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청과 산수화를 접목해 새로운 장르를 만들다
단청과 산수화를 접목해 새로운 장르를 만들다
  • 박선영 기자
  • 승인 2020.07.15 13: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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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청산수화’ 개척 박일선 작가
▲ 박일선 작가.

박일선 작가의 전시가 지난 6월 30일까지 서울시 서대문구 원앙아리 갤러리에서 열렸다. 그곳은 현대적인 인테리어의 카페로 갤러리를 함께 하는 곳인데, 박 작가의 그림은 그곳 분위기와 썩 잘 어울렸다.

박 작가는 자신이 기고하는 미술잡지를 꺼내 단청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먼저 솔거가 황룡사 벽에 노송을 그렸는데 새들이 날아들다 벽에 부딪혀 떨어졌다는 《삼국사기》 권 48 〈열전〉 ‘솔거(率居)’ 조 내용을 소개했다. ‘솔거’ 조에는 “세월이 오래되어 색이 바라자 절의 스님이 단청을 고쳐 그렸더니 까마귀, 참새가 다시는 날아들지 않았다.”라는 대목이 등장한다.

박일선 작가는 ‘단청(丹靑)’이라는 말이 최초로 등장했다는 데, 또 단청의 범위에 벽화가 포함됐다는 데 주목했다. 지금은 ‘단청’하면 ‘문양’을 떠올리지만, 예전에는 채색화 전반, 즉 현재 불화, 민화로 분류하는 것을 통틀어 ‘단청’으로 불렀다는 것이다. 그는 여기에 더해 현대에 와서 ‘화공’의 의미가 ‘장인’이라는 뜻으로 한정되었고, ‘화가’는 예술인을 의미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는 다시 잡지의 다음 페이지를 펼치며 제천 신륵사 벽화와 단원 김홍도의 그림을 같이 보여줬다. “조선시대의 이름 없는 작가의 그림이 단원의 것과 비교했을 때 전혀 부족함이 없다.”고 설명했다. 스스로를 ‘정직한 화공’이라고 칭한 한국 근대미술의 대표 화가 이중섭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박 작가의 말은 예전과 다르게 의미가 축소된 것들과 그것이 굳어져 고정관념이 된 것에 대한 지적이었다. 단청이나 그것을 작업하는 작가의 의미가 편협해진 것과 단청이 문화재로만 존재하는 것, 살아서 대중과 만나기 어려워진 것이 모두 연관돼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옛것이라는 이유로 좁혀진 카테고리를 벗어나 생활과 밀접하게 영역을 확대하자는 게 박 작가의 바람이다.

▲ 박일선 | 1025 독도-1|75x107cm|한지, 단청안료, 호분, 먹|2015

37년 은행원, 퇴직 후 ‘화가’ 꿈 이뤄

박 작가의 이력은 독특하다.

중학교에서 미술반을 하면서 수상도 많이 하고 소질을 인정받았다. 화가의 꿈을 키웠는데 집안 형편 때문에 상고에 진학해 은행에 취직했다. 하지만 그림에 대한 미련을 접지 않고 1981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했다. 당시에 남자가 야간에 공부할 수 있는 4년제 미술대학은 홍익대학교가 유일하였으며, 전공도 도안(그래픽디자인)과 공예뿐이어서 그나마 회화와 연관이 있는 도안과를 선택했다. 4전 5기 도전해서 군 제대 후에 겨우 입학할 수 있었다.

그는 회사를 다니면서 학업을 병행하는 일이 고단하지 않았다. 하고 싶던 공부였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이직을 고민했다. 도안과에서 디자인을 배웠기 때문에 동기들은 광고회사에 많이 취업했다. 그도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보러 다녔다. 그걸 알고 어느 날 지점장이 불렀다. 선진금융에 대한 외국 사례를 들며 은행원이 국제사회에서 각광받는 직업이라는 말로 그를 설득했다. 지점장의 말도 조금은 영향이 있었지만 어머니의 뜻을 전적으로 따랐다. 가정을 꾸린 그는 자신이 원하는 길보다는 안정된 생활을 택했다.

직장을 계속 다니며 그림을 그리는 친구, 선·후배의 전시를 보러 다닐 때는 부러움과 아쉬움도 있었지만 직장생활에 몰두하며 이조차도 모두 사라졌다.

그러다 2010년, 건강이 나빠져서 병원 신세를 지면서 죽을 수도 있다는 충격에 술도 끊게 되었다.

“시간이 무한한 줄 알다가 죽음을 목전에서 직면하게 되었지요. 잠시 멈추고 삶을 되돌아보았어요. 죽기 전에 할 게 뭘까 생각하기도 했고요.”

▲ 박일선 | 10326 백령도 두무진-2|73x112.5cm|한지, 단청안료, 호분, 먹|2017

어느 날 우연히 신문에서 한국문화재재단이 운영하는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의 작은 모집 광고를 보았다. 그림 분야에는 ‘단청’이 유일했는데 그는 당장 등록을 했다.

그가 불교 냄새가 물씬 나는 단청을 배우겠다고 나설 수 있던 것은 우선, 알게 모르게 불교를 접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다닌 대동중학교가 학교법인 동국대학교가 운영했던 곳이라 일주일에 한 번 교학시간이 있었다. 부처님오신날 제등행렬에도 참석했고, 토요일이면 법회에 참석해야 교학 점수가 나오니 어쩔 수 없이 절 분위기를 접했던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술을 끊고 나니 사람들과 어울릴 일이 적어지고 반면에 시간은 많아졌다. 삶의 후반기에 할 일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말이다.

수업은 국가무형문화재전수교육관에서 주 1회 3시간 1년 과정으로 진행됐고, 1년을 마치면 다음 레벨로 올라갈 수 있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48호 단청장 전수교육조교 양선희 선생에게 배웠다. 그는 2011년 기초반, 2012년은 연구반, 2013년부터 2017년까지는 전문반 과정을 이수했다.

기초반에서 수강할 때부터 그는 단청의 매력에 빠졌다. 2011년 여름, 단청을 배운 지 채 5개월도 되지 않은 시점에 겁 없이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에 출품해보겠다고 덤볐다.

“양선희 선생님을 만난 게 행운입니다. 선생님의 작업실이 용인인데 제 직장과 가까워서 공모전 준비하는 동안은 매일 그곳으로 퇴근해서 서너 시간씩 선생님의 조언을 들으며 작업했지요.”

다시 태어난 것 같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니까 그림 그리느라 몇 시간 못 잔 다음 출근해도 힘든 줄을 몰랐다.

경복궁 교태전 건순합의 대들보 머릿초를 그려 2011년 열린 ‘제36회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에 입선했다. 입선을 하자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도 생겼고 더 매진할 기회를 선물 받은 것 같았다.

2012년 말 은행 생활을 접었다. 퇴직을 했지만 공백을 느낄 틈도, 달라질 것도 별로 없었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더 늘어난 게 차이라면 차이였다.

그는 화단에 등단하고 싶었다. 중학교 때부터 늘 가슴에 품었던 꿈을 이루고 싶었다. 가장 빠른 길이 뭘까 고민하다가 공모전 출품을 결심했다.

붓을 손에 잡는 시간이 늘수록 그의 실력도 비례해 늘어갔다. 퇴직 후 여유시간이 늘면서 그는 자신의 디자인 전공을 살려 산수화와 단청의 문양을 접목시키려고 시도했다. 처음에는 작은 크기로 실험했고 시행착오도 겪었다. ‘단청산수화’라는 독자적인 장르는 이렇게 탄생했다.

어느 정도 자신이 생기자 본격적으로 공모전에 출품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2012년에는 ‘대한민국 불교미술대전’과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입선했지만, 2013년에는 ‘단원미술제’과 ‘대한민국 남농미술대전’, ‘서울미술대상전’에서 입선하고, KOTRA ‘한류미술공모전’ 동상에 이어 ‘겸재진경미술대전’ 대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게 됐다.

석수의 망치질처럼 수없는 채색작업

박 작가는 2015년 드디어 첫 개인전 ‘몽유금강산’을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그림손갤러리에서 개최했다.

박 작가 자신보다 더 감격한 것은 어머니였다. 학창시절에는 집안 사정을 이유로, 결혼 후에는 가정을 보살피라는 이유로 그림 그리는 일을 만류하던 어머니는 그가 50대 중반에 꿈을 이루는 것을 보고 “미안하다.”며 눈물을 훔쳤다. 전시하는 일주일 동안 매일 어머니가 갤러리에 오신 걸 보면 얼마나 감격하셨는지 알만하다. 2년 후 어머니는 돌아가셨지만, 박 작가는 “당신 생전에 개인전을 보여드린 것이 지금 생각해도 다행”이라고 말했다.

박 작가가 시작한 단청산수화는 단청과 회화가 융합된, 특히 겸재의 진경산수화와 단청이 융합된 새로운 장르다. 그는 ‘크로스오버(Cross-over)’나 ‘퓨전(Fusion)’의 뜻처럼 장르 간 경계를 허물어 새로운 장르를 창조한다는 발상을 작업에 시도했다.

▲ 박일선 | 몽유금강산-7|100x122cm|한지, 단청안료, 석채, 호분, 먹|2014

그가 진경산수화를 떠올린 것은 어릴 때 겸재의 〈금강전도〉를 보고 반했기 때문이다. 박 작가는 “나도 저런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겸재 정선이 중국의 그림을 보고 베끼던 당대의 화풍에서 벗어나 우리 산수를 보고 그린 선구자이자 개척자임을 알게 되자 더욱 매력을 느꼈다.

박일선 작가의 첫 전시회에서 고(故) 이석우 겸재정선미술관장은 “겸재정선미술관에 걸린 그의 ‘대상’ 작품을 보면서 강한 인상을 받았고, 그가 단청회화의 새로운 세계, 새 장르의 문을 열고 있음과 그 가능성을 예감하였다.”고 했다. 또 “겸재 그림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자기만의 조형세계를 어떻게 이루어나갈 것인가를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며, △하늘의 변화 △크고 작은 바위와 산의 위치 변화 △앞산 배경의 크기와 원근 조절 △색채의 대비와 보색 등 박 작가의 시도를 높게 평가했다.

박일선 작가의 그림은 본인의 말처럼 “힘들고 고되지만 노동의 희열을 느끼는 중독과도 같은 작업”이다. 한지에 교반수를 바르고 말리는 작업을 반복해 바탕재를 만들고, 단청의 밑그림인 초를 만들 듯이 수많은 봉우리와 계곡, 사찰, 그리고 하늘을 스케치 한다. 밑그림 위에 먼저 만들어 둔 말린 한지를 올려 먹으로 그대로 옮긴 후 전통 단청 방식인 ‘휘채색법’으로 채색한다. 휘채색법이란 그라데이션(gradation)과 같은 기법으로 연한 색에서 같은 계열의 진한 색으로 점차 올려 채색하는 것을 말한다. 휘채색법은 초빛, 이빛, 삼빛으로 나누어 안쪽부터 바깥쪽으로 색을 올려 작업함으로써 입체적인 느낌을 준다.

그는 자신의 작업을 “마치 석수가 정과 망치로 수없이 많은 망치질을 반복해서 돌을 쪼아 조각을 하듯, 옛 여인들이 수많은 밤을 새워가며 오색실을 끼운 바늘로 한 땀 한 땀 수없이 많은 바느질을 반복하여 수를 놓듯이, 끊임없이 고된 붓질을 거듭하는 채색작업을 거쳐 화폭을 채워 나간다.”고 표현했다.

초빛, 이빛, 삼빛의 채색을 완료하면 초빛을 칠한 바깥 가장자리에 먹으로 둘레선을 긋는 ‘먹기화’ 작업을 한다. 먹기화 작업을 완료하면 먹 둘레선 안쪽으로 흰색 둘레선을 긋는 ‘시분’ 작업을 한다. 먹기화와 시분은 옵티컬하고 입체적인 느낌을 강하게 하기 위해서 ‘칠선법’으로 작업하는데, 세필로 철사와 같이 날카롭고 가는 선을 속도감 있게 그어서 끝을 이루면 작품이 완성된다.,

그는 재료 선정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다. 비싸고 좋은 재료를 쓰면 나쁠 것은 없지만 비싼 재료를 고집하는 것은 사치이고 욕심이라 생각한다. 그는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라는 말을 언급하며,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정신을 지향한다.”고 설명했다. 재료나 표현기법 보다는 표현하고자 하는 작가의 정신과 내용, 그리고 표현의 자유로움 쪽에 더 무게를 둔다는 것이다.

박 작가가 자신의 그림에서 가장 기본이면서 핵심이 되는 요소로 꼽는 것은 ‘색’과 ‘결’이다. 그는 “바람결, 나뭇결, 물결, 머릿결, 꿈결 등 ‘결’이란 말이 붙은 단어는 대체로 따듯함과 부드러움, 아름다움이 내재된 느낌을 준다”며 “색의 결을 가장 잘 표현한 예술이 단청”이라고 강조했다. 또 “단청에서 색의 결은 초빛, 이빛. 삼빛으로 표현한다”고 덧붙였다.

겸재를 존경했던 청년은 퇴직 후 인생 2막에 작가로서 ‘단청산수’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수많은 반복과 몰입의 작업, 그 안에서 무념무상(無念無想)의 세계를 체험했지만 그는 ‘미술계에 발을 들인지 이제 8년 차’라며 여전히 신인의 자세로 작업에 임한다.

박 작가는 “그 동안 해보고 싶은 게 너무 많아 캔버스를 꽉 채워 넣었는데 얼마 전부터는 비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촘촘히 빽빽하게 그리고 싶었던 마음을 조금씩 덜어내면서 전보다 간결하고 여백이 많아졌다.

그의 그림에서 그가 보인다. 정직하고 끈기 있는 성품, 이순(耳順)의 여유 있는 모습, 검박한 언행이 그림에 그대로 묻어있으니 참 신기하다.

※ 이 기사는 제휴매체인 <불교저널>에도 실렸습니다.
[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제보 budjn200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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