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게 묻는다, 의무급식의 폐해가 무엇인가
조선일보에게 묻는다, 의무급식의 폐해가 무엇인가
  • 최재천 변호사
  • 승인 2011.02.15 1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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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시사큐비즘]
   

서울시교육청이 “새 학기부터 서울 21개 구(區)는 초등학교 1~4학년, 강남구를 비롯한 4개 구는 교육청 예산만으로 1~3학년 학생에게 의무(義務) 급식을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 “‘의무급식’이란 잘사는 집 자녀든, 못사는 집 자녀든 똑같이 공짜 점심을 주는 ‘무상(無償) 급식’이 호된 비판을 받자 일부 야당과 좌파진영이 만들어 낸 말”이라며 “야당과 친(親)전교조 교육감들은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한다’는 헌법 규정을 들어 의무교육 대상인 초·중학교 급식도 무상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고 포문을 열었다.(조선일보 사설, “‘의무 급식’이라 한다고 무상 급식 폐해 사라지나”)

조선일보의 의무급식 비판

조선일보는 그동안 민주당의 복지안을 복지 포퓰리즘이라 비판하며 무상급식, 무상의료, 무상보육을 ‘공짜급식’, ‘공짜의료’, ‘공짜보육’으로 치환해 왔다. 반면 야당과 진보진영은 초·중등학생들에게 제공되는 급식은 교육과 마찬가지로 모든 국민에게 최소한 일정 수준 이상의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는 관점에서 무상급식이 아닌 의무급식의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최재천의 시사큐비즘, “무상급식, 공짜급식 아니다. 의무급식이다” 참조) 그러자 조선일보가 “무상급식을 의무교육의 하나라고 주장하는 것은 무상급식의 문제점을 덮으려는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의무급식’이 말장난에 불과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들고 있다. “야당과 친(親)전교조 교육감들은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한다’는 헌법 규정을 들어 의무교육 대상인 초·중학교 급식도 무상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지만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무상 급식은 헌법상 보장된 의무교육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헌법에 학교 교육과 교육 재정에 관한 기본 사항은 법률로 정하도록 돼 있고 이에 따라 초중등교육법에는 ‘의무교육 대상에게 수업료를 받을 수 없다’고 정하고 있어 의무교육 범위가 수업료 면제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보장이나 복지정책에 대한 우리 헌법의 규정

맞다. 서울중앙지법은 무상급식이 의무교육 범위 안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결한 것이다. 야당이나 진보진영은 자라나는 우리의 아이들이 가정형편과 부모의 소득과 상관없이 모두 밝고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급식 역시 의무급식으로 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지 의무교육 안에 의무급식이 포함되어 있기에 의무급식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다. 우리 헌법을 들어 의무급식을 주장하는 논거는 우리 헌법에 분명하게 적시되어 있는 사회복지 정책에 대한 국가 의무 조항 때문이다.

우리 헌법 제34조는 ①항에서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②항에선 ‘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또한 ④항에서는 ‘국가는 노인과 청소년의 복지향상을 위한 정책을 실시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 헌법은 국가는 사회보장이나 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지고 있고, 노인과 청소년의 복지향상을 위한 정책을 실시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헌법 어디에도 노인과 청소년을 소득으로 구분해 차별적 복지정책을 실시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 않다.

▲ 오마이뉴스 ⓒ 유성호

교육의 목적이 국가경쟁력인가

더 큰 문제는 교육의 목적에 대한 조선일보의 인식이다. 조선일보는 “국가가 의무교육을 하는 이유는 부모 형편이나 직업에 관계없이 모든 국민에게 고른 교육 기회를 줘서 인간으로서 최소한 대접을 받으며 사회생활을 꾸려 나가게 하려는 것”이라면서 그러자면 “무상 급식 말고도 해야 할 일이 많다”면서 초등학교 취학률이나 교원 1인당 학생 수와 같이 선진국보다 뒤떨어지는 교육 여건부터 고쳐 국가경쟁력에 비해 뒤떨어지는 교육경쟁력부터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조선일보 말대로 국가가 의무교육을 하는 이유가 “부모 형편이나 직업에 관계없이 모든 국민에게 고른 교육 기회를 줘서 인간으로서 최소한 대접을 받으며 사회생활을 꾸려 나가게 하려면” 교육경쟁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가정 형편 때문에 점심을 굶는 학생들이 없도록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사회로 나가기도 전에 학교에서부터 인간으로서 받아야할 최소한의 존중도 받지 못하고 가정형편으로 인해 수치심을 느끼도록 만들면서 의무교육의 목적이 ‘인간으로서 최소한 대접을 받으며 사회생활을 꾸려 나가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무상급식의 폐해?

우리의 교육 목표는 결코 다른 나라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이 될 수 없다. 우리의 교육 목표는 우리 사회가 바라는 미래의 인재상을 길러내는 것이지만 그에 앞서 민주 사회의 성원으로서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건전한 시민을 키워 내는 인간교육이 그 기본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교육 목표를 얘기한다면 다른 나라와의 경쟁력을 걱정하기보다 무상급식을 통해 우리 사회의 미래 인재들이 밝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것이 우선이다. 국민을 위해 국가가 존재하는 것이지 국가경쟁력을 위해 국민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일부 교육감들이 '의무 급식'이라는 이상한 말까지 써 가며 무상 급식에만 매달리는 것은 의무교육의 기본에 어긋나는 일” 이 아니라 의무교육의 기본에 지극히 충실한 것이다.

조선일보에 묻고 싶다. “‘의무 급식’이라 한다고 무상 급식 폐해 사라지나”라고 했다. 한강에 분수 만들고 선착장 만드는 대신 자라나는 새싹들이 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의무급식을 제공하는 것이 이 사회에 가져오는 폐해는 무엇인가?

   
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로스쿨, 영남대 로스쿨, 전남대 로스쿨,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이번 학기는 이화여대 법대에서 2,3,4학년을 대상으로 '현대사회와 법'이라는 교양과목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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