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새는 왜 필요할까
국새는 왜 필요할까
  • 최재천 변호사
  • 승인 2010.09.05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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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시사큐비즘]
   

하켄크로이츠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유럽, 아시아, 폴리네시아 등 각지에서 발견됩니다. 인도 불교에서는 하켄크로이츠가 우향(시계방향)일 경우 상승, 상생, 행복을, 좌향(반시계방향)일 경우 몰락, 소멸, 죽음을 나타낸다고 말합니다.

나치스 상징으로서의 하켄크로이츠는 1919년부터 나치스 당기가 되어 히틀러를 정점으로 하는 파시즘 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중요한 역할을 떠맡습니다.

“1920년의 한여름에 새로운 기가 처음으로 세상에 나타났다......우리들은 붉은색에서 운동의 사회적 사상을, 흰색에서 국가주의적인 사상을, 하켄크로이츠 안에서 아리아 인의 승리를 위한 토쟁의 사명과 창조적인 사상의 승리를 볼 수 있다. 이것은 그 자체가 반유대적이며, 앞으로도 영원히 반유대적일 것이다.” (히틀러, <나의 투쟁> 중에서)

▲ 하켄크로이츠를 뛰어난 연출로 제전,집회,행진 등에 하켄크로이츠를 적극 활용한 괴벨스 나치스 정권 선전 장관(가운데). 사진 맨 왼쪽에 군복 차림으로 모자를 벗고 서 있는 이가 히틀러.

권위의 상징, 문장

본래 문장은 군주나 귀족계급의 권위를 상징하는 심벌이었습니다. 이런 문장은 개인이나 가계뿐 아니라 도시나 교회, 대학 등 공동체의 심벌로도 이용됩니다. 단적인 예로 박지성 선수가 뛰고 있는 맨체스터 Utd.나 다른 EPL 팀들의 문장도 어느 새 우리에겐 익숙합니다. 방패 모양을 띤 서울대학교 교표도 사실은 서양 문장의 역사를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고 보아도 틀리진 않을 겁니다.

문장과 특별히 상관을 맺고 있는 것이 바로 국기입니다. '문장의 형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공동체의 깃발은 연대를 나타내는 심벌이기도 하지요. 이런 문장처럼 공동체의 결속과 아이덴티티를 형성하기 위한 상징으로 '인장'이 있습니다.(하마모토 다카시 저(박재현 역), <문장으로 보는 유럽사> (달과소, 2004) ; 앞으로 특별한 인용 표시 없이 이 책을 요약해 인용하도록 하겠습니다.)

문장보다 오래된 인장의 역사

인장이 도리어 문장보다도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장 또한(문장과 마찬가지로) 과거에는 수직 사회의 상징이었습니다. 황제나 국왕이 주로 사용을 했지요. 우리나라나 중국도 마찬가지였죠. 봉건제 하에서는 주군과 신하의 계약에도 인장을 사용했습니다. 교회에서도 널리 사용했지요.

원래 이런 인장은 철저히 국왕이나 제후, 귀족, 성직자들의 소유물이었습니다. 하지만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13세기 들어 대학이나 길드에서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계약 관념이 발달한 유럽에서 서면 계약이 중요한 증거로 자리잡을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인장이 널리 활용되었을 겁니다. 그래서 시민 계급으로 차츰차츰 인장 사용의 범위가 확대됩니다.(앞의 책 요약)

인장에서 사인의 시대로

르네상스 들어 시민의 부활은 인장이 아닌 사인의 시대로 변화됩니다. 결국은 교육의 보편화, 문자의 확대에 그 원인이 있었겠지요. 위조 방지 때문에 사인 문화가 널리 퍼졌다는 설도 있고, 인장에 담긴 주술의 문화가 사라졌기에 그랬다는 학설도 있는 모양입니다. 사실 지금도 우리는 도장도 선물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이번 국새 파동에서도 그런 문화가 엿보였지요. 여전히 신문 광고 란에는 도장을 이렇게 새기면 복을 가져오고 출세할 수 있다는 광고들을 확인할 수 있지요. 문장에 담긴 주술의 흔적들입니다.

결국 과거의 권위적인 사회에서 수평적인 사회로, 신과 미신 중심의 사회에서 인간 중심의 사회로 넘어오면서, 그리고 학문과 문자의 권위성,폐쇄성에서 개방성,보편성으로 전환되면서 인장 문화는 서서히 사인에게 그 역할과 지위를 넘겨주고 맙니다.

중국은 국새를 사용하지 않는다

현재 유럽에서 국새를 사용 중인 대표적인 국가는 영국, 프랑스, 로마교황청 등입니다.(조선일보 8월 26일자 A8면 최유식,김홍수 기자 기사 참조)

“로마 교황청에선 교황이 바뀔 때마다 '어부의 반지'로 불리는 새 국새(손가락에 끼는 반지 형태)를 만들어 사용합니다. 재질은 금이 주성분인데 동을 섞기 때문에 순금 100%는 아닙니다. 어부의 반지(pescatorio)로 불리는 이유는 초대 교황으로 추앙된 베드로 성인이 어부의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추기경 단장이 교황의 손가락에 이 반지를 끼워줌으로써 새 교황의 등극을 선언합니다. 선종한 교황의 옛 반지는 은망치로 파괴해 교황의 관 속에 함께 묻습니다...(중략)
...이에 비해 중국은 1949년 10월 건국 당시 국새를 만들었지만 지금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외교 문서에도 국가주석·총리와 외교부장이 함께 서명하는 것으로 끝냅니다. 국새가 만들어진 것은 건국 직전이었습니다. 초대 총리가 된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가 건국 준비를 하면서 국새 제작을 지시했다고 합니다. 국새에는 '중화인민공화국 중앙인민정부지인(中央人民政府之印)'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조선일보 8월 26일자 A8면 "한국 '국새 파문'...세계의 국새 문화는?" 기사에서 인용)

하지만 1960년대 문화대혁명 직후부터는 국새를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상 동양 국새의 종주국인 중국에서는 정작 국새를 사용하지 않고 있는 것이지요. 모든 문화의 원형은 변방에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제가 늘 예로 드는 한 가지로 젓가락을 가로로 놓는 문화가 있습니다. 고대 중국이 그러했지요. 지금은 일본의 일식당에서나 젓가락을 가로로 놓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국새에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끝내는 국새파동까지 불러일으킨 것 같습니다.

국새, 인감, 서명 등에 관한 우리의 법률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대통령령 21800으로 국새규정이 있습니다. 글자는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자체로 하고 대한민국의 네 글자를 한글로 하되 가로로 새기도록 되어있더군요. 중요한 임명장에나 외교문서 등에 사용하도록 되어있습니다.

형법은 인장에 관한 죄를 두고 있습니다. 인장을 위조하거나 부정 사용한 경우 처벌하도록 되어있지요. 인감증명법이라는 법도 있습니다. 출원자의 인감을 증명해서 각종 문서의 진위를 확인하는 증거자료로 삼는 방식이지요.

외국인의 서명날인에 관한 법률도 있습니다. 이 법은 도장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외국인인 경우 서명만으로 서명 날인이나 기명 날인을 대신할 수 있도록 규정했지요. 외국인에 대해서는 이렇게 인장제도를 요구하지 않는 법이 이미 마련되어 있는 셈이라면, 우리 국민에 대해서도 굳이 인장을 강요할 필요는 없을 수도 있겠지요. 인장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서명만으로 대신할 수 있는 각종 제도들을 충분히 도입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셈입니다.

더 나아가자면 국새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국새 대신 나라의 대표인 대통령의 사인으로 충분히 대신할 수 있지 않나요? 지금이 왕조시대도, 주술의 시대도 아니고 공동체의 심벌을 요구하는 폐쇄적인 시대도 아니라면 더 이상 국새는 논란이 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요.

   
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로스쿨, 영남대 로스쿨, 전남대 로스쿨,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이번 학기는 이화여대 법대에서 2,3,4학년을 대상으로 '현대사회와 법'이라는 교양과목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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