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유언비어’에 대한 적용 메뉴얼
‘천안함 유언비어’에 대한 적용 메뉴얼
  • 최재천 변호사
  • 승인 2010.05.31 15: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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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시사큐비즘]
   

또 <국가보안법>입니다.

오늘 민군합동조사단이 ‘천안함 침몰사건 조사결과’를 발표한 직후 맹형규 행안부 장관은 긴급 확대간부회의를 소집하고 “허위사실이나 유언비어에 대해 단속을 철저히 하고 특히 사이버상에서 근거없는 비방이나 불법행위가 만연하지 않도록 세밀하게 모니터링 하라”고 했습니다.
천안함 참사와 관련한 ‘불법집회나 시위’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히 대처하라고도 했군요.

 

▲ 인양된 천안함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국가가 시민의 자유를 구속하는 것은 법에 의거해야 합니다. 이번 경우 정부가 허위사실이나 유언비어를 단속할 수 있는 근거는 어떤 법일까요? 바로 <국가보안법>입니다. <국가보안법> 중에서도 적용이 모호하기로 악명 높은 ‘제7조 찬양·고무’ 조항입니다.

다시 한번 제7조의 내용을 보시죠.

“제7조 (찬양·고무등) ①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②삭제 ③제1항의 행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를 구성하거나 이에 가입한 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④제3항에 규정된 단체의 구성원으로서 사회질서의 혼란을 조성할 우려가 있는 사항에 관하여 허위사실을 날조하거나 유포한 자는 2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⑤제1항·제3항 또는 제4항의 행위를 할 목적으로 문서·도화 기타의 표현물을 제작·수입·복사·소지·운반·반포·판매 또는 취득한 자는 그 각항에 정한 형에 처한다. ⑥제1항 또는 제3항 내지 제5항의 미수범은 처벌한다. ⑦제3항의 죄를 범할 목적으로 예비 또는 음모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국가보안법> 제7조를 천안함 참사에 대한 의견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요?
북한은 어뢰공격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합동조사단의 발표를 부정하면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물론 국가의 존립·안정이나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를 해치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는지 수사할 것입니다.

정부발표를 믿지 않고 포털 사이트에 ‘천안함 참사 진실규명을 위한 카페’ 같은 것을 만든다면 3항 위반으로 1년 이상의 유기징역 감입니다. 거기에 소위 추론을 게재하면 2년 이상의 유기징역을 받을 확률이 높습니다. 물론 추론이 ‘허위사실’인지 아닌지는 법정에서 밝혀야겠습니다.
누군가의 추론이 합동조사단의 결과발표보다 신빙성이 높거나 아니면, 들을만한 가치가 있다 해도 이 내용을 카피해서 가지고 있거나 ‘펌질’을 하면 추론을 쓴 사람과 같은 처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목적에서 내용을 저장하거나 복사, 전송했는지는 ‘수사과정’에서 드러날 것입니다.

꼭 덧붙여야 할 점은 이런 일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6조와 제7조에 의하면 ‘미수범’도 처벌을 받고 ‘카페’를 만들려고 했던 사람도 처벌을 받습니다. 그러니까 천안함 참사에 대한 어떤 ‘의문’도 갖지 마십시오. 정부의 발표에 동조하든지 아니면 외면해야 합니다.

법의 이런 성격 때문에 맹 장관이 집회와 시위에 대해서는 ‘엄격한 법 적용’을 주문하고, 유언비어에 대해서는 ‘세밀한 모니터링’을 주문했을 지도 모릅니다. 전자에 대해서는 <집시법>을 적용하면 되지만, 후자는 <국보법>을 적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막상 <국보법>을 실제 적용하기 시작하면 너무나 많은 시민들을 기소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제7조는 ‘걸면 걸리는’ 법이거든요.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특강>이라는 책에서 극악한 정보통제 속에서는 유언비어가 횡행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시민들이 억압적 상황에 길항하기 위한 이성적 활동이라는 겁니다. 물론 한 교수는 KAL기 진상조사위원의 자격으로 KAL 858기 폭파사건에 대한 ‘유언비어’를 아직까지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진실에 눈을 뜨라고도 말합니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고, 정보가 불통되는 상황에서 ‘유언비어’는 시민들의 자위권이자 최소한의 무기라는 점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 교수의 얘기는 ‘유언비어’에 대한 유명한 정의와 궤를 같이 합니다. ‘유언비어’의 확장은 사건의 중요성과 정보의 모호성에 따른다고 합니다. 지금 천안함 사건은 ‘유언비어’를 확장할 사건으로 가고 있나요, 아니면 잠재울 수 있는 조건으로 가고 있나요?

정부가 유언비어가 일어날 조건을 만들어놓고 <국가보안법>으로 이를 억누르려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입니다. ‘불통하는 정부’가 믿는 최후의 보루가 <국가보안법>이라는 점을 알려주고 있다는 점에서는 시사적이기도 합니다. <국가보안법>이 폐지돼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로스쿨, 영남대 로스쿨, 전남대 로스쿨,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이번 학기는 이화여대 법대에서 2,3,4학년을 대상으로 '현대사회와 법'이라는 교양과목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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