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가답게 `진흙땅 마른풀 덮듯 해야` 해결
△ 11일 관음사 일주문에 시몽스님의 출입을 막은 채 염불중인 스님. 관음사 문제는 종단 정치현실의 축소판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음사가 어지럽다. 매우 어지러워 도대체 중심을 잡을 수 없다. 싸움에는 룰이 있으며 심판도 있다. 그런데 스님들이 관련된 분쟁의 특색인 심판도 룰도 없는 싸움을 보고 있다. 기자회견과 상호비방과 반박이 난무하고 있다. 보도를 보니 중앙종회초선의원스님들이 ‘관음사 특단의 조치 추진할 것’이라는 다소 어려운 문구의 성명서까지 발표했다.
조계종단은 ‘본사 분규’가 바이러스처럼 번지고 있다. 불과 2-3년 사이 수 개의 본사 주지가 검찰의 수사선상에 있고, 주지 직을 놓고 내홍을 겪었다. 이유가 무엇일까. 작금의 종단은 권력 장악을 위한 정치화와 세속성에서 탈피하지 못해 전 승려의 사판화가 쓰나미처럼 산중을 덮치고 있다. 관음사 문제에 직간접의 관계일 수밖에 없기에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원인의 태동부터 나름대로 불편부당(不偏不黨)한 입장을 견지하려 애쓰면서 살펴보기로 한다. 관음사 사태는 오늘날 우리 승가의 대표적 문제점들이 함축된 도가니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문제의 태동, 선암사로 부터 자유롭지 못해
1995년도에 능원스님과 같이 선암사 소임을 맡은 적이 있다. 선암사 경내지 수용 저지가 목적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당시 주지스님은 연임치 못하고 대신 혜민 스님이 주지로 임명됐다. 주지 임명 전 필자는 조계사 인근 모 식당에서 혜민 스님에게 선암사 주지를 맡지 말라고 간곡하게 당부했다. 선암사는 현실적으로 여러 문제들이 복잡하여 스님이 해결하기 에는 힘이 부치고, 토지보상금에 눈독들이는 이들이 많아 정치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무엇보다 은사인 중원스님과 의기가 맞지 않기에 일 년을 넘기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주지로 부임, 우여 곡절을 겪으면서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음이 주지의 사실이다. 취임 얼마 후 혜민 스님은 주지를 사직하고 애절할 정도로 온갖 송사에 시달렸다. 혜민 스님이 주지로 부임 당시, 중원스님에게 선암사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기 위해서는 능원스님과 본인이 6개월 정도는 소임을 더하여 토지 수용문제 등 주변 잡다한 것들을 정리해야 한다고 했으나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방을 나오면서 “스님은 선암사문제와 관련스님들로 인하여 이후 엄청난 고통을 겪을 것이다”라고 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 말은 맞아 떨어지고 있다.
선암사는 근 10년간 토지수용보상금 문제로 온갖 송사와 종단차원의 조사가 이뤄졌다. 1996년도 이후 선암사 문제의 중심은 86억7,000만원(이자 포함 총 14,196,259,436원)이며 모두의 관심사였다. 원칙에서 벗어나고 서로 융섭치 못하니 사건의 연속일 수밖에 없음은 당연하다.
수행환경 수호에 있어서 종단과 대중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싸웠다면 선암사 토지의 강제수용은 막을 수 있었다 자신한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잿밥에 더 관심이 많기에 그저 몇몇만 헛수고하고 그 결과는 불교 교세의 약화와 대중간 대립과 반목으로 이어지는 현실이다.
관음사 사태, 종단 정치 현실과 무관하지 않아
우선 관음사 문제를 큰 틀에서 볼 때 종단 정치풍토가 종헌종법이나 건전한 정치역량 보다는 개인 대 개인, 감정 대 감정에 치우친 결과물로 보여 진다. 종헌기구의 결정이 일관성을 결여해 영이 서지 않고, 기구의 운영대의가 무너지고, 승납을 떠나 정치권력 지향적으로 우리의 삶 또한 변하는 종단의 현실을 부정키 어렵다.
원인은 원칙이 무너진 시대상, 사그라지는 승가의 전통, 어른의 부재, 지나친 정치 지향, 책임감과 애종심의 퇴색, 종헌종법의 경시, 허약한 우리들의 자질 등이다. 이를 하루아침에 바로잡을 수는 없겠으나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치유기간을 꾀 단축할 수 있다. 그러나 우선 종단차원의 대 각성과 지도자들의 의지와 역할에 대한 재인식이 충족되어야 한다.
현 종법은 승려의 본사와 본사 간 이적을 엄격히 다루고 있다. 산중총회(주지선거)에 따른 주지 선출의 폐단을 막기 위한 조치다. 그리하여 기존 본사의 기득권과 정체성을 유지시키고 있다. 특정 본사를 장악하려는 불순한 의도와 선거의 과열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한 본사의 정치적 장악이 사실상 불가능한 현실이다. 그런데 관음사는 이런저런 이유와 상황으로 어느 정도의 노력만 한다면 장악이 가능하다고 판단하는 세력들이 없다면 거짓이다. 반드시 모든 사건에는 사태에 편승해 어부지리를 얻는 자들이 있지 않은가 말이다. 종권지상주위로 치닫는 현실에서 관음사도 이런 작용이 있다고 본다면 오판일까.
△ 초파일을 몇일 앞둔 관음사 경내에는 찾아오는 불자도 없이 을씨년스럽다. 진흙 땅에 마른 풀 덮듯 불교적인 해법을 찾아내는 것이 제주불교 나아가 한국불교를 살리는 길이다.
원죄는 중원스님, 종헌기구의 섣부른 판단도 한몫
관음사는 중원 스님이 8년간 주지로 살 때 그리 시비 거리가 없었다. 용주 스님이 주지로 살 때 내심 불만은 있었으나 표출되지 않았다. 문제는 지난해 말부터 주지 및 중앙종회의원선거를 앞두고 조금씩 지진의 징후가 보이더니 강진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태의 해결방식이 여법하지 못할 경우 대규모 쓰나미도 불가피하다.
첫째, 관음사 문제의 책임 중심은 중원스님임을 부정치 못한다. 이유를 불문하고 소위 어른이라는 위치에서 책임을 회피할 수만은 없다. 법, 정치, 모든 것 이전에 관음사의 최고 중심이며 어른이라는 점에서 현 사태에 대한 책임이 있다. 덕화가 부족하던, 집권 욕이 있던, 타 승려들이 법리 해석력이 부족하던, 승가의 전통을 알던 모르던 말이다.
둘째, 주지직과 권력욕에 가득차 있는 정치세력들이다. 관음사와는 전혀 무관한 어느 스님이 2년 전 부터 수차 관음사에 대한 관심을 보이며 중원스님을 이대로 둬야 하는 지를 필자에게 묻기에 내심 의아해 했다. 관음사의 현 문제에 있어서 종단이나 관음사의 발전을 순수하게 원한다면 정치적 의도나 사적 감정을 배제해야 한다. 종단이나 종도들의 체면을 생각하면서 해결안을 찾도록 해야 옳다. 종헌종법에 한계점이 있다면 모여서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없앨 것은 없애고, 화해가 필요하면 화해해야 한다. 총무원이나 사찰 그리고 관련자 각각의 체면과 위상도 세워 주면서 해결안을 모색해야 우리나라의 으뜸 종교인 불교다운 처신일 게다. 그러나 상대를 넘어뜨려야 하는 냉철한 정치적 의도가 앞서는 현실 앞에서 대화등 원융의 해결안이 제시될 리가 만무하다.
셋째, 은·상좌 간 사소한 감정을 넘어 그 이상의 것이 작용했음도 부정치 못할 것이다. 앞서 선암사 문제를 장구하게 거론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의 골이 깊다. 그러나 냉철하게 살피건대 과거 선암사의 주지 직을 둘러싼 일련의 사태와 파행은 어느 누구의 일방적 책임이나 잘못이 아닌 당사자 모두의 책임임을 깨달아야 한다. 자기변명은 공허할 뿐이다. 애원 하다시피 하고, 방향을 제시해도 듣지 않았다. 원한은 다른 원한을 낳고 업장만 상속된다.
넷째, 종헌기구 역시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본사규칙이나 이런 저런 법리적 해석의 이견에 대한 것들은 법규위원회에 심판을 청구 했어야 옳았다는 생각이다. 이견이 있으면 각각의 주장을 성실히 청취해야 한다. 각고의 노력과 가능한 모든 조치 이후에 결정하여 권위와 신뢰를 스스로 높였어야 했다. 종헌기구의 최종 결정이 묵살 당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를 각각의 종헌 기구의 관계자들은 깊이 연구하고 원인과 처방을 제시해야 한다. 조직 최고의 결정이 권위를 상실한다면 승가라는 공동체의 와해 조짐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 학문적 정설이다. 모든 본사의 주지 다툼이나 분쟁이 그러 하듯 관음사 사태 역시 현실불교의 어두운 면들을 통째로 보는 듯하다.
‘풀로 진흙 땅 덮듯 해서 없애는 법’ 배워야
이미 모두 망신을 당했다. 아니라 한다면 바보다. 망신의 진행을 이 정도에서 그치고 종단이나 그나마 제주불교의 자존심을 찾도록 해야 한다. 가르침 중에서 해결의 근거 예를 제시한다. 사분율의 한 대목을 보면 ‘풀로 진흙 땅 덮듯 해서 없애는 법’ 이라는 가르침이 있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의 파당 싸움으로 많은 계를 범하며 수년이 지나도 계속되자 부처님은 쌍방 이유를 불문에 붙이고, 무조건 마른풀로 진흙땅을 덮는 것과 같이 하라 하셨다. 종헌이나 종법이 그 자체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출가자는 중생제도의 방편물에 불과한 것이 대승의 가르침이라 생각한다. 그러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이 나올 것이다. 자기 혼자 잘되려고 존재함도 아니다. 묻노니 관음사 사태의 원인이 무엇이며, 서로 간 주도권 다툼이 무엇을 위한 다툼인가?
해결의 방향으로서 집행부의 권위 있는 중진, 관음사회주, 주지직무대리 그리고 산중총회에서 추천됐다는 스님이 자리를 마주하기 바란다. 사심 없는 대화로서 현 관음사 문제의 해결책을 찾음이 승가답다는 생각이다. 법적다툼이나 감정의 대립, 이해득실과 반목에 따른 대립은 불교발전의 장애이며 종단과 불교 위상에 누만 될 뿐이다. 무엇보다 제주불교를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결과만을 자초할 것이다. 이미 명분을 떠나서 불자들의 대립도 현실이지 않은가 말이다. 대화가 발전해 관음사 정상화를 위한 로드맵을 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가닥씩 풀어 나가도록해야 한다. 해결의 시종은 조건 없는 회동이다. 가르침대로 풀로 진흙 땅 덮듯 해서 해결 하라는 것이다. 우리가 욕심의 노예, 사적 감정의 노예, 권력욕의 노예로 치닫지는 않는지 한번만 살펴보았으면 한다.
어느 한 측이 법적으로 이겨서 승리를 한다 해도, 주지직무대리가 산중총회를 하여 제삼의 주지가 나온다 해도, 그야말로 물리력으로 관음사를 접수한다 해도, 그간의 파행을 만회할 수 없다. 되레 또 다른 분쟁의 불씨만 잉태할 것이 자명하다. 곧 ‘부처님오신날’이다. 주지자리 싸움이나 하고, 세속의 정치흉내나 하라고 오신 날이 아니지 않은가.
/ 法 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