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개구리처럼, 장례 방법에 관한 유언은 꼭 지켜야 할까
청개구리처럼, 장례 방법에 관한 유언은 꼭 지켜야 할까
  • 최재천 변호사
  • 승인 2010.10.12 11: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재천의 시사큐비즘]
   

1. 엄마가 죽거든 산에 묻지 말고 냇가에 묻어다오

뭐든지 반대로 하는 아기 청개구리 때문에 엄마 청개구리는 걱정이 많았습니다.
‘나를 산에 묻어 달라고 하면 냇가에 묻겠지?’
엄마 청개구리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습니다.
“아가야, 엄마가 죽거든 산에 묻지 말고 냇가에 묻어다오.”
힘겹게 말을 마친 엄마 청개구리는 눈을 감았습니다.
“엄마, 엄마 말대로 할게요. 개굴개굴.”
그 날부터 아기 청개구리는 냇가를 떠나지 못했습니다.
“비가 오면 안 되는데, 개굴개굴. 우리 엄마 무덤 떠내려가는데, 개굴개굴.”
지금도 비가 올 때면 아기 청개구리의울음소리가 들린답니다.

▲ (한국전래동화 권 23, <말 안 들은 청개구리> (웅진출판, 1991) 표지 그림 일부)

누구나 다 아는 전래동화 청개구리 이야기입니다. 저도 간혹 아이들이 말썽 부릴 때면 이 이야기를 해 주곤 합니다. 참고로 이 전래동화는 중국과도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춘추전국시대를 다룬 소설 '열국지'로 유명한 명말 문인 풍몽룡(馮夢龍, 1574년~1646년)이 <고금담개(古今譚槪)>에 옮겨 놓은 노인과 불효자에 대한 구전 설화가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산에 묻히길 바라는 마음에서 ‘내가 죽거든 반드시 물 속에 장사지내다오’라고 유언하지만, 역시 우리 나라 전래동화처럼 정말로 수장해버린다는 얘기입니다. 민간 구비문학을 주로 체계화한 분이었기 때문에 효와 관련한 사상이 지배질서를 구축하고 있던 동북아 질서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이야기였겠지요.

만일 현실에서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어떻게 되나요. 돌아가신 부모님이 장례 방법을 정해 놓았는데 자식들끼리 의견이 엇갈리거나 혹은 도리어 효도하겠다는 생각으로 장례 방법을 달리할 경우 어떻게 될까요. 돌아가신 분의 유언이나 의견이 절대적일까요 아니면 유체나 유골을 상속받은 자식이나 손자의 뜻이 먼저일까요. 또 엄마 청개구리처럼 만일의 경우를 염려해 해석의 여지까지 남겨두었다면 어떻게 될까요?

2. 2008년 대법원 판례가 있습니다

지난 2008년 11월 20일 대법원에서 선고가 있었습니다.(대법원 2008.11.20.선고 2007다27670 [유체인도 등])
워낙 중요한만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내려져야 했습니다.그래서 다수 의견과 제1 소수의견, 제2 소수의견이 맞서는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지요.

이 사건을 굳이 법률적으로 표현하자면 이렇습니다. 망인이 생전행위 또는 유언으로 자신의 유체·유골의 처분 방법을 정하거나 매장장소를 지정한 경우 그 효력에 대한 판단입니다.

3. 다수 의견은 ‘도덕적 의무에 그친다’(이용훈 대법원장을 비롯한 10인의 대법관)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첫째, “생전행위 또는 유언으로 자신의 유체·유골을 처분하거나 매장장소를 지정한 경우에,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지 않는 이상 그 의사는 존중되어야 한다.”
둘째, (하지만) “의사를 존중해야 하는 의무는 도의적인 것에 그치고, 무조건 이에 구속되어야 하는 법률적 의무까지 부담한다고 볼 수는 없다.”
다시 설명하자면 의사는 존중될 필요가 있지만 그것은 도덕적 의무에 그칠 뿐이고 강제성 있는 법률적 의무는 아니라는 겁니다. 아기 청개구리에게 자유가 있다는 겁니다. 산으로 가도 되고, 강가로 되도 된다는 것이 다수 의견입니다.

4. 반대 의견 1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대법관 박시환, 전수안)

다수 의견에 반대합니다. “정당한 사유 없이 피상속인의 의사에 반하여 유체·유골을 처분하거나 매장장소를 변경하는 것까지 허용된다고 볼 수는 없다”라는 것입니다.
돌아가신 분의 의견이 한마디로 절대적이라는 거지요. 다만 정당한 사유가 있을 때는 변경할 수 있는 여지는 남겨 두었지요. 그럼에도 생전의 의사표시는 사후에까지 유지시켜 법적 구속력을 인정하자는 것이 두 분의 의견입니다. 한 마디로 도덕적 의무가 아니라 법적 의무라는 것입니다.

상속인에게 유체․유골․장례 방법 등에 대한 권리를 귀속시킨 취지는 돌아가신 분에 대한 경애나 추모의 점에 있기 때문에 함부로 이 권리를 남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아기 청개구리는 엄마 말을 꼭 지켜야하는 것입니다.

다만 전래동화에서는 엄마의 내심과 바깥으로 표현된 생각이 달랐지요? 이 때 법은 어느 쪽 의사를 존중해야 하나요? 아기 청개구리는 엄마의 속내까지 짐작해서 장례 행위를 해야 하나요? 법은 외부적 표시의사를 기준으로 따집니다. 그렇다면 전래동화에서 청개구리는 엄밀히 따지고 보면 불효자라 할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엄마의 착오인 셈이지요.

5. 반대 의견 2도 ‘법적 의무다’ (대법관 안대희, 양창수)

역시 다수 의견에 반대합니다만, 논리는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망인이 자신의 장례 기타 유체를 그 본래적 성질에 좇아 처리하는 것에 관하여 생전에 종국적인 의사를 명확하게 표명한 경우에는, 그 의사는 법적으로도 존중되어야 하며 일정한 법적 효력을 가진다고 함이 타당하다.”
도덕적 의무가 아니라 법적 의무라는 것이지요? 반드시 지키라는 겁니다.

“나아가 망인의 의사대로 이미 장례나 분묘개설 기타 유체의 처리가 행하여진 경우에는,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유체의 소유자라고 하더라도 그 소유권에 기하여 그 분묘를 파헤쳐 유체를 자신에게 인도할 것을 청구할 수 없다”고까지 판시합니다.

두 분 대법관은 사람이 자신의 신체에 대해서 갖는 권리는 인격권적인 성질의 권리라고 규정합니다. 그리고 인격권은 사후에도 법적 효력을 갖는다고 보는 거죠.

나아가 “장례 기타 유체의 사후처리에 관하여는 많은 외국의 예를 들 것도 없이 망인의 의사가 1차적 기준이 된다”고 선언합니다. 외국의 대부분의 예는 당연히 당사자의 의사를 존중하는 쪽이거든요. 사람의 신체는 그의 본질적 속성이고, 인간의 존엄은 사후에도 존중되어야 하기 때문에 당사자의 의사는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 두 분의 논리입니다.

법이라고 꼭 어렵지만은 않지요? 늘 강조드립니다만 법은 ‘상식’입니다. 쉽지 않으면 법이 아닙니다. 법을 어렵게 만들고 어렵게 해석하고 전문가들의 영역으로 남겨놓는 순간 시민들은 법적 질서에서 철저히 소외되고 시민들의 권리는 정치권력자나 법조권력자들의 손으로 넘어가버리고 만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로스쿨, 영남대 로스쿨, 전남대 로스쿨,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이번 학기는 이화여대 법대에서 2,3,4학년을 대상으로 '현대사회와 법'이라는 교양과목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11길 16 대형빌딩 402호
  • 대표전화 : 02-734-7336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석만
  • 법인명 : 뉴스렙
  • 제호 : 뉴스렙
  • 등록번호 : 서울 아 00432
  • 등록일 : 2007-09-17
  • 발행일 : 2007-09-17
  • 발행인 : 이석만
  • 편집인 : 이석만
  • 뉴스렙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렙. All rights reserved. mail to cetana@gmail.com
  • 뉴스렙「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조현성 02-734-7336 cetana@gmail.com
인터넷신문위원회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