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율 스님 항소 이유서[전문]
지율 스님 항소 이유서[전문]
  • 불교닷컴
  • 승인 2006.12.09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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寺中에서(내원사) 제 소임은 산감이었습니다. 사찰에서 산감의 임무는 산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돌보고 꽃을 꺾거나 나무를 베는 사람들, 밀엽꾼들을 감시하고 산불을 단속하며 산이 가진 가치와 문화가 훼손되지 않도록 지키고 보호하는 책임을 맡은 소임입니다.

처음 문제가 발발 될 당시 천성산은 무분별한 개설로 훼손이 가중 되고 있는 임도를 복구하는 중이었습니다. 산불방지 대책으로 개설한 임도는 산을 보기 흉하게 가르고 방치되어 있어 산사태가 자주 일어났으며 밀렵꾼들의 활동 무대가 되었기 때문에 양산시의 협조에 의하여 임도에 소나무를 식재하고 있었고 저는 거의 날마다 산을 오르며 그 과정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소나무를 심고 있었던 곳은 천성산 정상 밑의 20M 정도 아래쪽 , 법수계곡과 밀밭늪 윗부분 2km 구간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나무를 심어 놓은 임도 바로 옆, 밀밭늪 주변에 산사태가 일어났습니다. 언뜻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은 산사태였습니다. 이 산사태는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산사태처럼 돌이 굴러 내리거나 흘러내린 것이 아니라 땅이 쪼개지듯 Z자로 길게 갈라져 있었습니다. 비가 오거나 지진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산이 무너지는 일이 있다는 것이 제게는 참으로 의아하게 생각되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하는 지극히 상식적인 호기심에서 저는 현장의 사진을 찍어 지질과 토목 쪽에 관계하시는 교수님들께 문의를 드렸습니다. 어쩌면 몰라도 좋았을 이 우연치 않은 현장과 상식적인 호기심으로 인해 저는 지난 5년 동안 그 현장을 떠나지 못하고 발이 묶인 동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이 산사태 현장을 다녀간 전문가들에게 제가 들은 이야기는 모두 충격적이었습니다. 현장을 다녀가신 많은 교수님들과 전문가들은 이 산사태가 천성산 주변의 단층의(활성단층) 영향일 수 있다는 의문을 제기 했습니다. 단층이라는 말은 놀랍게도 이곳을 관통하여 가는 고속철도 터널의 안전문제와 연결되었고 천성산의 수원인 물줄기를 건드리는 아주 중요한 사건으로 재해석 되었습니다. 특히 대덕연구단지의 자원 연구소에 계신 박사님들께서는 이 구간을 돌아보신 후 도저히 녹을 먹는 공무원으로서 건드리기 어려운 곳으로 이렇게 물이 많고 아름답고 위험한 구간 인줄 몰랐다며 이후 적극적으로 이 문제에 참여하여 많은 자료를 제공하여 주었습니다.

천성산 일을 하면서 저는 가끔 저를 데려다 준 그 우연한 현장에 대하여 생각해 보곤 했습니다. 만일 이 우연한 산사태 현장을 제가 발견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저도 다른 스님들처럼 세상사 이야기 같은 것은 세사에 맡긴 채 아득한 담장 너머의 일로 이해하고 말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이 산사태의 현장은 제가 천성산으로 걸어 들어간 동기가 되었고 이후 저는 떠날 수도 벗어 날 수도 무시 할 수도 없었던 그 현장에서 천성산이 하는 많은 이야기를 들어야 했습니다.

천성산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천성산은 지도위에 그린 한 점이 아니라 대도시 주변에 드물게 남아있는 자연 그 자체의 모습이었습니다. 안개와 이슬을 머금고 생명의 신비에 쌓여 있는 22개의 아름다운 산중의 늪, 소금강이라 부르는 12계곡, 8등급 이상의 서어나무 군락, 잘 발달된 늪과 계곡을 따라 수달과 원앙, 삵과 노루 등 천성산은 참으로 많은 생명을 기르는 집이었고 그 모든 이야기는 제게서가 아니라 천성산에서 울려 나왔습니다.

조금만 귀 기울이면 천성산 어디에서도 들을 수 있는 물소리는 바로 우리 모두의 생명 줄기였으며 바람소리, 짐승들이 낙엽을 밟으면 뛰는 소리, 새들이 나무둥지를 쪼는 소리, 마른 나무 부서지는 소리. 작은 곤충들이 마른 잎을 갈아 먹는 소리도 천성산이 가진 생명의 숨결로 제 귀에 역력히 들려왔습니다. 저는 천성산이 가진 소리와 빛에 초대되어 갔으며 그것들이 우리와 함께 있어야 하며 지켜져야 할 무엇이라는데 동의하였습니다.

저는 나침반 하나를 가지고 고속철도가 지나가는 16km의 이르는 긴 노선을 수없이 걸었습니다. 천성산을 관통하는 고속철도 노선은 4km가 넘는 조일천과 대성계곡과 아름다운 안적계곡, 염장골이라 부르는 가사계곡, 천성에서 가장 장엄한 암반계곡인 법수 계곡, 그리고 무지개 폭포 계곡을 직하에 관통하며 설계 되어 있었습니다. 이렇듯 발품을 팔아 조사한 바에 의하면 천성산의 모든 계곡은 늪을 발원지로 하고 있었고 고속철도 노선은 생태계 보존지역인 무제치늪을 비롯한 18개의 늪지 하부를 관통하여 갔습니다.

유난히 물이 많고 수려하여 소금강이라 불리는 천성산은 동쪽으로는 화야강과 서쪽으로는 낙동강의 중요 지류입니다. 특히 부산의 중요 식수원인 법기 수원지를 비롯하여 30여 개의 저수지와 소류지를 간직하고 있는 그야말로 물의 산입니다.

고속철도 노선은 이렇듯 천성산의 물줄기인 늪과 계곡을 한줄로 관통하여 갔고 터널은 이 모든 물줄기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었지만 공사를 하기 위한 환경영향 평가에는 천성산의 가치와 자연 환경에 대하여 단 한 줄의 언급도 없었습니다.

한 수행자가 거리에서 보낸 5년의 시간은 세인의 눈에는 치기와 공사지연이라고 하는 엄청난 손실을 이야기하기에 족하지만 그러나 진정으로 천성산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천성산이 가지고 있는 가치, 그리고 천성산을 둘러싼 상황과 사건 속으로 다시 들어 가야만합니다. 저는 천성산의 아름다움에 초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 시대가 가진 아픔에도 초대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천성산 구간을 답사 한 후에 그동안 터널이 뚫린 많은 구간을 답사하였습니다. 현재 가장 장대 터널인 영천 도수로 터널, 황악산 상촌터널, 금오산의 금오터널, 최근 물마름 현상으로 문제가 되었던 당촌터널은 물론 폐광이 된 산과 터널주변을 답사하였고 답사 결과에 저는 아연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건설되어 있는 모든 터널은 산의 물을 빼내는 배수 터널이었고 천성산 고속철도 역시 배수 터널로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원효터널이 통과하는 천성산 일대의 지질과 가장 유사한 영천 도수로 터널이 건설될 때 하루 지하수 유출량은 150톤이었고 (1리터 페트병으로 1억5천병) 현재에는 8톤가량의 물이 유출되고 있으며 굴착 후 지하수위는 200-800m 급강하여 터널 주변의 모든 하천은 건천화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고속철도 구간 중 가장 장대 터널인 상촌 터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고속철도가 지나가는 4개의 계곡이 계곡의 자취만 남아 있었고 조상 대대로 계곡에서 흐르던 물을 이용하여 농사를 짓던 주민들은 마을 앞의 강물을 퍼올려 식수와 농수로 사용하고 있었으며 당촌 터널 주변은 저수지는 물론 동네 우물까지 바닥을 드러내고 있어 급기야 주민들은 논농사를 짓던 곳에 콩이나 고추를 이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러기하기에 지난 5년 동안 제가 원했던 것은 공사 중지가 아니었고 생태계 보존지역과 습지 보존지역, 자연환경 보존지역 등 어떠한 경우에도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법적으로 지정되어 있는 10개의 법적 보존지역에 대한 제대로 된 환경영향평가였습니다.

당시 국제신문과 부산시가 조사한 여론 조사에 의하면 지역 주민의 67%가 이 사업에 반대하는 의견을 가지고 있었고 위로는 대통령과 도지사, 부산시장의 선거 공약이었습니다. 공약은 지켜지지 않았고 산이 지켜지기를 바라는 시민들의 바람은 무산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영향평가만이라도 실시하여 주기를 소원하였습니다. 진실이 땅에 묻히는 것이 두려웠고 그렇게 잃어버리기에는 천성산은 너무도 아름다운 곳이었고 그 피해는 미래에까지 유전된다고 하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이후 저는 거리의 단식과 국토 순례, 3보 1배와 3000배 기도 그리고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시간과 노력으로 천성산을 지키기 위하여 노력하였습니다. 공사 현장에 들어간 것은 제게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복구와 원상회복이 불가능한 가치와 문화가 파괴되는 현장에 저는 서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무죄를 주장하지 못합니다.
바로 제가 그 현장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연히 보게 된 산사태 현장과 공사 현장, 이 두 현장은 천성산에서 일어난 전혀 다른 개별사건에 불과 할까요. 만일 이 두 현장이 천성산이라고 하는 공간성만이 인정되고 제가 현장에 들어간 하나의 행위만을 범법행위라고 규정한다면 법은 인과를 버린 것입니다. 법은 인과를 버렸지만 인과를 배우는 저는 이 인과를 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미 천성산은 그 가슴에 날마다 화약고를 안고 무너지고 있고 천성산 주변의 주민들은 지하수 고갈로 인한 식수 문제로 위협받고 있으며 생명들은 그 땅을 떠나고 있는데 저는 산을 지키고 보호하는 산감이라는 제 소임을 충실히 하지 못했습니다. 현장에 서면 느낄 수 있습니다. 산이 우는 소리를..... 우리가 생명의 어머니라 부르는 산이 가슴에 폭약을 안고 비명을 지르며 도와달라고 하는 것을....

지난해 겨울 아마존의 열대 우림을 지키기 위해 일생을 바친 한 수녀님이 살인청부업자들에 의해 살해 된 일이 있으며 전 세계는 수녀님의 죽음을 애도하였습니다. 미국에서는 나무 위에 올라가 2년을 나무와 함께 살면서 숲을 지키기 위해 싸운 분이 계셨고 인도에서는 밀림을 지키기 위해 4분의 수녀님들이 순교한 일이 있습니다. 아름답고 울창한 통도사의 산림은 입적하신 월하스님께서 일제의 공출에 목숨을 걸고 항거하여 지켜낸 결과이며 현재 잘 지켜져 있는 사찰주변의 나무와 숲은 자연을 한 몸으로 느끼고 가꾸고 보호하여 온 스님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의 결과입니다. 불교에서는 자연은 부처님의 진신이라고 가르침 합니다. 종교인에게 생과 사는 한 줄기로 연결되어 있어 두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하는 수행자로서 저는 제 소임을 다하지 못했고 그들을 끝내 제도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무죄를 주장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위로는 한나라 통치자의 공약이 있었고 장관과 도지사, 청와대 수석에 이르기까지 파기한 약속과 문서는 책장을 매우고도 남음이 있는데 불현 유형의 선고를 받고 승가에 누를 끼치고 깊은 곳에서 수행중인 도반들의 마음에 무거운 짐을 지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현장에 와서 고물거리는 손으로 포크레인에 편지를 쓰던 아이들에게 저는 무어라고 이야기해야 할까요. 도롱뇽을 그리고 도롱뇽을 접어 보낸 아이들이 이 시대를 이해하는 날이 오면 그때나 이야기해야 할까요.

저는 결코 무죄를 주장하지 못합니다.
이 산이 무너지는 이 두 현장에 섰던 것이 죄였고 이 시대에 태어난 죄업 또한 적은 일이 아닙니다. 이제 산이 무너지고 물과 공기와 햇빛과 땅이 오염되어 가고 아이들은 병들고 생명체들은 이 땅을 떠나고 있습니다. 법정에 선 생물학 박사는 1년이나 천성산을 다녔지만 단 한 번도 도롱뇽을 본 일이 없다고 증언하고 공학박사는 늪 밑으로 10개의 터널이 뚫려도 물 한방울 새지 않는다는 주장으로 1심 판결은 기각되었습니다. 항고심과 대법원 판결은 환경부에서 실시한 3박 4일간의 환경영향 평가가 전부였습니다. 제가 수백 번을 오르고도 다 알지 못했던 산을 박사님들이 3박 4일 동안 답사한 후 터널이 천성산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보고서를 쓸 수 있었던 것은 진실보다는 세상의 가치가 그들 편에 서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장에 있던 포크레인 기사는 아침마다 미숫가루를 타다 주셨고 현장 직원들은 자전거 순례 때에는 후미에서 에스코트를 하여 주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제가 연행되어 갈 때 현장에 계신 분들이 돌아서서 우시던 모습을... 비록 우리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에서 있었지만 우리는 함께 현장에 있었고 우리의 잠재의식이 자연과 동화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종교인과 어린 친구들이 이 현장을 가슴 아파했고 멀리 독일의 거지 성자로 불리는 독일의 피터 노이아르씨를 비롯한 많은 분들이 이 현장을 다녀갔습니다. 이러한 발걸음은 천성산이 겪고 있는 아픔과 고통의 치유를 통해 보다 나은 세상을 물려주어야 한다는 소명의식과 희망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명예를 귀히 생각하는 입장에 살아 본 일은 없지만 제가 다시 일어 설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분들은 지금 제가 머물고 있는, 5일에 한번 버스가 들어오는 산골 마을의 어르신들이십니다. 지난 6개월 동안 걸음도 옮기기 어려웠던 저는 칠순이 넘으신 어르신들의 부축을 받으며 걸음마를 시작했고 다시 세상을 사는 법을 익히고 있습니다. 지금 제가 마음을 담아 하는 일은 어린이들을 위한 산촌마을 이야기를 영상으로 만들고 교육프로그램으로 만드는 일입니다. 어르신들은 당신들의 남아있는 나날을 제가 기록으로 남기는 일에 기꺼이 모델이 되어 주시고 제 기록을 위해 많은 이야기를 풀어놓아 주십니다. 아랫마을 칠순의 할머님께서 저녁 뉴스에서 봤다시며 영문도 모르는 제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이실 때 저도 함께 울었습니다. 그것이 게시판 공고로 진행 된 6개월 징역에 2년 집행유예의 법원의 선처입니다.

저는 감히 무죄를 주장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이 아픈 아이들을 버리지 못하고 더욱 마음을 쓰고 돌보는 일과 종교인들이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아픔을 안고 그 현장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결코 둘이 아닙니다.

2006년 11월 29일 지율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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