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밑바닥 사람들의 미래는
한국 밑바닥 사람들의 미래는
  • 최재천 변호사
  • 승인 2011.06.29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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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시사큐비즘]
   

“여기저기 남녀를 불문하고 술 취한 사람들이 휘청거리고 있었고 대기는 서로 싸우고 옥신각신하는 역겨운 소리로 가득했다. 시장에서는 늙은 남자와 여자들이 썩은 감자, 콩, 채소 진창에 던져진 쓰레기를 뒤지고 있었고, 어린 아이들은 썩어빠진 과일 주변에 파리처럼 우글거리며 질척한 그 부패물에 팔을 어깨까지 쑥 넣어 먹을 것을 조금씩 꺼내고 있었다. 썩어가는 것이었지만 아이들은 그 자리에서 그것들을 먹어치웠다.”
 
잭 런던과 찰스 부스

미국인 잭 런던(Jack London)은 1902년 여름 탐험가가 된 심정으로 영국 런던의 밑바닥으로 내려갑니다. 그는 런던의 이스트엔드에 도착한 날의 풍경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활기가 없고 상처입고 왜소하게 일그러져 있는 나쁜 삶을 살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는 자신이 경험한 시기가 영국의 호황기 였다는 사실을 상기합니다. 영국 런던의 빈곤지역 체험 르포라 할 수 있는 <밑바닥 사람들>에서 런던은 자신이 목격한 굶주림과 주택 부족은 끔찍한 만성적 상황으로 영국이 가장 번영을 누렸던 시기에도 결코 해소되지 않고 있었다고 쓰고 있습니다. 그는 책 서문에서 “사람들은 내가 영국에서 발생하는 일에 대해 너무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고들 비판한다. 그러나 제대로 말하자면 나는 단연 가장 낙관적인 사람이다.”라고 쓰고 있습니다.(잭 런던, <밑바닥 사람들>)

영국의 사회학자이자 사회운동가인 찰스 부스(Charles Booth) 역시 19세기 말 런던의 빈민굴을 중심으로 빈곤조사를 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가 사재를 털어 12년간 런던 주민을 대상으로 사회조사를 실시했던 것은 당시 '런던 노동자 계층의 25%가 극빈층‘이라는 사회주의자들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연구 결과는 그를 충격에 빠뜨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사 결과 런던 주민의 35%가 '절대빈곤층'인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조사결과는 <런던 주민의 생활과 노동>(Life and Labour of the People in London)(총 17권)이라는 책으로 출판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연구는 빈곤조사나 사회조사의 선구적 연구로 인정받게 됩니다.

손낙구, 대한민국 정치사회지도

1659쪽에 이르는 대작 <대한민국 정치사회지도>를 쓴 저자 손낙구씨는 이 책을 쓰면서 90여 년 전에 세상을 떠난 찰스 부스가 생각났다고 했습니다. 노동운동가 출신 저자는 진보정당의 국회 입성으로 국회에 들어가면서 서민과 관련이 있는 부동산 문제를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부동산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반지하에 있는 사는 사람들 때문이었습니다.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인지는 단군 이래 한 번도 조사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 때부터 거주층을 묻는 질문이 추가되면서 역사상 처음으로 지하에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 그들은 어디에 사는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2006년 국정감사를 앞두고 옥상에 사는 사람들, 판잣집이나 움막, 동굴에 사는 사람들과 관련된 자료를 요구하게 되면서 반지하 등에 사는 사람이 160만 명이나 된다는 결과를 보게 됩니다. 그리도 이들은 수도권에 집중돼 있었습니다. 이런 통계를 보면서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땅 위에 살 수 있는지를 생각하려면 어느 동네에 얼마나 살고 있는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를 알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주택자산에 대한 통계를 조사하기 시작해 <대한민국 정치사회지도>를 만들게 됩니다. 그는 “정당이나 사회운동이 지역에서 활동할 때 밑바닥에 사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고 정당이나 사회운동을 하면 되겠는가?”라고 말했습니다.
 
산업혁명을 통해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번영한 나라가 되었지만 당시 영국 런던의 빈곤상황은 매우 처참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산업화를 통해 경제발전을 이룬 대한민국은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올라섰지만 전기세와 수도세를 낼 돈이 없어서 전기와 수도가 끊기고 먹을 것이 없어서 점심을 굶는 아동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경제 양극화라는 말처럼 경제호황과 빈곤증대는 같이 가는 말이 되어버렸습니다. 더 이상 경제성장이 빈곤층을 줄이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더 확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빈곤의 원인이 밝혀지다

1905년 영국 왕립빈민법위원회의 다수파는 빈곤이 개인의 책임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곧 밝혀지게 됩니다. 찰스 부스 같은 개혁가들에 의한 빈곤조사에서 개인이 아니라 저임금과 불안정한 일자리가 빈곤의 원인임이 확인됐기 때문입니다. 이후 토리당을 누르고 집권한 자유당 정부는 재빨리 노령연금, 의료보험, 실업보험 같은 보편적 복지를 확립해 근대 복지국가의 기틀을 다지게 됩니다.

한국의 비정규직은 전체의 절반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2008년 기준으로 노동자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수준은 평균임금의 32%로 OECD 19개 국 가운데 16위로 최하 수준이었습니다. 또한 저임금계층(중위임금의 3분의 2 미만)이 25.4%로 OECD21개국 중 가장 많았고, 임금불평등(하위 10% 임금 대비 상위 10% 임금) 역시 4.78배로 OECD 27개국 가운데 세 번째로 높았습니다. 우리보다 높은 나라는 멕시코(5.71배)와 미국(4.87배)뿐이었습니다.(한겨레, “노동계 “최저임금, 노동자 평균의 절반 법제화를””)
 
현재 한국의 최저임금은 4,320원입니다. 노동계와 사회운동 단체들은 내년치 최저임금을 시간당 5410원(월 113만690원)으로 인상하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최저임금을 인상해봐야 지난해 전체 노동자 평균임금(226만4500원)의 50%에도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유럽연합(EU)의 경우, 최저임금이 전년도 전체 노동자 평균임금의 60%가 될 수 있게 인상률을 정하도록 각국에 권고하고 있습니다. 이런 조건에서는 일을 해도 가난한 워킹푸어들이 증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여전히 빈곤은 개인의 책임이며 보편적 복지는 안된다고 말하는 것이 한국의 현실입니다. 이미 100년도 전에 영국에서 결론이 난 문제가 21세기 한국에서는 여전히 논쟁거리입니다.
 
한국에선 여전히 논쟁거리

잭 런던은 서문의 마지막에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나는 정치적 성향이 아니라 개인을 기준으로 인간을 평가한다. 사회는 발전하지만 정치적 기구들은 산산이 조각나서 ‘폐품’이 되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영국의 미래는 인간다움, 건강과 행복이 있는 한 밝다. 그러나 인간다움, 건강과 행복을 잘못 관리하고 있는 수많은 정치기구들은 폐품더미로밖에 보이지 않는다.(잭 런던, <밑바닥 사람들>)
 
한국은 어떻습니까? 정치조직이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최소한의 건강과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제대로 관리하고 있나요? 인간다움, 건강과 행복을 잘못 관리하고 있는 우리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로스쿨, 영남대 로스쿨, 전남대 로스쿨,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이번 학기는 이화여대 법대에서 2,3,4학년을 대상으로 '현대사회와 법'이라는 교양과목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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