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통도사 강연자를 찾습니다
1912년 통도사 강연자를 찾습니다
  • 조현성 기자
  • 승인 2020.06.17 14: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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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응 스님 108년 전 통도사 강연 필사본 자료 발굴
법응 스님이 발굴한 1912년 통도사 강연 내용 가운데 일부 (사진=법응 스님)
법응 스님이 발굴한 1912년 통도사 강연 내용 가운데 일부 (사진=법응 스님)

 

108년 전 통도사에서 열린 강연 전문이 담긴 필사본이 발굴됐다.

불교사회정책연구소장 법응 스님은 "교계 지도자급 인사가 통도사에서 강연한 것으로 추정되는 강연 필사본을 입수했다. 전문 학자로부터 귀한 자료라는 의견을 받았다"고 했다.

스님이 입수한 책자는 1912년 1회, 1924년 2회, 총 3회에 걸쳐 통도사에서 강연한 내용을 적은 것이다. 강연자가 직접 작성한 원고인지 다른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필사본 속 문장의 흐름이 녹취록과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현장감이 있다는게 스님의 설명이다.

연설자와 필사자 기록은 없지만 '대정 13'년이라 표기된 1924년 7월 12일자 강연문의 마지막 장에 한글로 '조소'와 '<·:·>'  모양이 표기돼 있다.

스님은 자료를 편의상 기록 순서대로 총 3장으로 분류했다.

강연문 제1장은  "인생은 백절 불굴의 용기가 유하여야 성공의 과를 취한다"며 청중에게 용기를 갖고서 일생을 살아갈 것을 동양역사를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당시 강연 참여자들 대부분이 청년들이었던 것으로 보아 일제강점의 치하에서 청년들에게 자주와 독립의 용기를 북돋우려 했던 정황이 읽힌다.

마지막 장에서는 "우리는 반드시 이러한 용기를 철두철미하게 진작해서 형산백옥(荊山白玉)이나 천장미목(千長美木)도 땅속이나 산중에 묻혀 있으면 썩어 없어질 것으로 청년들은 정체돼 있지 말고 세계정세를 잘 파악하고 심각성을 깨달아 종교인으로서 우리의 책무를 다하여서 청년다운 자세를 세상에 들어내자"고 했다.

제2장은 '우리의 새 생명' 제하로 "우리가 새 생명을 구하는 길은 자유 · 평등 · 박애를 사회 저변에 구현하는데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동서양 자유 쟁취 역사와 유명 인물의 자유와 평등을 갈구한 사례를 들은 내용은 불교소년단에게 독립 의지를 심으려는 강연으로 이해된다.

제3장은 '불교와 예술' 제하로 조선 500년간 유교 폐단으로 자유가 억압되고 예술인을 무시한 결과로 우리나라가 발달하지 못하고 고난을 겪고 있다는 내용이다.

강연자는 예술을 회화, 음악, 영화 등 당시 동서양 고전과 신문명 사례를 들어가면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특히 불교는 불상 조각 등 예술을 통한 신심의 고양과 포교가 가능하므로 불자들이 예술 발전에 앞장설 것을 주문했다.

"우리 불교 내에는 예술이 있고 더구나 여러분은 불교신자이니까 예술을 잘 읽혀주시기를 바랍니다"라는 구절은 연설자가 스님이 아닐까 추측하게 한다. 청중도 스님과 불자들로 구성됐을 것으로 짐작된다.

법응 스님은 "세 편의 연설문은 시종일관 삶은 백절불굴의 용기가 필요하며, 자유 평등 박애가 인간 삶의 기본 조건이고, 예술을 선양해야만 국가가 발전하고 국민이 행복하다는 내용, 그리고 청중에게 의미 있는 삶과 목적한 바를 성취하라는 다분히 계몽적이고 진취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비록 100여 년 전 연설문이지만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많은 귀감이 되는 내용들"이라고 했다.

스님은 "본 문헌 강연자와 필사자 파악, 내용의 시대사적 조명, 그 외 당시 통도사의 상황과 위상 등 불교 근대사 관련한 내용은 전문 학자의 몫으로 돌린다"면서 "만해 경봉 스님 이종천 등 당대의 선지식들 가운데 한 명의 강연으로 짐작된다"고 했다.

통도사는 지난 1906년 4월 1일 '명신학교(明新學校)'를 설립하고 같은 해 6월 3일 구하 스님이 학감으로 취임했다. 1910년 3월 16일, 졸업생 김정석(靖錫)은 경봉 스님(1892~1982)이다.

통도사 주지에 취임한 구하 스님은 1911년 11월 11일 조선총독부로부터 통도사 사립불교명신학교 설립자로 인가 받았고, 1913년 3월 8일 교장으로 취임했다.

1916년 구하 스님은 통도사 학림을 설립하고 경내 찬자각을 교실로 사용했다. 구하 스님이 주지에서 물러난 1925년에 통도사 학림도 폐교됐다.

만해 스님은 1913년 통도사에서 대장경을 열람하고 강사로 활동했다. 통도사의 명신학교, 학림이 지방의 만세운동의 주축이 됐고, 통도사 지방학림 출신은 서울 중앙학림에 진학해 훗날 일제강점기 불교 청년활동의 주축이 된다. 그 중심에 만해, 백초월 등 선각자 스님들이 있었다.

법응 스님은 "본 문헌의 강연자와 필사자가 현재는 파악이 안된다. 이른 시일 내 강연자와 필사가가 파악되길 바란다"고 했다.

스님은 "필사본 내용 관련 인물이나 자료 정보를 소장하신 분은 불교사회정책연구소나 김광식 교수(동국대)에게 연락해 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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