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학과 홍익대학의 두 정의 이야기
하버드대학과 홍익대학의 두 정의 이야기
  • 최재천 변호사
  • 승인 2011.01.20 12: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재천의 시사큐비즘]
   

새해 첫날 해고된 홍익대 청소·경비·시설관리 노동자들이 고용보장을 요구하며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학교 측이 계약연장을 포기한 청소·경비·시설관리 업체 2곳을 대신할 새로운 용역업체 선정에 나섰다고 합니다. 동국대학교는 고용승계를 하기로 결정했는데 홍익대는 해고된 노동자들에 대한 고용승계 조건 없이 입찰 조건을 제시하고 있나 봅니다.

▲ 홍익대 점거농성을 하고 있는 청소노동자들. ⓒ송병승
홍대 청소노동자들은 법정 최저임금 이하에 하루 11시간씩 중노동을 하면서도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했고 이를 개선하고자 학생의 도움을 받아 노조를 결성했습니다. 이들이 바라는 것은 최저임금, 폭언 금지, 식비 지급, 식사 공간, 휴가 등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최소한의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새해 첫날 170명 무더기 집단해고였습니다. 해고자들은 '학교 측이 용역업체에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인건비로 계약 연장을 요구해 무더기 해고 사태를 불러 왔다'며 고용승계와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고 있지만 홍익대 측은 '직접 고용자가 아니어서 이들과 협상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대학의 청소노동자 사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대학은 비용절감을 이유로 용역업체를 통해 청소노동자를 고용하고 영세 용역업체들은 업체선정을 받기 위해 더 낮은 노동조건을 제시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런 조건에서 청소노동자들은 최소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노조를 결성했고, 그것은 계약 해지의 이유가 되었습니다.

한양대 역시 청소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자마자 용역업체가 바뀌었습니다. 연세대와 고려대는 지난해 12월 청소노동자들 모르게 용역업체를 바꾸기 위한 목적으로 입찰설명회를 진행하려다가 노조의 항의로 무산된 바 있습니다. 동국대 청소노동자들도 지난해 10월 29일, 학교가 느닷없이 용역업체를 바꾸는 바람에 90여 명 노동자들이 해고통보를 받았습니다. 다행히 이들은 추운 날씨에 삭발, 학교 점거농성 등을 벌여 학교 측으로부터 고용보장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지난해 한양대, 연세대, 성신여대 등 청소노동자들은 학교 측의 용역업체 변경으로 해고위기에 놓였다가 점거농성을 벌인 끝에 고용보장을 약속받았습니다.

지난 해 출판계의 가장 큰 뉴스는 미국 하버드 대학교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의 판매 열풍이었습니다. 하승수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소장은 샌델 교수의 책은 현실에서 첨예한 논쟁이 벌어졌던 안락사, 장기(臟器) 거래, 징병제, 대리모 등에 관한 사례들을 통해 학생들에게 사고력 훈련, 지적 훈련을 시키기 위한 '정의에 관한 고난도의 지적 유희'라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하버드대에서는 정의를 '지적 유희'가 아닌 현실 속에서 찾으려는 치열한 노력이 있어왔다고 덧붙였습니다.

2001년 하버드대에서는 학생들이 참여한 가운데 '내가 지금 있는 곳에서의 정의'를 찾는 캠페인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생활임금캠페인'으로 불린 이 캠페인은 50여 명의 학생들이 비폭력 직접행동의 하나인 연좌시위를 하면서 시작되었고, 이 학생들의 요구사항은 '정의'였습니다. 그들은 하버드 대학 캠퍼스에서 일하고 있는 비정규·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생활임금을 지급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생활임금이란 물가와 상황을 고려하여, 노동자의 최저생활비를 보장해주는 개념으로 대체로 최저임금보다는 높습니다.

당시에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대학이라는 하버드 대학의 비정규 노동자들은 1,000여명에 달했으며 이들은 최저생계를 유지하는 데에도 못 미치는 시간당 6.5달러의 임금을 받고 있었습니다. 물론 연좌시위에 대한 하버드 대학당국의 반응은 긍정적이지 않았습니다. 학생들의 연좌농성은 3주에 걸쳐 이어졌고, 결국 하버드대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임금을 시간당 10.25달러로 올리기로 약속하게 됩니다.(하승수, “정의란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프레시안) 

<정의란 무엇인가>는 발간 6개월 만에 59만부가 팔렸나갔습니다. 2010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은 '공정한 사회'를 국정 지표로 발표했습니다. 하승수 소장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철학자의 독점물도 아니고 하버드대생들의 지적 유희의 대상도 아닌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이 발 딛고 있는 현실에서 던져야 하는 질문이라고 말했습니다. 5-60대 노동자들이 월급 75만원과 일일 점심값 300원을 지급받으며 주 50시간씩 근무하는 한국 사회, 그렇게 일하고도 새해 첫 날부터 아무런 설명 없이 해고되는 한국 사회, 과연 공정합니까? 과연 정의란 무엇일까요?

 

   
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로스쿨, 영남대 로스쿨, 전남대 로스쿨,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이번 학기는 이화여대 법대에서 2,3,4학년을 대상으로 '현대사회와 법'이라는 교양과목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11길 16 대형빌딩 402호
  • 대표전화 : 02-734-7336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석만
  • 법인명 : 뉴스렙
  • 제호 : 뉴스렙
  • 등록번호 : 서울 아 00432
  • 등록일 : 2007-09-17
  • 발행일 : 2007-09-17
  • 발행인 : 이석만
  • 편집인 : 이석만
  • 뉴스렙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렙. All rights reserved. mail to cetana@gmail.com
  • 뉴스렙「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조현성 02-734-7336 cetana@gmail.com
인터넷신문위원회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