁실천연대 공동대표의 사이다 발언을 들어본다.교회를 누가 개혁해야 하며, 코로나19를 직면했음에도 대면 예배를 고집하는 이유, 비대면 예배를 극복할 대안 등이 주요 주제다.- 교회 개혁의 주체는?"신앙적으로는 하나님이다. 가시적으로 보자면 목사 등 내부자들이다. 목사들이 (비난의)주요타켓이다 보니 목사들이 교회개혁을 할 수 있겠냐고 비이냥거린다. 16세기 종교개혁 주체를 보면 수도사 루터, 법학자 칼빈, 사제, 평신도들이 어우러졌고 외부인들도 큰 영향을 끼친다."- 코로나19 등 재앙을 '신의 의지', '신의 징벌'이라고 표현하는 것에 대해?"성경에 보면 인간에게 징벌할 때 질병이나 인간이 원치않는 재앙을 내린다. 성경을 너무 단순화해선 안 된다. 그건 하나님을 단순하게 이해하는 것이다. 영이고 창조주를 조그만하게 만들어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자기 마음대로 만지작 거리면서 신앙의 왜곡이 시작된다. 욥의 해석이 그렇다. 욥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것이 아니다. 이유를 빨리 찾으려고 하면서 문제가 생긴다. 우한바이러스라는 용어를 끝까지 고집하는 사람들은 정치적 의도가 있다. 현 정부와 중국 공산당과의 관계를 계속 연관짓고, 북한과의 평화협상을 계속 왜곡해 가면서 음흉한 정치적 의도 때문에...올바른 표현이 아니다."- 대면 예배가 돈 때문인가?"전혀 없지 않다. 한국교회는 태생부터 각자 생존이다. 자영업 구조다. 절반이 상이 자립 구조를 못 갖추고 있다. 미자립 교회다.  한국교회의 연간 금융비용이 7천억원이라는 통계가 있다(김경호 운판 대표). 교인들의 헌금하면 은행 배불리는 것이다. 엄청나게 건축을 해대면서 금융비용으로 많이 빠져 나간다. 그런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그런 현실적인 이유가 기독교인들이 모이려는 이유의 다냐? 그건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는 거다. 몇가지 이유가 더 있다. 첫째, 교인 입장에서 주일성수가 너무 중요하다. "주일날 예배당 가서 예배드리지 않으면 이건 신앙이 아니다."? 이건 수단이고 형식이다. 이게 전도(顚倒)가 된 것이다. 종교 행위 외에는 신앙의 의미도 어떤 것도 없다. 종교와 일상이 분리되니까 그런 거다.'생명 같은 예배' 그걸 못하게 하니까 난리가 난 거다. 한국 기독교 신앙이 '일요일 예배당' 중심의 신앙으로 고착화 돼 있는 걸 만천하에 드러나게 한 대표적인 계기라고 생각한다.또 하나, 목사 입장에서는 교인들이 내 앞에 앉아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 내 설교를 들으면서 아멘아멘하고 경외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으면 목사가 마음의 안정을 얻고 목회가 잘 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다.  교회는 단지 종교집단이 아니다. 생활경제공동체다. 최초 한국교회는 북에서 월남한 사람들의 공동체로 시작됐다. 1970, 80년대는 시골 청년들이 상경해 거기서 교회를 형성했다. 교회를 매개로 교제하고 인간관계 생활경제가 엮여 있다. 이걸 모이지 못하게 하면 모든 인간관계의 단절이다. 어떤 교인은 교회 다니는 사람, 가족 외에는 인간관계가 없는 사람들도 있다. 성찬식, 세례식 매우 중요한 예식을 진행하지 못하는 것도 원인이다."  - 비대면 예배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센터로서의 교회에서 플랫폼으로 가야한다. 센터는 거기에 가서 얻어와야 한다. 지금은 치킨을 먹기 위해 휴대전화를 꺼내 앱으로 주문한다. 교회를 가는 게 아니라 4차산업혁명의 도구들을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소모임도 화상으로 하는 교회도 많다. 신방은 여전히 어려운 부분이 있다. 초대교회에서는 안식일, 그러니까 토요일을 중요한 날로 지키던 종교가 일요일로 바꾸는 대전환을 했다. 종교개혁 때 7성례를 2개로 줄이는 획기적인 변화를 했다. 종교개혁 때 사제가 결혼도 하고 수녀가 시집도 갔다. 세례는 원래는 물에 들어갔다 나왔다. 지금은 물에 살짝 찍기만 한다. 기독교는 출발 이래 획기적 변화들이 이미 있었다. 온라인 예배 이게 말이 되느냐 싶지만 종교는 생명체다. 자기 생존을 위해 많은 것을 바꾼다. 기독교 신앙은 유대교로부터 예수가 새로운 신앙으로 탄생시킨 것이다. 유대교는 형식 율법을 엄청 중시한다. 기독교는 내용 정체성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릇이나 내용물이냐의 차이다. 예수 당시의 유대교는 이제 껍데기만 남았다. 십일조 금식을 하는 데 그 안에 사랑이 없다. 예수님은 사랑을 말씀하셨고, 십자가에서 사랑이 뭔지 보여줬다. 그래서 탄생한 게 기독교인인데 껍데기인 특정 날짜 행위 장소를 중시하려는 것으로 회귀하려는 경향성이 기독교인 안에 있어서 반성하면서 종교도 개혁되어야... 잘됐다. 우리가 이렇게 엉망진창이라는 걸 세상에 들켜버렸다. 권사님인데 거짓말하고 목사님인데 하나님 모욕하고 ... 교회 내부에서 다반사였는데 일반 언론에 다 알려졌으니.코로나19로 기독교인 아님 사람들 제발 교회에서 좀 꺼져주시고, 예수처럼 살려는 소수자만 남아서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다. 종교개혁의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불교중심 불교닷컴. 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제보 dasan2580@gmail.com]

종합 | 이혜조 | 2020-09-21 09:54

카카오 모빌리티 리포트 2020 갈무리 코로나19 확산 우려가 한창이던 때 우리 국민이 종교시설 방문은 줄였어도, 카페 방문은 늘었다는 통계가 발표됐다. 카카오모빌리티(대표 류긍선, 이하 카카오)의 <카카오모빌리티 리포트 2020>에 담긴 내용이다. 이 리포트는 카카오 T에서 제공되는 다양한 이동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이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한 이동 변화를 특집으로 다뤘다.코로나19 사태는 확진자 급증과 함께 실제 이동 중단에 영향을 미쳤다. 이동량은 급격히 줄었지만 이후 빠른 회복세를 보였다. 카카오는 카카오내비 데이터를 바탕으로 모빌리티 인덱스를 만들어 이러한 추세를 보여줬다. 모빌리티 인덱스는 2020년 1주차 카카오내비 이용건수를 100으로 두고 주간 이동건수 변화를 계산한 것이다.모빌리티 인덱스 1기는 중국에서 코로나19 확산이 본격화되고, 국내 첫 확진자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이동의 변화가 크게 없었던 1월 1주차~2월 3주차까지이다.2기(2월 24일~4월 29일)는 대구 지역감염 이후 코로나19로 인해 이동이 급감한 이후 빠르게 회복한 시기다. 이동은 2월 4주에 급격히 하락하기 시작해 3월 1주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이후 빠른 회복세를 보이다 5월 1주에는 코로나19 확산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3기(4월 30일~6월 30일)는 생활 속 거리두기의 시행 이후 이태원 클럽, 물류센터 등 수도권 집단 감염이 발발하면서 코로나19 사태 장기화가 본격화된 시기다. 3기에서 모빌리티 인덱스는 꾸준히 회복세를 보였지만, 회복 속도는 2기의 저점 이후 회복 속도보다는 느려진 모습을 나타냈다. 이 가운데 2기에서는 유동인구는 줄고 필요한 경우에만 이동하는 모습을 보였다. 코로나가 본격 급증하며 사회적 거리두기에 힘쓰기 시작하는 2월 24일 이후 사람들은 이동을 자제하기 시작했다. 카카오내비 길안내 시작트렌드를 보면 해당 기간 중,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하는 시기에 사람들은 전년도 대비 일간 최대 28.9%까지 이동성이 감소했다. 이는 코로나 일일 확진자수가 한자리가 되는 4월 말까지 지속적으로 감소했다.1기(1~2월)와 비교해 2기(3월)에는 주요 실내 시설 길안내가 감소했다. 2월 23일 기점으로 전후 3주를 비교해 보면 실내 카테고리인 도서, 복합쇼핑몰, 백화점, 영화영상,  문화시설, 종교는 1기말에 비해 이동량이 하락했다. 특히 문화시설, 영화 영상, 종교는 40%이상 하락했다. 같은 시기 카페를 찾는 사람은 전월대비 22.3%가 늘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대부분의 이동을 줄여나갔고 그나마 카페 정도만을 방문했던 것을 알 수 있었다.또, 코로나 사태로 전국 주요 여행지에 발길도 줄었다. 코로나19 위협을 피해 사람이 많이 모일 수 있는 시설들이 잠정휴업 상태에 들어가면서 박물관, 전시관 등 각종문화시설과 수많은 역사유적지의 감소폭이 컸다.경주 불국사는 1~3월 기준 방문객이 전년대비 -60% 큰 감소세를 보였다.

종합 | 조현성 기자 | 2020-09-18 12:19

 원전(핵발전소) 공익제보자 보호와 원전 감시를 위한 민간기구가 출범했다.원전위험공익정보센터(이하 원전센터)는 17일 서울변호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식 출범을 알렸다.원전센터는 지난해부터 곽노진(생명탈핵실크로드 100인위원),  김병갑(울산 탈핵운동인사), 류두현(IT엔지니어), 문인득(원전엔지니어, 기술사), 성원기(강원대 교수, 전자공학), 유원일(전 국회의원, 기계엔지니어), 이승은(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단 간사), 이원영(수원대 교수, 국토계획), 이향림(저널리스트, 동물애호가) 씨 등이 준비위원회를 꾸리고 출범을 준비했다.이원영 교수는 “원전은 시행착오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기에 기술이라 이름할 수 없다. 다른 종류의 위험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자본 논리에 휩쓸려 세상에 나온 것이 불행”이라고 했다. 이어서 “원전은 본래 비밀이 많을 수밖에 없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내부로부터의 고발, 즉 공익제보”라고 했다. 원전센터는 ①원전 현장 제보 접수 ②원전노동자 작업환경 등 감시 ③원전인허가 및 운영 과정 감시 ④원전 관련 가짜뉴스 대응 등을 할 예정이다.이를 위해 센터는 지난해 국내외 전문가를 초청해 ‘원전안전기술문제 아카데미’를 열고 기술 관련 담론을 한데 이어, 법적 대응을 위해 민변과 녹색법률센터에서 활동한 이희영 변호사를 자문변호사로 초빙했다.이희영 원전센터 자문변호사는 “환경과 원전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원전은 중요한 문제라 생각해서 원전센터 자문변호사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종합 | 조현성 기자 | 2020-09-17 16:37

▲ 나누며하나되기가 제천시청에서 제천 수재민에게 구호 및 방역물품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 제공 나누며하나되기.천태종 산하 NGO단체 나누며하나되기가 집중호우와 태풍으로 피해를 입은 제천지역의 수재민 돕기기에 나섰다.나누며하나되기(이사장 도웅)는 16일 오후 5시 제천시청에서 수재민을 위한 구호물품과 코로나19 예방물품을 전달했다.이날 전달된 물품은 의류, 컵라면, 가방, 신발, 치약 등 구호물품과 마스크, 손소독제, 알코올 물티슈 등 코로나19 방역물품 등 2000만 원 상당이었다.전달식에는 나누며하나되기 정책실장 성도 스님과 정책과장 문법 스님, 그리고 허경제 제천부시장 등이 참석했다.구호물품을 전달한 뒤 문법 스님은 “천태종단의 여러 산하기관에서 충북 단양· 제천 등 호우로 피해를 입은 분들을 지원하고 있다.”면서 “약소하지만 수해를 입은 제천시민에게 구호물품을 지원하게 됐다.”고 설명했다.이에 허경제 부시장은 “천태종에서 주신 구호물품은 추석 명절을 앞두고 수재민들께 큰 힘이 될 것”이라며 “다시 한 번 제천시민을 대신해 감사 말씀을 드린다.”고 인사를 전했다.※ 이 기사는 제휴매체인 <불교저널>에도 실렸습니다.[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제보 budjn2009@gmail.com]

종합 | 박선영 기자 | 2020-09-17 11:51

▲ 소명출판|2만 8000원만해 한용운 문학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선이 경희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가 출간한 책.이 책은 한용운 스님이 자기시대를 치열하게 살면서 그가 모색했던 여정을 좇으며, 그가 남긴 족적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펴보았다. 그리고 해방 이후 한용운과 그의 작품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가를 실증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책은 총 3부로 구성되었다. 1부는 식민지 근대공간이라는 특수한 시공간을 살면서 한용운 스님이 자기 시대를 어떻게 인식했는가 라는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아간 여정이다.2부는 근대의 문화지형 안에서 한용운 스님이 어떻게 활동했는가를 그의 문학적 글쓰기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3부는 해방 이후 한용운 스님과 그의 작품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가를 실증적으로 들여다보았다.1부와 2부에서는 자기시대를 치열하게 살면서 한용운 스님이 모색했던 여정을 좇으며, 그가 남긴 족적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살피고자 했다.3부에서는 인간 한용운에 대한 이해 방식이나 그의 작품이 떠받들어지게 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 기사는 제휴매체인 <불교저널>에도 실렸습니다.[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제보 budjn2009@gmail.com]

종합 | 박선영 기자 | 2020-09-16 17:39

서울국제불교박람회(이하 불교박람회)가 11월 5일부터 15일까지 11일간 불교박람회 공식 홈페이지에서 행사를 진행한다. 불교박람회는 대한불교조계종이 주최하고 불교신문과 불광미디어가 공동 주관한다.이번 불교박람회 온라인 전환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것으로, 전통불교문화산업에서 최초로 열리는 온라인 박람회다.불교박람회는 박람회 기간 동안 명상 콘퍼런스와 산업전, 붓다아트페스티벌 등의 프로그램을 웹콘퍼런스 및 가상 전시관으로 운영한다. 이에 국내외 참가업체 상품 및 참여 작가 작품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온라인 불교박람회는 2021년 6월 30일까지 상시 운영된다.온라인 불교박람회는 크게 △가상 전시관 및 라이브커머스 △웹콘퍼런스 및 릴레이법문 △서울릴렉스위크 등으로 진행된다. 먼저 박람회 국내외 참가업체 및 붓다아트페스티벌 참여 작가의 상품 및 작품을 가상 전시관에서 만날 수 있다. PC나 모바일을 통해 접속하면 참가자의 상품 및 작품을 둘러보고 업체 및 작가와의 실시간 채팅 시스템을 통해 직접 결제할 수도 있다. 이 밖에도 참가자의 상품 및 작품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라이브 커머스가 실시간으로 진행되며, 상품 및 작품을 소개하는 언박싱 영상 등도 선보일 예정이다.불교박람회 중 ‘끌어안음’을 주제로 한 명상 콘퍼런스는 세계의 불교 수행자를 만날 수 있는 자리로 마련됐다. 코로나19 상황 속 지친 심신을 치유하고자 티베트불교 수행, 남방불교 위빠사나 수행, 서구의 마음챙김수행, 한국의 전통불교수행 등 네 가지 갈래의 불교수행을 소개한다. 콘퍼런스 강연자는 제14대 달라이라마, 미얀마의 고승 파욱 사야도, 미국의 임상심리학자 타라 브랙, 미국의 신경과학명상가 릭 핸슨, 조계총림 방장 현봉 스님, 미황사 주지 금강 스님, 제따나와선원장 일묵 스님 등으로 오프라인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국내외 연사들을 섭외해 강연의 지평을 대폭 넓혔다. 기존 불교박람회의 인기 프로그램인 법문 강연 역시 온라인으로 전환했다.지친 현대인들에게 서울 곳곳의 웰니스 공간을 소개하는 프로젝트로 지난해 처음 도입한 서울릴렉스위크는 올해도 펼쳐진다. 심리적 치유와 정신적 건강에 도움이 되는 명상, 템플스테이, 채식문화, 공방, 숙소 등 5개 분야 80여 개 소를 소개한다.한편 전통·불교문화 및 산업을 부흥을 위해 실시하고 있는 전통문화우수상품공모전과 BAF청년작가공모전은 불교박람회 홈페이지를 통해 9월 29일까지 신청 받는다. 박람회 참가업체 및 참여 작가 모집도 10월 16일까지 불교박람회 공식 홈페이지에서 진행된다.※ 이 기사는 제휴매체인 <불교저널>에도 실렸습니다.[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제보 budjn2009@gmail.com]

종합 | 박선영 기자 | 2020-09-16 16:32

가야시대부터 2천년의 역사를 가진 한국불교는 수많은 왕조를 통해 불교가 면면히 계승되고 있다 .조선조의 정치적인 색채가 농후한 성리학유교정권의 5백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문화역사는 대부분 불교가 중심적인 가치였다일부학자의 학설에 의하면 세계를 지배하던 북방민족의 상징인 흉노족들이 한무제에 패하고 그 중의 일파가 한반도로 남하하면서 자리잡은 곳이 지금의 영남지역인 가야라고 하고 흉노족은 항상 무쇠솥을 말안장에 꿰차며 금인金人 ,즉 금부처를 모시고 다닌다고 했다.당시는 종이가 없는 시대라 대나무죽간을 연구한 역사학자의 말이다 .김씨는 한반도최초의 성씨로 한무제가 왕으로 봉한 김일제로 부터 김씨성이 생겼고 가야 김수로왕이 최초의 김씨라는 것이다.가야를 이은 신라도 석탈해와 박혁거세를 지나 김알지가 신라최초의 김씨로 신라천년왕국이 새롭게 천하를 평정하고 세력을 확장하니 이름이 신라다.가야의 원래이름인 인도가야는 불교가 탄생한 지역으로 그래서 부다가야다 .불교의 4대성지중 부처님의 탄생지역인 룸비니와 함께 손꼽는 지역으로 지금도 연중내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불교순례객이 몰려들고 수많은 불교국가의 승려와 신도들이 각종기도와 수행을 활발히 하는 곳이다.예루살렘이 전세계 기독교와 회교도들의 성지이듯이 부다가야는 전세계불교도의 대표성지로서 불자라면 평생 한두번 가야하는 성지일 것이다.한반도의 네나라를 최초정복한 고구려 광개토대왕은 신라가야를 정복한뒤 가야의 1차유민들은 제철기술과 토착신앙과 불교문화를 가지고 일본에 망명해 가야문화와 기술을 전했고  토착신앙은 일본의 신사신앙으로 발전했으며 제철기술은 일본을 발전시키는 지배문명을 만들었다그당시 한고조때 멸망한 진시황제의 후손인 울진 진秦씨는 광개토대왕의 남진정책에 밀려 가야와 함께 일본에 망명하게 되었으니 교토의 광융사廣融寺를 씨족사찰로 건립했다 일본이 신성시하는 고대 4대사찰이다.역사는 무려 1천5백년이 지났건만 역사의 증인인 후손들은 선조들의 역사와 뿌리를 찾는다 고구려의 1차정복후 2차정복은 신라와 합병으로 나타난다 이로써 가야는 왕조가 바뀌면서  마지막왕인 구형왕전설이 슬프고도 아련하게 전해진다.가야는 보통 6대가야로 나누는데 그 영역이 호남의 상당한 영역을 포함한 광활한 지역으로 신라와 맞먹는 거대한 왕국이었다.가야의 김씨왕조와 그후 3세기이후 신라김씨왕국이 크게 발흥한 것은 씨족과 관계가 깊다고 할때 같은 씨족과 동맹으로 왕국이 합병한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한국의 제1성씨인 김씨가 지배세력이 된 것은 가야와 신라 그리고 통일신라이후 1천5백년의 역사를 관통하고 있는것이 현실이다. 김씨왕조와 불교왕국의 융합  조선조에 와서 중국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은 조선조 이씨왕조는 고려무인정권의 일파인 이의방형제의 후손인 이성계와 정도전이 쿠테타로 고려불교왕국을 뒤엎어 새왕조를 세우고 유교정권의 바램대로 오직 중국만 숭상하고 이땅에 들어온지 천오백년이 넘는 불교를 탄압하면서 없애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조선태조 이성계부터 독실한 불자였고 왕후들 역시 불자였다 이태조의 스승인 무학대사의 영향도 컸다.알려진 것처럼 조선조를 통틀어  위대한 업적을 남긴 세종대왕도 돈독한 불자로서 한글창제와 더불어 측우기 천문대등의 과학기술과 애민중생사상의 실천에 진력한 분이었다이씨왕조가 지배한 조선이었으나 역사를 살피면서 조선시대 학자와 관료의 숫자통계를 보면 김씨성이 1위이고 2위는 왕과 맞먹는다는 뜻의 윤씨이며 이씨는 3위로 조선조 오백년도 김씨가 대부분 운영주체임을 알수 있다.통일신라이후 불교는 독실한 불자인 법흥 진흥왕은 말년에 승려가 되어 왕위를 왕자에게 그대로 물려줬다.신라의 부설거사는 아직도 전설로 내려올만치 재가불자의 상징이다 이땅에 그 수를 헤아릴수 없을만큰 수많은 부설거사가 존재했다.황산덕박사와 이종찬장군의 불심  조선조말인 150여년전 흥선대원군과 고종시대 오직 중국만 숭상하던 유교정권은 세계정세와 만민평등의 새시대에 무지함으로서 조선은 수천년의 찬란한 문화역사기술의 문명을 계승했으나 체제유지에만 고집했을 뿐 바깥의 소식은 칠흑같은 깜깜이였다 .눈이 있어도 보지못하고 귀가 있되 듣지못하는 청맹과니의 왕국이었다결과적으로 대원군의 폐쇄정책과 민비 명성왕후의 권력투쟁으로 망국과 강대국의 식민자가 되는 비참한 운명은 정해진 순서였다.물론 그후 독립지사들의 투쟁과 희생은 이나라를 정의롭게 세우는 숭고한 독립정신에 빛나는 만민평등의 나라로 만들었으나 강대국에 의한 해방과 분단 ,독재등의 정치적 갈등은 역사의 인과이기도 했다 . 역사의 악순환은 막아야하고 선순환 (필자가 만든 용어)의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506070년대 혼란한 시대, 우리사회의 대표적 지성인으로 우뚝한 서울법대 황산덕박사는 평양출생의 기독교장로 집안이었다 .황박사는 일제강점기시절 ,서울법대의 전신인 경성제대에서 사법행정 양과 고시합격자로 출세가 보장됐으나 권력보다는 학계에 남아 연구와 후진양성에 평생을 보낸 대학자였다. 당시 한국의 판검사는 물론 법대학자들의 절반이상은 황박사의 제자라 할 정도로 인재가 많았다.황박사부부는 50년대 기독교신자로써 우연한 기회에 경남출신의 한 노보살님을 만나 불교에 대한 안내와 설명을 든고 감동을 받아 불교로 개종하고 서울법대를 나온 자녀들도 모두 독실한 불자집안으로 유명하다 마치 중국의 방거사나 신라의 부설거사같은 집안이 아니겠는가?  60년후반 ,지방의 승가대학에서 공부를 마친 내가 서울 선학원에서 황박사의 일가를 만났을때 마치 고승이나 다름없는 큰 선지식을 만난것 같은 감명이 깊었다.그때만 해도 황박사가 평양의 기독교출신인줄도 몰랐고 기독교역시 제대로 아는 바가 없었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아마도 폭이 넓고 인격이 고매한 황박사가 유일신종교에만 머물러 있을수 없었고 유불선과 기독교에 통달한 분이라고 회상한다 .이승만, 박정희정권으로 부터 탄압을 받던 황박사는 박정희정권말기, 법무, 문교장관 성대총장을 역임하고 마지막공직은 불교진흥원장으로 마무리했다. 해방이후 재가불자로써 이기영박사,서울법대학장과 동국대총장을 역임한 서돈각박사 ,홍대총장 이항녕 언론인 오종식선생  이승만정권시절 계엄령을 거부한 이종찬장군, 역시 육참총장과 국방장관을 지낸 최영희등 쟁쟁한 재가불자들이 교육학계 정치관료 문화예술분야에 다수로 불교와 사회의 기둥역할을 했다.참고로 박정희대통령이 하급장교일때 이념문제로 생사기로에 놓여 이종찬 당시 육군참모총장은 후임인 백선엽장군과 함께 박정희를 구명했고 그 보은으로 기독교신자로서 백선엽은 평생 부귀영화를 누렸으나 조선말 친일고위벼슬의 부친을 둔 독실한 불자 ,이종찬장군은 선조의 죄를 참회하고 참선과 기도로 생애를 보냈다고 한다. 그는 박정희가 유일하게 존경한 분이라 하며 지금도 한국군의 전설이다.강직하고 청렴한 불자인 이종찬장군의 자료에 나온다. 대통령 박정희가 두번이나 유신국회의원에 추대했으나 한번도 국회에 나가지 않았다는 교훈은 오늘의 부귀영달과 돈 권력 감투와 세력에만 욕망을 불태우는 정치 기업 학자 종교인들 ,특히 세상의 조롱꺼리가 되고 범법행위를 저지르고도 태연한 조계종단의 일부 고위직승려들이 참회하고 부끄러워해야 될 일이다.수년간 물의를 일으키고 가혹한 일제식민지의 희생양이 된 '정신대'와 '나눔의 집' 위안부 할머니사태를 보면서 한국불교가 승려들만의 독점과 탐욕에서 벗어나 사회적 신망과 존경을 받는 재가신도들과 사부대중이 함께 사찰운영과 종단참여 ,사회헌신에 동참함으로써 한국불교가 명실상부하게 국민의 종교로 위상을 회복하리라 믿는다.현재와 같이 재가불자들을 배척하고 오직 승려들만 종단요직과 각종조직을 독차지하는 것은 마치 대원군시대의 시대착오와 다름없는 폐쇄적인 집단으로 존재가치가 없고 불교와 사회에 적폐로만 남을 뿐이다.뜻있는 승가와 재가불자들의 대오각성이 필요할만큼 코로나와 민생문제등 사회가 큰 위기를 맞고 있음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종합 | 소암 스님 | 2020-09-16 14:48

▲ 지난 설에 현대자동차 천안글로벌러닝센터 임직원이 아우내은빛복지관에서 떡국 배식을 하는 모습. 사진 제공 아우내은빛복지관.아우내은빛복지관(관장 이수경)은 16일 현대자동차 천안글로벌러닝센터가 추석을 맞아 후원금 140만 원을 전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현대자동차 천안글로벌러닝센터는 2007년부터 아우내은빛복지관에 정기적으로 연 3회 이상 후원과 자원봉사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후원금 전달식과 배달봉사를 진행하지 않고 기부금만 전달하기로 한 것이다.현대자동차 천안글로벌러닝센터 임직원들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오랫동안 홀로 지내신 어르신들에게 추석을 맞아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셨으면 하는 마음”이라며 “지역 주민과 더욱 가까운 곳에서 나눔을 실천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아우내은빛복지관 이수경 관장은 “매년 지역사회에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에 힘쓰는 현대자동차 천안글로벌러닝센터 임직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했다.※ 이 기사는 제휴매체인 <불교저널>에도 실렸습니다.[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제보 budjn2009@gmail.com]

종합 | 박선영 기자 | 2020-09-15 1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