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회화에 옻칠 접목, 김정은 개인전 ‘물들다’
순수회화에 옻칠 접목, 김정은 개인전 ‘물들다’
  • 서현욱 기자
  • 승인 2019.11.26 15: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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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18~28일 서울 인사동 나무아트서
김정은 작, 운문사
김정은 작, 운문사

김정은 개인전 ‘물들다(absorb)’가 서울 인사동 나무아트에서 12월 18일부터 12월 28일까지 열린다.

‘물들다’ 전은 전통기법인 옻칠을 차용해 회화 작업의 폭을 넓힌 옻칠회화 작품 십여 점을 선보인다. 옻칠화는 기원전 1~3세기 전부터 활용된 옻칠에서 파생된 새로운 화종이다. 장인의 기술과 재료적 가치를 인정받는 전통공예에 쓰이는 옻칠을 순수회화에 접목시켜, 고정관념을 깬 혁신적 장르다.

옻칠은 화학물감과 달리 생명력을 지닌 천연물질로 일반적으로 그냥 마르지 않기 때문에, 옻칠의 민감한 반응을 다루고 의지대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작가의 뛰어난 역량이 요구된다. 그림을 그린 후 칠장에서 적정 습도와 적정 온도를 유지하며 섬세하고 까다롭게 작품을 말려야 하며, 색을 얹을 때에는 앞서 말린 옻칠을 손 사포질해야 새로운 색을 결합시킬 수 있다. 때문에 수차례, 많게는 수십 차례 이상 말리고 갈아내고 덧칠하는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옻칠은 여러 차례 더할수록 맑게 빛나고, 항균, 방습, 방오 뿐 아니라 원래의 물질보다 훨씬 단단해지는 성질을 지닌다. 옻칠의 까다로운 제작기법과 옻빛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김정은 작가는 작품을 완성하기까지의 수많은 인고의 시간을 수행으로 여긴다.

수행 삼으며 거친 면을 갈아내고 마음 소리를 따라 색을 더하며 그려낸 그의 작품은 일반적 프레임에서 벗어나 자신이 담은 이미지와 기억을 새롭게 보여준다.

일례로 그는 문득 하늘을 올려보다가 미세먼지로 가득한 대기에서 하얗게 빛나는 태양을 보았던 날, 하나의 물성이 보는 이와 보는 이가 서있는 자리와 상황에 따라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음을 알아차리고서 태양을 향한 붓을 들었다.

그는 어떤 정형성도 원하지 않으며 자연스레 의식과 무의식, 구상과 추상, 그 끝과 끝 사이 흐름의 가운데를 찾아가려 한다. 나에게서부터, 나의 의식으로부터 나왔으나 내가 인식하지 못했던 순간을 붓끝으로 흘려내어 찰나의 단면으로 표현하는 그는 그래서 작품 활동이 삶의 중도를 찾아가는 여정이라 말한다.

그는 “자신의 삶의 굴곡, 삶의 여정에서 이전의 삶은 한쪽에 치우쳐있는 삶이었던 것 같다”고 고백하며, “그렇기에 양극단면을 살펴보고 중간을 찾아가는 의미에서 전시를 준비했다”고 전한다. 삶의 파도에서 휩쓸리지 않으려 버티는 삶이 아닌 받아들임에 대한 고찰. 힘주어 버티며 파고에 잠식되는 것이 아니라 그 흐름에 몸을 맡기고 순리를 살피며 찰나의 빛을 바라보는 것이다. 때문에 이번 전시는 ‘받아들임으로부터 녹아나온 작은 알아차림’이다.

김 작가의 표현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작가는 약 2년간 매월 2회 이상 전국 각지의 사찰을 찾아다니며 도량을 거닐었다. 그는 스님과 차담을 나누고 산사의 공기를 느끼며 자신의 삶과 사람을 대하는 방식, 삶을 대하는 방식의 폭이 달라졌다고 전한다. 그것이 이번 작품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표현이 녹아있는 김정은 작가의 회화 작품은 이번 운문사 명성 스님의 구순을 기념하며 제작된 애니메이션의 마지막 부분을 장식하기도 했다. 그는 이번 애니메이션 전체를 갈무리하며 품어 안는 회화를 담기 위해 운문사에서 머무르며 학인스님과 함께 만나고, 도량을 거닐며 산사의 공기, 흐르는 시간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아 운문사의 한 부분을 화폭에 옮겼다.

이 전시 소식을 전한 유윤정 씨는 김정은 작가를 이 같이 말한다.

“작가는 선입견을 주지 않고 함께 대화 나누기를 원한다. 모든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다양성이 있음을 생각하고, 그 어떤 것으로도 규정짓지 않고자 한다. 그의 생활방식이다. 감상 또한 마찬가지다. 감상자 모두 표준화된 관념의 틀을 깨고 마음으로 자신의 느낌을 받아들이기를 바라기에 미리 작품을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시간, 공기, 사람에 따라 떠오른 다양한 감상이 오감으로 연기되기를 바랄 뿐이다.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자면 감상 후 작가와 열린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며 감각적 소통을 이어가기를 바란다. 이번 전시가 작가와 감상자가 함께 인연을 맺는 장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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