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는 한국 사회
거꾸로 가는 한국 사회
  • 최재천 변호사
  • 승인 2011.07.21 16: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재천의 시사큐비즘]
   

지난 해 말인 2010년 12월 16일 의미 있는 판결이 있었습니다. 대법원전원합의체가 대법관 12명의 전원일치로 유신헌법에 근거한 긴급조치 1호가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한 헌법 위반이라는 판결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1974년 유신체제 하에서 긴급조치 1호가 발동된 지 36년 만에 긴급조치의 위헌성을 인정한 첫 판결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그 당시 긴근조치 하에서 국민들이 당했던 고통과 아픔에 비하면 너무 늦은 판결이었지만 뒤늦게나마 국민의 입을 막고 국민들의 정당한 기본적 권리마저 박탈했던 독재정권에 대한 사법적 판단이 내려졌다는 점에서 환영을 받았습니다.

막걸리 보안법의 최후

박정희 유신독재 하에서 긴급조치는 국민들이 유신헌법에 대한 어떠한 언급이나 의견은 물론 정권에 대한 어떠한 비판도 허용하지 못하도록 막는 무시무시한 억압의 상징이었습니다. 신문 보도에 따르면 길 가던 엿장수가 대통령을 욕했다고 징역 8개월을 살았고 막걸리를 마시면서 정권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가혹한 처벌을 받은 사례 역시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막걸리보안법’, ‘막걸리 긴급조치’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지난 대법원의 긴급조치 위헌 판결을 통해 독재정권에 의한 민주주의 파괴와 국민들의 기본권 박탈행위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대법원의 위헌 판결에 대해, 검찰이 “긴급조치 위헌 판단은 헌법재판소에서 해야 한다”며 위헌판결 무효를 주장하고 나섰다는 신문보도가 있었습니다. 지난 6월 10일 서울중앙지검의 검사가 서울고법에 항소이유서를 제출했습니다. 대통령긴급조치 위반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서아무개(59)씨 등 3명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자 이에 대한 항소장을 제출한 것입니다. 해당 재판부가 “법령이 위헌일 경우, 해당 법령으로 공소가 제기된 사건은 무죄”라며 서씨 등에게 무죄를 선고했기 때문입니다.

검찰이 긴급조치를 옹호?

검찰은 항소장에서 대법원의 긴급조치 1호 위헌판결이 헌법에 규정돼 있는 사법심사의 범위를 벗어났다고 지적하면서 ‘법률’에 대한 위헌심사는 헌법재판소에서 이뤄져야 하는데,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은 대법원이 위헌 판결을 내렸다고 주장했습니다. 무엇보다 검찰은 “긴급조치는 당시 유신헌법에 따른 절차를 거쳐 형식적 의미의 법률과 동일한 효력이 있었다”며 “긴급조치의 근거가 된 유신헌법도 국민적 동의를 받았으므로, 긴급조치는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검찰은 “긴급조치권 발령의 상황인지 여부에 대한 판단권은 대통령이 가지고 있었고, 북한의 위협이 계속되는 시대적 상황을 감안할 때 긴급조치 발령상황이 아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혀 긴급조치의 존재를 옹호하는 듯한 의견을 밝히기도 했습니다.(한겨레신문, “검찰, 긴급조치 위헌판결, 대법 소관 아니다”)
 
언론과 검찰,  ‘중간권력’이 문제

지난 블로글에서 ‘2차 희망버스’ 참가자들의 평화행진을 원천봉쇄하고자 강경, 폭력 진압했던 경찰의 대응에 반응했던 한국 언론을 보면서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헌법에 근거해 발동했던 긴급조치 시대를 떠올렸습니다.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말살될 때 그것이 한국 민주주의에 가져올 결과가 너무도 명백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의 검찰은 국민의 기본권을 박탈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했던 권위주의 독재의 대표적 상징이었던 긴급조치의 존재마저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한때는 민주주의의 보루였던 언론이, 민주화된 이후 민주주의를 지키는 파수꾼이라 자처했던 검찰이었습니다. 

한국은 대통령‧정치인‧군‧정보기구와 같은 거대권력의 문제도 여전하지만 이제는 조중동‧KBS와 같은 언론대기업, 고시출신 판검사 등 특수한 ‘중간권력’의 문제가 시민의 기본권을 위협하는 상황에까지 도달하고 있습니다.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언론은 학생과 더불어 한국 민주주의를 지켜온 기둥이자 마지막 보루였습니다. 언론은 거대자본이 아니었고, 정치권력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정치가 권위주의화 할 때마다 그에 정면으로 맞서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언론은 더 이상 한국 민주주의를 지키는 보루가 아닙니다. 거대 언론은 민주주의의 기반을 허물고 권위주의화를 부추기는 중요 주체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검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언론과 검찰이 정부의 권력 아래에서 시녀 노릇을 할 때 한국 사회가, 민주주의가 어디로 갈지는 분명합니다. 대법원의 긴급조치 위헌 판결은 아무리 긴 세월이 흘러도 긴급조치와 같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위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입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일어났던 수많은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말살하는 사건들 역시 훗날 역사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을지 기억해야 합니다. 이제는 권위주의로 회귀하고 있다는 국민들의 비판의 목소리를 겸허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로스쿨, 영남대 로스쿨, 전남대 로스쿨,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이번 학기는 이화여대 법대에서 2,3,4학년을 대상으로 '현대사회와 법'이라는 교양과목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제보 newsrep21@gmail.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