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욕망의 두얼굴과 바이러스공포
인간욕망의 두얼굴과 바이러스공포
  • 소암 스님
  • 승인 2020.07.23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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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대강백 백운선사의 삶과 행적

지난 겨울에 발병한 코로나19가 좀처럼 종식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2차 3차 감염으로 재확산중이다.
균이 잠복해 있다가 숙주를 만나면 활동이 왕성하다고 한다 손의 접촉과 침으로 옮긴다해서 세정제로 손을 씻고 마스크로 막아내면 사라질줄 알았으나 공기로도 전염된다고 하니 코로나가 변종으로 갈수록 기승을 부린다.
코로나는 계절도 모르는 것 같다 추운겨울에 발병하고 전염되더라도 더운 여름이면 소멸하는 일반독감처럼 계절전염병이 아닌 일년내내 악성균을 퍼트릴 모양이다.
전문가에 의하면 이번의 코로나는 백년전 1차대전중에 발생해 수천만명이 사망한 스페인독감과 맞먹는 전염병이라해서 더욱 두렵다.
눈에 보이는 전쟁만 무서운줄 알았지 눈에 안보이는 세균이 이렇게 인간을 공포에 떨게하고 숱한 생명을 앗아가는지 탄식할 뿐이다.
물론 현대의 첨단과학은 어떠한 신종전염병도 고칠 의료기술과 치료제연구가 항상 준비돼있으나 막상 새로운 전염병을 만나면 병균을 분석해서 백신과 치료약을 개발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게 문제다.
인류사에 나오는 수많은 전염병처럼 코로나도 야생상태에 있다가 동물과 인간으로 전파된다는데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인간들은 지구의 숨은 미지의 장소를 찾아내고 과학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세계를 개척하고 발전시킨 댓가다.
산업혁명이후 1, 2백년동안 세계는 농경 수렵시대를  끝내고 공업산업화를 거쳐 정보화 혁명의 눈부신 우주시대와 마주하고 있다 .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상을 바로 보면서 나이든 세대들은 숨이 가쁘다 그래서인지 십년주기의 세대차이가 존재하고 사고와 가치관도 달라진다. 당연한 차이겠으나 농경시대와 전쟁, 산업화와 개발독재를 거친 세대들과 90년대이후 민주화와 정보문명 ,인권 양성평등의 존중시대로 가면서 사회적인 변화에서 오는 갈등은 한층 두드러지고 있다.
60년대 이전 607080세의 나이든 세대들은 옛날보다 비할데 없이  잘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옛날이 좋았다'라고 장탄식을 내뱉는 경우가 많다.
'추억은 아름답다'라고 한다. 우리의 지난시절은 80년대 이전만 해도 참혹한 수준이었다 군사독재가 횡행해 인권과 자유가 보장되지 않았고 생활도 일반적인 후진국가의 특징을 다 갖고 있었다.
1세기전 한일합방과 일본식민지의 질곡을 겪었고 해방직후의 혼돈과 분단 ,전쟁 독재가 연이어 발생해 국민들은 무엇보다  죽지않고 살아남는 일이 중요했다. 
 
박원순시장과 백선엽장군의 공과 
 
얼마전 세상을 하직한 전 서울시장 박원순은 시골의 가난한 출신으로 서울에 올라와 명문고교와 대학을 마친 수재로 학생시절, 민주화운동으로 시련의 세월을 보내고 개혁을 실천한 정의의 사도였다.
그 어렵다는 서울시장도 세번이나 연거퍼 당선되고 독자적인 행정제도를 확립한 업적도 적지 않는 분이었다 .그러나 호사다마인가 혹은 개혁의 피로일까 아니면 끝없는 인생길에 고독감이 사무쳤을까 본의아닌 여성문제가 화근이 되어 하루아침에 삶의 종지부를 찍었다
벌써 개혁대통령이었던 노무현이 법의 압박감을 못이겨 생을 마감하고 그뒤 민주화에 헌신한 진보인사들이 줄줄이 자의로 비극적인 최후와 타의의 퇴장을 택한 것은 분명 비극적인 일이 아닐수 없다.
아쉬운 것은 공은 크고 죄는 작은 박원순시장이 당당하게 죗값을 치르고 나중에 정치적으로 재기할수도 있을 희망마저 불사른 일이다 
 
그에 비해 '백세장수'를 누린 육군대장1호인 백선엽은 오래 산 것만으로도 칭송의 대상이 될 수 있으나 그분이 피끓는 20대에 일제군대에 복무한 장교로서 '독립군섬멸부대'에 가담했다는 과오때문에 6.25 낙동강전투의 영웅이라는 평가못지않게 그의 일제부역의 그림자는 부정적이다.
그후 군의 후배인 박정희대통령 정권하에서 백선엽은 갖은 화려한 고위공직을 거쳐 소위 부귀영화를 평생 누린 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분이 일제강점기의 장교군인으로 한국독립군을 상대로 싸운것은 분명 반민족적 친일행위다.
근현대사의 왜곡을 바로 잡는 일은 여전히 진행중이라 그분의 공과도 시간을 두고 역사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
다만 백세장수를 누린 분이 젊은 시절 범한 잘못을 솔직히 반성하고 참회했다면 좋았을 것이나 그는 끝내 회피하고 말았으니 유감이다
참고로 일본장교출신이며 조선조말 조선말 명문가출신인 이종찬전 참모총장은 백선엽과 반대로 평생 조상의 친일경력과 일본군복무를 참회하고 살았다
이승만정권때도 계엄령을 거부해 참모총장직을 백선엽에게 넘겼다는 분이고 청렴해서 박정희대통령도 유일하게 존경했다는 철저히 정치중립을 지킨 참군인, 이종찬은 박정희가 유신국회의원으로 추대했으나 임기내내 국회에 한번도 나가지 않았다는 전설적인 장군이었다
국방비사를 쓴 전문기자의 말로는 장면총리가 만일 이종찬을 국방장관에 기용했다면 5.16도 성공할 수 없었다는 것, 당시 민간인출신 현석호국방장관은 군을 너무 몰랐다고 한다
독실한 불자로 한국군역사상 이종찬은 평생 돈과 권력을 탐하지 않은 청빈한 삶을 살았고 반면에 백선엽은 카톨릭신자로  돈과 권력 명예를 탐했다 불교계가 우리군의 스승인 불자 이종찬장군을 새롭게 조명하면 좋을 것이다.

백운스님의 저술과 생사에 초연한 삶 
 
6월중순에 입적한 백운지흥 白雲知興스님은 전설적인 큰 선지식인 장성 백양사의 송만암대종사와 인곡대종사와 부친이 인척관계로 태어날때부터 불연이 깊었다
단명하다고 해서 어린나이에 절에 맡겨져 부모의 정을 그리워했으나 고독한 절집안에서 고통을 잘 견디고 후에 대학승이 되는 밑거름이 됐다
광주에서 고교를 마치고 전 해인대학인 현 경남대학에서 유명한 대학승인 지관스님과 동문 수학했으며 전통불교강원을 수료했다
그리고 경학만이 아닌 참선수행에도 적지않는 정진을 거듭해서 참선과 교학을 함께 연마해 견성성불에는 참선이 중요하지만 교학이 없으면 절름발이수행자가 된다고 보았다
마치 고려불교의 보조국사가 선교쌍수를 주창한 것과 같다
50년대 불교정화개혁시대를 거치면서 교불교를 멀리하고 선불교일변도에 집착하는 오류를 낳았던 시절이다
내가 어릴때 모신 대선지식들도 선과 교를 겸비한 스승들이 많았다 일례로 40년대부터 전설적인 선지식인 장설봉 엄성호 강고봉 김탄허대강백은 대학승이면서 동시에 평생 대선사로  숱한 제자들을 가르쳤다 고려불교는 물론이요 조선의 척불시대 보우 서산 사명이후 수많은 고승들은 모두 선교를 갖춘 대선지식이었다 근대불교의 조사인 경허선사도 젊은 시절 대강백으로 나중에 대도인으로 근대한국불교를 계승한 수월 해월 만공 담해 성월 용성 등 기라성같은 수제자들을 낳았다
해방후 이분들에게서 선문염송 벽암록 전등록 선문촬요 선관책진 화엄 법화 금강경등 각종선문과 경문의 강의와 저술이 나왔다
60년대 불교정화이후 동산 청담 금오 경산 월하선사등의 불교개혁으로 비구종단인 조계종이 확립되었으나 선교양종의 전통교육은 이분들이 아니었으면 한국불교가 인재양성의 초석을 닦지못했을 것이다.
백운스님은 호남의 백양사문중과 영남의 범어사양대문중이 배출한 드문 인재로 저술과 강의를 통해 불법홍포와 인재양성에 큰 업적을 남겼다
백양사의  펀양연기선사를 소재로 한 양치는 성자는 일찍이 유명세를 탓던 불교문학작품이며 그후 수십년간 저술에 몰두했다
서옹종정의 뜻을 받들어 임제연의와 진묵대사 초의선사 부설거사 완당 김정희 만암대종사 인곡대선사 성월대선사 동산대종사의 고승일대기를 썼다
불립문자의 선을 높히고 교를 낮추는 조계종의 풍토에서 선종사찰인 백양사와 범어사의 출신가운데 근래 대중적인 글을 쓴 분은 백운스님이 처음일것이라 생각한다. 
 
'한낮에는 밝은 구름 벗삼고
푸른 밤에는 맑은 냇물 벗이 되어
시비벗어난 자연의 온갖 모습이여
정녕 그대는 나를 즐겁게 하는구나! 
 
스님의 열반임종게는 넓고 깊은 정신세계를 엿보게 한다
정신은 맑았으나 육신이 불편해 수년간 자리보전했던 스님은 홀연 법랍77세 세수 87세로 사바를 하직하고 도솔천내원궁으로 떠났다  남은 제자들과 후학들이 매우 슬퍼하고 추모의 마음이 지극하다
회고컨대 범어사출신으로 또한 각종 글을 쓰는 나는 스님의 후배로서 시사받은 바 크다 따뜻하고 인간적인 서술과 알찬 내용, 치밀한 묘사는 냉철하고 담백한 법정스님의 문장과 대비된다
백운선사 대강백이시여! 속환사바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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