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부처에게 절을 하는 까닭
돌부처에게 절을 하는 까닭
  • 이기표 원장
  • 승인 2010.06.10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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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표의 세상이야기]

조선초기의 제일가는 명신(名臣)으로 이름을 날린 맹사성은 열아홉의 어린 나이에 장원급제하여 이십대 초에 경기도 파주 군수에 제수되었다. 새파랗게 젊은 나이에 한 고을을 다스리는 관장이 된 그는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늙은 사람이든 젊은 사람이든 모든 백성들이 자기에게 머리를 숙이는 것을 볼 때마다 우쭐한 마음이 생겨 차츰 방자하고 독선적인 성격으로 변해갔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감악산에서 야유를 즐기던 맹사성이 그곳에 머물고 있던 무명선사를 찾아가 물었다.
"스님이 생각하기에 이 고을을 다스리는 사람으로서 내가 최고의 가치로 삼아야 할 좌우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오?"
이에 무명선사가 대답했다.
"그건 어렵지 않지요. 나쁜 일을 하지 말고 착한 일을 많이 베푸시면 됩니다."
"그런 것쯤이야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이치 아니오?"
맹사성은 거만하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무명선사가 차나 한 잔 하고 가라며 붙잡자 못이기는 척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찻상을 차려낸 스님은 맹사성의 찻잔이 넘치는데도 자꾸만 찻물을 따르는 것이었다.
그러자 맹사성이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
"찻물이 넘쳐 방바닥이 젖습니다!"
하지만 스님은 계속해서 차를 따르며 맹사성에게 말했다.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망치는 것은 알면서, 어찌 지식이 넘쳐 자신의 인품을 망치는 것은 모른단 말씀이요?"

스님의 이 한마디에 맹사성은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붉어졌고 황급히 일어나 방문을 나서다 문틀에 머리를 부딪고 말았다. 그러자 스님이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충고했다.
"고개를 숙이면 부딪치는 법이 없지요. 우리가 돌덩이에 불과한 부처에게 몸을 숙이는 것도 세상을 겸손하게 살아가기 위함이라오. 허허허”

스님으로부터 깨달음을 얻은 맹사성은 그 자리에서 자신의 호를 고불(古佛)이라 고쳐지었다. 자신에게 깨달음을 준 무명선사를 ‘오래된 부처’로 예우하고 그의 가르침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던 것이다.

맹사성은 그 날부터 일반백성은 물론 자신보다 관직이 낮은 사람에게도 예로서 대하고,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여 청렴한 삶을 살아갔다. 그가 장장 50년이나 되는 긴 세월을 관직에 머물 수 있던 것도,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도 단 한 번의 구설에 휘말리지 않은 것도, 무명선사의 가르침대로 늘 고개를 숙이고 살아가는 법을 터득했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얘기지만 어느 언론사에서 6.2지방선거 결과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했는데 그 발표내용이 재미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야당이 승리한 것은 ‘집권세력의 잘못’ 때문이라는 의견이 80%가까이 되었다고 한다. 반면 ‘야당이 잘해서 이겼다’는 의견은 겨우 2%밖에 되지 않는단다. 그렇다면 집권세력이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기에 국민들은 ‘잘한 것이 하나도 없는 야당’에게 표를 몰아줬을까?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는 국제금융위기에서도 한국의 경제를 지켜낸 이명박 대통령의 강력한 추진력은 해외에서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그 강력한 추진력으로 하여 소통과 설득이 부족하다는 불평을 사고 있다. 즉 타협의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국민들에게는 오만과 독선으로 비쳐졌고, 결국 집권세력의 지방선거 패배로 연결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4대강과 세종시 등 중요한 국책사업을 추진함에 있어 반대하는 목소리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소통하고 설득하려는 노력 대신 자신들의 뜻대로 밀어붙이는데 대한 반감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옳은 일이라 해도 타협하지 않으면 그것이 오만이고 독선이다. 여당이 되었든 야당이 되었든 오래도록 국민들의 아낌을 받으려면 ‘세상과 부딪치지 않기 위해 돌부처에게도 몸을 숙이는’ 겸손의 미덕을 배워야하지 않겠는가.

   
1956년 남해에서 태어난 그는 불교방송 부산사업소장, 진여원불교대학 학장을 거쳐 부산보현의집 원장을 맡고 있다. 부산노숙자쉼터 협의회 회장을 비롯해 독거노인을 위한 무료급식 등 봉사활동을 펴고 있다. 한국문인협회 회원, Fact 포럼 대표, 한국전력공사 이사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제로에서 시작하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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