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사람, 스님 아니라니깐!"
"죽은 사람, 스님 아니라니깐!"
  • 이혜조
  • 승인 2011.07.14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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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크 칼럼] 소신공양에 무심한, 그래서 한심한
부처님이 살아 계셨으면 뭐라고 했을까.

14일 새벽 사미니계를 수계한 뒤 환속한 한 불자가 소신공양했다. 작년 이맘 때 4대강 반대, 부정부패 척결,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위한 정책을 주문하고 떠났던 문수 스님의 부도 앞에서.

듬성한 글씨의 유서는 보살정신을 촘촘히 담았다.

'인연된 모든 영가들은 건강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좋은 곳에 태어'나길 기원했다. '불자 가정에 경전이 널리 퍼져서 아기 적부터 부처님 가르침을 접하게' 해달라는 거였다.

'모든 분들의 아픔이 어서 치유되기를' 서원하며 약사다라니도 읊었다. 남은 이들을 위해 '오래 슬퍼하지 마시고 다만 정법이 오래 머물도록 애써 주십시오' 빌었다. 가족에겐 '불법 안에서 평화로워라'고 남겼다.

온 몸에 휘발유를 끼얹어 생을 마감하는 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의 차분함과 배려심을 느낄 수 있었다. 행간에서 깊은 신심과 자비심을 읽은 것은 필자만의 착각일까.

'금생에 인연이 다하여 먼저 다음생으로 넘어'가는 이에게 오늘 하루 우리들은 무심했다.

소신공양 속보를 문자로 보낸 뒤 온 첫 반응은 "내가 그 여자 잘 아는데 죽은 사람, 스님 아니라니깐!. 빨리 고쳐요!" 였다. 대단한 오보를 낸 줄 알았다. 이어진 그 스님의 말은 차마 글에 담지 못하겠다.

비슷한 내용의 전화가 여러 통이었다. 취재진들마다 다 받은 듯하다.

하루를 살아도 스님은 스님이다.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이라 했다. 선방문고리만 잡아도...라고 했다. 이 삼천대천을 칠보로 장식하는 공덕보다 이 사구게만 외워도...라고 했다. 그이는 사미니계를 수계하고 법명까지 지닌 스님이었다. 조계종 종헌에서 사미(니)를 사부대중이 아닌 '제5열'로 취급할지언정 필자는 스님으로 부르고 삼배하고 외경한다. 해야 한다.

차별 없이 대하고 시비분별을 떠나야 한다고 경전에선 일렀고, 계급을 타파하자는 것이 석가모니부처님의 뜻이었다. 그래서 이번 초파일 행사부터는 정관계인사들에게도 다른 불자들과 차별없이 자리를 줬던게 아닌가.

비구니계를 받지 않은 사실에 대한 지적은 맞다.

소신공양한 지 꼬박 14시간이 지나도 총무원은 애도문은커녕 논평 한 줄 내지 않는다. 하긴 문수 스님이 소신공양할 때 종단이 보여준 태도도 이해하는데 쉽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언론들이 달라졌다. 작년 이맘 때부터 부도제막식까지 '소신공양한' 문수 스님이라더니 오늘은 약속이나 한 듯이 '분신 사망한' 문수 스님이란다.

항의하거나 정정보도를 요청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헷갈린다. 앞으로는 문수 스님이 분신 사망했다고 써야 하나.

스님들 주장대로 '석진' 또는 '명문'은 스님이 아닐 수도 있다. 그렇다면 한 여성불자가 절절한 유서를 남기고 행한 소신공양에 왜 우리는 애도하면 안 되나. 유서처럼 '이 막막한 무심을 가늠할 수' 없다.

아무래도 부처님이 되물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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