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경 천년, 위대한 불교의 힘
대장경 천년, 위대한 불교의 힘
  • 이기표 부산 보현의집 원장
  • 승인 2011.01.19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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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표의 세상이야기] 화합·평화의 상징

올해는 고려대장경의 조판을 시작한 지 천년이 되는 해다. 고려 현종 2년(1011)에 대장경을 판각하기 시작하여 76년 만인 1087년에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으로 불리는 초간본이 완성되었다. 처음으로 대장경판을 새기게 된 까닭을 이규보(李奎報)는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현종 2년에 거란이 대군을 이끌고 침입하여 임금이 신하와 백성들을 이끌고 남쪽으로 피난을 하였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송도를 점령한 거란군이 물러가지 않으므로 군신과 백성이 하나 되어 큰 원을 세우고 대장경을 새기기 시작하였더니 놀랍게도 거란군이 스스로 물러갔다’
 
외적에게 왕도까지 빼앗기고 피난을 가있던 고려조정이 군사를 일으킬 생각은 하지 않고 한가롭게 불경이나 판각하고 있는데도 거란군이 스스로 퇴각했다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이규보의 표현대로 ‘군신과 백성이 하나 되어 큰 원을 세우고’ 합심하여 움직이는 모습에 사납기가 맹수 같은 거란군도 겁을 냈던 것이다.

이처럼 고려대장경판은 외적에게 왕도까지 빼앗긴 위기 속에서 불교의 힘으로 나라를 지켜내겠다는 서원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우리 민족에게 있어 불교의 역량이 어느 정도였는가를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초조대장경판은 몽골의 침략으로 전소되고 말았다. 그와 함께 나라의 운명도 풍전등화의 위급지경으로 내몰렸다. 하지만 고려인들은 좌절하지 않고 다시 하나가 되어 대장경을 판각하기로 뜻을 모았다.

‘일찍이 거란이 침략했을 때에도 대장경을 새겨 적을 물리쳤다. 부처님 말씀은 예나 지금이나 하나이며 판각하는 방법도 다를 바 없다. 임금과 백성이 합심하여 발원하는 것도 또한 예전과 마찬가지인데 어찌 그 때에만 거란군이 물러가고 지금의 몽고군은 물러가지 않겠는가. 다만 부처님과 하늘의 보살핌이 한결같기를 바랄 뿐이다.’

조정과 백성이 이렇게 발원한 뒤 전국에서 판재로 쓰일 거목을 베어 조판을 맡은 여러 사찰로 실어 날랐다. 이때 쓰인 판재만도 자그마치 300톤이나 되는 방대한 양이다. 이것을 뒤틀리거나 벌레가 먹지 않도록 3년 동안 바닷물에 가라앉혔다가 건조시켜 판각을 하고 옷칠을 하여 16년 동안 무려 81,340권이나 되는 경판을 제작했던 것이다.

그것이 수많은 전란 속에서도 오늘까지 보전되어 마침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경판에 새겨진 52,382,960 글자가 어찌 부처님의 말씀뿐이랴. 외적의 침략으로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겠다는 호국정신이 새겨져 있다. 임금과 신하와 백성이 서로 소통하며 하나가 되는 화합정신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그 구심력으로 작용했던 것이 부처님의 말씀인 경전이다. 
 
칭기즈칸의 후예로 아시아와 유럽대륙을 정복했던 몽골 역시 불심으로 하나가 된 고려인들의 단결심과 호국의지만은 꺽지 못한 채, 대장경판이 완성되고 얼마지 않아 그들도 이 땅에서 스스로 물러갔다. 불심에 의존하여 외적을 물리친 경우가 거란과 몽골뿐이겠는가. 동방에서 가장 작은 나라가 수많은 국난을 극복하고 반만년의 장구한 역사를 이어갈 수 있었던 배경에는 늘 불교가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려대장경 천년을 맞는 감회가 각별한 까닭은 그것이 곧 우리 민족이 지니고 있는 호국의지의 상징이자 화합과 평화의 상징이기 때문일 것이다. 고려대장경으로 발현된 민족정기가 천년동안 끊이지 않고 우리의 핏줄 속에 면면히 흐르고 있다는 자부심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한국불교의 힘이고 자랑이자 역사이기 때문일 것이다.

1956년 남해에서 태어난 그는 불교방송 부산사업소장, 진여원불교대학 학장을 거쳐 부산보현의집 원장을 맡고 있다. 부산노숙자쉼터 협의회 회장을 비롯해 독거노인을 위한 무료급식 등 봉사활동을 펴고 있다.
한국문인협회 회원, Fact 포럼 대표, 한국전력공사 이사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제로에서 시작하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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