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동물에게도 권리는 있다
구제역, 동물에게도 권리는 있다
  • 최재천 변호사
  • 승인 2011.01.06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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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시사큐비즘]

구제역 때문에 생매장으로 살처분 되는 동물들을 보면서 미국 북서부 원주민 부족들이 부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겨울 축제로 벌이는 포틀래치(potlatch) 의식이 오버랩된다. 포틀래치 의식에서 부족민들은 자신의 노획물을 과시하며, 많은 짐승을 도살하여 희생 잔치를 벌였다. 공동체가 필요 이상의 동물이나 작물을 축적하면 이런 잉여는 ‘태워야’만 했다. 늘 이동하는 유목민 집단이 잉여 생산물을 보관하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카렌 암스트롱, <축의 시대>, 교양인) 포틀래치는 사회의 부를 재분배하는 임시변통의 방법이었다. 그러면서 잉여된 짐승을 처분하기 위해 활용되었다. 오늘날 엄청난 육식소비의 증가로 가축은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듯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잉여 생산된 가축들은 광우병, 구제역 등의 전염병으로 또 다시 집단 도살당하고 있다.

불과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광우병, 구제역, 조류독감 등의 전염병은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근래 들어 이들 전염병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이유는 육식에 대한 엄청난 소비 증가에서 찾을 수 있다. 실제로 농림수산식품부에서 집계한 우리 국민의 연간 1인당 육류 소비량은 1990년 19.9㎏에서 2008년에는 35.6㎏으로 18년 새 거의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국제농업식량기구(FAO)가 발행한 <세계식량농업백서 2009>에 따르면 1960년대 초에는 육식을 거의 하지 않던 동아시아(중국, 한국, 일본 포함)와 동남아시아의 육식 소비량이 급증해 유럽의 육식 소비량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고 한다.

육식 소비의 급증은 이른바 공장식 축산업의 발전을 가져왔는데, 가축을 생명이 아니라 공장에서 마구 찍어내는 제품으로 취급하게 된 것이다. 구제역, 광우병, 조류독감 등의 전염병은 바로 이러한 공장식 축산업이 그 배경이다. 미국의 공장형 축사에서 자라는 가축은 100% 성장호르몬을 맞으며, 매일 그 쇠고기를 먹을 경우 결장암 발병 확률이 250배나 높다는 보고도 있다.

공장식 축산업이 광우병, 구제역, 조류독감 등의 전염병을 발생시킨다는 반성이 일어나면서 동물을 생명으로 취급해야 한다는 동물권(animal rights) 보호 운동이 촉발되었다. 동물권은 한국에서는 낯선 개념이지만, 이미 서구에서는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미국에는 180개의 법과대학원 중 97개 대학원에서 동물법을 강의하고 있으며, 대학에서는 윤리학, 철학의 한 과목으로서 정기적으로 개설되는 과목이기도 하다.
동물권이란 보호받아야 할 동물의 권리를 의미한다. 동물권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입장과 이견이 존재하지만 동물이 그저 돈의 가치로서, 음식으로서, 옷의 재료로서, 실험 도구로서, 오락을 위한 수단으로서 쓰여서는 안 되며, 동시에 인간처럼 지구상에 존재하는 하나의 개체로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것이 광범위하면서 공통적인 견해이다.

▲ KARA 대표 임순례 감독 ⓒ (사)동물보호시민단체 KARA

의약품·화장품 등을 개발하거나 의료기술을 개발할 때 안전성이나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동물을 실험대상으로 하는 경우는 흔하다. 소규모이긴 하지만 반(反)동물체를 이용하는 실험자들은 인간이 동물에게 고통을 주거나 고통스럽지 않은 실험이라도 동물을 사용할 권리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어떤 나라에서도 실험 영역에서 동물의 사용을 전적으로 금지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독일은 2002년 6월 21일 세계 최초로 헌법에 동물권을 보장했다. 녹색당과 시민사회단체의 적극적인 입법 활동의 성과물로 “국가는 미래세대의 관점에서 생명의 자연적 기반과 동물을 보호할 책임을 갖는다”는 조항을 명시한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독일 상원은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호할 의무를 명시한 헌법 조항에 ‘그리고 동물’이라는 문구를 추가하는 헌법 개정안을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인권조차 보호받지 못하고 수시로 침해되는 한국의 현실에서 동물권을 말하는 것이 현실감 없는 얘기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구제역으로 살처분되는 동물들이 동물복지나 인도적 조치 없이 살상되거나 생매장되고 있는 현실에서 동물권은 남의 나라 일만이 아니다. 마크 롤랜즈는 <동물의 역습>에서 “전세계를 뒤흔든 구제역, 광우병, 조류독감 파동은 동물을 상품으로 취급한 결과 일어난 당연한 현상”이라며 인간의 동물 착취는 심각한 환경파괴와 맞물려 있고 오염된 먹을거리로 되돌아오기 때문에 단순히 동물의 권리문제를 “동물권”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생명권”으로 나아가 “자연권”으로 인식의 확장이 일어나야 한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아직 동물권에 대한 기본적인 논의조차 시작하고 있지 못하다. 윤리학자 피터 싱어는 ”즐거움과 고통을 느낄 수 있고, 의식이 있는 존재인 동물을 인간이 마음대로 사용하고 학대하는 것은 성차별이나 인종차별과 같은 일종의 종차별주의(specism)”라고 비판한다. 구제역 파동으로 ‘종차별주의’, 동물권에 대한 최소한의 논의의 실마리라도 마련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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