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의견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거나 토를 다는 것이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조계종의 총무원장을 두 번이나 역임하시고 근자 활발한 활동을 하고 계신 스님께는 더욱 그러합니다.
불교계는 시대적으로나 상황적으로나 도약을 통한 중흥 또는 퇴보라는 분기점에 서 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종단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지대한 영향력을 갖고 계시는 스님께서 두 번에 걸쳐 중요한 말씀을 하셨는데 종단은 물론 스님의 주변에서 그와 관련된 어떤 진척도, 실효성 있는 반응도 보이지를 않고 있어 필을 들었습니다.
우선 혜민 스님의 일에 대하여 나름대로 소견을 밝히자면, 승려는 “자신이 스스로의 스승이 되어야(自己心爲師)” 하는데 그러하지 못한 점이 허물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동안 사회적 유명세와 더불어 포교에 일조한바 적지 않았는데 하루아침에 이른바 ‘풀(full) 소유자’로 논란이 야기된 데는 포교와 관리라는 큰 틀에서 종단에도 책임이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종단이 사회적 호법차원에서 들여다봐야 할 사안이라고 봅니다.
비록 이번 혜민 스님의 일은 개인적인 사례이나 조계종단의 현실과 비교되는 면이 적지 않습니다. 일천 수백만 신자 운운하다가 어느 순간에 몇 백만으로 추락하고 승려 수도 감소세이며, 사회적 역량도 현저하게 저하된 것과 겹쳐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근래 스님께서 하신 두 번의 공개제안이 상기되었습니다. 가장 근래의 일로 지난 11월 26일 봉은사 구생원에서 하신 말씀의 주요 내용부터 언급해 보겠습니다.
“신도 없는 종교는 존재할 수 없고, 스님이 없다면 부처님 가르침이 전해질 수 없다.” “앉아서 입으로 불교가 콩이니 팥이니 하지 목숨 걸고 포교하는 스님은 많지 않고 그저 추상적으로 ‘불교가 이래선 안 된다’ 정도 생각만 할 뿐 적극적으로 대안과 방법을 제시하지 않는 게 한국불교의 현실” “신도를 늘리는 등 대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도심 몇몇 사찰을 제외하고 산중 사찰은 문을 닫게 되고 사찰은 문화재로 전락하게 될 것”
이렇게 현실을 진단하시면서 그 대안으로 스님은 “스님과 불자 한 사람 한 사람이 1년 동안 불자가 아닌,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 10명만 부처님과 인연을 맺게 하겠다고 원력을 세워 실천하면 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한 달 전 10월 26일에는 봉은사 보우당에서 자비순례를 회향하고 자자(自恣)를 하는 자리에서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교계 언론에서 주요 내용을 옮겨 봅니다.
“부처님 뜻에 따라 차별 없이 만행결사를 했다.” “앞으로 미래불교는 차별 없는 세상을 사부대중이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불교의 미래를 내다보고 불교중흥을 위해 사부대중이 차별 없이 함께 노력하자고 상월선원 만행결사가 이뤄졌다는 것을 인지해 달라.” “우리가 보여준 공동체가 한국불교를 일으키는 데 원동력이 되길 기원한다.” “종단이 해코지를 당할 때 이를 지키는 동력은 ‘차별없는 사부대중’에 있다. 사부대중이 차별없이 한마음 한뜻으로 종단을 외호하고 불교 발전을 위해 노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상월선원 천막결사와 만행결사가 이뤄졌다”
10월 26일과 11월 26일 한 달 사이의 스님의 말씀은 너무나도 지당하고 현 종단이 우선의 정책으로 삼아야 하는 내용이 분명합니다.
다만 저의 생각은 제대로 된 원인분석 등 진단이 선행될 때 성공을 담보할 수 있는 대안의 생산이 가능하며, 나아가 불교중흥이 가능할 것인데 이 대목이 발견이 안 되고 있습니다.
우선 지난 10월 26일 말씀과 같이 “불교의 미래를 내다보고 불교중흥을 위해 사부대중이 차별 없이 함께 노력”을 하려면 그 선행 조건은 현 종단의 운영형태, 종무의 제반 방향부터 차별이 없는 내용과 모양으로 변화되고 구축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총무원장 선거권부터 차별 없이 전 종도에 부여하고 주지의 임명과 교역직 인사도 객관적인 기준에 의거해서 차별 없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야말로 조계종단 전반에 걸쳐서 일대 혁신의 변화가 수반되는 대작불사입니다.
무엇보다 ‘차별 없는 사부대중’과 그러한 종단문화를 성공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종단의 지도층부터 기득권을 내려놓는 등 평등화를 위한 자기변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 대중들의 공통된 생각이기도 할 것입니다.
스님께서 하신 말씀은 결국 이 일을 하자는 선언으로 이해됩니다. 수십일 동안 냉기가 뼛속을 파고들어오는 육신의 고통을 감내하신 후에 세상을 향해서 하신 말씀이니 그 무게감이 크다고 봅니다.
아울러 스님께서 총무원장으로 재직 시 혹여 차별적으로 처결한 공적업무나 개인적 일이 하나라도 있다면 이제라도 바로 잡는 말씀과 진행을 하셔야만 대중의 절대적인 지지와 차별 없는 종단 문화조성에 대한 대중적 지지와 확장성이 담보될 것입니다.
또한 스님은 “미래불교는 차별 없는 세상을 사부대중이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현 한국사회의 불평등한 제도나 현상들을 바꾸거나 사람들의 차별의식을 전환시키는 일은 복잡하고도 어려운 문제이나 불교계가 정토구현의 차원에서 해야 하는 일이며 존재의 이유이기도 합니다.
실력이 있어도 경쟁에 밀리고 삶에 지쳐서 허덕이는 수많은 흙수저와 온갖 차별로 인해 서러움 속에 힘들게 사는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하신 말씀이라 이해됩니다. 불교계가 이 역사적 사업에 선도적 역할을 해서 한국사회에 일대 변화를 이끌어 내자고 하셨으니 늦은 감이 있으나 반가운 일입니다.
그런데 한 달이 넘어가도 ‘차별 없는 불교와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제안에 대해 후속 조치가 부재하니 의아스럽습니다. 혹시나 지난번 중앙종회에서 자승 스님의 고언을 따라서 조계종단과 사회의 차별에 대한 제반 문제를 해결하는 특별위원회라도 구성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는데 말입니다.
기실 21일간 ‘불교중흥과 국난극복’이라는 강력한 염원으로 스님을 중심으로 고난의 행보를 한 분들이라면 당일에 스님의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그 자리에서 스님의 의지를 받들어서 차별 없고 평등한 종단과 세상을 이루기 위한 조직을 구성하고 실현을 위해 우리부터 솔선수범해서 정진하자는 발언과 합창이 나와야 마땅했습니다.
스님께서 “종단이 해코지를 당할 때 이를 지키는 동력은 ‘차별 없는 사부대중’에 있다”고 하신 바 평소에 차별을 당한 종도가 제아무리 능력이 있다 해도 종단이나 혹은 특정 고위급 스님이 해코지를 당할 때 앞장서라면 흔연히 나서겠습니까?
지난 11월 26일에는 봉은사 구생원에서 “신도 없는 종교는 존재할 수 없고, 스님이 없다면 부처님 가르침이 전해질 수 없다”, “스님과 불자 한 사람 한 사람이 1년 동안 불자가 아닌,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 10명만 부처님과 인연을 맺게 하겠다고 원력을 세워 실천하면 된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불자와 출가자가 급감하는 안타까운 불교계 현실을 지도자의 입장에서 걱정하신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무슨 원인으로 지난 일이십년 사이에 불자 수가 급감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불자의 급감원인을 냉철하게 분석부터 해야만 실효성 있는 대책의 수립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탈종교화 시대, 이웃 종교의 적극적 활동, 인구수 감소운운 하는 것은 제대로 된 분석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대로 된 답을 도출하려면 지난 일이십년 사이에 한국불교를 대표한다는 조계종의 전반적인 운영에 무엇이 잘못 또는 미흡했는지에 대한 종단 내부의 가감 없는 자기 고발이 필요합니다.
그 책임과 원인을 일차 종단을 운영한 고위직 스님들에게 있는지 아니면 일반 대중에 있는지도 따져볼 일입니다.
종단을 운영한 분들에게 있다면 종단을 어찌 운영했기에 불자수가 감소하고 불교세가 약화되었으며, 우리사회에서 불교계가 주도하는 가치관이나 세계관이 자리 잡지 못했나에 대한 것도 불교의 존재이유 차원에서 짚어봐야 합니다.
그러나 조선이 망한 것은 일차 임금과 조정의 대신들에 있으며, 조계종도 문제가 있어서 책임을 묻는다면 그동안 조계종을 운영한 그 주체에 있음이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조선왕조가 망한 주된 이유가 조선의 백성에 있다고 한다면 과연 누가 수긍을 하겠습니까? 마찬가지로 불자의 감소나 불교계의 암울한 현실에 대한책임이 일반 스님들에게 있다고 한다면 누가 수긍을 하겠는지요? 만일 일반대중에게 있다면 대중은 참회를 하고 거듭나야 합니다.
스님은 불교계와 한국사회에 막강한 힘을 가지신 분입니다. 10월 26일의 말씀에 대해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사업의 전개가 없다면 너무나 무책임하다는 생각입니다.
자비순례에 동참한 스님이나 학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야말로 허공에 옷소매 한 번 펄럭인 것이 아니라면 조계종단과 사회에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조속한 조치와 불자의 증가와 불교세의 사회적 강화를 위한 크고 제대로 된 중장기 대책을 제시해야 합니다.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단은 총무원이라는 중앙조직과 각 교구본사라는 지방운영 체제로 이원화되었으나 사실상 중앙의 통리 하에 있습니다. 이러한 운영체계 하의 조계종에서 불교중흥을 이루려면 종헌기구 간 유기적인 협력관계가 잘 이루어지고 교구본사 주지스님 등 지도자들이 책임감으로 무장되고 부지런해야 합니다.
총무원이라는 중앙조직으로 모든 것이 운영되는 현대에서 고려나 조선시대와 같이 ‘결사’가 성공 내지는 그 효과를 담보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입니다.
결국 ‘결사’가 대중의 의식 변화를 꾀하거나 종단의 각종 운영체계의 효율성을 높여서 수행과 포교에 효과를 증장시키자는 것인데 이는 종단의 조직과 기능을 통해서 이루어져야만 현실적으로도 성공이 가능하고 제도로써 정착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불교 현실에 대한 책임을 종단을 그동안 운영해 온 고위급에 무게감을 두었으나 대중도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모든 국가는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Every nation gets the government it deserves)”. 이 문장은 사보이아 공국의 철학자였던 조제프 드 메스트르(Joseph de Maistre / 1753 – 1821)의 말입니다.
“그 수준에 맞는”다는 의미는 결국 국민의 수준을 의미합니다. 이 말을 조계종단에 대입을 하면 ‘조계종은 승려의 수준에 맞는 총무원 집행부를 갖는다.’가 됩니다. 어찌되었든 조계종의 집행부는 현 종헌과 종법에 의해 승려들이 선택하기 때문이며, 문제가 있어도 방관하거나 적극적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현직 총무원장스님 그리고 고위급 스님들께서 진정으로 현실에 대한 책임을 느끼고 종단과 한국불교의 중흥을 도모하며, 세상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뿌리내리는데 여생을 보내시려면 무위의 상태에서 종단과 세상을 바라보고 또한 행보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거듭 말씀드리며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2020년 12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