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멀칭 대신 볏짚이나 녹비로 멀칭을 하면 흙이 건강해져서 병충해가 거의 없고 농약을 치지 않아도 된다. 몇 평이라도 직접 농사를 지으면 이런 건강한 고추를 먹을 수 있고, 그런 농산물을 찾게 된다.
봄이 지나고 있다. 복숭아꽃이 만발하고 고비, 고사리, 고들빼기, 참취. 도라지. 잔대, 삽주등 산나물이 지천으로 나오고, 밭에는 쑥, 흰당근 순, 머위가 대를 올리고 있다. 밥상에는 각종 봄나물로 넘쳐난다.
이곳은 전남 곡성. 필자는 코로나19 ‘덕택’에 산과 밭을 오가면서 여유로운 날을 보내고 있다. 마스크 쓸 일도 없고, 사람들이 밀집해 있지도 않다. 사람보다 푸르른 산과 나무, 각종 새와 동물을 더 많이 만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저절로 이루어지고 있다. 농가마다 못자리를 준비하느라 볍씨를 손질하고, 밭에 씨앗을 심기 위해 호미로 밭을 다듬고 있다.
예년 같으면 토종씨앗 수집 등으로 전국을 돌아다니느라 분주한 나날을 보냈을 터였지만 코로나19가 준 ‘강제된 휴식’이 은근히 고맙다. 도시에 나갈 일도 거의 없으니 돈 쓸 일도 없다. 어차피 자연이 주고, 힘써 농사를 지으니 먹을 것도 걱정이 없다.
얼마 전에는 도시에 사는 조카들이 내려왔다. 부모는 출근하고 아이들은 학교를 가지 못하고 집에 갇혀 컴퓨터 게임에만 몰입하고 있었다. 방학에만 왔던 조카들은 여름에는 더워서 계곡과 집 안에서만 지냈었고, 겨울에는 산책만 겨우 하고 추위로 방안에서 주로 보냈던 것과는 달리, 처음으로 봄기운 가득한 날에 시골에 와 산과 들을 다니고, 밭에서 호미질을 하고, 마당에서 개들과 뛰어 놀았다.
건강한 먹거리는 도시민은 누리기 힘든, 농자의 특권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마당에 나가 개들과 인사를 나누고 돌과 나뭇가지를 가지고 놀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가공식품과 과자도 찾지 않고, 아이들이 직접 캔 쑥으로 된장국을 끓여 먹고, 작년에 담가두었던 오이지와 집에 있는 찬거리로 자신들이 직접 김밥을 만들어 주면서 시골 밥상을 흔쾌히 맛있게 즐겼다. 어두워질 무렵 아이들은 아침에 산을 돌면서 한 개씩 주어온 땔감을 아궁이에 넣는 색다른 재미를 맛보고, 어둠이 내려서야 잠이 들었다.
반나절 동안 모종 하우스 안에서 토마토, 참외, 아욱, 상추 등 작은 손에 깨알 같은 씨앗을 하나씩 포트에 넣으면서 ’꼬마 농부‘로 익숙하게 일을 마무리했다. 건강한 농사도 알게 되었다. 가령 비닐멀칭 대신 볏짚이나 녹비로 멀칭을 하면 흙이 건강해져서 병충해가 거의 없고 농약을 치지 않아도 된다. 몇 평이라도 직접 농사를 지으면 이런 건강한 고추를 먹을 수 있고, 이런 농산물을 찾게 된다. 이런 생태적인 가치사슬이 농촌을 살리고 지구를 살린다.
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하고 농촌에서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살아가고 있지만, 소비 밀집지역인 도시에서는 ’생활‘을 마비시켰다. 소비를 근간으로 성장하는 자본주의 경제를 어쩌면 회복불능으로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코로나는 제일 먼저 무한 이동의 욕망에 제동을 걸었다.
이동이 많을수록 돈이 들고, 사고율은 높아지며, 무차별적 군중 관계가 많아진다. 이동이 많아질수록 대기업이나 다국적 기업이 돈을 벌고 다단계 경제적 구조가 된다. 코로나가 지구환경을 깨끗하게 했다는 보고도 무한대의 이동을 규제했기 때문이다. 이번 바이러스는 무한대의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제동을 걸고, 돈이 덜 드는 삶을 연습시키고 있다.
얼마 전 뉴스에 따르면 코로나 이후 식량 문제에 봉착될 것을 우려하여 베트남과 같은 쌀 수출국에서는 쌀 수출을 금지했다. 환금성 수출 작물에만 열을 올리거나 반도체와 자동차를 팔아 식량을 사들이겠다는 식량주권을 포기한 국가에서는 치명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국가의 자립도만이 아니라 개인의 자립도도 실험대에 오른다. 이런 시기엔 언제나 그렇듯이 도시보다 농촌이, 농사짓는 농자가 살만하다. 물론 코로나 때문에 학교 급식이나 대형 마트에 납품제동이 걸린 전업농가들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이는 국민 모두가 겪는 것이다. 다른 선택지가 좁은 도시민에 비해 농자는 유연한 선택이 가능하다. 가령 소비자 직거래 등으로 다른 길을 열어갈 수도 있다. ‘접속의 시대’에는 더욱 다양한 선택이 가능하다.
면역력을 키우는 것은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일상적으로 적당한 육체노동을 통해 몸을 움직이고 생명력 있는 건강한 음식을 먹는 것이며 무엇보다도 휴식 있는 삶이다. 도시의 삶이란 휴식이 없는 너무나 바쁜 일상이다. 휴일에도 어디론가 이동하거나 텔레비전을 보거나 소비하는 삶으로 인해, 휴식이라기보다 우리도 모르게 스트레스가 가중화된 삶이 아니던가.
바이러스가 인류생존에 가장 큰 위협요소로 다가온 것은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독감예방 주사를 매년 맞은들 독감에 걸리지 않는 것도 아니다. 코로나19를 치료하는 백신이 나오더라도 또 다른 바이러스의 위험에 노출된다는 것은 생태적이고 자립적인 삶에 천착해야 함을 가르쳐 준다. 이번의 ‘강요된 휴식’이 말하고 있다. 너무 숨 가쁘게 살고 있으니 ‘쉼’이 필요하다고, 그리고 권유하고 있다. ‘농사를 지을까요?’라고.
변현단 : 전남 곡성에서 토종씨앗으로 전통농사를 짓는 농부이자 전국토종씨앗모임인 ‘토종씨드림’ 대표. 자연에 천착한 자립적 농사를 짓고 있고, 토종씨앗들이 제 소명을 다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숲과 들을 접시에 담다: 약이 되는 잡초음식』, 『토종 농사는 이렇게』, 『씨앗철학』, 『소박한 미래』 등이 있다.
* 이 기사는 <미디어오늘>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