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 국보 지정
‘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 국보 지정
  • 조현성 기자
  • 승인 2020.10.21 11: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야 목걸이, 조선 시대 한의학 서적, 17세기 공신 모임 그림 병풍도 함께 보물 지정
▲ 국보 제333호 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정면)

[뉴스렙] 문화재청은 고려시대 고승의 모습을 조각한 ‘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을 국보로 지정하고 15세기 한의학 서적 ‘간이벽온방’와 17세기 공신들의 모임 상회연을 그린 ‘신구공신상회제명지도 병풍’, 그리고 가야문화권 출토 목걸이 3건을 포함해 총 5건을 보물로 지정했다.

국보 제333호‘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은 신라 말∼고려 초에 활동한 승려인 희랑대사의 모습을 조각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초상조각으로서 고려 10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유사한 시기 중국과 일본에서는 고승의 모습을 조각한 조사상을 많이 제작했지만, 우리나라에는 유례가 거의 전하지 않으며 ‘희랑대사좌상’이 실제 생존했던 고승의 모습을 재현한 유일한 조각품으로 전래되고 있다.

‘희랑대사좌상’은 조선 시대 문헌기록을 통해 해인사의 해행당, 진상전, 조사전, 보장전을 거치며 수백 년 동안 해인사에 봉안되었던 사실을 알 수 있으며 이덕무의‘가야산기’등 조선 후기 학자들의 방문기록이 남아 있어 전래경위에 대해 신빙성을 더해준다.

지정조사 과정에서 이루어진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연구실의 과학 조사 결과, 이 작품은 얼굴과 가슴, 손, 무릎 등 앞면은 건칠로 등과 바닥은 나무를 조합해 만들었고 후대의 변형 없이 제작 당시의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듯 앞면과 뒷면을 결합한 방식은 보물 제1919호 ‘봉화 청량사 건칠약사여래좌상’처럼 신라∼고려 초에 해당하는 비교적 이른 시기의 불상조각에서 확인되는 제작기법이어서 희랑대사좌상의 제작시기를 유추하는데 참고가 된다.

건칠기법이 적용된 ‘희랑대사좌상’은 육체의 굴곡과 피부 표현 등이 매우 자연스러워 조선 시대에 조성된 ‘여주 신륵사 조사상’, ‘영주 부석사 소조의상대사상’ 등 다른 조각상들과 달리 관념적이지 않고 사실적인 표현이 돋보인다.

마르고 아담한 등신대 체구, 인자한 눈빛과 미소가 엷게 퍼진 입술, 노쇠한 살갗 위로 드러난 골격 등은 매우 생동감이 넘쳐 생전의 모습을 연상하기에 충분하다.

‘희랑대사좌상’의 또 다른 특징은 ‘흉혈국인’이라는 그의 별칭을 상징하듯, 가슴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다.

이 흉혈은 해인사 설화에 의해 희랑대사가 다른 스님들의 수행 정진을 돕기 위해 가슴에 작은 구멍을 뚫어 모기에게 피를 보시한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고승의 흉혈이나 정혈은 보통 신통력을 상징하며 유사한 모습을 ‘서울 승가사 석조승가대사좌상’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이렇듯 우리나라에 문헌기록과 현존작이 모두 남아있는 조사상은 ‘희랑대사좌상’이 유일하며 제작 당시의 현상이 잘 남아 있고 실존했던 고승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재현해 내면의 인품까지 표현한 점에서 예술 가치도 뛰어나다.

후삼국 통일에 이바지했고 불교학 발전에 크게 공헌한 희랑대사라는 인물의 역사성과 시대성이 뚜렷한 제작기법 등을 종합해 볼 때, 이 조각상은 고려 초 10세기 우리나라 초상조각의 실체를 알려주는 매우 귀중한 작품이자, 희랑대사의 높은 정신세계를 조각예술로 승화시켰다는 점에서 역사·예술·학술 가치가 탁월하다.

보물 제2079호‘간이벽온방[簡易瘟方]’는 1525년 의관 김순몽, 유영정, 박세거 등이 평안도 지역을 중심으로 역병이 급격히 번지자 왕명을 받아 전염병 치료에 필요한 처방문을 모아 한문과 아울러 한글로 언해해 간행한 의학서적이다.

국립한글박물관 소장본이며 1578년 이전 을해자로 간행한 것이다.

책의 내용을 보면 병의 증상에 이어 치료법을 설명했고 일상생활에서 전염병 유행 시 유의해야 할 규칙 등이 제시되어 있다.

국립한글박물관 소장 ‘간이벽온방’는 ‘선사지기’가 찍혀 있고 앞표지 뒷면에 쓰인 내사기를 통해 1578년년 당시 도승지였던 윤두수에 의해 성균관박사 김집에게 반사된 책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이는 이 책이 늦어도 1578년 이전에 간행됐다을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이러한 기록 등을 토대로 ‘간이벽온방’는 현재까지 알려진 동종문화재 중 시기적으로 가장 앞선 판본임을 알 수 있으며 그 전래가 매우 희귀해 서지학 가치 또한 매우 높게 평가되고 있다.

‘간이벽온방’는 조상들이 현대의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을 극복하고자 노력한 흔적을 보여주는 서적일 뿐 아니라 조선 시대 금속활자 발전사 연구에도 활용도가 높은 자료인 만큼 보물로 지정해 보존·관리하는 것이 타당하다.

보물 제2080호‘신구공신상회제명지도 병풍 녹훈된 구공신과 신공신들이 1604년 11월 충훈부에서 상회연을 개최한 장면을 그린 기록화이다.

당시 상회연 개최는‘선조실록’권181, 37년 11월 13일자 기사를 통해 확인되며 이 때 이항복과 유영경이 상회연에서 선온을 하사받은 것에 사례하는 전문을 선조에게 올렸다고 함 상회연의 신·구공신은 총 151명으로 1590년 2월 1일 녹훈된 광국공신과 평난공신 42명과 1604년 6월 25일 녹훈된 호성공신, 선무공신, 청난공신 109명을 말한다.

‘신구공신상회제명지도 병풍’의 좌목에 적힌 공신들은 1604년 상회연 당시 생존해 있던 63명의 명단으로 이중 5명은 노환으로 불참했으므로 실제 행사에 참석한 인원은 58명이다.

좌목은 공신 명칭, 문무관 품계, 자, 생년, 본관, 이름순으로 기재됐다.

‘신구공신상회제명지도 병풍’은 총 4폭으로 구성됐다.

오른쪽 제1폭은 상회연의 장면을 그린 것이고 제2폭∼제3폭에 걸쳐 참가자들의 명단을 작성한 것이며 제4폭은 위쪽의 제목을 제외하고 내용은 비어 있다.

각 폭은 비단 2쪽을 위에서 아래로 길게 이어 붙였으며 제2폭부터 제4폭까지 위쪽에 붉은 선을 그어 구획을 하고 그 안에 전서체로 제목 ‘신구공신상회제명지도’라고 적었다.

넓은 차양 아래 3단의 돌계단 위에서 공신들이 임금이 내린 술을 받는 장면이 중앙에 그려져 있고 오른쪽에는 나무 옆에서 음식을 화로에 데우는 모습 등 준비 장면이 그려져 있다.

그림에 그려진 공신들의 숫자와 실제 참석자는 58명으로 일치하며 위에서 내려 본 부감시로 특징만 포착해 선묘로 간략하게 그린 점은 17세기 기록화 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다.

원경의 눈 덮인 설산과 앙상한 나뭇가지 표현은 상회연 개최 시기인 음력 11월 상순이라는 계절감을 전달해 주며 필치가 매우 세밀하고 단정하다.

‘신구공신상회제명지도 병풍’은 공신 관련 그림으로서 현재까지 유일하게 알려진 작품이라는 점, 제작시기가 명확해 기년작이 드문 17세기 회화 양식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기준작이 된다는 점에서 역사·미술사적으로 의의를 지닌 작품이므로 보물로 지정할 가치가 충분하다.

이번에 지정된 ‘김해 대성동 76호분 출토 목걸이’ 등 가야 시대 목걸이 3건은 ‘철의 왕국’으로 주로 알려진 가야가 다양한 유리 제품 가공 능력도 뛰어나 고유한 장신구 문화를 형성했음을 보여주는 유물로 출토 정황이 명확하고 보존상태가 좋으며 형태가 완전해 역사·학술·예술 가치를 지닌 보물로서 가치를 인정받았다.

보물 제2081호‘김해 대성동 76호분 출토 목걸이’는 3세기 말~4세기 초 금관가야 시기 중요한 고분 중 하나인 김해 대성동 76호 고분에서 2011년 대성동고분박물관 발굴조사 때 목곽묘에서 발견됐다.

76호분 출토 목걸이는 서로 길이가 다른 3줄로 구성됐고 수정제 구슬 10점, 마노제 구슬 77점, 각종 유리제 구슬 2,386점 등 총 2,473점으로 이루어졌으며 평균 지름이 6~7mm 정도로 아주 작은 형태로 다듬은 것으로 보아 여기에 깃들인 가야인들의 시간과 정성을 간접적으로 말해준다.

맑고 투명한 수정과 주황색 마노, 파란색 유리 등 다종다양한 재질과 색감을 조화롭게 구성한 것이 특색이다.

유리를 곡옥이나 다면체 형태로 섬세하게 가공하고 세밀하게 구멍을 뚫어 연결하거나 표면을 매끈하게 다듬는 등 조형적인 완결성을 갖추고 있어 당시 유리세공 기술이 매우 우수했음을 보여준다.

‘김해 대성동 76호분 출토 목걸이’는 3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발굴조사를 통해 출토지와 유물의 내역이 분명하고 여러 재료를 정교하게 가공해 색상과 질감을 조화롭게 배치한 가야인들의 수준 높은 문화를 엿볼 수 있으며 금관가야 문화를 대표하는 중요한 공예품으로 역사·예술 가치가 충분한 유물이다.

보물 제2082호‘김해 양동리 270호분 출토 수정목걸이’는 1992년 동의대학교박물관의 제2차 발굴 조사 중 토광목곽묘에서 발굴됐다.

양동리 고분 270호는 인접한 여러 고분과 겹쳐 있어 대부분 훼손된 상태였으나 토기류와 철제 유물이 다수 출토되어 가야인들의 생활상을 알려 주는 중요한 고분으로 꼽힌다.

‘김해 양동리 제270호분 출토 목걸이’는 수정제 다면옥 20점과 주판옥 120점, 곡옥 6점 등 총 146점의 수정으로 구성됐다.

전체 약 142.6cm의 길이에 육각다면체형, 주판알형, 곡옥형 등 여러 형태로 수정을 다듬어 연결했으며 제작 시기는 고분의 형식과 부장품 등으로 보아 3세기로 추정된다.

영롱하고 맑은 투명 무색과 황색 및 갈색 등이 약간 섞인 은은한 색의 수정 표면을 매끈하게 다듬었고 형태와 크기가 다른 수정을 조화롭게 배치해 조형성이 매우 뛰어나다.

목걸이를 구성하고 있는 수정은 한동안 외국산으로 알려졌으나, 최근에는 학계의 연구를 통해 경상남도 양산 등 우리나라 지역에서 생산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수정목걸이는 3세기 금관가야를 대표하는 지배계층의 장신구로서 3∼4세기 가야 유적에서 다수 출토되었으나, 이 목걸이처럼 100여점 이상의 수정으로만 구성된 사례는 매우 희소하다.

또한 가공 기법 또한 오늘날의 세공기술과 비교해도 될 만큼 완전성이 뛰어나 당시 수준 높은 기술과 세련된 미적 감각을 보여준다.

이 시기를 대표할 수 있는 중요한 공예품으로서 기술·예술적 수준이 뛰어나 보물로 지정할 가치가 충분하다.

보물 제2083호 ‘김해 양동리 322호분 출토 목걸이’는 1994년 동의대학교박물관이 목곽묘에서 발굴한 유물이다.

함께 발굴된 유물 중 중국 한대 청동 세발 솥 등을 통해 3세기 경 축조된 금관가야 시대 고분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목걸이는 수정제 곡옥 147점, 대형 수정제 다면옥 2점, 마노 환옥 6점, 파란 유리 환옥 418점 등 다양한 재질과 형태의 보석 총 574점으로 구성됐다.

특히 경도 7의 단단한 수정을 다면체로 가공하거나 많은 수량의 곡옥 형태로 섬세하게 다듬은 제작 방법은 가야인들의 기술적 면모를 보여준다.

기원을 전후한 시기부터 3세기 대까지 유행한 가야의 장신구는 수정이나 마노를 주판알 모양으로 깎거나, 유리로 곱은옥[曲玉]이나 둥근옥[球玉]을 만든 목걸이였다.

김해 양동리 322호분에서 출토된 목걸이는 이러한 가야 구슬 목걸이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으며 투명한 수정을 육각형으로 다듬고 거기에 붉은색 마노와 푸른색의 유리옥을 더해 영롱한 빛으로 조화를 이룬 것이 특징이다.

‘김해 양동리 322호분 출토 목걸이’는 발굴조사를 통해 출토지와 유물의 내역이 분명할 뿐 아니라 수정제 곡옥이나 대형 유리제 곡옥이 한꺼번에 발견된 희귀한 사례로서 중요하며 수정을 정교하게 가공한 기술과 다채로운 색채와 질감이 조화를 이룬 조형의식이 돋보여 당시 장신구 문화의 세련된 수준을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3세기 금관가야의 지배층 문화를 대표할 수 있는 귀중한 장신구로서 보물로 지정할 역사·예술 가치가 충분하다.

이번에 지정된 가야 목걸이 3건은 각각 하나의 유적에서 일괄로 발견됐고 금관가야 고분에서 출토된 목걸이 중 많은 수량의 구슬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희귀한 사례에 해당되며 이를 통해 가야인들이 신분적 위상과 지배 계층의 권위를 장신구를 통해 드러내었음을 실증적으로 말해 준다는 점에서 학술적으로 중요하다.

또한, 금·은 제품을 주로 다룬 신라, 백제인들과 달리 수정이나 유리구슬을 선호한 가야인들의 생활상과 연관이 깊은 작품으로 화려함을 추구한 당시 사람들의 또 다른 모습을 새롭게 인식하게 해주는 유물이라는 점에서 보존가치가 높다.

“ 구슬을 보배로 삼아 혹은 옷을 꿰어 장식하고 혹은 목에 걸고 귀에 달았지만 금·은·비단은 진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문화재청은 해당 지방자치단체, 소유자 등과 적극적으로 협조해 이번에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된 문화재들이 체계적으로 보존·활용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11길 16 대형빌딩 402호
  • 대표전화 : 02-734-7336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석만
  • 법인명 : 뉴스렙
  • 제호 : 뉴스렙
  • 등록번호 : 서울 아 00432
  • 등록일 : 2007-09-17
  • 발행일 : 2007-09-17
  • 발행인 : 이석만
  • 편집인 : 이석만
  • 뉴스렙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렙. All rights reserved. mail to cetana@gmail.com
  • 뉴스렙「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조현성 02-734-7336 cetana@gmail.com
인터넷신문위원회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