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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 스님은 정부가 국민적 합의를 외면하고 4대강사업을 강행하는 불통의 현실, 공사 진행 중 발생하는 부작용과 국토의 파괴 등 온갖 문제점 들을 승려로서 국토와 자연환경에 대한 철학과 소신에서 골수깊이 새겼을 것이다. 그 소신의 표현 결과가 ‘소신공양’이다.
두 스님의 지난 8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종교인도지원위원회’에서 취한 일련의 행위는 블로그의 지적과 같이 소신공양을 일종의 ‘구이’정도로 봤기 때문이라는 지적을 면할 수 있을까?
문수 스님에 대해 인간적으로나, 승려로서의 최소한의 동질성마저도 배척하지 않고서는, 스님의 정신세계와 검게 불탄 법구는 물론 4대강사업을 반대하는 대다수의 종도들을 깡그리 무시하지 않고서는, 내용은 물론 시기적으로도 달리 이해가 어렵다. 무엇을 위해 그랬을까? 왜 그래야만 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가슴이 빠개진다.
사람이 닭고기를 먹으면서 닭에게 미안해하지 않는 것은 닭의 정신세계를 무시하기 때문이다. 사체만 보고서도 가슴이 떨려오며 호흡이 빨라지는 것은 인간이라는 DNA의 동질성과 더불어 인간사유의 정신세계에 대한 특별한 교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동물에 대하여도 함부로 하지 않는다. 금강경의 가르침도 인간의 우월성, 즉 ‘자아’에 대한 이기심의 배척이 주 내용이다. 그런데 하물며 소신공양한 스님의 49재도 채 끝나기 전, 소신 장소의 풀도 새로 돋아나기 전 사단을 야기함은 수행자로서, 중진으로서 최소한의 양심마저도 저버린 것은 아닌지 답답하기만 하다.
두 스님이 현 직위에 서게 된 것은 1차적으로 조계종의 승려라는 토대다. 조계종 승려라는 토대 없이 주지는 물론 어떠한 정부기구의 구성원도 될 수 없다. 이번 사태는 기본적 본분을 망각한 것으로 조계종사에 남을 일이다.
4대강사업 반대 측도 이번 사태를 자초한 면은 없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필연적으로 반대를 해야만 하는 절대 공감의 이론개발과 홍보에 충실했는지 말이다. 환경운동은 냉철한 머리와 뜨거운 가슴을 동시에 충족해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솔직히 연구하는 자세와 지지를 이끌어 내는 흡입력을 배가하는 노력이 부족했음이 사실이다.
이번 사태를 두고 안팎에서는 불교계를 ‘콩가루 집안’, ‘쓸개도 없다’고 지적한다. 교계의 기라성 같은 단체들이 이번 사태를 어떻게 마무리할지 주목된다. 달랑 성명서 하나 내고 마는 그 나물의 그 밥인지 아닌지 말이다. 이런저런 꼴 안보는 문수 스님이 부럽기도 하다.
/法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