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 최전선에 선 ‘승려’ 운암 조명
독립운동 최전선에 선 ‘승려’ 운암 조명
  • 박선영 기자
  • 승인 2020.04.24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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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 ‘운암 김성숙’
▲ 선인|1만 9000원

출가 승려로서 독립운동의 최전선에 섰고 후에는 승려가 아닌 운동가로 살다 간 운암 김성숙 선생의 전기가 출간됐다.

국가보훈처 산하 선양단체인 (사)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회장 민성진)는 지난 24일 《운암 김성숙》을 발간했다.

외국인이 쓴 한국독립운동사의 생생한 기록이라 할 수 있는 님 웨일즈의 《아리랑》에서 주인공 김산이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 이가 바로 운암 김성숙이다.

“나는 이 몸을 나라에 바쳤으니 나라를 위해서 희생할 수만 있다면 나는 나의 할 일을 다 한 것이다”라고 한 운암은 양평 용문사에서 ‘태허’라는 법명으로 출가했다. 일제의 폭압에 저항해 승려 신분으로 3·1운동 때 양주 광천시장 시위 주모자로 체포돼 복역 후 중국으로 망명해 신채호 등의 권유로 의열단에 가입해 독립운동의 길을 걸었다. 조국이 해방될 때까지 의열단, 광동꼬뮨, 조선민족해방동맹, 조선민족혁명당, 조선민족전선연맹, 조선의용대에서 활동했으며 그 사이 중국대학 교수와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역임하는 등 22년 간 독립운동의 최전선에서 일제와 싸웠다.

평전의 저자 김상웅 씨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독립운동가들이 살아서나 죽은 뒤에도 억울한 분들이지만 운암 선생의 경우 특히 심했다”며 일제 치하에서도 그랬지만 해방 뒤에도 억울한 대접을 받은 운암을 조명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한강 다리가 파괴돼 피난기회를 잃고 나중에 피난 갔는데 이승만 정권에서 부역자로 몰려 투옥되고, 혁신세력 통합운동을 벌이던 중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돼 옥고를 치른 일, 4·19혁명 후 총선에서 낙선, 5·16쿠테타 이후 혁신계 인물로 낙인 찍혀 투옥하는 등 고난의 연속이었다.

망명지에서 중국 여성과 결혼해 아들 셋을 두었으나 해방과 함께 생이별하고, 한·중이 적대관계가 되면서 생전에 가족들과 만나지 못했다. 해방 이후 24년 간 남한에 살면서도 집 없이 떠돌다 지인들이 돈을 모아 방 한칸을 마련해줬으나 병고에 시달리다 1년도 못 살고 71세의 나이에 세상을 떴다.

책에는 이런 운암의 항일운동과 민족운동의 활동상을 시기별로 그리고 있다.

평전을 쓴 저자는 독립운동사 및 친일반민족사 연구가로 대한매일신보 주필, 독립기념관장을 지낸 김상웅 씨다. 김 씨는 약산 김원봉, 신채호 등 독립운동가와 김대중, 노무현, 김근태, 신영복 등 정치인 평전 50여 권을 저술했다.

※ 이 기사는 제휴매체인 <불교저널>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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