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테이너와 표현의 자유
소셜테이너와 표현의 자유
  • 최재천 변호사
  • 승인 2011.07.29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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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시사큐비즘]
   


▲ ‘MBC 규탄 화환’ 앞에서 퍼포먼스 벌이는 탁현민 교수. (18일 정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MBC 앞에는 ‘소셜테이너 출연금지법’을 규탄한다는 내용이 담긴 근조화환이 등장했다. 탁현민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가 화환 옆에서 ‘삼보일퍽’ 퍼포먼스를 재현했다. <오마이뉴스, Ⓒ 이미나>

최근 언론매체를 통해 소셜테이너란 새로운 말이 자주 회자되고 있다. 이 말은 영어 소셜과 엔터네이너를 결합한 합성어로 연예인 김미화, 김제동, 김여진씨 등이 적극적인 사회참여 활동을 펼치며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된데서 비롯된 신조어다.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직업도 다양해지고 가치관도 다양해지다 보니 새로운 사회활동 영역이 만들어지고 그에 걸맞게 새로운 용어가 만들어진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런 일이다. 그러나 한국에선 이 새로운 유형의 연예인들이 여론의 ‘공정성’을 헤친다는 ‘불공정한’ 근거로 방송활동에 제재를 받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고 있는 것이다.

공영방송사가 주도하는 이런 제재조처의 부당함은 다른 나라의 경험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다른 나라, 특히 우리가 여전히 선망의 대상으로 삼는 미국에선 연예들의 사회참여 활동이 전혀 낯선 일이 아니다. 세계적인 배우로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숀 펜,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앤절리나 졸리, 매트 데이먼, 마틴 쉰, 조지 클루니는 미국의 대표적인 소셜테이너들이다. 그들은 방송과 영화를 통해 얻은 자신의 명성을 부를 쌓고 여흥을 즐기는 데만 활용하지 않는다. 숀 펜은 대규모 지진피해를 입은 아이티 재건을 위해 구호기구를 설립해 5만 명의 이재민들에게 숙소를 마련해주고 그 스스로도 직접 의료봉사 활동에 참여했다. <타이타닉>의 주인공 디캐프리오의 관심사는 환경이다. 그는 자기 이름으로 설립한 재단을 통해 환경운동을 벌이고 있으며, 위기에 처한 생태계를 고발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11번째 시간(The 11th Hour)>을 제작하기도 했다. 앤절리나 졸리의 사회활동은 한국에서도 적잖이 알려져 있다. 그녀는 2001년 이래 유엔 특사로 난민구호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쳐왔고 아이티, 이라크 등 20개국 이상을 방문하며 농촌지역 빈곤퇴치에도 힘썼다. <본(jason bourn)> 시리즈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매트 데이먼은 북아프리카 물위기를 그린 영화 <사하라 달리기(Running the Sahara)>의 주연을 맡았을 뿐 아니라 자신이 세운 ‘H2O 아프리카’란 단체를 통해 우물과 위생시설 설치에 필요한 소액융자를 제공하고 있다. 이들 중에서도 사회활동에 가장 적극적인 이는 단연 <오션스> 시리즈의 조지 클루니다. 그는 지난 5년 동안 아프리카 수단인들의 안전과 인권, 남수단의 분리독립을 지원하고 있으며, 자비로 인공위성을 사들여 북수단의 군사행동과 대량학살을 감시하고 있기도 하다.

이들은 누구나 쉽게 동의할만한 인도주의 사업이나 구호활동, 환경보호에 주력하는 반면, 한국의 소셜테이너들은 지나치게 정치적이고 논쟁적인 문제에 집중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드라마 <웨스트 윙(The West Wing)>에서 대통령 조사이어 바틀렛으로 열연했던 마틴 쉰의 활동은 이런 지적을 무색케 만든다. 그는 수많은 반전․반핵집회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환경보호와 총기규제에 대한 찬성을 근거로 민주당 엘 고어와 하워드 딘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기도 했다. 게다가 그는 정치사회적 이슈를 다룬 대중집회에 참여하면서 무려 64차례나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The Progressive, 1999-08-22). 이런 이유 때문에 아들 부시 정부 하에서 마틴 쉰이 방송활동에 제재를 받은 적은 없다. 물론 미국에서도 이들 소셜테이너의 표현의 자유가 사회적 반발 없이 마냥 널리 인정받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얼마 전 영화배우 제인 폰다는 1960년대 반전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쳤다는 과거의‘정치이력’ 때문에 방송출연이 무산되는 경험을 당했다. 이에 대해 방송사는 시청자들이 베트남전에 반대했던 폰다를 비난하는 항의전화를 한 데다 방송이 나가면 불매운동을 벌이겠다고 협박해 방송을 취소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문 사례일 뿐 미국의 소셜테이너들은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폭넓은 표현의 자유를 누리며 그만큼 강한 사회적 책임의식을 갖고 정치사회활동에 펼친다.

내전에 휩싸인 수단인들의 안전과 인권을 위해 일하는 조지 클루니는 소셜테이너로서의 자기 역할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뉴스위크> 2011-03-02). “이곳에 살며 아내와 자녀가 학살될까 두려워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증폭시키는 일이 내 임무다. 그들은 산꼭대기에 올라가 외치려 하지만 성능 좋은 확성기도 없고 산도 별로 높지 않다. 그래서 높은 산을 가졌고 성능 좋은 확성기를 가진 누군가가 나서서 자신의 가족과 마을을 보호해달라고 요청하고 싶어한다. 그러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당신 큰 확성기가 있소?’라고 묻는다. 나는 ‘그렇소’라고 말한다. ‘소리를 널리 퍼지게 할 만큼 높은 산도 있소?’ ‘그래요, 상당히 높은 산을 갖고 있죠.’ ‘그럼 나를 위해 소리 좀 질러 주겠소?’ 그러면 나는 ‘좋아요, 그렇게 하리다’라고 말한다.” 비록 지금 한국에선 공영방송사들이 소셜테이너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려 하지만, 그럴수록 한국에서도 조지 클루니와 같은 생각을 가진 더 많은 소셜테이너들이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정치를 소명으로 하는 나에겐 좋은 의미의 또 다른 경쟁자이자 협력자가 될 것이다. 내가 그들의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로스쿨, 영남대 로스쿨, 전남대 로스쿨,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이번 학기는 이화여대 법대에서 2,3,4학년을 대상으로 '현대사회와 법'이라는 교양과목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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