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햇살이 창문을 통해 방안을 채울 때 즈음, 창 밖에서는 새들이 노래를 부른다. 창 밖을 내다보니, 집을 감싸듯이 서 있는 커다란 나무 위에 같은 하얀 새들이 수십 마리나 모여 나무를 덮고 있다. ‘무슨 새들이 저리도 많이 모여 있나?’ 하는 생각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그 새들이 멸종위기종의 하나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심히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필자가 회상하는 이 장면은 인적이 드문 농촌의 이야기가 아니라, 호주의 수도 캔버라의 아침 풍경이다. 이 나라는 국토면적이 세계 6위에 이르지만 사람이 살기 힘든 사막 지역이 70% 정도를 차지하고 있어 자연환경이 마냥 여유롭지만은 않다. 이러한 호주에서 그것도 수도 캔버라 도심에 어떻게 멸종위기에 처한 새들이 번성할 수 있을까? 이것은 ‘도시숲의 힘’이다. 실제로 캔버라를 비롯한 호주의 도시들은 시내 어디를 가도 100년은 살아낸 거목들이 쉽게 눈에 띈다. 숲이 도시 전반에 걸쳐 건조물들과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돼, 도시숲이 시민들의 삶의 일부가 되었다.
쉽게 걸어 다닐 수 있는 숲은 시민에게 주는 편익이 크다. 러시아의 빛의 도시로 잘 알려진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내에는 왕궁과 역사적 건축물 주변에 대규모의 도시숲이 위치해 시민들의 넉넉하고 편안한 휴식을 책임지고 있다.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도 큰 잔디밭 공원이 아닌 숲으로 조성되었기에 시민들에게 큰 매력을 준다.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관통하는 시유림은 기존에는 목재 생산을 통한 경제적인 수익 목적이었지만, 이제는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교육적, 생태환경적인 기능을 하며 공간 제공의 가치를 창출해내고 있다.
또 독일 프라이부르크 보봉 마을은 지속가능한 생태마을 조성을 목표로 친환경적인 에너지 시스템을 갖춤과 동시에, 마을 전체에 넉넉하게 수목을 심어 도시숲과 어우러진 삶을 추구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녹색 통로 개념의 파크 커넥터(Park connector)를 조성하여, 통행로의 역할을 함과 더불어 도시민의 삶과 환경의 질을 향상시키도록 하고 있다. 서울시도 개별적인 숲공간을 늘리고 있다.
숲길은 건강도시의 필수조건
이미 복잡한 도시 공간에 획기적인 도시숲의 조성이 가능할까? 영국에서 2019년 초부터 진행하고 있는 맨체스터와 주변 지역에 대한 보행네트워크 확장 프로젝트(Bee Network Project)를 살펴보자. 여기서 말하는 보행네트워크는 보행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보편화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는데, 공간의 연결부는 가로수와 공원 등 도시숲으로 충실하게 채워지도록 계획하고 있다. 또 2012년 러시아 모스크바에 제안된 지속가능한 미래도시 모델도, 보행을 위한 네트워크와 도시숲 조성이 중심적인 구성요소였다. 이처럼 지속가능한 미래형 도시에서 보행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필수적인 요소이다.
서울도 산악 지역에는 숲이 있어서 양으로는 넉넉하지만, 시민이 여유롭게 걸어 다닐 만한 평탄한 숲길은 없는 편이다. 평탄한 도시숲도 산림과 마찬가지로 맑은 공기와 그늘 쉼터, 다른 동식물들이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서식처를 제공한다. 푸르름을 통한 정서적인 효과는 자연에서만 얻을 수 있는 독특한 가치이다. 미세먼지를 저감시키고 열섬을 방지하는 등의 환경 보전의 효과도 크다.
고도성장과 급격한 도시화의 과정에서 심화되어 온 각종 스트레스에도 도시숲은 구원의 손길이나 다름없다. 흔히 고밀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겪기 마련인 소음분쟁이나 공동체 구성원 간 정서적 갈등 또한 도시숲이 있으면 달라진다. 도시숲에서는 공동체 구성원 간 소통이 자연스레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걷고 싶은 도시를 만들자
‘걷기’는 시민에게 건강을 선사한다. 사람의 몸은 걸을 때, 동적 균형을 지속할 때 안정성을 최고로 유지할 수 있다. ‘행선(行禪)’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또 ‘걷기’는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지속가능한 도시의 방법론이기도 하다. 우리는 폭발적인 도시화를 감당하기 위해, 건축물의 밀도를 높여왔고 차로의 밀도 또한 높여왔다. 그렇게 시스템적인 편리성과 효율성을 추구하는 동안 ‘걷기’와 ‘소통하기’는 잃어버렸다. 인간이라는 생태적 존재를 억압해온 것이다. 같이 걷고 이야기 할 수 있는 문화를 다시 살려낼 때가 되었다.
걷는 일 자체는 도시 어디에서도 가능하겠지만, 소통까지 동반할 수 있는 장소를 조성하는 것은 쉬운 문제는 아니다. ‘좋은 걷기 장소’는 환경의 쾌적성과 함께 즐길 거리와 이야깃거리가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노인과 어린이, 장애인 등 보행약자의 이용에도 제한되는 요소가 없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안전하고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보행은 인권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형이 울퉁불퉁하고 사람들이 몰려서 거주하고 있어 대중교통의 사업성이 좋다. 보행로 연결만 해주면 보행을 위한 환경이 손쉽게 조성될 수 있다. 대중교통에 접근하는 시민이 걸어다니는 도시로 만들기도 쉬운 것이다. 보행로를 자전거도로보다 우선적이고 체계적으로 계획하고 추진하는 게 필요하다. 이것이 시민에게 더 실감나는 편리이기 때문이다. 온실가스 또한 대폭 줄일 수 있다.
서울이 걷기 좋은 도시가 된다면
멋진 도시숲을 걸으며 서울을 활보할 수 있다면 어떨까. 서울에는 수많은 개별 녹지들이 여러 가지 이름과 형태로 존재하고, 또 새롭게 조성되고 있다. 흩어져 있는 녹지들을 연결하며 도시를 관통하는 연속적인 보행이 가능한 숲길이 있다면, 앞에서 언급되었던 효과들은 더욱 극대화될 것이다. 어느 곳에서나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접속하기만 하면 여유롭게 오랫동안 걸을 수 있는 생태적인 숲길.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서울의 지형적 특성을 고려한 ‘능선그린네트워크’를 구체화시키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가령, 보행으로 이동할 때 서울보행숲길을 걸어 이동하고, 숲길에서 나온 후엔 목적지까지 도보나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도착하는 것이다. 얕은 능선을 활용해 숲길을 조성하면 지대가 높지 않아 사업비도 저렴할 것이다. 또 주변보다 높은 곳을 숲으로 변화시킴으로써 그 너머의 숲을 기대하게 하는, 경관에 대한 심리적 기대효과도 클 것이다.
현재 서울의 능선 지역 중 상당부분은 재개발이 되어 숲이 아닌 고층 건물이 들어서 있다. 남아 있는 능선 지역을 도시숲으로 하는 것을 선제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미 공원화 되어 있는 구역이나 구릉지 녹지를 연결하면 숲조성이 어렵지 않은 곳이 많다.
가령 강남만 하더라도 우면산에서 서리풀공원을 따라 내려온 녹지대를 가톨릭 서울 성모병원을 거쳐 고속터미널까지 연결하기가 어렵지 않고, 거기서부터 한강까지 약간의 인공적 시설만 더하면 뛰어난 보행숲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 거기서 강북으로 연결하면 용산가족공원과 남산, 그리고 4대문안을 거쳐 종묘와 북한산까지 연결되는 ‘연속적인 서울숲’으로 바꿀 수 있다. 서울의 상징이 될 만한 숲이자 숲길의 탄생이다.
보행시대를 열어가는 행정을 기대한다
약간만 노력을 기울이면 도시숲이 가능한 곳이 많다. 꼭 연결해야 하지만 물리적으로 어려운 곳은 예산 투입을 병행하는 ‘결합개발제도’를 적용하면 된다. 결합개발제도는 도시경관의 보호 및 구릉지 일대의 노후·불량 주택의 정비를 위해, 서로 떨어진 둘 이상의 지역을 하나의 구역으로 지정하여 개발사업을 시행하는 것이다. 이를 그린벨트 내 빈 땅과 시내의 밀집한 곳을 바꿔 숲을 조성하도록 하는 제도로 업그레이드 해보면 어떨까. 경관이 좋은 곳에 단독주택가를 유치하는 동시에, 그 수익으로 도시숲과 주거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이다. 기존 거주자들에겐 더 쾌적한 주거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
또 숲길을 본격 조성하면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고용이 창출될 것이고, 유지관리에 주민참여형 공공근로도 지속적으로 요구된다. 그린 뉴딜의 구조를 실천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서울이 시범을 보이면 전국적이고 글로벌한 파급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지구촌을 건강도시로 바꾸는 길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의 ‘보행시대’를 열어갈 수 있다. 수백 년전 유럽이 지구를 개척한 ‘대항해시대’에 버금가는, 인권과 건강의 ‘대보행시대’를.
/ 이상훈 한양대 도시대학원 교수, 이원영 수원대 교수·국토미래연구소장
* 이 기사는 <민중의 소림>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