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어찌하여 우리를 버리십니까
부처님, 어찌하여 우리를 버리십니까
  • 이기표 원장 /부산보현의집
  • 승인 2012.07.03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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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오갈 데 없어진 부산보현의 집 노숙자들
#불교의식 가운데 참회법회란 것이 있다. 스스로의 죄업을 참회하고 돌파구가 마련되길 기원하는 것으로, 대개 국가 또는 종단에 어려운 일이 발생했을 때 부처님의 가피를 구하는 중요한 의식이다. 그런 만큼 전국의 주요사찰에서 큰스님의 주재로 행해지는 것이 통례로 되어있다. 그런데 그 참회법회가 노숙자쉼터인 부산보현의집에서 며칠째 계속되고 있다. 물론 의식을 주재하는 스님도 없다. 시설에 들어있는 노숙자들이 허름한 식당 한쪽에 모셔진 불상 앞에서 백팔참회법회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 어찌하여 우리를 버리십니까?”

백팔 배를 하는 동안의 꽤 오랜 시간을 되풀이 하는 그들의 절규는 온통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되어있다. 그만큼 간절하고 절박한 사정이 있는 것이다.

#부산보현의집은 대한불교조계종사회복지법인이 운영하는 노숙자쉼터다. 우리나라에서 불교세가 가장 강한 부산경남지역에 단 하나뿐인 자비불교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러한 불교복지재단시설이 15년의 역사를 끝으로 문을 닫게 되었다. 부산시에서 전세로 임대하여 사용해 오던 건물의 새로운 주인이 재계약을 해주지 않으면서 부산시가 아예 시설폐쇄를 결정했던 것이다. 그렇게 되면 10여명 남짓 되는 직원들은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게 된다.

그도 심각한 일이지만 더 큰 문제가 있다. 현재 머물고 있는 80여명의 노숙자들이 다른 시설로 뿔뿔이 흩어져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당사자들의 거부의사가 강하다. 다른 시설로 가느니 차라리 옛날처럼 거리로 나앉겠다고 고집이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부산보현의집에 머물고 있는 이들 대부분은 나름대로의 일자리를 갖고 있다. 보현의집 자체에서 사회적 기업으로 설립한 택배사업에 종사하는 이들도 있고, 시설장의 알선과 보증으로 건설 현장이나 일반사업장에 취업하여 새로운 희망을 가꿔가는 이들도 있다. 그런 그들에게 시설폐쇄는 자립의 꿈을 포기하라는 것이나 다름없는 꼴이다.

또한 일반인들에게 거주의 자유가 보장되듯 노숙자들도 자신들이 머물고 싶은 보호시설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부산보현의집을 택한 이들은 사회에서 절에 다니던 불자였거나 시설에 들어온 뒤 불교에 귀의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날마다 아침에 일어나면 부처님이 모셔진 급식소에서 매일 급식을 하는 그들로서는 다른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시설로 옮겨 생활한다는 것 자체가 혼란스럽고 어색하고 민망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절망에 내몰린 부산보현의집 사람들의 “부처님, 어찌하여 저희들을 버리십니까?”라는 절박한 울부짖음은 모처럼 주어진 일자리를 빼앗아가지 말라는 것이다. 일을 해서 돈을 모아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겠다는 꿈을 빼앗아가지 말라는 것이다. 부처님을 믿고 받들며 살아갈 기회를 빼앗아가지 말라는 것이다.

#시설폐쇄를 고집하던 부산시 당국자들도 이들의 염원에 감응했는지 건물이전에 필요한 전세지원금을 상향조정하겠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한다. 폐쇄 대신 기존의 전세지원금을 조금이나마 증액하겠으니 나머지는 종단에서 충당하라는 조건이다. 80여명이 넘는 대식구의 보금자리를 마련하려면 변두리로 나앉아도 최소한 7억 원의 자금이 필요하단다. 종단에서 2억5천만 원 정도를 부담해야 부산보현의집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지금껏 15년 동안을 부산시의 지원에만 의존해온 종단에서는 갑자기 불거진 용처를 마련하기가 녹녹치 않은 모양이다. 준비해 둔 예산이 없으니 어찌하겠느냐는 장탄식만 들려올 뿐이다.

#절 짓는 불사도 중요하지만 사람 짓는 포교불사(布敎佛事)에는 미치지 못한다. 또한 포교 중에 가장 좋은 방법은 어려운 이웃부터 돌보고 끌어안는 밑바닥포교다. 남의 이야기지만 여의도에 있는 어느 교회는 노숙자를 위해 쓰는 예산이 한 해에만 백억이나 된다고 한다. 그 교회가 번창한 이유다. 하물며 자비와 보살정신을 존재이유로 삼는 불교에서 어려운 이들을 외면한 채 다른 일에만 몰두한다면 무슨 비전이 있겠는가.

다시 말하지만 부산보현의집은 한국불교의 일번지라고 하는 부산경남지역의 자비불교를 상징하는 복지시설이자 밑바닥포교의 실천도장이다. 그리고 같은 지역에는 통도사나 범어사 같은 대찰이 즐비하다. 그 중에 2억여 원의 돈이 없어 그 지역 불교계의 유일한 노숙인 복지시설이 문을 닫게 해서는 말도 안 될 일이다.

마침 종단차원의 개혁과 쇄신을 한목소리로 외치고 있는 때에 “부처님, 어찌하여 우리를 버리십니까?”라는 탄식이 들려서도 안 된다. 다시 벼랑에 내몰린 가난한 도반들의 보금자리를 지켜주고, 일자리를 지켜주고, 희망을 지켜주고, 부처님의 품 안에 지켜주려는 손길이야말로 진정한 보살정신일 것이며, 모두가 바라는 불교개혁이고 쇄신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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