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의 여신’은 왜 눈을 가리고 있을까?
‘정의의 여신’은 왜 눈을 가리고 있을까?
  • 최재천 변호사
  • 승인 2010.09.14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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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시사큐비즘]
   

‘공정한 사회’는 과연 무얼 의미하는 것일까. 도덕률일까, 법률일까. 
갑작스레 우리 사회의 화두이자 기준으로 등극했다.

얼마 전 경향신문 박영환 기자의 글. “청와대 관계자는 ‘본래 정의의 여신은 한 손에는 저울, 한 손에는 칼을 들고 있다’며 ‘공정한 사회가 사정을 겨냥한 것은 아니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그렇게 비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했다. 이 해석론에 따르면 공정한 사회는 사정 정국을 의미하고 강력한 형사법적 집행을 의미한다.

법과 미술이라는 고전적인 주제가 있다. 그 중의 한 테마로 법의 상징에 대한 분야가 있다. 동양법계에서 해치가 법의 상징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서양법에서는 ‘정의의 여신’이라는, 눈을 가리고 한 손에는 저울, 한 손에는 칼을 든 상징이 법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우리 대법원에도 이와 유사한 법의 상징물이 세워져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정의의 여신은 어떻게 해서 이런 얼굴로 나타나게 됐을까.

“세바스티안 브란트의 <바보들의 배>에는 정의의 여신이 이상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목판 삽화가 실려 있다. 이 그림에서는 광대 모자를 쓴 광신도가 여신의 눈을 천으로 가려서 그녀는 앞이 안 보이는 상태에서 칼을 흔들어 대고 있고 손에 든 천칭도 볼 수가 없다. 이 그림은 본래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부리며 소송을 일삼아 수많은 불필요한 논쟁들로 사법 기관의 업무를 마비시키는 소송광들을 풍자하는 것이었다.”

▲ 알브레히트 뒤러, <정의의 여신>, 목판화, 1494

본래 정의의 여신은 눈을 뜬 여신이었다. 지혜로운 눈을 가진 여신이었다. 그런데 소송에 개입하는 무리들이 정의의 여신의 눈을 멀게 했다. 눈을 가려버렸다. 그 순간 정의의 여신은 저울의 눈금을 정확히 볼 수 없게 됐고, 아무 것도 안보이는 상태에서 ‘조자룡이 헌 칼 휘두르듯’ 맘껏 칼을 휘두르는 위험한 여신이 되고 만 것이다.

“몇 십 년이 지나자 눈을 가린 정의의 여신을 그린 그림은 전 유럽에 유행하게 되었는데, 무엇 때문인지 여신의 눈을 가린 안대는 사법기관의 공평성을 상징하게 되었다. 속세에서 떨어져 있기에 진리를 볼 수 있는 고대의 예언자처럼 말이다.[프랑수아 오스트(Francois Ost), ”법을 이야기하기, 사법적 상상력에 기반하여(Raconter la loi, aux sources de limaginaire juridique)“, 2004 ; E. 피라, 이충민 역, ”법은 사회의 브레이크인가, 엔진인가“, 모티브북, 2009에서 재인용]

그래서 눈을 가린 정의의 여신이 마치 공평을 위해 눈을 가린 것처럼 그렇게 재해석 되고 정의의 여신은 어느새 눈뜬 여신이 아니라, 눈을 가린 여신으로 서양 사회에 나타나게 됐고, 마침내 우리 사회에까지 전파되어 오게 된 것이다.

문제는 우리 사회의 정의의 여신이 과연 본래적 의미의 공정함을 위해 눈을 가리고 있는지, 아니면 소송광을 위해, 혹은 법치광을 위해, 혹은 법의 자의적인 집행을 지나치게 선호하는 사람들을 위해 눈을 가린 것이 아니라, 눈을 감고 제멋대로 법의 잣대와 저울과 칼을 행사하고 있는지 여부가 아닐까. 공정한 사회가 진정으로 공정할 수 있기를.

 

   
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로스쿨, 영남대 로스쿨, 전남대 로스쿨,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이번 학기는 이화여대 법대에서 2,3,4학년을 대상으로 '현대사회와 법'이라는 교양과목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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