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AE 파병, 헌법의 위기다
UAE 파병, 헌법의 위기다
  • 최재천 변호사
  • 승인 2011.01.06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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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시사큐비즘]

UAE 파병 관련 공개토론회 (민주당 정책위원회, 2010년 12월 30일 오전10시, 국회의원회관 128호)

1. 평화주의 : 대한민국헌법의 기본 원리

우리 헌법은 평화주의를 그 바탕으로 삼는다.
헌법전문(前文)과 제5조가 대표적인 표현이다. 헌법 제5조는 ‘①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 ② 국군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 하며, 그 정치적 중립성은 준수된다’로 구성된다.
평화주의와 대한민국 국군의 헌법적 사명에 대한 분명한 정의다.

우리나라는 국제연합의 회원으로서 유엔헌장에 규정된 무력행사금지원칙을 받아들여 이를 헌법에서 명문화했다. 그런데 우리는 패권주의적 발상에 의한 침략전쟁을 부인할 뿐, 자위수단으로서의 방어전쟁까지 부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국군의 조직이나 존재 그 자체를 포기하지는 않는다. 대신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는 엄격하고도 제한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국토방위는 지구방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한반도라는 영토고권의 보장임무를 의미한다. 국가의 안전보장이란 국가 존립에 대한 중대한 위험에 대응하는 것으로 한정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군이 시내로 나오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국군은 국토방위의 수행을 사명으로 하는 방위적인 군대'여야 한다.

우리 헌법은 이러한 자위수단으로서의 국군, 방어 수단으로서의 군대 조직에 대해 철저한 시민통제(문민통제)의 원칙을 확립했다. 이렇듯 헌법규정에 의해 존립이 정당화되는 ‘국군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 하기 때문에 국내정치에서는 중립성을 요구한다. 과거 헌정유린에 대한 역사적 반성의 의미 또한 강렬한 규정이다. 비교헌법적으로 볼 때, 대단히 예외적 규정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참고로 ‘군인복무규율(대통령령 제21750호, ‘09. 9. 29.)’이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국군의 사명은 국가의 안전보장 및 국토방위에 있으며, 국민의 생명 및 재산을 보호하고 나아가 국제평화의 유지에 이바지하는 데에 있다.(제4조)” 역시나 평화주의다. 경제주의가 아니다. 시장주의가 아니다. 대가주의가 아니다. 계약관계가 아니다.

관습헌법론에 이어 새로운 헌법론의 시대가 열렸다. 헌법의 경제적 상상력에 날개를 달았다.

2. 국제평화와 안전에 기여하기 위한 해외 파병사

유엔 회원국으로서, 국제평화와 안전에 대한 능동적 기여로서 (물론 예외적인 경우 전략동맹으로서의 미국과의 관계에서 비롯되어) 해외파병의 역사는 시작됐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특히 지난해에는 국회의 해외파병에 대한 동의권을 심각하게 제한함과 동시에 사실상 해외파병의 일상화를 도모하는 상비군 방식의 ‘국제연합 평화유지활동 참여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한 시민 사회와 일부 정당의 대응은 지금도 아쉬움이 남는다. 심지어 민주당에서조차도 정부의 의사를 대신하는 법안을 제출한 사례까지 있었다. 경제적 이익을 획득하기 위한 파병론의 뿌리는 이 때부터였음이 분명하다.

물론 이전에도 국제평화유지군 파병은 있었다. 하지만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참고로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UN의 요청 및 UN 결의안에 의해 ‘93년 소말리아 상록수부대를 시작으로 총 13회의 부대 파견을 했다. 그중, UN PKO 형태가 아닌 파견은 참여정부 당시 아프간 건설공병부대인 다산부대(‘03.2.~’07.12., 연 1,360명), 이라크 민사재건부대인 자이툰부대(’04.8.~‘08.12., 연 19,032명), 현 정부에서는 소말리아 해역 청해부대와 아프가니스탄 오쉬노부대가 있다.)

그런데 ‘국제연합 평화유지활동 참여에 관한 법률’을 계기로 헌법적 제한도 자유로워지고, 법적 근거는 분명해졌다. 당시에도 가장 논란이 됐던 것은 권력분립론에 대한 심각한 침해였다는 점이다. 권력분립의 원칙은 견제와 균형을 생명으로 하는 헌법의 최고원리다. 모든 해외파병은 사전동의여야 한다. 그런데 사실상 일정규모를 기준으로 사후추인 정도로 국회의 권한을 무력화시켰다. 구체적, 개별적 동의가 아니라 포괄적 동의 수준으로 국회의 권한을 제한해 버렸다. 사실상 헌법을 우회했거나 헌법을 측면에서 개정한 꼴이다. 그럼에도 분노는 조직되지 못했다. 호헌 의지의 실종이다. 헌법수호자들의 뒷짐지기다.

무엇보다도 이번 UAE 파병과 관련하여 다시 문제될 수밖에 없는 논리는 돈논리, 경제논리였다. 당시 법을 정당화하기 위한 외교부의 대표적 논리 중 하나가 바로 돈이었다. 유엔 분담금에 비해 PKO 병력이 너무 적다는 것이었다. 돈은 잔뜩 내고 받아오는 돈은 조금밖에 안된다는 것이었다. 당시 모든 신문들이 이 논리를 그대로 중계방송했다. 돈은 열 번째로 많이 내고, PKO 파병 숫자는 전체 39위라서 낸 만큼 가져오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조선일보 기사 중 일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 개도국들은 분담금은 거의 없지만, 1만 명 이상 병력을 보내 주요한 ‘외화벌이’ 수단으로 삼고 있다.(2009년 12월 24일 조선일보 4면)”

지나친 경제적 논리였다. 국제평화라는 이상이 돈 속에 묻히고 말았다. ‘전쟁 주식회사’를 꿈꾸는 후진국가가 아니라면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해외파병 순위를 보면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인도, 나이지리아, 네팔, 가나, 요르단, 르완다 순서로 흘러간다. 프랑스 정도가 우리보다 바로 앞 순위에 있다. 영국, 미국, 러시아 다 우리 뒤쪽에 있었다. 그럼에도 경제우선주의, 시장만능주의, 뭐든지 수출해서 돈을 벌어와야 한다는 극단적 수출지상주의는 헌법의 평화주의 이상과 권력분립론에 대한 심각한 침해로 이어졌다. 그때의 논리가 UAE 파병으로 이어졌다. 평화유지군을 보내서 돈을 되찾아오는 일이나 원전수주에 비공식적으로 이해관계를 일치시키면서 경제적 파병을 하는 일이나, 무슨 별반 차이가 있겠는가. 경제라는 이름의 색안경 앞에 우리 모두는 색맹이 됐다.

참고로 국회 동의의 근거는 헌법 제60조 2항(국회는 선전포고, 국군의 외국에의 파견 또는 외국군대의 대한민국 영역 안에서의 주류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이다.
최근에 연장 동의된 「유엔 레바논 평화유지군(UNIFIL)」 파견연장 동의안의 형식을 보자.
“「유엔 레바논 평화유지군(UNIFIL)」에 파견되어 활동중인 국군부대(레바논 평화유지단 : 동명부대)의 파견기간을 2011년 1월 1일부터 2011년 12월 31일까지 1년간 연장하는 것을 헌법 제60조 제2항 및「국제연합 평화유지활동 참여에 관한 법률」제8조의 규정에 의하여 동의한다.”
근거법령이 분명해졌다. 하지만 UAE 파병은 이것과도 다르다.

3. UAE 파병, 신개념 해외파병론

11월 15일 정부에 의해 국회에 제출된 UAE 파견동의안의 내용이다. 몇몇 부분을 그대로 인용한다.

「국군부대의 아랍에미리트(UAE)군 교육훈련 지원 등에 관한 파견 동의안」
UAE군 교육훈련 지원 등을 위해 150명 이내의 국군부대를 2011년 1월 1일부터 2012년 12월 31일까지 2년간 UAE에 파견하는 것을 헌법 제60조제2항의 규정에 따라 동의한다.

가. 파견목적
UAE측 요청과 협의에 따라, 국익창출과 다양한 지역에서의 우리 특전부대 임무수행능력 향상 등을 목적으로 국군부대를 UAE에 파견하려는 것임.

다. 임 무
○ UAE군 특수전 부대에 대한 교육훈련 지원
○ UAE군 특수전 부대와의 연합훈련 및 연습
○ 유사시 우리 국민 보호

사. 부대파견 및 임무수행 경비는 우리 정부가 부담
* 부대 주둔 시설, 훈련장 등은 UAE 측에서 제공

유엔평화유지군이 아니다. 다국적군 소속도 아니다. 지금까지 헌정사적 선례가 없는 새로운 형식의 파병이다. 역사상 유례가 없다. 엄격한 헌법적 해석이 가해져야 하고 국회에서 심각한 토론과 심의와 표결이 있어야만 했다.

국방부 또한 이번 파병의 개념이 새롭다는 것을 시인했다. “금번 파견은 분쟁지역이 아닌 비분쟁지역에 군사협력과 국익 창출을 목적으로 파견하는 새로운 파병 개념의 첫 사례”라고 인정한 것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UAE파병은 헌법 제5조의 국제평화의 유지 노력의 일환이라고 했다. 평화주의에 대한 개념규정과 해석이 행정부와 시민 간에 건널 수 없는 강이다.

물론 정부는 조약에서 근거를 가져오기도 했다. 2006년 체결된「대한민국 정부와 아랍에미리트연합국 정부간의 군사협력에 관한 협정」제2조와 조약의 법원성에 대한 헌법 제6조 1항에 따른 파병임을 설명하고 나섰다. 「군사협력에 관한 협정」(조약번호 제1848호) 제2조 협력범위는 대단히 광범위하다.
 
“가. 방위 산업과 군수 지원,  나. 국방‧안보 및 군사 관련 정보,  다. 군사 교육 및 훈련,      
라. 연구개발 및 정보교환을 포함한 군사기술,  마. 군사 의학 및 의료지원,  바. 군사체육 및 문화활동,
사. 군사역사‧기록 및 발간물,
아. 재난관리‧구호‧인도적 지원 및 평화유지 활동을 포함한 국가안보‧군사작전에 대한 경험 및 정보 교환,
자. 군사시설과 관련된 환경보호 문제,  차. 당사자간에 합의되는 그 밖의 다른 협력 분야"

그렇다고 이 조약에 대해 국회 동의를 받은 적은 없다. 헌법 위반에 대한 뿌리가 이미 오래전에 시작되고 있었다. 권력분립의 원칙은 이미 오래전에 손상되고 있었다. 조약에 대한 국회비준 여부는 전적으로 행정부의 몫. 사실상 입법자 의사를 대신하는 광범위한 조약체결권을 행정부가 행사하고 이에 대한 국회 동의를 회피해버리는 이상, 행정부의 입법권에 대한 침해, 과도한 조약체결권의 행사에 대한 통제시스템은 마비된다. 그 마비의 결과가 UAE 파병으로 이어졌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군에 대한 시민통제의 마비다. 본질적으로 국군통수권에 대한 주권자의 의사가 반영되기 어려운 결과로 이어졌다. 헌법의 위기다.

4. 헌법이 위기인 이유

가. 헌법 위에 ‘국가안보전략지침’ 있다

‘국가안보전략지침(대통령훈령 제226호, ‘08. 8. 18.)’이 있다. 지침은 “국가안보목표를 △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유지, △ 국민 안전보장 및 국가번영 기반 구축, △ 국제적 역량 및 위상 제고에 두고 있다.” 국가안보전략 3대 기조는 ‘새로운 평화구조 창출, 실용적 외교 및 능동적 개방 추진, 세계로 나가는 선진안보 추구’다.

정부는 여기에서 근거를 만들어냈다. 국가안보전략 3대 기조 중 하나인 ‘세계로 나가는 선진안보 촉구’가 바로 “대한민국의 위상을 제고하고 국익창출에 기여할 수 있도록 국제평화유지와 재건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UAE 파병은 국가안보와 국익증진에 기여하는 합법적이요, 합헌적인 행위라는 것.

차라리 김무성 원내대표의 ‘안보수출론’이 솔직하다. 이 정부의 수출지상주의, 중상주의적 정책 기조를 그대로 드러낸 말이다. 문제는 우리 헌법과 각종 군사관련 법률의 한계를 어떻게 넘어서느냐 하는 것, 권력분립론과 군에 대한 시민통제와 해외파병에 대한 국회의 동의권을 어떻게 넘어서느냐 하는 것, 결국 헌법 위에 국가안보전략지침이 있고, 국가안보전략 3대 기조가 있는 셈이다. 대통령령이 헌법 해석의 최종적 유권해석이 되고 말았다. 헌법 위에 국가보안법 있고, 헌법 위에 국가안보전략지침 있다.

나. 행정부 내의 견제와 균형의 실종

UAE 파병과 관련해서 정부 내에서는 충분한 검토가 이루어졌을까. 국방부와 지식경제부 사이에 원전수출과 관련된 여러 논의가 이루어졌던 흔적은 여럿 있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 UAE 파병 문제가 논의되기 시작했다면 정부 내에서 헌법과 법률에 대한 유권해석을 담당해야할 법제처, 나아가 법무부는 과연 무엇을 어떻게 검토했을까. 국방부의 공식적인 답변이 있다. “UAE 파병과 관련하여 법제처 및 법무부 법률검토의견을 의뢰한 바 없음.” 참으로 당당하다. 기존 헌법 해석의 틀을 허무는 ‘신개념 파병’임을 인정하면서도 정부 내에서 헌법적 논쟁조차 거치지 않았다. 그리고 거치지 않았음을 자랑스럽게 국회에 보고할 수 있는 행정부다. 특히 법치를 강조해온 행정부의 본래 모습이다.

다. 구두합의에 의한 파병과 밀행주의

헌법 제82조는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는 문서로써 하며 이 문서에는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이 부서한다. 군사에 관한 것도 또한 같다’고 규정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김태영 전 국방장관은 지난해 원전 수주를 앞둔 시점에서 UAE 측과 파병에 대한 구두 약속 및 양해각서 체결은 일체 없었다고 일관되게 강조해왔다. 그리고 지난 8월 UAE 측의 파병요청 이후에도 구두 합의만 있었다고 설명해왔다.(연합뉴스 2010년 11월 11일)

그렇다면 문제다.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를 왜 문서화하라고 헌법은 굳이 강조했을까. 더구나 해외파병이라는 헌법상의 행위를, 그것도 국내 문제가 아니라 국가 대 국가 간의 중대한 조약 문제를 어떻게 구두 합의 수준으로 처리할 수 있었을까.

외교관행을 이유로 철저히 밀행주의를 고집하면서 공개하지 않고 있는 외교부 조약이 있다.
국방부 설명자료(11/17)에 의하면, “금년 4월부터 9월까지 한-UAE 군 간에 체결한 합의문서에는 정보보호약정 및 3개의 MOU가 있다.”
① 군사비밀정보보호 약정(한 정보본부장 - UAE 정보ㆍ보안부장 간)
② 정보ㆍ보안 교류협력 MOU(한 정보본부장 - UAE 정보ㆍ보안부장 간)
③ 군사교육 및 훈련 협력 MOU(한 국방교육정책관 - UAE 인행부장간)
④ 방산ㆍ군수 협력 MOU(한 방산진흥국장 - UAE 군참부장간)

이 중 세 번째 MOU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방부는 기관 간의 약정이기 때문에 비공개를 고집한다. 하지만 성격은 조약이다. 조약이라면 공개해야 한다. 더구나 UAE 파병의 근거되는 합의일 가능성이 높은 조약이라면 당연히 공개해야 한다. 행정부의 의무고 시민의 권리다.

결국 행정부는 스스로의 모순 덩어리를 만들어냈다. 구두합의라고 해놓고 나니 국법상 문서로 하라는 헌법조항이 걸리고, 그렇다고 MOU가 있었다고 하자니 차마 공개할 수는 없고, 결국 어느 측면에서나 헌법과 시민에 대한 중대한 침해였다.

라. 국회의 심사권에 대한 침해

헌법재판소는 지난 28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의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 강행 처리가 무효라며 민주당 문학진 의원 등이 외통위원장을 상대로 낸 권한쟁의심판 사건에서 기각 결정을 내렸다. 그럼에도 여당의 비준동의안 강행 처리가 야당 국회의원들의 권한을 침해했음을 확인해달라는 청구는 재판관 7대2 의견으로 받아들였다. 국회의원의 권한 침해를 확인했다는 의미까지만 받아들이자. 그렇다면 이른바 이번 UAE 파병안의 날치기는 헌법적으로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이번 동의안 처리는 위원회의 심사조차 거치지 않았다. 질의와 토론조차 없었다. 제대로된 표결도 없었다. 그렇다면 위헌적이요, 위법적이다. 의회주의에 대한 심각하고도 중대한 도전이었다. 국회의원이 대신하는 군에 대한 시민통제의 범위를 철저히 무시했다. 해외파병의 이례적 성격에 비춰본다면, 더욱 엄격한 심사와 토론이 이루어졌어야 했음에도 간단히 무시되고 말았다. “헌법과 국회법을 위반하여 국군을 상업적 거래의 대가로 이용하는 선례를 남겼다.(파병동의안 철회 촉구 결의안)” 예산안 처리와는 특별히 관련성이 떨어지는 데도 날치기에 함께 포함되어 처리된 것이다. 예비비에서 예산을 집행할 수 있도록 눈가림한 문제는 파병 자체에 중대한 헌법 위반의 점이 많다보니, 아예 도드라져 보이지도 않는다.

마. 국익은 경제적 이익만이 아니다

한 나라의 국익이 경제적 이익 정도로만 평가될 수 있다면 국가이성과 역사이성은 얼마나 우울한가. 물론 헌법도 시민을 지키고 국익을 지키는 데 한 목적이 있을 것이다. 헌법도 그 점에 대한 약속일 것이고, 그 점을 위해 봉사하는 또 다른 근거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국익을 돈과 상업주의와 경제적 이익 정도로만 한정한다면 그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먼저 이번 파병비용은 전적으로 한국 정부의 몫이다. 이를 전지훈련으로 표현한 언론도 있었다. 우리돈 내고 우리가 UAE에 가서 훈련하는 꼴이라는 것이다. 파병 자체가 가져오는 국익은 애당초 없었다. 물론 정부 입장은 다르다. 그래서 참여연대가 국방부에게 파병을 통해 '국익 창출'할 수 있다고 든 사례에 대해 정보공개를 요청했다. 정부는 모두 비공개 결정을 통보해 왔다. 그 중 국방부가 "경비용 장비, 탄약, 차량, 장구류 등 방산물자 2,006만 달러 수출 계약"을 파병이 가져올 이익으로 설명한 것에 대해 방위사업청은 "계약 관련 문서는 해당 개별 기업의 해외 영업내용이 포함되어 있고, 당사국과 외교마찰을 일으킬 우려가 있어서" 비공개결정을 내렸다. 아울러 방사청은 "2,006만 달러 상당의 아랍에미리트 수출 실적은 개별 기업의 영업활동에 따른 통상적인 수출로 UAE 파병 사안과 관련이 없음을 알려 드린다"고 밝혔다.(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군의 헌법적 사명과 임무는 이미 앞서 본 헌법규정에 분명히 명시돼 있다. 군은 주식회사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영토방위를 최고의 목적으로 삼는 방어적 조직이다. 다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국제평화유지활동 임무에 역량의 여유 내에서 조금씩 관여하고 있는 정도다. 군을 전면적인 상업 상비군으로 그 임무를 변경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라고 강변하겠지만, 이런 식의 상업적 거래에 따른 대가성 있는 비공식적 파병이 이뤄지기 시작한다면, 군의 순수한 임무와 자부심은 어떻게 변질될 것인가.

참고로 우리 헌법재판소는 해외파병에 대해 판단을 자제하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파병 결정의 신중함에 대해서는 지극히 강조하는 입장이다.

“외국에의 국군의 파견결정은 파견군인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의 우리나라의 지위와 역할, 동맹국과의 관계, 국가안보문제 등 궁극적으로 국민 내지 국인에 영향을 미치는 복잡하고도 중요한 문제로서 국내 및 국제정치관계 등 제반상황을 고려하여 향후 우리나라의 바람직한 위치,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 등 미래를 예측하고 목표를 설정하는 등 고도의 정치적 결단이 요구되는 사안이다.

따라서 이 사건과 같은 파견 결정이 헌법에 위반되는지의 여부 즉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하는 것인지 여부, 국가안보에 보탬이 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국민과 국익에 이로운 것이 될 것인지 여부 및 이른바 이라크전쟁이 국제규범에 어긋나는 침략전쟁인지 여부 등에 대한 판단은 대의기관인 대통령과 국회의 몫이고, 성질상 한정된 자료만을 가지고 있는 우리 재판소가 판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할 것이며,(이라크 파병에 대한 2차결정 사건, 2004. 4. 29. 2003헌마814)“라고 했다.

시민과 국익에 대한 포괄적이고 신중한 검토와 함께 고도의 정치적 결단이 있어야 하며 그 결단은 주권재민의 원칙에 따라 대의기관인 대통령과 국회의 몫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렇게 판단하고 그렇게 결정했을까. 국회의 권한은 존중되었을까.

5. 결

UAE 파병은 수많은 절차적 위헌성을 가져왔다. 행정부 내의 의사결정은 물론 국회의 해외파병동의권에 대한 심각하고 중대한 도전이었다. 권력분립의 원칙에 대한, 의회주의의 원칙에 대한 헌법적 기본원칙들을 심각하게 훼손한 반헌법적 도전행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인 문제는 가려져 있다.

과연 우리는 어떤 국가모델을 추구하는가. 평화주의 모델인가, 팽창주의 모델인가. 변형된 경제적 제국주의인가, 패권주의인가. 극단적인 수출지상주의, 절대적 중상주의, 시장만능주의가 국내와 시장의 틀을 훌쩍 뛰어넘어버렸다. 이 논리들이 시민의 삶과 헌법을 위협하고 있다. 관습헌법론에 이은 또 다른 차원의 헌법개정이다. 해석개헌 수준을 넘어서는 일이다. 헌법을 자의적으로 재단한다. 오로지 경제적 이익이라는 협애한 국익논리만으로 헌법에 심각한 충격을 가한다. 헌법에 대한 중대한 손상이다.

국군의 사명을 자의적으로 왜곡한다. 평화국가 원리를 제멋대로 해석한다. 헌법의 기본원칙들을 훼손한다. 헌법정신이 뒤집힌다. 국가의 사명과 나아갈 길이 집권 정당의 정치적 지표와 이해관계에 따라 오락가락 한다. 우리는 대체 어떤 국가모델을 꿈꾸고 살아가고 있는가. 오로지 시장만능주의가, 경제 국익지상주의가 인간의 존엄과 시민의 기본권을 보장해줄 수 있다고 착각하는 건 아닐까. UAE 파병의 본질적 한계는 바로 이 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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