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택주가 푸는 평화 살림] ④ 평화살림으로 가는 윤회금지
[변택주가 푸는 평화 살림] ④ 평화살림으로 가는 윤회금지
  • 변택주
  • 승인 2021.05.07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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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조선일보 기사 제목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교보문고, 김일성 회고록 판매 중단… ‘구매자 보안법 처벌 우려’”가 그것이다. 출판사 민족사랑방이 펴낸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를 교보문고가 팔지 않기로 했다는 기사다.

교보문고에서는 이적표현물을 산 사람도 국가보안법을 어겨 처벌받을 수 있다는 보도에 손님이 피해 보지 않도록 하려고 팔기를 그만두기로 했다는 말이다. 이적표현물은 적을 이롭게 하는 얼거리가 들어 있는 문서나 책을 가리키는 말이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법치와자유민주주의연대(NPK)라는 단체가 지난달 23일 서울서부지법에 <세기와 더불어>를 팔거나 퍼뜨리지 못하도록 가처분 신청을 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학자들과 정치인들이 옳거니 그러거니 하면서 옥신각신하고 있다. 회고록에 허구가 있더라도 사람들이 옥석을 가릴 힘이 있기에 사법 잣대를 들이댈 일은 아니라는 쪽과 남북 평화가 공고하게 확립돼 있다면 모르지만 아직은 그렇지 않으니 막아야 한다는 쪽이 맞서는 모양새다. 뜻밖에 보수당인 국민의힘이 대한민국 체제가 압도 우위에 있다는 게 명백하기에 허황된 김일성 우상화 실체를 깨닫게 하는 마중물이 될 수 있다고 나섰다.

지난 꼭지에서도 말한 바 있듯이 우리 경제력이 세계 10위로 북누리와 견줄 수 없을 만큼 절대 우위에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러니 거짓되거나 미덥지 못한 얼거리를 담고 있다 하더라도 거기 휘둘릴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설 알거나 알지 못하면서 이렇다 저렇다 잘라 생각하는 데서 생긴다. 북녘 사람들은 머리에서 뿔이 난 줄 알고 공산당은 때려잡거나 무질러야 하는 악마집단으로 여기던 때도 있었다. 요즘에도 때려잡고 무찔러야 한다고 여기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참으로 그럴까?

품은 사랑이 다르지 않다고
깊이 헤아리면 동무가 된다

지피지기 백전불태라는 말이 있다. 흔히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을 맞붙어도 위태롭지 않다고 푼다. 반만 맞는 말이다. 어째서 그럴까? 지피지기에서 지피란 ‘저쪽을 안다’란 말이다. 저쪽을 속속들이 안다는 게 무슨 말일까? 저 사람들이 우리와는 달리 고약하고 뿔 달린 마귀 같은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 못지않게 사랑하는 아이와 어버이, 아내와 남편, 언니와 아우가 있으며 좋은 세상에서 살고 싶어 하는 줄 안다는 말이다.

힘껏 지피지기 해서 네 처지와 내 처지 네 사랑과 내 사랑이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고서도 백 번이나 맞붙어 싸울 수 있을까? 처지와 품은 사랑이 다르지 않다는 걸 알고 나면 적으로 여길 수는 없으며 깊이 헤아리면 동무가 된다.

좋은 세상은 어떤 곳이며 나쁜 세상은 또 어떤 데일까? 우리는 어떨 때 나쁘다고 하고 어떨 때 좋다고 할까? 한반도가 중립국이 되어 이어갈 수 있어야만 평화로울 수 있다고 하는 농부 철학자 윤구병 선생은 있을 건 있고 없을 건 없으면 좋고 없을 건 있고 있을 게 없으면 나쁘다고 말씀한다.

있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먹을 밥과 몸을 누일 집이 있어야 하고, 식구들과 오순도순 마음을 나누며 어울리는 사이에 사랑이 깃들기를 바라며, 튼튼한 몸으로 늘 웃으며 삶을 넉넉하니 누리기를 바랄 테다. 없어야 할 것은? 굶주림과 한뎃잠, 식구들과 떨어져 외톨이가 되어 병든 몸으로 따돌림과 꾸짖음을 견디며 이리 찢기고 저리 짓밟히며 슬프게 사는 것일 터이다.

이처럼 있을 건 있고 없을 건 없기를 바라기는 우리가 적으로 여기는 북누리 사람도 마찬가지일 텐데 어째서 북누리 사람들이 우리와 싸우려고 든다고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김영수 作 윤회금지.



윤회금지란 괴롭고 시달림으로
다시는 돌아가지 않는 것일 터

지난 5월 1일 서른아홉 번째 꼬마평화도서관이 있는 마을 공동체 모지리에서 ‘평화살림놀이마당’이 열렸다. 어리보기 셋이면 슬기롭다는 문수보살에 버금갈 수 있다고 믿는 여느 사람들이 어울리는 모지리 사람들이 펼치는 얼개는 서로 헐뜯고 꾸짖으며 멱살잡이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품은 뜻이 서로 다르고 마음이 맞지 않더라도 입씨름으로 풀어야 한다는 말이다.

모지리를 빚은 불교박람회 연출 감독이며 명상가인 김영수 작품 가운데 ‘윤회금지’라는 것이 있다. 아픔이나 슬픔뿐 아니라 기쁨도 괴로움이라는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란 괴로움이 이어지는 것을 가리킨다. 불교를 하는 이들이 가닿으려고 하는 곳은 어디일까? 극락이라고? 아니다. 불교가 말하는 중도란 도돌이표처럼 끊이지 않는 지나친 욕심과 어리석음, 시도 때도 없이 치미는 부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니 김영수가 꺼내든 윤회금지는 괴롭고 시달림에서 벗어나 다시는 돌아가지 않는 것을 일컬을 터이다.

내가 바라지 하는 ‘꼬마평화도서관사람들’과 ‘으라차차영세중립코리아’가 드러내려는 알맹이도 누구나 고르게 먹고 잘 수 있고 그 누구도 버려지지 않으며, 말다툼은 해도 주먹다짐하지 않으며, 누구도 따돌리지 않고 칼부림이나 총부림으로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돌아가지 않겠다며 다지는 ‘윤회금지’다.

남과 북은 다시 전쟁해서는 안 된다. 백두에 사는 아이도 한라에 사는 아이도 우리나라 사람이니 한데 어울려 어깨동무하고 강강술래 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려면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어떨 때 좋고 어떨 때 싫어하는지 또 같은 것은 무엇이고 무얼 닮았는지, 무엇이 다른지를 살펴야 한다.

남녘 사람들이 동맹이라고 여기는 미국 사람들하고 뜻을 나누려면 내가 영어를 배우거나 그 이들이 우리말을 배워야 한다. 그러나 북녘 사람하고는 애써 말을 배우지 않아도 뜻을 나눌 수 있다. 말결이 같으면 얼결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말결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보고 들은 것이 적은 탓일 수 있겠으나 평화를 가리키는 겨레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죄와 벌을 일컫는 우리말도 없다. 굳이 꺼내려고 하면 죄는 잘못이나 허물을 떠올릴 수 있겠다. 그러나 벌을 가리키는 우리말은 모르겠다. 어째서 평화나 죄와 벌을 일컫는 우리말을 찾기 어려울까? 윤구병 선생은 우리 겨레가 사이좋게 살았기 때문에 평화나 죄와 벌이라는 낱말을 만들 까닭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씀한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지리서라는 <산해경>에는 늘 가락을 가까이하며 놀기를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양하기를 좋아하여 다투지 않는다고 했다. 공자도 중국에 도가 이뤄지지 않으니 뗏목을 만들어 타고서라도 우리나라에 오고 싶다고 했단다.

뜻을 드러내려면 한 가지 잎새처럼
다 고르다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싸움은 말할 것도 없이 다툼이 없이 조용하면 평화로울까? 아니다. 전쟁은 없더라도 굶주리고 따돌려지는 이들이 있다면 어찌 평화롭다고 할 수 있으랴. 싸움은 말할 것도 없이 잡음도 일어나지 않는 까닭이 힘이 넘치는 이들 한쪽에 힘이 없어 억눌려 있기 때문이라면 어찌 평화롭다고 할 수 있을까. 힘이 세건 여리건 저마다 다른 생각을 드러낼 수 있어야 평화롭다. 누구라도 제 뜻을 숨김없이 드러낼 수 있는 민주주의는 전제주의와 달리 어수선하다.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가 이적표현물이나 아니니 하는 입씨름이 더 퍼졌으면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참에 국가보안법이 있는 것이 마땅한지 그렇지 않은지 하는 얘기 바람도 돌개바람처럼 거침없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누구라도 품은 속내를 거침없이 드러내려면 힘이 세고 여리든, 더 배우고 덜 배웠든지 한 가지에 나온 잎새처럼 사람은 다 고르다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아이와 어른, 여성과 남성, 장애를 가졌거나 그렇지 않거나, 앓거나 튼튼하거나를 가리지 않고 마음 놓고 제 뜻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 나와 뜻이 다른 네 얘기를 귀담아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 바탕에서 서로 다름이 어울리는 다리가 놓여야 한다. 네게 그럴만한 까닭이 있고 내게도 이럴만한 까닭이 있는 줄 헤아리고 북돋우며 서로 뜻이 좀 달라도 숨통을 터야 한다. 평화는 똑같아지는 것이 아니며 통일도 마찬가지로 다름이 어울리는 것이다. 다름이 어우러지는 마음과 마음 사이에 평화가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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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作 윤회금지.

윤회금지란 괴롭고 시달림으로
다시는 돌아가지 않는 것일 터

지난 5월 1일 서른아홉 번째 꼬마평화도서관이 있는 마을 공동체 모지리에서 ‘평화살림놀이마당’이 열렸다. 어리보기 셋이면 슬기롭다는 문수보살에 버금갈 수 있다고 믿는 여느 사람들이 어울리는 모지리 사람들이 펼치는 얼개는 서로 헐뜯고 꾸짖으며 멱살잡이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품은 뜻이 서로 다르고 마음이 맞지 않더라도 입씨름으로 풀어야 한다는 말이다.

모지리를 빚은 불교박람회 연출 감독이며 명상가인 김영수 작품 가운데 ‘윤회금지’라는 것이 있다. 아픔이나 슬픔뿐 아니라 기쁨도 괴로움이라는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란 괴로움이 이어지는 것을 가리킨다. 불교를 하는 이들이 가닿으려고 하는 곳은 어디일까? 극락이라고? 아니다. 불교가 말하는 중도란 도돌이표처럼 끊이지 않는 지나친 욕심과 어리석음, 시도 때도 없이 치미는 부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니 김영수가 꺼내든 윤회금지는 괴롭고 시달림에서 벗어나 다시는 돌아가지 않는 것을 일컬을 터이다.

내가 바라지 하는 ‘꼬마평화도서관사람들’과 ‘으라차차영세중립코리아’가 드러내려는 알맹이도 누구나 고르게 먹고 잘 수 있고 그 누구도 버려지지 않으며, 말다툼은 해도 주먹다짐하지 않으며, 누구도 따돌리지 않고 칼부림이나 총부림으로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돌아가지 않겠다며 다지는 ‘윤회금지’다.

남과 북은 다시 전쟁해서는 안 된다. 백두에 사는 아이도 한라에 사는 아이도 우리나라 사람이니 한데 어울려 어깨동무하고 강강술래 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려면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어떨 때 좋고 어떨 때 싫어하는지 또 같은 것은 무엇이고 무얼 닮았는지, 무엇이 다른지를 살펴야 한다.

남녘 사람들이 동맹이라고 여기는 미국 사람들하고 뜻을 나누려면 내가 영어를 배우거나 그 이들이 우리말을 배워야 한다. 그러나 북녘 사람하고는 애써 말을 배우지 않아도 뜻을 나눌 수 있다. 말결이 같으면 얼결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말결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보고 들은 것이 적은 탓일 수 있겠으나 평화를 가리키는 겨레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죄와 벌을 일컫는 우리말도 없다. 굳이 꺼내려고 하면 죄는 잘못이나 허물을 떠올릴 수 있겠다. 그러나 벌을 가리키는 우리말은 모르겠다. 어째서 평화나 죄와 벌을 일컫는 우리말을 찾기 어려울까? 윤구병 선생은 우리 겨레가 사이좋게 살았기 때문에 평화나 죄와 벌이라는 낱말을 만들 까닭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씀한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지리서라는 <산해경>에는 늘 가락을 가까이하며 놀기를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양하기를 좋아하여 다투지 않는다고 했다. 공자도 중국에 도가 이뤄지지 않으니 뗏목을 만들어 타고서라도 우리나라에 오고 싶다고 했단다.

뜻을 드러내려면 한 가지 잎새처럼
다 고르다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싸움은 말할 것도 없이 다툼이 없이 조용하면 평화로울까? 아니다. 전쟁은 없더라도 굶주리고 따돌려지는 이들이 있다면 어찌 평화롭다고 할 수 있으랴. 싸움은 말할 것도 없이 잡음도 일어나지 않는 까닭이 힘이 넘치는 이들 한쪽에 힘이 없어 억눌려 있기 때문이라면 어찌 평화롭다고 할 수 있을까. 힘이 세건 여리건 저마다 다른 생각을 드러낼 수 있어야 평화롭다. 누구라도 제 뜻을 숨김없이 드러낼 수 있는 민주주의는 전제주의와 달리 어수선하다.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가 이적표현물이나 아니니 하는 입씨름이 더 퍼졌으면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참에 국가보안법이 있는 것이 마땅한지 그렇지 않은지 하는 얘기 바람도 돌개바람처럼 거침없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누구라도 품은 속내를 거침없이 드러내려면 힘이 세고 여리든, 더 배우고 덜 배웠든지 한 가지에 나온 잎새처럼 사람은 다 고르다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아이와 어른, 여성과 남성, 장애를 가졌거나 그렇지 않거나, 앓거나 튼튼하거나를 가리지 않고 마음 놓고 제 뜻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 나와 뜻이 다른 네 얘기를 귀담아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 바탕에서 서로 다름이 어울리는 다리가 놓여야 한다. 네게 그럴만한 까닭이 있고 내게도 이럴만한 까닭이 있는 줄 헤아리고 북돋우며 서로 뜻이 좀 달라도 숨통을 터야 한다. 평화는 똑같아지는 것이 아니며 통일도 마찬가지로 다름이 어울리는 것이다. 다름이 어우러지는 마음과 마음 사이에 평화가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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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택주

“배운 걸 세상에 돌리지 않으면 제구실하지 않는 것”이란 법정 스님 말씀에 따라 이 땅에 평화가 깃들기를 바라면서 ‘으라차차영세중립코리아’에 몸담고 있다. 나라 곳곳에 책이 서른 권 남짓한 꼬마평화도서관을 열고 있다. 평화 그림책을 소리 내어 읽기 놀이하면서 쉬운 겨레말 쓰기 놀이도 한다. 법명은 지광(智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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