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계가 분노하는 진짜 이유는
불교계가 분노하는 진짜 이유는
  • 이기표 부산보현의집 원장
  • 승인 2010.12.18 17: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기표의 세상이야기] 전통문화에 대한 정부 인식 전환이 우선
삼국유사 흥법(興法)편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고구려 보장왕이 중국에서 도교(道敎)를 들여와 백성들에게 신봉하기를 강요하자 불교계 지도자였던 보덕화상(普德和尙)이 왕에게 말했다.

“지금 나라 안에는 유교와 불교가 있어 백성들이 오랫동안 그를 믿고 따르는데 새로운 종교를 들여와 기존의 종교와 맞서게 하면 민심이 분열되어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그러나 보장왕은 그 말을 듣지 않고 오히려 불교를 업신여기며 도교만을 옹호하자 보덕화상과 그의 제자들이 고구려를 떠났고 얼마 되지 않아 나라가 망했다.

물론 보덕화상과 고구려의 패망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다만 일연스님이 이 이야기를 기록해 후세에 전한 의도는 통치자의 종교철학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지적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보장왕이 도교를 신봉해 토착종교나 마찬가지였던 유교와 불교를 멀리함으로써 민심이반을 몰아왔고 결국 망국의 단초가 되고 말았다는 경고인 셈이다.

종교는 민중을 이끄는 힘이 강하다. 그래서 어느 정치세력이든 종교문제에 대해 대단히 민감하면서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은 다종교사회에서 통치자의 종교관은 대단히 엄정해야 한다. 만약 통치자의 종교관이 편향적이라면 심각한 수준의 종교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그것이 사회갈등으로 비화했을 때의 부작용은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온다.

최근 국회의 템플스테이예산 삭감사건을 계기로 현 정부의 종교편향에 대한 시비가 가열되고 있다.

이러한 파장은 한마디로 불교현안들에 대한 정부의 미숙한 대처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으로 ‘10.27 법란’을 들 수 있다.

이 사건은 신군부를 반대하던 불교계를 무력화할 목적으로 자행된 희대의 정치테러이다. 전두환의 지시로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이던 월주 스님을 비롯한 150여 명의 스님들을 불법으로 체포, 몽둥이찜질에 전기고문까지 해가며 강제로 승직을 박탈했던 사건이다. 늦게나마 그 진실이 밝혀져 불교계가 정부차원의 사과 등을 요구하고 있는데도 정부는 미적거리고만 있다.

팔공산역사공원조성사업이나 KTX울산역(통도사) 역명문제도 정부 스스로 승인하고 고시까지 했던 것을 특정종교단체가 반대하자 슬그머니 폐기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는 여야 합의로 결정된 템플스테이예산마저 삭감해버린 것이다. 여당에서는 실수라며 삭감된 부분을 보전해주겠다는 뜻을 밝히고는 있다. 그러나 그 모양새가 문제다. 마치 우는 아이에게 사탕 물려주는 태도를 취함으로써 불교계가 정부예산을 타내기 위해 떼나 쓰는 집단으로 비쳐지고 있는 것이다.

조계종 총무원이 정부와 집권여당 인사들의 사찰출입을 거부하기로 한 것도, 이번 일로 하여 불교계의 이미지가 손상된 것에 대한 불편한 심기의 표출일 것이다.

일부에서는 자비와 원융을 수행의 근본으로 삼는 불교가 편협한 모습을 보인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특히 인터넷에서 벌어지고 있는 누리꾼들의 치열한 공방은 이 문제가 이미 사회갈등으로 비화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웬만해서는 화를 내지 않고, 웬만해서는 남을 원망하지 않고, 웬만해서는 남을 탓하지도 않는 ‘웬만(圓滿)스님’들이 오죽해야 오는 손님에게 문을 걸어 잠그는 방법을 택했겠는가.

사회적 갈등으로 인한 낭비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먼저 정부의 불교에 대한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불교는 1,500년을 넘게 민족과 함께한 민족종교이자 민족전통문화다. 템플스테이사업의 취지는 그러한 우리의 전통문화를 내외국인들에게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우리의 전통문화를 널리 알려 우리만의 독창적인 문화관광브랜드로 발전시키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러한 예산을 지원함에 외풍에 흔들리거나 마지못해 선심 쓰듯 하는 것은 국익을 우선하는 정부의 태도가 아니다. 이번 기회에 정부에서는 템플스테이 예산에 대한 확실한 규정안을 마련, 해마다 반복되는 말썽의 불씨를 제거해야 할 것이다. 지금은 문화로 먹고사는 시대이고, 그것이 법으로 명문화할 수 있는 명분이기도 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11길 16 대형빌딩 402호
  • 대표전화 : 02-734-7336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석만
  • 법인명 : 뉴스렙
  • 제호 : 뉴스렙
  • 등록번호 : 서울 아 00432
  • 등록일 : 2007-09-17
  • 발행일 : 2007-09-17
  • 발행인 : 이석만
  • 편집인 : 이석만
  • 뉴스렙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렙. All rights reserved. mail to cetana@gmail.com
  • 뉴스렙「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조현성 02-734-7336 cetana@gmail.com
인터넷신문위원회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