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인트’는 ‘쪼인트’를 낳는다
‘쪼인트’는 ‘쪼인트’를 낳는다
  • 최재천 변호사
  • 승인 2010.03.20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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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는 폭력을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곳입니다. 국가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야생의 폭력성을 순치시켜 놓았다가 이 사람들을 다시 군대로 불러모아 폭력에 익숙해지도록 훈련시킵니다. 그런 다음 국가의 필요에 따라서만 폭력을 사용하게 훈련시킵니다.
(정치학자 공진성 교수, ‘폭력’, 책세상 49면 이하)

 

 

20세기 초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도 현대국가의 특징을 ‘특정한 영토 내에서의 정당한 물리적 폭력의 독점’에서 찾은 바 있습니다. 학문적 입장에서 마찬가지 맥락이지요.
(우리 사회에서는 ‘학문적’이라 하더라도 이 정도의 표현을 하기조차도 종종 곤혹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자기검열 의식이 작동합니다. 그래서 굳이 인용을 찾아나섭니다. 근본은 우리 사회의 폭력성 때문일 듯싶습니다.)

대한민국 남자들은 대부분 군대에 다녀옵니다. 폭력을 경험합니다. 이들은 군대에서 겪은 폭력과 자발적이거나 비자발적으로 회복한 폭력성 때문에 고민합니다. 교육과 양심과 사회적 훈련을 통해 순치시켜 놓았던 폭력성이 자의적 혹은 비자의적으로 군대에서는 저절로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대한민국 남자들은 이런 군대에서의 폭력성 발현에 대한 보상심리로서, “그 폭력성을 남성성과 동일시하고, 제대 후에도 그 폭력성을 버리지 못해 주로 자신보다 약한 타자에게 분출하곤 합니다.(공진성)”

군부독재시절 한국 사회 전체는 병영 사회였습니다. “시민들은 이때 이미 학교에서부터 재폭력화했고 제대 후라고 해서 특별히 탈폭력화하지도 않았습니다.(공진성)”
가정에서는 가부장제에 기초한 폭력이 난무했고, 학교에서는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폭력이 난무했고, 사회에서는 질서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폭력이 유지됐고, 심지어는 국가마저 국가폭력의 가해자가 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국가폭력의 시대였습니다.

 

▲ ⓒ오마이뉴스

 

김우룡 방문진 이사장이 "MBC 김재철 사장이 ‘큰집’에 불려가 쪼인트 맞고 깨진 뒤 좌파를 정리했다”고 했습니다. 다시 ‘쪼인트 까다’가 유행어가 됐습니다.
교련 시간이나 군대에서 쪼인트 까여 보지 않는 대한민국 남성이 도대체 몇이나 있을까요.

쪼인트 까기는 군대 폭력의 산물입니다. 그 군대는 대일본제국 황군으로부터 배웠습니다. 군대 폭력은 미군에게서 배운 게 아닙니다. 미군 사회에 우리 군과 같은 폭력은 없습니다. 군이라고 인권이 무시될 리 없습니다. 아무리 합법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집단이라 하더라도 자기 내부를 향해서 폭력을 행사할 권리는 없습니다. 쪼인트 까기와 같은 군대 폭력의 대부분은 대일본제국 군대로부터 배워온 일입니다. 일본육사를 다녔거나, 일본 헌병에서 일했거나, 독립군을 토벌하러 다니던 친일파들이 나중에 독립된 대한민국 군대에 퍼뜨린 추악한 친일의 잔재들입니다.

일본제국 군대에 대해 연구한 이창위 교수가 있습니다(우리의 눈으로 본 일본제국 흥망사). 일본군의 혹독한 훈련에 대해 한 챕터를 적었습니다.

“신참들을 서로 세워놓고 때리게 하는 대항 뺨때리기라는 방법도 있었다. 또한 엎드려 뻗힌 자세에서 팔을 굽힌 채로 버티게 하기, 그 자세에서 발끝을 침대 위에 놓게 하여 고통을 가중시키기, 총기 등 무거운 물건을 들고 손을 뻗게 하기 등의 방법도 있었다. 그 외에 누운 병사 위에 참구를 깔고 여러 명이 올라타기, 선반 밑에 쪼그린 채 부동자세로 세워놓기, … 기둥에 오르게 하여 한손으로 코를 잡고 매미 울음소리를 내게 하기, 군화 두 짝을 끈으로 연결하여 목에 걸고 바닥을 기게 하기 등과 같은 기상천외하고도 비안간적인 기합도 심심찮게 이루어졌다.”
(이창위 교수의 책, 오에 시노부의 「천황의 군대」에서 재인용)

군대에 다녀오신 분들은 전혀 낯설지 않음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1930~40년대 일본군의 전통이 불과 얼마 전까지 우리 군에 그대로 계승되고 있었다는 사실 말입니다.

다음은 아사히신문 1979년 11월 12일자에 실린 당시 일본 해군에 복무했던 미야우치 간야라는 사람의 회고입니다(이창위).

“저녁에 갑판 청소가 끝나면, 하사관 또는 병장 계급의 고참들로부터 ‘순검(巡檢) 후, 병사(兵舍) 앞에 전원 집합’이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상등병 이상의 신병들이 지정 시각, 지정 장소에 정렬하면, ‘어제, 오늘 해군에 들어온 놈들이’라든지 ‘가만히 놔두니깐 기어오르려고 하고’ 등등의 상투적인 설교를 한 후, ‘전열 일보 앞으로, 후열 일보 뒤로’, ‘양팔 간격으로 벌려’ 그리고 ‘발 벌리고 손은 위로’라는 호령이 떨어진다. 이어서 고참들이 온힘을 다하여 신병의 둔부를 군인정신주입봉으로 구타하는 음참한 소리가 밤하늘에 울려 퍼진다. 다음 날, 목욕을 하려고 보면 각 부대원의 둔부가 보라색으로 부어올라 있었다. 꽁무니뼈가 부서져 사망한 동료도 있었다.”

저녁 점호 끝나면 고참이 불러내 장교들 묵인 하에 군기 잡던 그때 그 시절 아닙니까.

폭력의 일상화였습니다. 이런 전통은 부끄럽게도 우리 군대로 상당 부분 이어졌습니다. 이렇게 얻어맞고 동물 취급당하던 일본군들은 이런 폭력성을 피압박민족인 우리나라나 중국 사람이나 미군 포로들에게 퍼부어댔습니다. 극단적인 만행으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 이창위 교수는 ‘억압의 전위’라고 설명합니다. 동의합니다.

 

다시 정리합니다.
일본군의 극단적인 폭력성이 일본 군대에 강제징집 당했거나 혹은 자의로 만주 군관학교나 일본 육사를 다녔거나 일본군에 자원입대했던 친일파들에 의해 한국군에 전파됩니다.
한국군에서도 폭력은 일상화됩니다. 사회의 폭력성과 군대의 폭력성이 결합됩니다. 군대의 폭력성은 자연스럽게 사회로 이전되고, 탈폭력화되기는커녕 재폭력화됩니다.
가정과 학교와 사회와 직장과 국가가 폭력화됩니다. 힘 있는 사람은 가해자가 되고, 힘 없는 사람은 피해자가 됩니다. 이런 폭력성은 쉽게 버려지지 않습니다. 폭력의 기억은 언제라도 인간을 나약한 초식동물로 만들어 버립니다.

김우룡은 폭력을 찬양했고, 누군가는 폭력을 행사했고, MBC 사장은 그 폭력의 일시적 피해자가 되었다가 그 폭력성을 MBC 직원들에게 이전시킵니다. 피해자적 지위에서 가해자적 지위로 올라섭니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이유는 먹이사슬로부터의 해방에 있습니다. 힘과 폭력에 기초한 생존 법칙으로부터 자유로워진데 있습니다. 그런데 다시 폭력의 매커니즘이 우리 사회를 지배합니다. 그것도 보통 직장도 아닌, 잘나고 똑똑하고 건강한 기자와 PD들이 모인, 그런 직장에서입니다. 그렇다면 그 나머지 사회야 어떻겠습니까. 두렵습니다.

   
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로스쿨, 영남대 로스쿨, 전남대 로스쿨,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이번 학기는 이화여대 법대에서 2,3,4학년을 대상으로 '현대사회와 법'이라는 교양과목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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