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나쁜 살생
가장 나쁜 살생
  • 수경 스님
  • 승인 2010.05.14 09: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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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수경 스님 (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
“모든 생명은 채찍을 두려워한다. 모든 생명은 죽음을 무서워한다. 내 생명에 이를 견주어 남을 때리거나 죽이지 말라.”(법구경)

부처님이 베푸신 팔만사천 가르침의 실천은 ‘불살생’, 이 한마디에서 출발하고 이 한마디로 귀결됩니다. 재가 불자의 5계, 비구 250계의 으뜸이 불살생입니다. 불자로서 행동 규범의 원천이자 둑입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다른 규범이 호지(護持)되고, 이것이 무너지면 다른 모든 것들도 무너집니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는 다른 생명에 의지해 삽니다. 우리가 먹고 마시고 대기를 호흡하면서 목숨을 유지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를 살생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자연의 순환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생명활동이기 때문입니다. 재미삼아서, 무지와 탐욕으로 다른 목숨을 빼앗을 때 그것을 우리는 살생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입니다. 목숨이 다하면 자연으로 돌아갑니다. 자연을 벗어나는 순간, 인간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모든 살아있는 존재는 우리의 부모다. 만약 우리가 그들을 죽인다면 우리의 부모를 죽이는 것이고, 우리 전생의 육신을 죽이는 일이다. 모든 땅과 물은 우리 전생의 육신이고, 모든 불과 바람은 우리의 본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애오라지 생명 해방을 실천해야 한다. 다른 이들도 그렇게 하도록 해야 한다. 만약 어떤 이가 동물을 죽이는 걸 본다면, 적절한 방법으로 그 동물을 공포와 위험으로부터 구하여 보호해야 한다.”(범망경)

부처님 가르침에 비추어 보자면 ‘4대강 개발사업’은 가장 나쁜 형태의 살생입니다. 다시는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릴 수 없는 대규모 파괴이자, 생명 순환의 고리를 끊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일이 옳다면, 그동안 우리의 목숨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여 있었다는 전제가 성립해야 합니다. 과연 그랬습니까?

일부 언론에서는 종교계의 4대강 개발사업 중단 요구를 4대강 사업 ‘반대’로만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들이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지는 않습니다만, 옳을 수도 있다는 가정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종교계의 입장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불교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다시 말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준으로 바라본 4대강 사업은 옳고 그름을 따질 문제가 아닙니다. 찬반의 대상이 아니라는 얘깁니다. 자연의 질서를 부정하고, 생명의 순환고리를 끊는 일을 어떻게 시비의 대상으로 바라보겠습니까. 법률 용어를 빌리자면 재고의 여지가 없는 ‘각하’ 대상입니다.

아이가 물에 빠졌습니다. 옳고 그름을 따진 다음에 뛰어들 일입니까? 지독히도 가난한 가정이 있습니다. 가족 중 한 명을 노예로 팔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과연 이 제안을 가족회의의 의논거리로 올려도 되겠습니까?

불교가 아니라 자연의 순리와 보편적 정의에 비추어도 이명박 대통령의 4대강 사업은 탐욕과 무자비(無慈悲)의 극한치입니다. 우리 역사와 문화, 삶의 토대인 국토와 자연을 자본의 노예로 만드는 일입니다. 임기중 업적과 경기 부양에 눈이 멀어 국토와 국가 미래의 숨통을 잡고 흔드는 한바탕 인질극입니다. 이 우격다짐과 막무가내를 보는 심정은 마치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일부 극우 일본인을 보는 것만큼이나 착잡합니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생각해봅니다. ‘민주화’만이 최고의 목표이던 시절에는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만으로도 사람이 가야 할 길은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절차적·형식적 민주주의의 실현 후 우리는 길을 잃었습니다. 민주주의의 내용과 질을 결정하는 구체적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실현하는 일에 태만했습니다. 그 대신 더 쓰고, 더 버리기를 유혹하고 강제하는 자본의 힘에 맥없이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가 이명박 대통령의 ‘등극’이고 4대강 개발이라는 황금 삽날의 패륜입니다.

지금 한국 사회에는 정치가 실종됐습니다. 모든 길은 ‘이명박 대통령의 불통’으로 통합니다. 우리는 절대권력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준 역사적 교훈을 곧잘 잊어버립니다. 히틀러가 그랬던 것처럼, 한동안은 성공할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4대강 개발을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은 하지 말자고, 자연과 더불어 모든 생명이 평화로이 공생하는 길을 가자고 호소할 뿐입니다.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도 생명 평화의 길을 찾아가는 한 방편일 것입니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초석이라고 할 기초자치단체의 상당수는 제 잇속이나 챙기는 토호들의 작은 왕국이나 다름없습니다. 2010년 6월2일, 나는 이 날을 우리 모두가 생명 평화의 강에 샘물 한 바가지씩을 붓는 날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위 기고문은 경향신문 5월5일자에 실린 강은 흘러야 한다 4 대종단 릴레이 기고문 수경스님의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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