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와 스토리텔링
삼국유사와 스토리텔링
  • 이기표 원장
  • 승인 2010.06.25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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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표의 세상이야기]

다가서지 마라 / 눈과 코는 벌써 돌아가고 / 마지막 흔적만 남은 석불 한 분 /지금 막 완성을 꾀하고 있다

// 부처를 버리고 / 다시 돌이 되고 있다 / 어느 인연의 시간이 / 눈과 코를 새긴 후

// 여기는 천 년 인각사 뜨락 / 부처의 감옥은 깊고 성스러웠다 / 다시 한 송이 돌로 돌아가는 / 자연 앞에

// 시간은 아무 데도 없다 / 부질없이 두 손 모으지 마라 / 완성이라는 말도 / 다만 저 멀리 비켜 서거라. -문정희 ‘돌아가는 길’-

경북 군위에 있는 인각사는 삼국유사의 산실이다. 문정희 시인은 삼국유사를 집필하던 일연 스님의 숨소리를 듣기 위해 인각사를 찾아갔다. 그러나 그곳은 이미 폐허가 되어있었다. 시인은 오랜 세월의 풍상을 견디느라 깨어지고 마모되어 글자조차 남아있지 않은 보각국사 빗돌을 바라보며 허망한 나머지 ‘다가서지도 말라’고 외치고 있다. 형체는 온데간데없고 하나의 돌멩이로 변해버린 빗돌의 초라한 모습을 ‘다시 한 송이 돌로서의 완성을 꾀하는’ 역설적 화법으로 안타까움을 달래고 있는 것이다.

몇 해 전이지만 필자도 일연 스님 탄신 800주년을 맞아 인각사를 찾아간 적이 있다. 그리고 그 폐허의 뜨락에 앉아 일연 스님이 만들어낸 신화에 대하여, 그 신비하고 무한한 상상력을 감탄하며, 그 신비적 상상의 영토에 서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떨던 기억이 새롭다.
일연 스님의 삼국유사는 로마신화 못지않은 신비감이 있다. 그 가운데 내가 가장 재미있게 생각하는 것이 ‘이차돈’과 관련한 얘기다. 신라에 불교를 전파한 이차돈은 스스로 왕을 찾아가 죽여주기를 간청한다. 잘못이 있어서가 아니다. 신라인들로 하여금 자신의 죽음을 통해 깨달음을 얻게 하기 위함이었다.

“모든 것 중에서 버리기 어려운 것이 목숨보다 더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저녁에 죽어 아침에 큰 가르침이 행해진다면 불일(佛日)이 다시 중천에 오르고, 성주가 길이 편안할 것입니다.”

이차돈은 이처럼 자신의 순교를 통해 신라인들이 불법을 행하여 편안한 삶을 살아가기를 소원하며 죽음을 자청했다. 그리고 그는 “나는 불법을 위해 형을 받기로 하였는데 만약 부처님이 신령하시다면 내가 죽은 뒤 반드시 이적(異蹟)이 일어날 것이다.” 라고 했는데 과연 ‘칼을 휘두르자 목에서 하얀 피가 뿜어져 나오는’ 이변이 일어난 것이다.

과학적으로나 상식적으로나 피는 붉다. 그런데 일연 스님은 어찌하여 ‘하얀 피가 솟았다’고 했을까? 이차돈의 말대로 부처님의 신령성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을까?
초등학교 다닐 때는 있을 수 없는 거짓말이라고 단정했었다. 그랬던 것이 나이 들면서 이차돈의 ‘하얀 피’는 피가 아니고 이 땅의 모든 중생들의 목마름을 풀어줄 ‘생명의 젖’이란 것을 알았다. 젖은 어머니가 자식에게 전해주는 생명의 피다. 그래서 일연 스님은 이차돈이 흘린 피를 그 생명의 젖으로 환치시키기 위해 ‘하얗다’고 하셨을 것이다.
내가 삼국유사를 로마신화보다 우월하다고 여기는 것은 그것에 비해 일연 스님의 신화는 무한히 따뜻하고 무한히 아름답기 때문이다. 생명에 대한 존엄이 있고, 자연에 대한 경외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불교정신이고, 우리의 민족정서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삼국유사의 좀먹은 문자들이 봄날 흙을 제치고 솟아나는 풀싹들처럼 아우성을 치기도 하고, 여름 소낙비처럼 천둥벽력소리를 내며 쏟아지기도 하고, 혹은 서리가 많이 내린 날 아침 헛기침 소리가 아니면 식은 방바닥을 데우기 위해 군불을 지피는 아궁이처럼 불타올라야 한다.”

인각사의 복원도 복원이지만 이어령 선생의 탄식처럼 삼국유사속의 신화가 이 땅에 다시 불타올라야 한다.
삼국유사는 불교인의 시각에서 바라본 불교적 신화이며 불교의 역사이기도 하다. 많은 선승들의 신비로운 행적이 기록되어 있고, 절집의 창건설화가 거룩하게 묘사되고 있다.
이러한 삼국유사 하나만 제대로 살려 써도 불법의 포교에 큰 보탬이 되겠다는 생각이다.

무엇이 되었든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어야 잘 팔리는 스토리텔링 시대다. 그래서 없는 이야기도 만들어내기에 혈안이 되어있는 판에 삼국유사처럼 신비롭고 재미있는 이야기꺼리를 좀먹게 하면서 포교를 걱정하는 모습이 우습지 아니한가.

   
1956년 남해에서 태어난 그는 불교방송 부산사업소장, 진여원불교대학 학장을 거쳐 부산보현의집 원장을 맡고 있다. 부산노숙자쉼터 협의회 회장을 비롯해 독거노인을 위한 무료급식 등 봉사활동을 펴고 있다. 한국문인협회 회원, Fact 포럼 대표, 한국전력공사 이사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제로에서 시작하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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