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 스님은 4대강 사업으로 파괴되고 오염돼가는 국토라는 발우에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담았다. 대통령과 조계종, 알고 모르는 이들, 유정무정의 모든 존재들에게 ‘불(火)의 공양’을 올렸다.
‘불’은 밝음이며, 어둠과 무지, 무명을 소멸시키는 지혜의 상징이다. 어쩌면 스님은 자신을 태우기 전 대통령과 조계종의 어둠이 밝아지기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유서에 이명박 대통령을 언급했다. 문수가 승복 적삼에 글을 남긴 것은 총무원장 스님과 전 종도에게 자신이 조계종의 종도라는 존재와 가치, 그리고 무엇인가 의미를 전달하고자 한 것은 아닐까? 묵직한 그 무엇이 어깨를 짓누른다.
문수 스님이 스스로를 태운 ‘소신공양’은 그야말로 ‘공양’으로써 우리에게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받으라고 청한 것이다.대통령이야 문수 스님의 공양상을 거부할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종단마저 거부하면 어쩌란 말인가. 종단이 문수 스님이 올리는 공양상을 정중하면서도 의미 있게 받는 것은 그의 법구를 조계종의 중심이자 총무원이 위치한 조계사 마당에 모시는 것이다.
문수 스님의 법구를 조계사 마당에 모셔, 스님이 전달하고자 했던 뜻을 널리, 잘 알리는 공양의 결정권은 총무원장 스님에게 있다.
원장 스님을 비롯한 종단의 각 부실장 등 관계자들이 이를 모를 리 없다. 모른다면 문제가 있다. 유서의 내용이 개인적인 것도 교구본사의 일도 아니다. 국토의 파괴와 불교문화의 퇴색이 분명한 4대강 문제다.
문수 스님의 법구를 조계사 마당에 모셔 소신공양의 의미를 사회적으로 크고 넓게 부여함에 주저해선 안 된다. 주저하거나 거부한다면 우리는 존재가치를 상실했음을 스스로 증명함이다.
보이지 않는가? 아직도 타고 있는 문수 스님의 법구를
느끼지 못하는가? 수많은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 法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