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에 대한 중대한 착각
선거에 대한 중대한 착각
  • 최재천 변호사
  • 승인 2010.06.07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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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시사큐비즘]
   

해남은 민주적인가? 내 손으로 군수를 뽑고 군의원을 뽑는다. 시장경제가 돌아가고 있다. 해남땅에서 만큼은 민주주의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셈이다. 다들 그렇게 생각한다. 중대한 착각이다. 해남 사람들은 선거와 시장, 이 두 가지를 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4년에 한번 투표장에 가서 도장을 꾹 누르는 일과, 장바구니를 들고 나설 때를 제외한다면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별로 할 일이 없는 셈이다. 주권자가 아니라 유권자와 소비자라는 지위에 만족하는 것이다.

학자들은 이런 민주주의를 '앙상한 민주주의'라 부른다. 무능한 민주주의다(프란시스 무어 라페, <살아있는 민주주의>). 주권을 선거에만 한정시키는 속 좁은 행위다.

정치인들은 유권자의 이런 약점을 정확히 간파한다. 그래서 거짓말은 시작된다. 공익을 위해 봉사하겠다며, 오로지 해남을 위해 뼈와 살을 묻겠다며 출마하는 정치인들이 있다. 당선되는 순간 이들은 변한다. 문제는 변할 수밖에 없음에도 이를 숨길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정치는 공적 사명이다. 그런데 정치인은 당선되는 순간 직업인으로 신분이 전환된다. 직업정치가는 정치행위를 통해 자신의 사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정치가 곧 생업이다. 정치를 통해 먹고 살아야하고, 정치를 통해 돈을 벌어야 하고, 그렇게 번 돈으로 생계를 책임지고 자녀를 학교에 보내야 한다. 정치인은 공적 문제를 다룸과 동시에, 자신의 생계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중대한 모순에 처해 있다. 이것이 현실의 정치가다(김선욱, <정치와 진리>).

정치인은 낙선하는 순간 실업자다. 당선되면 직업인이 되고, 재선되지 못하면 실업자다. 실업자가 되지 않기 위해 정치가는 자신의 정치생명을 유지해야만 한다. 공적 논리보다는 사적 논리에 충실해야 한다. 입으로는 공익을 이야기하지만 속으론 자신의 이익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자신의 정치생명을 위해 소속정당에 충실하고 공천권자에 충성을 다해야 한다. 지역적이고 이기적인 이해관계에 얽매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내놓고 이를 시인할 수는 없다.

4년마다 한 번 투표장에 가서 다시는 속지 않겠다며 도장 한 번 꾹 찍고 나오는 주권 행위로는 이런 정치가를 통제할 수 없다. 정치인들은 이런 사실을 너무도 잘 안다. 그래서 자신의 사적 이해관계를 공적 이익으로 포장하는 데 능숙하다. 그런데도 해남 사람들은 4년마다 한 번뿐인 투표를 통해 이를 충분히 가려낼 수 있다고 믿는다. 정치가 갖는, 선거가 갖는 명백한 한계다.

선거는 4년에 딱 한 번뿐이다. 지극히 일회적 행위이다. 정치인들은 이런 사실을 충분히 이해한다. 정치인이 어떠한 잘잘못을 하더라도 이를 처벌하거나 칭찬할 수 있는 기회는 4년만에 한번 돌아올 뿐이다. 정치인이 정치행위라는 이름으로 내리는 다양한 결정들을 유권자는 통제할 수 없다. 도구가 없다. 기껏해야 4년 뒤의 일일뿐이다. 그렇다면 정치인은 4년 동안 유권자의 통제로부터 대단히 자유로운 상태에서 활동할 수밖에 없다. 선거는 결코 상시적 통제수단이 못된다. 정치인은 얼마든지 배반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런데도 유권자는 선거에 모든 것을 건다

선거에 대한 착각은 또 있다. 정치인은 어떤 유권자는 잘못된 과거의 정치적 행적을 처벌하기 위해 투표를 이용할 것이고, 다른 유권자는 장차 실현 가능한 공약을 믿고 지지하기 위해 투표할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아담 쉐보르스키 외,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

이를테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싫어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표를 찍었던 사람이 있고, 이명박 대통령이 좋아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표를 던졌던 사람이 있다. 한 방향으로 쏠려 있는 표라도 숨은 뜻은 각기 다를 수 있다. 통일된 의사가 아니라 각기 다른 생각들로 분열돼 있는 것이다. 정치인은 이 분열상을 충분히 이해한다. 갈라치기가 가능하다. 분열상을 역이용하는 것이다. 오로지 자신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서다. 연명을 위해서다. 생업을 위해서다.

그렇다면 선거는 민주주의의 기초는 될 수 있을지언정, 민주주의의 전부는 될 수 없다. 선거를 통한 정치인에 대한 시민의 통제는 기껏해야 매우 불안정할 뿐이다. 주권자는 상시적으로 정치인을 통제하고 감시할 수 있는 새로운 수단을 개발해야 한다. 선거가 민주주의의 전부라는 생각은 중대한 착각이다.

/ 해남신문 기고

   
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로스쿨, 영남대 로스쿨, 전남대 로스쿨,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이번 학기는 이화여대 법대에서 2,3,4학년을 대상으로 '현대사회와 법'이라는 교양과목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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