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비용 반환 요청 공문의 의미
정화비용 반환 요청 공문의 의미
  • 불교저널
  • 승인 2019.12.30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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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정화운동에 필요한 제반 비용을 선학원이 댔음을 보여주는 문서가 12월 24일 공개됐다. 재단법인 선학원이 공개한 이 문서는 1973년 9월 1일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인 경산 스님 앞으로 보낸 ‘선학원 기본재산 환원에 대한 건’이란 제목의 공문이다.

이 공문은 1957년 인천 만석동 토지 3500평과 서울 서대문구 행촌포교당 토지 66평, 건물 3동 등 재단법인 선학원의 기본재산을 매각해 정화비용을 댔으니 돌려달라는 내용이다. 그 금액이 놀랍다. 지금 금액으로도 적지 않은 4400만 원에 달한다. 1970년대 집 한 채가 200만 원 정도였으니, 20채 이상은 너끈히 살 수 있는 거금이다.

조계종은 2002년 재단법인 선학원 이사장 정일 스님과 총무원장 월주 스님이 서명한 ‘관계 정상화 합의문’을 2013년 3월 일방적으로 파기한 뒤, <법인 관리 및 지원에 관한 법>(이하 법인법)을 무기로 선학원을 조계종에 등록할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조계종이 합의문을 파기하고, <법인법>을 들이밀면서 예속을 강요한 근저에는 선학원은 조계종 사찰과 스님이 출연해 만든 법인이므로 종단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논리가 깔려있다. 그런 인식을 갖고 있는 그들에게 ‘선학원은 조계종의 모태’라는 역사적 진실은 수긍하기 힘든 사실이다. 선학원정상화추진위원회가 활동을 재개하고 조계종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편드는 일부 매체가 선학원을 조계종 역사의 한 부분으로 규정하려는 움직임은 그런 반동이다.

선학원이 설립될 당시 조계종은 존재하지도 않았고, 재산 역시 선학원 설립에 동의한 출재가가 출연했다는 사실은 그동안 누누이 강조해온 바이다. 조계종은 그 사실을 외면하고 당시 종단을 계승했다, 당시 스님들이 조계종 승려였다는 등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하며 선학원 재산 뺏기가 본질인 ‘법인법’을 강요하며 당위성을 강변해 왔다.

이번에 공개된 공문은 불교정화운동의 결과로 출범한 조계종이 선학원 수좌들의 주도와 자금 지원, 불교정화 이념 제공 없이는 창종될 수 없었음을 물증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선학원이 공개한 공문에는 당시 선학원 이사 명단이 연명돼 있다. 벽암, 대의, 서운, 월산, 대휘, 범행, 향곡 스님이 당시 이사다. 그들은 누구인가. 바로 정화운동의 주역이자, 산 증인이다.

정화운동을 기획·입안하고 실행에 옮기는 등 주도한 이들이 선학원 수좌였음은 조계종 창종의 과정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동산, 금오, 청담, 효봉, 적음, 향곡, 서운, 월하, 월산, 경산 스님 등 불교정화운동의 주역들은 선학원에 머물며 종단을 정화했다. 정화 과정에서 벌어진 비구, 대처 간 충돌은 필연적으로 소송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고, 정화에 참여한 수많은 대중이 운집하고 움직이는데도 자금이 필요한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이번에 공개된 공문은 그 비용을 선학원이 기본재산을 팔아 충당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정화운동은 선학원 수좌들이 한국불교의 정통을 자처한 비구승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또 그렇게 창종된 조계종은 비구승 종단으로서 정화운동 이전 존재했던 여러 종단과는 궤를 달리 한다.

역사적 사실이 이러함에도 조계종의 일부 권승들은 불교정화를 위해 인적, 물적, 이념적 자원을 위해 아낌없이 내어준 선학원을 ‘조계종의 모태’로 인정하기는커녕, 자신들의 먹잇감인 것 마냥 물어뜯기에 바빴다. 그것은 베풀어준 은덕을 저버리고 상대를 원수로 여기는 배은망덕(背恩忘德)의 태도다.

이제라도 조계종은 종단의 역사를 왜곡하고, 선학원을 예속시키려는 헛된 꿈을 버려야 한다. 그것이 불교정화운동을 이끌어 지금의 조계종을 탄생시킨 선대 조사들의 유지를 잇는 것이며, 조계종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유지하는 길이다

※ 이 기사는 제휴매체인 <불교저널>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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