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택주가 푸는 평화살림] ⑤ 중립, 사안과 사람 떼어놓기에서 비롯해
[변택주가 푸는 평화살림] ⑤ 중립, 사안과 사람 떼어놓기에서 비롯해
  • 변택주
  • 승인 2021.05.22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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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5월 10일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폭격한다. 19일 현재, 숨을 거둔 팔레스타인 사람은 아이 예순세 사람을 아울러 이백열아홉 사람에 이르고, 천육백 남짓한 사람이 다쳤다.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싸우는 틈바구니에서 목숨을 잃은 팔레스타인 사람은 오천오백구십 사람이고, 이스라엘 사람도 이백오십 사람 남짓하다.

이스라엘은 1948년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억지로 몰아내고 세운 나라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땅을 80%이나 이스라엘에 빼앗겨야 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1967년 나머지 땅인 동예루살렘을 아우른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도 마저 빼앗는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오래도록 살아온 터전을 송두리째 잃고 떠돌거나 얹혀살며 온갖 설움을 겪고 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인적 손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사망자들과 부상자들/UN 보고서)
표의 왼쪽은 팔레스타인, 오른쪽은 이스라엘의 사망자와 부상자 수이다. 빨강색은 부상자들의 수이고, 검정색은 사망자들의 수이다. 2008년부터 2020년까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사망자는 각각 251명(이), 5590명(팔)이다. 팔레스타인의 사망자 수가 월등히 많다. 부상자 역시 팔레스타인이 압도적으로 많다.





#팔레스타인이 잃어버린 영토(1946~2010)
시대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영토 비교
짙은 녹색이 팔레스타인의 영도이고, 하얀 부분이 이스라엘의 영토이다. 1946년에는 현재 이스라엘의 영토 대부분이 팔레스타인의 영도였다. 1947년 UN PLAN에 의한 영토 분할 보다 더 많은 팔레스타인의 영토를 이스라엘이 빼앗았다. 이후 제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하면서 팔레스타인은 영토의 대부분을 빼앗겼다.



유대 사람들이 대대로 이어 살아온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밀어내고 이스라엘이란 나라를 세우면서 비롯한 이 갈등을 가라앉히고 평화로워질 수 있을까? 뜻밖에 팔레스타인 사람 하나가 사무친 미움에서 벗어나는 길을 열어 보인다. 유대 사람 샐리 콘이 펴낸 책 <왜 반대편을 증오하는가>에 나오는 바쌈 아라민이 그 사람이다. 삶터를 빼앗은 이스라엘에 거칠게 맞서 테러리스트란 악명을 얻은 바쌈은 이제 이스라엘 사람들과 어울려 ‘평화의 전사들’이란 동아리를 만들어 평화로 가는 길을 내고 있다.

유대 사람이 죽어가는 홀로코스트를 보며
세상을 보는 눈이 열린 팔레스타인 사람

바쌈은 유대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이 다 유대 사람들은 미워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만큼 오랜 억눌림에 시달렸다면서 세계 어느 곳에서도 유대 사람으로 살기가 힘들 것이라고 한다. 또 저라면 3천 년 동안 노예로 겪은 차별과 홀로코스트가 주는 짐을 지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 팔레스타인 사람으로 살기가 더 쉽다는 깨달음이 왔다고도 했다.

바쌈은 열두 살 때 호기심으로 시위대열에 끼어 들어갔다가 최루가스 깡통을 피해 달아나다가 군인에게 맞아 쓰러졌다. 어찌어찌 벗어나 고개를 들어보니 돌멩이를 손에 쥔 열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이스라엘 군인이 쏜 총알에 맞아 쓰러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뒤로 이스라엘에 맞서려고 학교 가까이 있는 나무에 팔레스타인 국기를 내걸기도 하고 유대 사람을 욕하는 낙서를 남기기도 한다. 몇 해 뒤 우연히 얻은 불발 수류탄 핀을 뽑아 이스라엘군 수송대에 던졌으나 빗나가고 말았다. 이스라엘군은 마을을 뒤졌으나 다행히 잡히지 않았다.

열일곱 살이던 1985년. 함께 수류탄을 던진 동무가 이스라엘 경찰에 붙잡혀서 지난 일을 털어놓는 바람에 징역 7년 형을 받는다. 사무치도록 불타오르는 미움에 사로잡혀 이스라엘군을 수천 사람 죽이는 상상을 날마다 하기를 네 해째. 유대 사람들이 괴로워하며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즐기려고 교도소에서 틀어주는 홀로코스트 영화를 본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몸서리칠 만큼 끔찍하게 죽어가는 유대 사람들을 보면서 눈물이 났다. 난생처음으로 이스라엘 사람이, 억누르고 을러대기만 하는 괴물이 아니라 저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적이 겪는 아픔을 보면서 세상을 다른 눈길로 보는 눈이 열린 것이다. 이제 바쌈은 “이스라엘 잘못이 아니야”라고 하면서 사무치도록 미워하는 마음과 적을 떼어놓으려고 한다. 상대가 우리를 미워하든 말든 매이지 않고, 상대를 미워할지 말지는 우리 몫이라고 받아들이면서 사무치게 미워하기를 밀어내고 있다. 이 결정을 이스라엘 사람에게 억울하게 어린 딸을 잃고 나서 내렸다는 게 놀랍다.

이스라엘군 총질에 목숨 잃은 팔레스타인 소녀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을 거둔 미선이와 효순이

2007년 열 살배기 딸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 다른 아이 무리가 이스라엘군 지프에 돌을 던졌다. 이스라엘군은 서슴없이 총질해댔고 고무 총알을 뒤통수에 맞은 딸이 목숨을 잃는다. 이스라엘은 이스라엘군이 쏜 총에 맞아 숨을 거뒀다는 걸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민사소송에서 판사는 딸이 이스라엘 군인이 쏜 총알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면서 잘못으로 총알을 나갔거나 사격 명령을 어기고 쏜 것이라고 했다. 그래도 방아쇠를 당긴 군인은 어떤 벌도 받지 않았다.

여기까지 읽으면서 2002년 월드컵 때, 50톤짜리 미군 장갑차에 깔려 꽃다운 나이에 목숨을 잃은 미선이와 효순이가 떠올랐다. 우리나라 축구 대표팀이 포르투갈하고 예선전을 하루 앞둔 6월 13일 오전. 빨간 월드컵 응원 티셔츠에 하얀 바지를 입은 미선이와 까만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효순이는 고개 너머에 사는 동무 생일을 축하하러 가다가 미군 장갑차에 깔렸다. 미군 법정은 장갑차를 몬 미군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판결했다. 한 해 앞서, 마을 사람들이 마구 달리는 탱크로 피해가 크다며 탱크를 가로막자 미군 장교 하나가 나서서 “민간인은 깔아 죽여도 아무런 책임이 없다.”라고 한 말이 현실이 됐다.

현장을 보지 못하고 미선이와 효순이 참사 소식을 듣기만 했던 나도 스무 해 가까이 지난 여태도 이 이야기를 떠올리면 몸이 떨린다. 그런데 바쌈은 어떻게 사무치는 미움을 떨쳐내고 ‘평화의 전사’가 될 수 있었을까?

민사 재판에서 뉘우치지 않는, 뉘우칠 수 없는 군인과 마주 선 바쌈은 살다가 용서를 빌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 언제라도 찾아오라, 나는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나는 너를 용서하겠지만 그것은 절대 네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이다. 나는 온 인류에 사이에 있는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기에 이 분노가 내 심장을 더럽히길 바라지 않는다, 나는 내 딸을 매우 사랑하기에 너를 용서할 것이라면서 나는 피해자들에게는 복수하지 않는다. 너 역시 피해자니까 하고 덧붙인다.

사안과 사람을 떼어놓고 용서하기
이것이 바로 중립하는 첫걸음이다

무슨 말인가. 사안과 사람을 떼어놓고 생각하기다. 이것이 바로 중립하는 첫걸음이다. 그러나 문제와 사람을 떼어놓는 중립, 말은 쉬워도 막상 하려고 들면 이보다 하기 힘든 일이 없다.

가정 경영이든 마을 경영이든 기업 경영이든 나라 경영이든 경영은 다 살리는데 그 뜻을 두고 있기에 살림살이다. ‘살리는 살이’를 한다면서 어떤 목숨이라 할지라도 살리기는커녕 죽인다면 사람답지 못한 짓을 저지르는 것이다. 감정에 휘말리지 않고 중립에 서기, 살림살이 알짬이다.

내 처지 못지않게 네 처지 헤아리려 마음 가다듬기. 바쌈이 품은 이 뜻은 뼛속 깊이 사무치는 미움 틈바구니에 끼어든 여리고 서툰 보잘것없는 걸음으로 그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커다란 둑도 바늘구멍 하나에 무너질 수 있다는 말이 있듯이 소박하고 작은 걸음일지라도 내디딘 용기가 몹시 거룩하다. 우리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진 것도 팔레스타인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이스라엘이 들어선 역사와 같이 간다. 우리는 바쌈에게서 무엇을 어떻게 배워야 할까?

바쌈 이야기를 책에 담아낸 유대 사람 샐리 콘은 증오, 사무치게 미워하기에 맞서기란 사회에 쌓인 증오 역사와 몸과 마음에 알게 모르게 찌든 흐름과 맞서 거듭 상류로 거슬러 오르는 힘겨운 애씀이라고 말한다. 또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기를 바란다면 미끄러지기를 되풀이하더라도 증오가 새어 나오면 닦아내고 헹구기를 거듭하며 꾸준히 거슬러 올라가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흔든다.

공든 탑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중립에 서기, 긴 호흡으로 미끄러지면 다시 오르고 굴러떨어지면 또 밀어 올리는 시지프스처럼 지칠 줄 모르고 꾸준히 힘을 빼며 다가서다 보면 저도 모르는 사이에 가까이 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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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인적 손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사망자들과 부상자들/UN 보고서)

표의 왼쪽은 팔레스타인, 오른쪽은 이스라엘의 사망자와 부상자 수이다. 빨강색은 부상자들의 수이고, 검정색은 사망자들의 수이다. 2008년부터 2020년까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사망자는 각각 251명(이), 5590명(팔)이다. 팔레스타인의 사망자 수가 월등히 많다. 부상자 역시 팔레스타인이 압도적으로 많다.

#팔레스타인이 잃어버린 영토(1946~2010)시대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영토 비교짙은 녹색이 팔레스타인의 영도이고, 하얀 부분이 이스라엘의 영토이다.  1946년에는 현재 이스라엘의 영토 대부분이 팔레스타인의 영도였다. 1947년 UN PLAN에 의한 영토 분할 보다 더 많은 팔레스타인의 영토를 이스라엘이 빼앗았다. 이후 제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하면서 팔레스타인은 영토의 대부분을 빼앗겼다.
#팔레스타인이 잃어버린 영토(1946~2010)
시대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영토 비교

짙은 녹색이 팔레스타인의 영도이고, 하얀 부분이 이스라엘의 영토이다. 1946년에는 현재 이스라엘의 영토 대부분이 팔레스타인의 영도였다. 1947년 UN PLAN에 의한 영토 분할 보다 더 많은 팔레스타인의 영토를 이스라엘이 빼앗았다. 이후 제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하면서 팔레스타인은 영토의 대부분을 빼앗겼다.

유대 사람들이 대대로 이어 살아온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밀어내고 이스라엘이란 나라를 세우면서 비롯한 이 갈등을 가라앉히고 평화로워질 수 있을까? 뜻밖에 팔레스타인 사람 하나가 사무친 미움에서 벗어나는 길을 열어 보인다. 유대 사람 샐리 콘이 펴낸 책 <왜 반대편을 증오하는가>에 나오는 바쌈 아라민이 그 사람이다. 삶터를 빼앗은 이스라엘에 거칠게 맞서 테러리스트란 악명을 얻은 바쌈은 이제 이스라엘 사람들과 어울려 ‘평화의 전사들’이란 동아리를 만들어 평화로 가는 길을 내고 있다.

유대 사람이 죽어가는 홀로코스트를 보며
세상을 보는 눈이 열린 팔레스타인 사람

바쌈은 유대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이 다 유대 사람들은 미워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만큼 오랜 억눌림에 시달렸다면서 세계 어느 곳에서도 유대 사람으로 살기가 힘들 것이라고 한다. 또 저라면 3천 년 동안 노예로 겪은 차별과 홀로코스트가 주는 짐을 지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 팔레스타인 사람으로 살기가 더 쉽다는 깨달음이 왔다고도 했다.

바쌈은 열두 살 때 호기심으로 시위대열에 끼어 들어갔다가 최루가스 깡통을 피해 달아나다가 군인에게 맞아 쓰러졌다. 어찌어찌 벗어나 고개를 들어보니 돌멩이를 손에 쥔 열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이스라엘 군인이 쏜 총알에 맞아 쓰러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뒤로 이스라엘에 맞서려고 학교 가까이 있는 나무에 팔레스타인 국기를 내걸기도 하고 유대 사람을 욕하는 낙서를 남기기도 한다. 몇 해 뒤 우연히 얻은 불발 수류탄 핀을 뽑아 이스라엘군 수송대에 던졌으나 빗나가고 말았다. 이스라엘군은 마을을 뒤졌으나 다행히 잡히지 않았다.

열일곱 살이던 1985년. 함께 수류탄을 던진 동무가 이스라엘 경찰에 붙잡혀서 지난 일을 털어놓는 바람에 징역 7년 형을 받는다. 사무치도록 불타오르는 미움에 사로잡혀 이스라엘군을 수천 사람 죽이는 상상을 날마다 하기를 네 해째. 유대 사람들이 괴로워하며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즐기려고 교도소에서 틀어주는 홀로코스트 영화를 본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몸서리칠 만큼 끔찍하게 죽어가는 유대 사람들을 보면서 눈물이 났다. 난생처음으로 이스라엘 사람이, 억누르고 을러대기만 하는 괴물이 아니라 저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적이 겪는 아픔을 보면서 세상을 다른 눈길로 보는 눈이 열린 것이다. 이제 바쌈은 “이스라엘 잘못이 아니야”라고 하면서 사무치도록 미워하는 마음과 적을 떼어놓으려고 한다. 상대가 우리를 미워하든 말든 매이지 않고, 상대를 미워할지 말지는 우리 몫이라고 받아들이면서 사무치게 미워하기를 밀어내고 있다. 이 결정을 이스라엘 사람에게 억울하게 어린 딸을 잃고 나서 내렸다는 게 놀랍다.

이스라엘군 총질에 목숨 잃은 팔레스타인 소녀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을 거둔 미선이와 효순이

2007년 열 살배기 딸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 다른 아이 무리가 이스라엘군 지프에 돌을 던졌다. 이스라엘군은 서슴없이 총질해댔고 고무 총알을 뒤통수에 맞은 딸이 목숨을 잃는다. 이스라엘은 이스라엘군이 쏜 총에 맞아 숨을 거뒀다는 걸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민사소송에서 판사는 딸이 이스라엘 군인이 쏜 총알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면서 잘못으로 총알을 나갔거나 사격 명령을 어기고 쏜 것이라고 했다. 그래도 방아쇠를 당긴 군인은 어떤 벌도 받지 않았다.

여기까지 읽으면서 2002년 월드컵 때, 50톤짜리 미군 장갑차에 깔려 꽃다운 나이에 목숨을 잃은 미선이와 효순이가 떠올랐다. 우리나라 축구 대표팀이 포르투갈하고 예선전을 하루 앞둔 6월 13일 오전. 빨간 월드컵 응원 티셔츠에 하얀 바지를 입은 미선이와 까만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효순이는 고개 너머에 사는 동무 생일을 축하하러 가다가 미군 장갑차에 깔렸다. 미군 법정은 장갑차를 몬 미군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판결했다. 한 해 앞서, 마을 사람들이 마구 달리는 탱크로 피해가 크다며 탱크를 가로막자 미군 장교 하나가 나서서 “민간인은 깔아 죽여도 아무런 책임이 없다.”라고 한 말이 현실이 됐다.

현장을 보지 못하고 미선이와 효순이 참사 소식을 듣기만 했던 나도 스무 해 가까이 지난 여태도 이 이야기를 떠올리면 몸이 떨린다. 그런데 바쌈은 어떻게 사무치는 미움을 떨쳐내고 ‘평화의 전사’가 될 수 있었을까?

민사 재판에서 뉘우치지 않는, 뉘우칠 수 없는 군인과 마주 선 바쌈은 살다가 용서를 빌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 언제라도 찾아오라, 나는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나는 너를 용서하겠지만 그것은 절대 네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이다. 나는 온 인류에 사이에 있는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기에 이 분노가 내 심장을 더럽히길 바라지 않는다, 나는 내 딸을 매우 사랑하기에 너를 용서할 것이라면서 나는 피해자들에게는 복수하지 않는다. 너 역시 피해자니까 하고 덧붙인다.

사안과 사람을 떼어놓고 용서하기
이것이 바로 중립하는 첫걸음이다

무슨 말인가. 사안과 사람을 떼어놓고 생각하기다. 이것이 바로 중립하는 첫걸음이다. 그러나 문제와 사람을 떼어놓는 중립, 말은 쉬워도 막상 하려고 들면 이보다 하기 힘든 일이 없다.

가정 경영이든 마을 경영이든 기업 경영이든 나라 경영이든 경영은 다 살리는데 그 뜻을 두고 있기에 살림살이다. ‘살리는 살이’를 한다면서 어떤 목숨이라 할지라도 살리기는커녕 죽인다면 사람답지 못한 짓을 저지르는 것이다. 감정에 휘말리지 않고 중립에 서기, 살림살이 알짬이다.

내 처지 못지않게 네 처지 헤아리려 마음 가다듬기. 바쌈이 품은 이 뜻은 뼛속 깊이 사무치는 미움 틈바구니에 끼어든 여리고 서툰 보잘것없는 걸음으로 그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커다란 둑도 바늘구멍 하나에 무너질 수 있다는 말이 있듯이 소박하고 작은 걸음일지라도 내디딘 용기가 몹시 거룩하다. 우리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진 것도 팔레스타인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이스라엘이 들어선 역사와 같이 간다. 우리는 바쌈에게서 무엇을 어떻게 배워야 할까?

바쌈 이야기를 책에 담아낸 유대 사람 샐리 콘은 증오, 사무치게 미워하기에 맞서기란 사회에 쌓인 증오 역사와 몸과 마음에 알게 모르게 찌든 흐름과 맞서 거듭 상류로 거슬러 오르는 힘겨운 애씀이라고 말한다. 또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기를 바란다면 미끄러지기를 되풀이하더라도 증오가 새어 나오면 닦아내고 헹구기를 거듭하며 꾸준히 거슬러 올라가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흔든다.

공든 탑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중립에 서기, 긴 호흡으로 미끄러지면 다시 오르고 굴러떨어지면 또 밀어 올리는 시지프스처럼 지칠 줄 모르고 꾸준히 힘을 빼며 다가서다 보면 저도 모르는 사이에 가까이 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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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택주

“배운 걸 세상에 돌리지 않으면 제구실하지 않는 것”이란 법정 스님 말씀에 따라 이 땅에 평화가 깃들기를 바라면서 ‘으라차차영세중립코리아’에 몸담고 있다. 나라 곳곳에 책이 서른 권 남짓한 꼬마평화도서관을 열고 있다. 평화 그림책을 소리 내어 읽기 놀이하면서 쉬운 겨레말 쓰기 놀이도 한다. 법명은 지광(智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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