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의 정치학, 노무현 시대
‘모순’의 정치학, 노무현 시대
  • 최재천 변호사
  • 승인 2011.05.24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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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시사큐비즘]
   

5월 20~21일,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 주최로 '노무현 정부의 실험: 미완의 개혁'이라는 주제로 학술회의가 열립니다. 이 글은 학술회의 정치 분야의 발제자이신 장덕진 교수의 '4대 개혁입법의 실패와 개혁동력의 상실'이라는 논문에 대한 저의 토론문입니다.

“자신이 제공하려는 것에 비해 세상이 너무나 어리석고 비열해 보일지라도 이에 좌절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어떤 상황에 대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할 확신을 가진 사람, 이런 사람만이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가지고 있다.”(막스 베버, <소명으로서의 정치>)

1. 모순의 시대, 노무현 정치

모순의 정치다.
노무현 대통령 개인으로나, 정치적으로나, 특히 정치현실이라는 측면에서나 거의 그러했다. 노무현 시대의 정치를 굳이 규정해야 한다면 ‘정치적 이상과 현실과의 불일치’, 특히 ‘개인의 정책적 소신과 정치권 현실과의 불일치’, ‘개인의 정치적 비전과 결사, 정당, 나아가 제도보장과의 불일치’, 선출이라는 정통성을 가진 ‘행정부와 의회와의 충돌’, ‘사회 세력의 두 축을 이루는 정치적 이념적 다수파와 소수파 간의 넓고 깊은 간극’, 그리고 이들 여러 축 사이의 ‘결코 화해할 수 없는 길항관계와 모순들’이 떠오른다.
 
물론 정치는 이상과 현실의 지극한 조화일 것이다. 모순의 정치라는 턱없는 규정이 시론적 단상에 불과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이런 현실은 노무현 시대의 구체적인 정치와 정책에서는 치열하게 맞붙는다. 그래서 중심은 중요하다. 일관된 정책과 비전은 의미심장하다. 특히 헌법상으로나 정치현실이라는 측면에서 ‘강력하고 중앙집중적인 대통령제’를 가진 우리나라에선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모순을 통합하고 조정하며 탁월한 예지력으로 시대를 끌고나갈 정치지도자의 존재는 한 나라의 운명과 상당부분 직결될 수밖에 없다.
 
몇 가지 예를 들어야겠다.
공공성을 강화해 소수파와 사회적 약자를 옹호했어야만 했다. IMF 구제금융의 후유증이 본격적으로 실생활에 치명적 영향을 가하고 있던 시점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행정부 시절이나 지금이나 사회의 대표적 모순은 ‘부동산’과 ‘교육’이다. ‘아파트’와 ‘사교육’이다. 하지만 부동산에 대한 초기 규제정책의 대표적 사례였던 부동산원가공개, 그리고 교육정책은 온전히 ‘비즈니스 영역’을 벗어나지 못했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는 구호로만 상정하지 않았을 뿐 실상은 당시에도 엄존했다. ‘감세’는 노무현 행정부 초기 대표적인 정책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워싱턴 프로세스’의 담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사소유권은 서서히 절대화됐고, 공공의 영역은 축소됐다. 공공성에 대한 정책적 일관성이 유지될 수 없었다. 이런 상황 아래서 복지정책은 설 자리를 잃었다. 국민연금 지급률을, 시차는 두었지만 60%에서 40%까지 낮추었던 일은 복지국가라면 결코 꿈꿀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당시 이에 대한 정책결정과 행정부와 의회의 논의 수준은 모순의 결정판이었다. 하지만 유권자와 시민들, 집권당 그리고 친노라는 이름의 주류 정치세력은 스스로가 ‘사회적 약자와 소외되거나 배제된 사람들의 대표성을 자신들이 담지하고 있다’고 착각했다. 중대한 모순이었다. 심정적 대표성과 정책적 대표성은 철저히 불일치했다.
 
2002년 한국사회는 건국 이래 최고의 자신감에 충만해있었다. 혁명에 가까운 김대중 행정부로의 정권교체, IMF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와 기적 같은 극복, 월드컵4강, 남북관계의 결정적 호전 등으로 우리 사회는 모든 면에서 자존심에 들떠있었다. 그래서 ‘반미면 어떠냐는 명제’조차도 이데올로기적 저항을 뚫고 충분히 공감될 수 있었다. 2006년 이래 주한미군은 더 이상 대북억지력이 아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사실상 전면개정됐다. 용산미군기지 이전은 자존의 한 측면임을 인정하지만 그 비용 부담은 온전히 우리 몫이다. 한미동맹은 어느 정부 때보다 강화됐고 주한미군은 동북아 신속기동군으로 재편됐다. 모순이었다.
 
현 정부는 노무현 행정부 때 합의했던 전략적 유연성과 한미FTA를 강력하게 계승한다. 소수파의 지배체제 청산 등 모든 면에서 ‘잃어버린 10년’을 강조하고 있는 정부가 이 두 가지 정책만은 강력하게 계승하고 있는 이유는? 한미FTA는 본질적으로, 그리고 대통령 스스로 여러 사석에서 시인했듯, ‘타율적 개혁’의 결정판이다. 더 이상의 정치, 사회개혁을 진행할 수 없다고 느꼈던 노무현 행정부는 ‘대연정’과 함께 집권 말기에 이르러서야 한미FTA라는 모순에 가득 찬 카드를 꺼내든다. 한미FTA는 통상의 문제가 아니다. 관세인하의 문제가 아니다. 법과 제도를 타율적이고 급속도로 전환시키는 위험한 제도다. 왜 이런 방식의 개혁을 선택하고 충분한 공적 토론과 공화주의적인 경로를 거치지 못한 채 결정했어야만 했을까.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했다. 자조였을까 아니면 개혁의 자기확인이었을까. 정치개혁에 대한 순수한 열정, 지역구도 타파에 대한 일관된 신념, 지방분권, 사회적 공정성, 소수파와 다수파가 공정하게 경쟁하고, 서로가 수시로 자리를 맞바꿀 수 있는 세상을 꿈꾸었다. 그 열정은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가. 열정을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제도화해내지 못했다. 특히 정당개혁을 통한 정치개혁의 열정은 미국식과 유럽식 정당제도 사이에서 끊임없이 정치적으로 소모됐을 뿐 이를 조정하여 한국적 정치제도로 구체화시키지 못했다.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에 대해선 언급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당정분리’라는 수사 또한 공표와 현실 사이에서 당시 여러 모순에 직면해 있었다는 사실만은 확인해두어야겠다. 누구는 안된다는 배제의 논리, 입각을 통한 적절한 개입, 직계라는 이름과 대통령제라는 일극주의적 정치현실이 가진 강력한 구심력. 집권당의 자율성과 책임능력은 결코 담보 받지 못했다. 물론 당시 의회 다수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의 무능과 분파성, 정책적 무소신, 그리고 중심지지세력과 의회주도세력 간의 정책적 불일치에 대해선 당연히 시인한다. 한나라당의 재보선 패배에 따른 후유증은 데자뷰다. ‘46 대 0’ 이라고 표현되던 수많은 재보선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지금 한나라당의 쇄신파가 주장하듯 끝없는 정책적 변환과 소통방식의 전환을 당에 의해 요구당했으면서도 청와대의 반응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았음을 언론을 기록한다.
 
이런 정치적 경험들을 일단 ‘모순’이라고 하자. 대통령 스스로가 힘겨웠을 것이다. 개인의 전인격과 영혼, 그리고 정치현실 사이의 불일치는 고통이었을 것이다. 이를 제도화해낼 만한 정치적 역량과 한국 사회의 여러 주변 환경들이 모순의 한 축이었음은 당연히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들을 극복해 나아가는 과정이 곧 정치라면 대통령 개인, 제도로서의 대통령, 그리고 행정부와 다수당 간의 조정능력과 정치적, 정책적 일관성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고 이를 실천해낼 만한 비전과 역량 또한 턱없이 부족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과연 정책적 일관성과 준비된 비전은 정확히 제시되었을까. 임기 내내 적절한 로드맵으로 진행되었을까. 정치적 리더십은 일관되었을까. 정당제도의 취약성, 대의제도의 한계, 행정부의 독단과 절대성, 헌법과 현실의 불일치, 이 모든 것들이 결국 노무현 정치를 규정했던 모순들이었고, 이 모순들은 노무현 시대의 정치를 규정했다. 정치적 책임은 이미 부과됐다. 정권은 교체됐다. 대통령은 역사가 됐고, 다른 한편 월광에 물든 신화가 돼가고 있는 중이다.
 
이 모든 모순을 대통령 개인에게 부담시키는 것이냐고? 전혀 그렇지 않다. 결국은 정당의 문제고, 헌법 제도의 문제고, 한국적 정치현실의 문제고, 주권의 한계 문제이다. 무엇보다도 주도세력의 문제였다. 논문이 적절히 지적하듯 우리 사회 소수파의 문제였다. 다만 현실을 그대로 인정해 버리기엔 가야할 길이 아직은 멀다.
 
2. ‘갈등의 선택’이라는 측면에서의 정치적 가능성

정당의 입장에서 갈등의 선택이란 1) 이념적인 차원과 2) 현실적인 차원이 있다고 가정할 수 있다. 이념적인 차원은 우리 사회의 중대한 모순에 대한 개혁주의와 관련될 수 있고, 현실적인 차원은 다수연합의 가능성이 높은 선택 혹은 자기 세력의 분열 가능성이 낮은 선택을 의미할 수 있는 것이다. 정치란 이 두 차원의 조합을 의미한다.
 
장덕진 교수의 주장은 노무현 행정부에서 추진한 국가보안법 폐지를 비롯한 4대 개혁입법(사립학교법, 과거사진상규명법, 언론관계법)은 이념적인 차원의 개혁적인 의제 선택으로 현실적으로는 상대에게 유리하고 자신에게는 불리한 갈등을 선택했던 것으로 거의 완전한 실패였다고 정리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따라서 그 대안으로 사회복지나 양극화와 같은 사회경제적 개혁 이슈를 선택했어야 했다고 주장한다. 논문은 이념적이고 상징적인 개혁 이슈를 선택하면서 사회경제적 개혁 이슈를 배제한 것의 문제를 지적한다는 점에서 그동안 일부 진보진영의 노무현 행정부에 대한 비판과 동일한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노무현 행정부가 이념적 이슈보다 사회경제적 측면의 개혁을 중심으로 지지연합을 운영해 갔어야 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상당한 합의가 존재한다.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철회를 설명하는 기존의 분석들 역시 경제적 이슈 선택의 중요성을 확인해준다. 이내영․정한울의 논문(2007)은 이슈를 각 정당의 이념적 위치를 구분해주는 위치이슈(position issue)와 경제적 실적에 대한 평가처럼 유권자의 객관적 평가가 가능한 실적이슈(performance issue)로 구분하고 유권자의 이슈에 대한 태도가 정당 지지 철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석한다. 분석 결과, 노무현 행정부에 대한 국정평가와 경제적 평가에 대한 실적이슈가 열린우리당 지지자들의 이탈을 설명하는 변수로서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본다.(“이슈와 한국 정당지지의 변동”. 한국정치학회보 제41집 제1호.)
 
4대 개혁입법안 중 어떤 것도 경제정책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았고, 엄존하는 이데올로기와 보수언론의 왜곡과 확대 재생산이라는 현실의 벽을 넘을 수 없었다고 보는 교수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특히 의회에서의 표결 결과를 바탕으로 한국 정치 현실에 엄존하는 정치적 계파성을 분석해가며 갈등과 분열의 구조를 논증해낸 교수의 방식은 대단히 의미 깊다. 다만 몇 가지 세부 사항, 즉 갈등의 선택과 조합, 전략, 평가 등과 관련해서는 이견이 아니라 좀 더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고 본다.

3. 그럼에도 몇 가지 생각해야 한다면

○ 소수파의 한계 속에서 어떤 전략을 선택했어야 했나?

소수파의 한계를 인정하고 사회경제적 이슈와 같은 장기적 문제를 중심으로 정치를 이끌어나갔어야 했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만, 당시 60년 동안 누적되어 온 정치적, 사회적 적폐를 해소하고 가자는 여론 역시 높았던 점은 지적할 수 있다. 기득권 집단인 과거 권위주의 세력에 대한 역사적 청산을 하고 가자는 의회 밖 지지 세력들의 여론 역시 무시할 수 없었다.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한 기본권에 대한 보장은 불가능했다. 민주화 이후 더욱 확대된 보수언론의 영향력에 대한 개혁 역시 매우 중요한 사회적 이슈였다. 나아가 사학과 종교가 결합되어 나타나는 사회적 위험성 역시 무시할 수 없었다. 그것이 4대 개혁입법으로 나타났다.
 
더군다나 17대 총선의 결과 열린우리당이 의회권력을 지배하면서 진보진영이 대통령 권력과 의회권력을 동시에 장악하는 역사적 상황이 벌어졌다. 60년 동안 누적되어온 사회적 병폐, 근본적인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역사적 기회, 더 이상의 기회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만한 현실이 존재했던 것도 사실이다. 청와대와 의회를 동시에 장악한 결과 한 번도 제대로 시도되지 못했던 개혁적 이슈를 해결하고자 하는 과도한 열정이 불러졌다. 사회적 개혁이슈를 해결하고 나서 그 다음해부터 실용적인 이슈, 사회경제적 이슈를 선택해야 한다는 주장이 당시의 분위기였다. 지금과 같이 사회복지 이슈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나타나기 전이었다. 당시 집권세력의 정치력과 예지력으로 사회복지정책에 대한 이슈를 제기하고 이를 현실적으로 견인해낼 만한 비전과 능력이 있었을까? 회의적이다. 국민연금에 대한 퇴행적 제도개혁과 내부적으론 청와대가 주도했던 영리병원 도입론, 나아가 공공성에 대한 치명적 위해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한미FTA로 이어지는 정책적 일관성이 도리어 역설적 반증이다. 기대하기 어려웠다는 의미다. 그래서 논문의 비판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 개혁법안을 지지해 줄 뚜렷한 사회세력, 지지세력은 부재했나?

“4대 개혁입법에 대해 해당 분야의 관련자들이나 관련 지식을 가지고 있는 양심적 소수를 제외하고 잘 알지 못하거나 한나라당의 담론에 이미 포섭되어 있는 상태였다”고 보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당시 국가보안법 폐지를 제외하고 나머지 개혁입법에 대해서는 개혁을 지지하는 여론이 높았다.
 
(2004년 조사에 따르면 과거사 진상규명에 대해서는 찬성이 57.5%, 반대가 38.2%, 사립학교 개정법안에 대해서도 사학비리 근절을 위해 여당안보다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 36%를 포함, 찬성 의견이 58.6%로 사립학교법 개정에 대해서도 상당한 공감대가 있었다. 언론개혁과 관련해서도 반대 35.7%, 여당안대로 입법화 해야된다는 의견이 26.6%, 여당법안보다 더 강화된 입법안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23.9%로 나타났었다.)
 
사회개혁에 대한 시민들의 욕구는 노무현 행정부와 열린우리당의 입법안보다 더 컸다고도 할 수 있다. 또한 지지층이 분산된 측면은 있었지만, 국민들의 공감대도 컸고 시민사회 쪽의 진보적인 지지층, 진보언론의 강력한 지지가 뒷받침되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당시에는 우리 사회의 퇴행적 주류계층과 판 자체를 한번 바꿔보자는 분위기가 팽배했고, 과도한 정치적 열정으로 충만해있던 시기였다. 물론 이를 시대적 소명의식으로 판단하고 주도해나가야 할 능력이 곧 정치라 한다면 사후적 비판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으면서도, 당시로 되돌아간다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장담할 수 없을 것 같다.
 
○ 4대 개혁입법은 완전한 실패였나? 다시 선택할 기회가 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4대 개혁입법의 경우 “국가보안법은 표결조차 이루어지지 못했고, 나머지 3개의 법들은 본래의 취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손상되었거나, 개악되었거나, 존폐위기에 서있다”는 점에서 “거의 완전한 실패”라고 말할 수 있을까? 4대 개혁입법의 좌절로 인해 대통령을 비롯한 정권 전반의 개혁동력이 뚜렷이 상실되었던 것은 맞다. 하지만 그러한 시도가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을 만큼 무의미한 것으로 완전한 실패였다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최소한 남용의 가능성과 위험성을 상당부분 거세시켰다. 더군다나 논문도 염려하듯 이런 사회개혁은 언젠가는 다시 선택해야 하는 근본적인 이슈다. 그런 기회가 다시 왔을 때 과거의 경험은 충분한 학습의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다. 다시 선택할 기회가 왔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무엇보다 4대 개혁입법이 성공할 수 없었던 데는 한국의 대통령 중심제의 한계가 근본적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한국 정치 현실에서 대통령이 모든 개혁과 이슈를 선점하고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이 많았다. 이 과정 속에서 의회는 솔직히 종속적 지위에 불과했다. 정당은 주체적 속성이 취약했다. (특히 국가보안법의 경우 왜 다른 법안과는 달리 직권상정으로 철폐시킬 수 없었을까. 왜 대통령은 처음에는 전면적 폐지론에서 나중에는 돌아섰을까. 그리고 이런 입장변화가 열린우리당과 의회에 미치는 영향은 과연 어떠했을까. 실상은 본질적이다.) 당시 정치현실에서 개혁의 의제와 선택은 실상 대통령의 의지에 결정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개혁의 선택과 좌절, 실패 모두 대통령 개인의 문제로 치환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분명히 존재했다. 열린우리당과 의회에 충분히 자율성을 부여했음에도 그러했다고 항변할 것이다. 정당과 의회제도의 무능과 무기력은 이미 제도적이다. 그 무능과 무기력조차도 정책적 실행능력의 중대한 상수로 집어넣고 판단했었어야만 했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또 그런 기회가 온다면 개혁의 주체로서 대통령과 의회의 역할, 둘 간의 관계 정상화 등 근본적인 구조 문제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교수의 한국 정치에 대한 경험적 연구와 분석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 그동안 우리 정치에 대해서는 인상 비평이나 추상적인 연구가 지나친 측면이 있었다. 이론의 과잉, 혹은 정치지도자 개인에 대한 해석이 과도했다. 물론 그것이 정치현실이었다. 교수의 이런 분석과 연구가 정치적 다원주의, 좀 더 나아가 한국정치제도 내외부의 민주주의를 구체화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법안을 중심으로 한 구체적인 분석 방법론이 한국 정치 연구에서 보다 확대되기를 기대한다.

   
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로스쿨, 영남대 로스쿨, 전남대 로스쿨,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이번 학기는 이화여대 법대에서 2,3,4학년을 대상으로 '현대사회와 법'이라는 교양과목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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