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찬양, 감당할 수 있겠는가
원전 찬양, 감당할 수 있겠는가
  • 이혜조
  • 승인 2020.02.01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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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원영 수원대 교수

드디어 올 게 왔다. 자동차 팔아서 먹고사는 일본에 경고장이 날아들었다. 일본 자동차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세관에서 방사선량 1㎠당 4베크렐을 초과하여 유라시아로의 통관이 거절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얼마나 심하길래 자동차까지 오염되었나? 앞으로가 더욱 우려된다. 수만 가지 부품 어디에서 방사능이 나올지 알 수 없고 원천적인 대응이 어렵다.

남의 일이 아니다. 동남해안에 몰려 있는 원전 어디에서라도 사고가 나면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자동차, 조선, 철강 모두 위기에 처한다. 반세기 동안 쌓아 올린 경제도 큰 타격을 입는다. 좁은 국토와 민족은 어찌 되겠는가?

또  하나의 충격적인 소식은 원전 건설 단가가 5조원을 웃돈다는 것. 10여년 전보다 2배 이상 올랐다. 원래 위험부문을 제대로 계상하면 결코 싼값일 수 없는데, 그간에도 위험을 기만해서 싼값으로 포장해온 것일 뿐이다. 이런 기만은 ‘탈원전’ 정부가 바로잡아야 한다.

원래 원전은 태생부터가 문제였다. 도시바중공업에서 격납용기 설계를 했던 원전엔지니어 고토 마사시 일본원자력시민위원회 위원은 “기술이란 실패와 실수를 통해서 발전한다. 그런데 원전은 실패가 용납되지 않는 존재다”라고 설파한다. 그러니까 핵에너지는 과학의 영역이지 기술의 영역에 해당하지 않는데 자본의 논리에 휩쓸려 연구실 밖으로 나온 것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적어도 후쿠시마 사고 이전과 이후는 달라야 한다. 이전까지는 몰랐지만 이제는 다르다. 알고 짓는 죄가 훨씬 크다. 그 이전에는 산업의 역군으로 인정해줄 수도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사고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핵폐기물은 후손에게 불침번의 희생을 강요한다. 이를 알고서도 ‘강요하는 것’은 바로 우리가 아들딸들에게 그릇된 본이 되는 것이다. “너희도 자식들에게 그런 희생을 강요해도 된다”는 묵시적인 본보기다. 이런 악마적인 과정이 보이지 않는가? 민족과 인류에 대한 반역이나 다름없다.

원전은 폭등하는 가격과 건설기간 때문에라도 기후위기의 대안이 될 수 없다. 만약 원자력산업계에 총력을 다할 기회를 주어서 2050년까지 매년 32개씩 지구촌 곳곳에 원전을 지어서 현재의 3배까지 늘릴 수 있다고 치자. 그렇게 계산해도 온실가스의 6%밖에 감축하지 못한다. 인류 멸망의 위험을 감수하고도 고작 6%라니 ‘대안’이라는 말을 어디 입에 올릴 수 있나.

‘탈원전’ 구호에 그치고 있는 현 정부도 이젠 중심을 잡아야 한다. 원전 수출도 그만둬야 한다. 원전은 일차적으로 핵무기의 생산수단이다. 원천기술 없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수출을 꾀했다가 지난가을 미국이 좌절시킨 사건은 무엇을 말하는가. 무엇보다 자신이 ‘탈원전’을 지향하면서 다른 나라에 ‘잠재적 흉기’를 수출한다는 것 자체가 도덕적이지 못하다. 나중에 그 나라가 잘못 다뤄서 탈이 나도 우리 책임이다. 민족 차원의 빚이다. 단임 정권이 감당할 수 있나?

우리가 본떠 왔던 미국 원자력위원회(NRC)의 그레고리 야스코 위원장도 잘라 말한다. “원전은 그 자체로 핵무기로 가는 실존적 위협이며 통제가 안 될 경우 사람을 죽이고 국토를 파괴한다”며 지금은 “지구를 구할 때”라는 것.

그럼에도 줄기차게 찬양하는 언론들이 있다. 그들의 속셈이 뻔히 보인다. 원전은 초기 발주금액이 크고 소수의 자본이 담합하기 좋다. 4대강 공사가 강행된 원리와 같다. 자본의 광고에 의존하는 언론을 포함하여 소위 ‘해먹는 재미’가 밥상으로 차려진다. 닮은꼴이다. 그 언론 가운데 하나는 평소 샛강 살리기를 주장해오다가 어느 순간 정반대 취지의 4대강 공사를 찬양하기 시작했다. 그 언론이 일제강점기와 6·25 때 한 짓은 어떠했는가? 우리는 지난 시절에 그 언론이 해온 짓들을 알고 있다. 언론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지 않았으나 권력이다. 원래 권력이란 양날의 칼이다. 잘못 휘두르면 자신부터 다친다. 원전 찬양을 일삼는 언론은 그 위험을 피해갈 수 없다.

이원영 ㅣ 수원대 교수, 한국탈핵에너지학회(준) 준비위원

* 이 글은 <한겨레>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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