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본위화폐] 11. 공동체 경제와 똥본위화폐
[똥본위화폐] 11. 공동체 경제와 똥본위화폐
  • 조재원 울산과학기술원 교수
  • 승인 2021.06.07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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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형성되어가는 것이다. 관심 가는 곳에 마크를 하면 범위가 정해지고, 겹치는 공간에서 소통하는 곳이다. 한번 소통하면 공동체는 한번 형성되어 진다.



“호미 하나로 공동체 만들어야 한다
공동체, 유지와 성장도 쉽지 않다“

공동체는 존재이고 공동체경제는 소통입니다. 존재와 소통의 근본은 가치와 언어입니다.

공동체 경제를 얘기하기 위해서는 먼저 공동체와 경제가 무엇인지 나름의 이해가 필요합니다. 공동체는 반드시 지켜야하는 특정 규율을 갖는 것이 아니라 공통된 관심사 속에서 발견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경제는 내가 가진 가치를 다른 사람과 교환하는 것입니다. 구성원들의 공통점을 발견한 후 존중하고, 일상의 삶 속에서 서로가 가진 것들을 교환하면서 공동의 가치를 늘려가는 것이 공동체 경제입니다.

공동체 정체성은 공동체 밖 세상을 비판하는 것으로부터 얻어지기도 합니다. 이를 통해 효과적으로 공동체를 특징 짓고 공동체의 결속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어떤 측면에서는 외부와의 단절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적어도 저러지 말자는 동의가 결속의 힘이 되니까요. 하지만, 정체성이 높은 공동체라고 하더라도 외부와 계속 단절하면서 공동체를 유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공동체 정체성을 비판을 통해 높였다가도 공동체 유지까지 연결되기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쩔 수 없이 외부와의 연결을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막기는 힘들기 때문에 공동체의 범위를 정하게 됩니다. 범위를 정한 후, 외부의 영향을 받으면서 내부 소통이 이루어집니다. 공동체 정신을 지키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규약, 합의가 아닌, 내부 소통이라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예전에 제가 광주에 있을 때 황대권 선생님을 초청하여 영광 마을 공동체 대해서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 황대권 선생님은 공동체 건설이 두 번째라고 하시면서 첫 번째 마을 공동체를 외부의 힘으로 만들었을 때 공동체 기반이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 지에 대해 얘기를 하셨습니다. 마을 공동체가 국가의 정책으로 이루어지는 경우, 또는 꼭 그렇지 않더라도 건설비용의 많은 부분이 외부 지원으로 이루어진 경우 공동체가 만들어 진 이후 여러 문제들로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 지원 지역, 마을 공동체는 개발사업과 크게 다르지 않고 아무리 좋은 뜻을 가지고 만들었어도 갈등이 생기기 시작하면 해결할 수 있는 뿌리가 없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당시 황대권 선생님은 호미 하나로 공동체는 만들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가진 것이 자기만의 것일 때 애틋하고 그 애틋한 것으로 소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만 공동체의 범위를 정하기도 쉽습니다.

“의식주와 교육이 공동체의 핵심 기반”

국가나 국제적 지원으로 만들어진 공동체가 설립까지는 쉬울 수 있지만 이후 쉽게 없어지는 것을 목격합니다. 자생적으로 생긴 공동체도 공동체 체험, 관광으로 이어가는 경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공동체는 설립 못지않게 유지와 성장도 쉽지 않습니다.

일단 공동체가 만들어진 후 큰 문제 중 하나가 공동체 경제입니다. 먹고 사는 일입니다. 지역공동체인 경우에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공동체의 많은 구성원들이 직장을 이미 가지고 있어 소득이 있다면 지역공동체에서 생활을 하는데 경제적으로 큰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 그 분들은 경제활동 보다는 공동체 정신과 철학이 더 중요하니까요. 하지만 지역공동체 내부에서 많은 구성원들이 생존을 해야 하는 경우라면 공동체 경제가 중요하게 됩니다. 물론 이 경우에도 공동체 내부에서 의식주를 모두 자립할 수 있다면 문제는 어렵지 않습니다. 의식주와 교육이 공동체의 핵심 기반입니다. 많은 공동체가 이를 지향하지만 대개 공동체 바깥세상과의 연결이 공동체 운명과 직결되기도 합니다. 돈이라는 존재가 떠오릅니다. 예외 없이 돈이라는 것이 공동체 혈액이 됩니다. 간디공동체가 실현되어 완전한 자립이 되면 돈이 아닌 다른 혈액이 마을 공동체를 흐르면서 공동체 생명을 유지시킬 수 있지만 말입니다. 공동체 유지비용, 한해 살림을 정산하면서 외부로부터 공동체로 들어온 돈, 즉, 외부와 경제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돈이 전체유지비용의 높은 부분을 차지한다면 공동체가 자립한다고 보기 힘듭니다. 공동체 정신을 지킬 수는 있지만 한계가 있죠.



디지털세대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 팀 버너스 리 교수가 1989년 만든 월드와이드웹(www)으로 연결되어지기 시작한 세상에서 출발했다. 인터넷 연결은 가치를 따진 후 가는 곳이 아니라 선택해서 간 곳에 가치가 생긴다는 팀 버너스 리 교수의 의미웹 로직으로 형성되어왔다. www 세상에서 만들어진 거대기업 구글 비즈니스 모델 기반 빅데이터가 세상을 온통 흔들고 있다. 거대기업에 저항할 수 있는 힘도 누구도 아닌 디지털세대에게만 있다.



“공동체 경제 중요한 출발점, 돈의 가치기준”

공동체 살림의 차원은 아니지만 공동체 경제소통에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사용하는 돈의 가치기준이라는 것입니다. 소득의 기반을 공동체 외부에 두는 분들도 이 부분에는 예외가 아닙니다. 공동체 정신을 가치기준으로 하는 돈을 만들면 되지 않느냐 하지만 공동체 살림과 유지를 고려하게 되면 이 문제는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공동체 경제를 고민하는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공동체 관련 책들을 읽어 보아도 이 문제는 나타납니다. 많은 공동체들은 공동체 정신을 강조하면서 경제활동, 즉, 교환의 수단으로 돈 아닌 것을 제안합니다. 돈없는 경제 공동체를 목표로 합니다. 인도 오로빌 공동체 예를 들어보면 공동체 창시자인 “마더”라는 분은 돈없는 공동체를 제안하고 강조했습니다. 오로빌 구성원 분들은 언젠가는 그런 공동체를 만드는 목표를 가집니다. 오로빌은 아직 자립을 이루지 못했고 외부 지원(즉, 외부의 돈)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1년 총 예산이 약 50억 정도인데, 자체 충당은 약 15%라고 합니다. 15% 대 85%를 얘기하는 것 역시 돈, 그것도 공동체 내부 가치를 기준으로 하는 돈이 아니라 공동체 외부의 돈(인도 화폐, 유럽 유로, 달러 등)으로 계산한 수치입니다. 경제 가치기준은 공동체 외부로 부터 온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가족공동체 정도라면 돈 없는 경제 활동이 가능하지만 공동체가 확대 되고 공동체 밖 세상과 연결되려면 화폐 없이는 힘듭니다. 외부의 지원 그리고 공동체 외부와의 경제활동 등으로 수익을 얻어 공동체를 잘 유지하고 있다고 해보죠. 이 경우에도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경제활동이 돈으로 이루어지는데 공동체가 사용하는 화폐의 가치가 공동체 밖 세상의 화폐와 같은 것이죠. 그리고 그 돈의 가치가 공동체 정신과 갈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세상의 화폐는 언제든지 자본이 될 수 있는데, 공동체 내부에서 그 화폐를 사용하고 공동체 유지를 위해서 외부의 화폐로 지원을 받는 것이죠. 공동체 만듬 뿐만 아니라 유지, 성장의 혈액이 그런 화폐라면 공동체 정신의 유지가 쉽지 않겠죠. 공동체의 일상이 공동체의 미래가 될 텐데, 일상은 공동체 내부 구성원들의 소통으로 이루어집니다. 소통 중에서 경제활동의 비율이 적지 않은데 알게 모르게 사용하는 소통의 도구, 즉, 화폐가 공동체 철학과 다르다면 곤란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공동체 마을 내부에서 어떤 물건을 살 때도 여전히 우리는 국가화폐를 사용합니다. 지역에서 생산된 배추, 파, 쌀을 마을공동체 사람들끼리 교환 할 때도 다름 아닌 국가화폐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공동체 구성원과 공동체 외부 사람들이 거래할 때도 마찬가지죠. 돈, 화폐라는 것은 도구일 뿐이니까 관계없다고 하기도 합니다. 또는 이를 어느 정도 걱정하면서도 대안이 없지 않느냐 하고 받아들이죠.

“지역화폐 가치 기준, 국가 단위화폐와 다르지 않다”

이런 배경에서 보면, 지역화폐를 공동체가 고려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지역 경제활동으로 만들어진 재화, 특히, 수익이 외부로 흘러나가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한 화폐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아이러니한 것은 지역화폐의 이상적인 취지와는 달리 지역화폐의 가치기준이 외부 국가단위의 화폐와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환전까지 가능합니다. 지역화폐 활성화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지역화폐를 시작하는데 에는 어렵지 않으나 지역화폐의 확대에 혹시 걸림돌이 되는 것은 아닐지요? 지역화폐의 경험이 부족한 사람으로 조심스럽지만 질문을 해 보기도 합니다. 환전을 통해 언제든 현금화가 가능하기 때문에 지역화폐의 출발은 쉬우나 장기적으로 동력을 받아 지역경제에 연결되는 데에 걸림돌이 되는 것이 다름 아닌 환전일 수도 있습니다. 지역화폐의 고민을 십분 공감합니다만…. 지역화폐가 유지되고 있는 지역을 살펴보면 현금을 지역화폐와 교환하고 지역화폐를 다시 현금으로 환전하고 있습니다. 국내도 그렇지만 외국의 지역화폐도 다르지 않습니다. 환전을 허락한다는 것은 지역화폐 가치 기준이 국가화폐 돈의 가치와 같다는 의미입니다. 어떻게 보면 언제든 환전 가능하니 안심하고 사용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지역공동체와 연계되어 발행된 홍성 홍동마을 지역화폐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홍동마을은 3년 전에 3천만 원 정도의 지역화폐를 발행했습니다. 발행 후 2019년 2천만 원 정도가 현금에서 지역화폐로 환전되었고 그 해 다시 1천만 원이 현금으로 환전되었습니다. 2020년 1천만 원이 지역화폐로, 다시 1천만원 정도가 현금으로 환전되었습니다. 주로 사용된 곳은 홍동마을 지역장터였습니다. 마을마켓의 일부 코너, 식당, 맥주호프집, 만화 가게에서 활용이 가능하지만 주 사용처는 장터입니다. 작년, 올해 코로나시기로 장터가 활발하게 운영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홍동마을 지역화폐 “잎”의 가치기준도 국가화폐와 동일합니다. 1원이 1잎인 것이죠.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각도에서 이를 보았으면 하고 제안 드리는 겁니다.

“화폐는 공동체 내부 소통의 ‘언어’”

중요한 공동체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경제 활동이 필수적입니다. 경제활동도 소통이고 소통 외에는 공동체를 지켜나갈 방법은 딱히 없으니까요. 화폐, 돈은 수단일 뿐 뭐 그리 큰 의미를 두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공동체 철학으로 돈 없는 세상을 꿈꾸기 까지 하는 공동체들이 지역화폐에 대해서는 여전히 보수적인 현금화를 유지하는지 저에게는 조금 의아합니다. 현금화가 가능한 것은 지역화폐를 언제든지 환전가능하다는 것 이외에 가치기준을 국가화폐와 동일하게 맞추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화폐에 대해서는 가치의 기준을 새롭게 만들어 가는 것을 사실상 포기한 거죠. 지역의 재화, 소득, 수익이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공동체가치와 가치기준이 아닌 자본의 논리로 운영되는 국가화폐라는 수단과 가치기준을 이용하는 셈이죠. 적으로 적을 제압한다는 위안을 할 수 있지만, 화폐는 공동체 내부 소통의 “언어”임을 간과한 생각입니다. 돈을 쓰면서 소통하는 것이고 한번 소통하면 공동체가 한번 바뀝니다. 할머니가 손주에게 용돈을 주면 돈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돈 속에 할머니의 애정을 담습니다. 이것이 할머니와 손주간의 대화입니다. 말로는 전달하기 힘들 때 할머니들은 용돈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시는 겁니다. 할머니의 소통입니다. 지역공동체의 화폐로 이루어지는 소통은 지역과 공동체의 의미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역화폐 중에서도 환전을 허락하지 않고 화폐가 지닌 가치의 기준이 자본 화폐와 다른 것이 있는지 잘 모릅니다. 있을 것도 같습니다만, 제가 아는 영국 남서부 토트네스 지역화폐, 인도의 오로빌 오라 지역화폐, 한국의 한밭지역화폐, 홍동마을 지역화폐 잎 모두 환전이 가능하고 가치기준도 속한 국가 화폐의 가치기준과 다르지 않습니다. 토트네스 지역의 여러 상점들에서 지역화폐 수령이라는 문구가 여전히 붙어있기는 하지만 이제는 거의 유명무실해 졌습니다. 오로빌의 지역화폐도 이제는 사용되지 않습니다. 작년부터 활성화되고 있는 국내 지역화폐 확산은 지역에서 쓸 수 있는 정부지원금 형태이므로 공동체 성격의 지역화폐는 아닙니다. 국가화폐를 명목상으로도 명확히 내세우고 지역경제를 한계소비성향이라는 지표를 통해 부양하는 효과를 홍보하기도 합니다.



공동체의 철학을 자본이라는 가치기준으로 소통할 수는 없지 않은가. 공동체경제는 가치의 기준을 고민하고 새롭게 세우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빅데이터 큰 축의 변화는 데이터 질서를 흔드는 일로부터 시작되는데, 구글 비즈니스 모델 패러다임 변화는 공동체 가치기준 세움으로부터 출발한다.



똥본위화폐, 공동체 화폐 가능성과 한계는

이런 배경에서 똥본위화폐를 소개드립니다. 공동체 화폐로서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살펴보고자 합니다. 저의 경험을 우선 하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공동체를 방문 드려 똥본위화폐를 소개드렸더니 취지는 좋으나 지역의 가치를 최상으로 보는 지역공동체에는 적합하지 않다 하십니다. 지역공동체 분들로부터 이런 말씀을 들으니 적잖은 상처가 됩니다. 꽤 긴 시간이 흘렀으나 제 마음에 여전히 그 말씀이 남아있기도 하구요. 하지만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 당시 차마 말하지 못한 대답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똥본위화폐는 지역공동체 화폐라기보다는 세계 공동체 화폐” 입니다. 이 말은 똥본위화폐의 철학이 지역화폐 수준을 뛰어 넘는 그 무엇이라는 뜻이 아니라, 연결의 고리가 유연하여 경계짓기가 쉽지 않다는 특징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즉, 이 말은 다시 해석해 보면 공동체 속에서도 느슨한 연결을 얼마든지 이룰 수 있다는 것이죠. 지역공동체 정신을 살리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자본화폐를 사용하기 보다는 지역을 이해하는 가치를 이용해 달라는 부탁이기도 합니다. 똥본위화폐의 출발은 이렇습니다. 사람의 똥이 가질 수 있는 가치를 한번 제대로 따져 보자는 것이죠. 현재 똥은 더러운 폐기물, 쓰레기 입니다. “쓰레기가 있는 곳에 반드시 시스템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시스템이 더러움도 만들고 쓰레기도 만듭니다. 이 말은 시스템이 바뀌면 쓰레기가 갑자기 자원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이죠. 폐플라스틱도 버려진 플라스틱을 활용할 시스템이 없으니 쓰레기 인 것이죠. 똥도 마찬가지 입니다. 똥은 더럽고 이를 방치하고는 위생을 지키기 어려우니 수세식화장실과 하수처리장을 두어 치워야 할 대상이 됩니다. 수세식화장실과 하수처리장으로 이루어진 시스템에게는 똥은 더러워 처리해야할 쓰레기 입니다. 그런데 시스템이 바뀌어서 만약 똥을 수세식화장실을 통해 하수처리장으로 보내지 않아도 된다고 상상해 보았으면 합니다. 사람의 똥으로 에너지도 만들고 퇴비도 만들구요. 생각하는 시스템은 수세식화장실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니 물 절약은 덤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시스템은 비비시스템입니다. 수세식화장실이 도입되기 전 오랫동안 해오던 방식에 과학기술을 합쳐 완성된 시스템입니다. 수세식화장실보다 더 깨끗하고 위생적이며 에너지와 퇴비까지 덤으로 만듭니다. 그래서 똥을 누는 모든 사람에게 하루 10꿀씩 줍니다. 꿀은 똥본위화폐의 화폐 단위입니다. 화폐이므로 당연히 경제활동 교환에 이용할 수 있습니다. 플랫폼이 이미 만들어져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은 하루 한 사람의 똥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치를 10꿀이라 정하고 모든 사람들은 쉽게 그 가치를 상상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가치를 모두가 공유할 수 있고 비록 가치의 규모가 다를 수 있지만 서로 다른 가치기준을 이해해 주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자본이라는 가치가 아무리 소중하지만 쉽게 이해 못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한 사람의 하루 똥 10꿀 가치를 다른 가치들의 가격 매김 기준으로 삼습니다. 누군가에는 사과 하나의 가격이 2꿀일 수 있고 20꿀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커피 한잔의 가격이 5꿀이기도 하고 20꿀 일수도 있구요. 세계 경제의 두번째 보이지 않는 손이 생긴 겁니다. 가격을 매기는 것만으로도 소통이 됩니다. 한 사람이 하루에 누는 똥의 가치를 기준으로 다른 가격을 매기니, 매겨지는 가격은 사람마다 다르고 마을마다 다르며 국가마다 다를 겁니다. 한 가족 내에서도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지역성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것 아닐지요? 지역을 넘어 가치의 기준이 확대되기 때문에 지역 특색과 정체성을 지킬 수 없다는 비판은 억울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똥본위화폐가 활성화되면 지역 경제 활동 결과 생성되는 재화, 수익들이 외부로 유출 될 수 있다고 우려하십니다. 그 이유 때문에 지금의 지역화폐를 선호하는 것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똥본위화폐는 다른 장점이 있습니다. 재화와 수익들이 외부로 나가는 것은 일부 받아들이고 지역 공동체 소통의 의미를 대신 왕성하게 만들어내는 것이죠. 화폐를 언어로 하는 소통도 적지 않다는 거죠. 화폐 언어 소통을 통해 지역의 가치들을 새롭게 계속해서 일상 속에서 만들어 내는 것과 재화와 수익을 지역 속에 지키는 것을 동시에 고려하자는 제안을 드리는 겁니다. 또 다른 측면도 있습니다. 소통의 결과, 데이터라는 것이 공동체소통 속에서 만들어 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데이터가 지역공동체 가치와 무슨 연관이 있겠냐고 반문하실 수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공동체가 완전한 자립을 이루어 홀로 설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공동체 밖 세상과 소통할 수밖에 없고 이 소통에는 디지털 시대 데이터가 반드시 역할을 하게 됩니다.

똥본위화폐, 전자화폐 적용되기 어렵다?

똥본위화폐에 대해서 이런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똥본위화폐 가치는 어느 정도 인정하겠는데 공동체 특성상 IT 기술과 스마트폰이 익숙하지 않고 전자화폐가 적용되기 어렵다는 것이죠. 홍동마을, 순천 교육공동체 등에서 겪은 경험입니다. 이 점은 2가지 방향에서 해결책을 찾고자 합니다. 첫 번째는 현재 IT 기술이 워낙 발전 되어 있기 때문에 핸드폰을 굳이 사용하지 않고도 거래가능한 장치를 만들 수 있습니다. 생각하고 상상하면 얼마든지 기술로 구현이 가능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QR을 이용한 거래도 가능하고 핸드폰 없이 별도의 카드를 만들어 카드만으로도 거래가 가능합니다. 전자 형태로 거래가 이루지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고 선호하지 않은 분들이 있는 것 이해하지만, 전자형태의 거래가 소통이라는 점을 들어 이해를 구하고 싶습니다. 소통은 선택을 동반하며 선택된 데이터는 공동체의 정신, 철학과 직결됩니다.

이것이 공동체 밖 세상 속으로 스며들게 됩니다. 공동체 정신의 유지뿐만 아니라 그 철학의 긍정적인 외부 영향 역할을 전자화폐가 데이터를 통해 이룰 수 있다는 것이죠.

전자화폐이기 때문에 똥본위화폐가 가질 수 있는 특징적 기능이 하나 있습니다. 똥본위화폐는 매일 사라집니다. 매일 7%씩 사라져서 한 달 후에는 오늘 받은 돈이 없어집니다. 저장되지 않는 화폐가 돈일 수 있냐고 질문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돈은 교환의 수단이기도 하지만 가치 저장의 도구이기도 하다는 것이죠. 저장할 수 있어야 모아 두었다고 미래 요긴하게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리 있는 질문이고 당연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답은 간단합니다. 똥본위화폐는 사라지지만 기존 화폐들과는 다르게 저장됩니다. 사라짐을 택하고 자연 속에 대신 저장되는 것이죠. 자연 속에 저장될 때 모든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다시 흘러가게 됩니다. 모든 생명은 죽음을 통해 자연 속으로 돌아감으로써 자연스럽게 존재할 수 있습니다. 돈도 예외가 아니고 돈의 본래 철학이 그러하다고 믿습니다. 당연함을 넘어 자연스러움을 따르는 것이 똥본위화폐입니다. 그런데 왜 한 달 이냐구요? 생명의 주기 중 하나를 택한 것입니다. 사람마다 누는 똥의 양이 다르고 성상이 달라 생산될 수 있는 에너지양이 다를 텐데 왜 모두에게 동일하게 10꿀을 지불하는지 질문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대안적인 기본소득 개념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보편 기본소득은 정부와 세금에 그 근간을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똥본위화폐는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고 알아가는 차원에서 세금과 정부 없이 운영될 수 있다는 특징을 가집니다. 똥본위화폐 시스템에 참여하는 것으로 모든 사람이 동일한 돈을 받습니다. 그리고 받은 10꿀 중 3꿀은 동료와 나눕니다. 나누지 않아도 3꿀은 시스템 속으로 돌아갑니다. 동료는 자신이 정하는데 누구라도 관계없습니다. 가족, 친구, 공동체 동료뿐만 아니라 공동체를 이해하는 외부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느슨하지만 돈의 흐름을 통해 동료와 연결됩니다. 나의 돈이 나눠지기도 하지만 동료의 돈이 나에게로 흘러 들어오기도 합니다. 이렇게 소통합니다.

똥본위화폐의 역할은?

많은 지역 공동체가 국가의 지원을 받습니다. 국가 지원이 잘못된 것이 당연히 아닙니다. 공동체가 국가의 발전, 성장, 건전한 구조에 일익을 담당할 수 있죠. 다만 공동체를 만듬 뿐만 아니라 유지에 정부의 지원이 너무 크게 작용하는 경우, 공동체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공동체만의 정신, 경제 활동, 가치 기준이 있고 이를 기반으로 해서 경제활동과 공동체 내부 소통이 이루어집니다. 정부지원을 받으면 그만큼 지원의 배경이 생기고 때로는 공동체의 철학과 다른 요청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요? 아마 많은 공동체가 이를 고민하고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국가의 높고 넓은 가치를 존중하면서도, 공동체의 가치를 지키는 것은 공동체 내부의 소통이라는 점을 이해한다면 소통의 도구를 소중하게 다루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소통을 일상 속에서 쉼 없이 만들어 내는 똥본위화폐의 역할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현대사회는 인류세(anthropocene)라고 합니다. 최근에는 자동화시대가 성큼 가다오면서, 인류세를 지나 탈인류세(neganthropocene)에 이미 접어 들었다고 합니다. 기계에게 자리를 내어주고는 물리학적으로 설명이 어려운 네거티브(마이너스) 엔트로피가 인류에게 주어진 겁니다. 화석연료를 통해 극으로 치달았던 인간욕망이 인류세를 만들었다면 자본주의의 극단에서 인간은 설 자리조차 잃어간다는 겁니다. 탈인류세의 특징이죠. 기후재앙이 인류세의 대표적 현상이었다면 탈인류세 시대에는 인류 위기가 아닐까 합니다. 노동하는 인간은 사라지고, 탈인류세 시대에는 데이터를 만들어 내는 것이 어쩌면 가장 의미 있는 행동이 될 수도 있을 듯 합니다. 가치의 기준이 노동에서 데이터로 바뀌어 가는 듯합니다. 탈인류세 시대는 인류세가 겪었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인류 존재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무섭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어떤 직종과 직업은 여전히 살아남을 것이라는 예측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입니다. 지금은 진보적인 정책인 기본소득이 탈 인류세 시대에는 가장 보수적인 정책이 될 가능성도 높아 보입니다. 빅데이터, 인간노동 가치기준의 쇠퇴, 인공지능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탈인류세 시대 공동체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고민하게 됩니다.



대중이 일상 삶 속에서 선택할 수 있어야 진정한 민주주의이다.



“탈인류세 시대에는 공동체 삶이 디지털 시대 기호”

인류세 사회에서는 공동체의 의미가 뚜렷합니다.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세상을 비판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존재가치가 있었습니다. 기후재앙과 성장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노동의 가치를 주장해 왔습니다. 기후변화 재앙을 비판하고 그 실천을 녹색과 환경 공동체 속에서 찾을 수 있었고 경제성장 자본주의 반대편에 농촌 공동체가 위치하면서 정체성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탈인류세 시대에도 여전히 녹색, 환경, 노동가치가 중요할 것입니다. 다만, 탈인류세 시대를 특징 지을 이데올로기에는 지금의 공동체가 발견할만한 정체성 논리가 모호합니다. 무엇이 가치 있는 노동인지 정의하기 힘들어지며, 자본가와 노동자의 경계 또한 무너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과도기에 존재하는 배달 긱스 노동자는 로봇, 드론 등으로 대체되고 생산시설들이 대부분 자동화되면 인간이 노동자로 설 자리는 사실상 사라집니다. 누가 자본가인지도 모호합니다. 모든 사람이 자본가가 되면 말이죠. 너무 극단적인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결과입니다. 팬데믹 시기 많은 사람들은 이미 투자하고 있으며 주식뿐만 아니라 파생상품, 암호화폐 등 자본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노동자들의 반대편에 있다고 느꼈던 재벌 기업의 횡포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분노했지만 지금 그런 분위기는 바뀌고 있습니다. 기업가, 자본가들에 대한 이해를 확보할까요? 아니 지역공동체, 정신공동체란 말이 여전히 존재할까요?

“지금 공동체, 디지털세대 대중에게 선택받을 수 있을까”

인류세 시대 공동체는 삶을 지탱하는 정신과 철학으로 정체성을 증명하고 존재가치를 확인했다면, 탈인류세 시대에는 공동체 삶이 디지털 시대 기호로써 표현됩니다. 대중들은 공동체의 정신과 삶, 즉, 내용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 공동체를 동경하고 닮고 싶어 했습니다. 대개는 공동체의 상징적인 존재인 정신적 지도가가 있기도 하죠. 대중들은 삶에 지쳤을 때 삶의 의미를 공동체에서 찾기도 합니다. 인류세를 살고 있기에 시대정신을 대변하는 공동체에서 길을 찾고자 합니다. 탈인류세 시대 대중도 이런 경향이 완벽히 사라지지는 않을 겁니다. 다만 탈인류세 시대 주역은 1989년 이후 태어난 디지털세대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인류 역사상 한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디지털세대 대중은 시대정신에 여전히 매료되고 지지하겠지만, 큰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 해석하지 않고 그냥 좋아 하는 것입니다. 해석하지 않고 그냥 좋아하는 것이 해석 후 좋아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며 그게 시대를 바꿀 정도로 대단한 것인가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다릅니다. 디지털세대가 가치를 찾아가는 방식을 배우지 않으면 그들을 절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이해하려면 1989년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1989년 몇 개월 정도의 오차는 있지만 지형정보시스템 GIS발명, 베를린장벽과 구소련 붕괴 등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혁명적인 사건은 영국 옥스포드 대학 팀 버너스 리 교수에 의해 만들어진 월드와이드웹 www의 발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류역사에서 여러가지 큰 변화를 일으킨 위대한 발명들이 있었지만 www 만큼 획기적인 것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팀 버너스 리 교수는 www를 html언어도 만들면서 고민을 했다고 합니다. www 로직을 “semantic web/의미웹”으로 할지, “hermeneutic web/해석웹”으로 할지 고민했다는 군요. 결국 그는 semantic web, 즉, 의미웹을 택했답니다. 의미웹은 인터넷 상에서 연결된 정보를 택하는 기준이 그냥 좋아서 입니다. 어떤 사이트가 좋아 보여서 택하면 그것으로 끝난 겁니다. 좋은 게 좋은 겁니다. 더 이상 묻지 않는다는 것이죠. 반면 해석웹은 다릅니다. www 언어의 로직 자체가 해석을 한 이후에 갈 곳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즉, 왜 그곳이 좋은지 묻는 것이죠. 1989

년 www 설계 당시 팀 버너스 리 교수가 의미웹을 선택한 결과는 실로 엄청납니다. 2007년 미국의 버블경제 붕괴 이후 2008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 구글 비즈니스모델을 통해, www 의미웹 선택의 결과가 빅데이터로 이어졌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된 것이죠. 이제 우리는 모두가 빅데이터의 위력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2008년 이전에는 그 위력을 전문가들조차 잘 모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공동체를 얘기하다 왜 갑자기 빅데이터냐구요? 시간이 지날 수 록 탈인류세 시대 대중은 디지털세대로 대부분 채워질 겁니다. 공동체 정신과 가치가 여전히 살아남기 위해서는 공동체도 나름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죠. 공동체도 대중과 함께 하고, 대중을 위한 것이고, 대중이기도 한 것 아닐지요? 그들에게 메시지를 줄 수 없다면 아무리 숭고한 정신과 철학을 가진 공동체라 하더라도 존재하기 힘들 겁니다. 디지털세대의 선택은 해석적이지 않습니다. 선택된 것에 의미를 두는 경향이 뚜렷합니다. 선택하여 연결되어 인연이지 특별한 이유가 있어 연결되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언어는 태어나면서 부터 디지털이었고 그들이 매일 살고 있는 세상도 www 기반의 디지털 세상입니다. 그들은 선택해서 간 곳에 많은 다른 동료들이 모이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선택해서 가는 곳, 그곳에 의미가 있는 것이면 왜 그곳에 의미가 있는지 해석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아날로그 세대와 다른 가장 큰 차이입니다. 지금의 공동체가 과연 디지털세대 대중들에게 여전히 선택받을 수 있을까요? 즉, 디지털언어로 소통하는 그들에게서 공동체가 선택받을 수 있을까 하는 질문입니다. 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www 의미웹 인터넷 바다에 공동체도 뛰어들어야 합니다. 어떻게요? 당연히 지금과 같이 공동체 정신과 삶을 보여 주어야죠. 디지털세대 대중인 젊은 세대가 소통하는 방식으로 공동체도 소통해야 합니다. 그들은 오직 디지털언어에만 반응합니다. 디지털언어에 정신과 철학도 담고 삶의 모습도 얼마든지 담을 수 있습니다. 삶과 정신이 멋지고 가치롭다고 하여 그것을 표현한 디지털언어가 저절로 멋지고 가치롭게 되지는 않습니다. 여기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를 똥본위화페가 역할을 담당할 것이며 어쩌면 공동체 창구의 하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형성된 데이터로부터 공동체의 정신과 매력이 드러나야 합니다. 그것이 공동체 생존의 열쇠가 될 것입니다.



우공이산(愚公移山), 거대한 폭포도 작은 물방울로부터 출발했다. 공동체 생명도 지금 존재를 드러낼 때이다. 소통으로 형성해야 한다. 공동체 경제 소통으로 시작해 보자.



“데이터는 새로운 석유…탈인류세 시대 공동체 역할 모색”

공동체는 지역에 정체성과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류세든 탈인류세든 관계없이 정체성을 가지고 생존할 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충분히 동의합니다. 하지만 공동체 속에서 만들어지는 가치 축적과 소통을 통해 만들어지는 언어가 빅데이터 자체를 흔들 수만 있다면 그것은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특징인 동시에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동체 내부에서 일어나는 소통이 데이터로 변환될 수 있어야 됩니다. 구글 같은 거대기업 사업모델 논리가 만들어 내는 빅테이터가 공동체의 가치를 기반으로 하는 소통이 생산하는 데이터가 빅데이터의 거대 판을 흔들 수 있는 수준 까지 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렇게 되면 공동체 간에 연계도 가능한데, 이런 공동체 역할에 똥본위화폐가 일부 담당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데이터는 새로운 석유라고 하지 않습니까. 탈인류세 시대 공동체의 역할은 새로운 시대적 아픔에 귀 기울이고 해결책을 새롭게 모색해야 합니다. 공동체의 가치도 재해석될 것입니다.

똥본위화폐의 현재를 한번 살펴보죠. 똥본위화폐의 뜻과 철학이 좋다면 왜 활발하게 활용되지 못할까요? 똥본위화폐를 받아 주는 곳이 아직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똥본위화폐가 있어도 이를 지불하고 구입할 상품과 서비스가 아쉽게도 거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현금화를 허락하는 순간 똥본위화폐의 고유한 특징과 철학은 사라집니다. 똥본위화폐로 구매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나려면 똥본위화폐의 가치를 이해하고 자신이 가진 소중한 것들을 내어 놓는 사람들이 늘어나야 합니다. 시간이 필요 합니다. 당장 실현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보다는 천천히 그 가능성을 열어가야 합니다. 반응은 연애편지처럼 늘 지연되어 도착하니까요. 기다리는 시간도 가치로운 데이터가 될 수 있습니다. 인내를 가지고 기다리되 노력도 해야 합니다. 다음과 같은 방향을 가지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똥본위화폐 가능성은 ‘덜 사용된 재화’”

똥본위화폐 가능성은 “덜 사용된 재화” 속에서 발견됩니다. 여전히 먹을 수 있고 내일이면 유통기한이 지나 먹을 수 없는 것, 여전히 사용할 수 있지만 유행이 지나 잘 팔리지 않는 것도 덜 사용된 재화입니다. 이런 “덜 사용된 재화”를 똥본위화폐 거래에 내어 놓는 것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작은 물꼬는 큰 흐름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농촌과 도시가 맞닿아 있는 곳에서는 덜 사용된 재화가 농촌에서 도시로, 도시에서 농촌으로 제공될 수 있습니다. 덜 사용된 재화의 교환을 똥본위화폐 돈으로써 중재하는 것뿐만 아니라 교환과정에서 책정되는 가격은 데이터가 되어 이런 경제활동의 매력으로 부각될 것입니다.

똥본위화폐는 10꿀 중 3꿀을 나누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종의 느슨한 연대를 시스템을 통해 실현하고 있습니다. 사실 똥본위화폐 꿀 나눔도 일종의 거래이며 거래는 데이터로 축적됩니다. 현재 똥본위화폐 가맹자는 약 800명 쯤 되는데, 실질적인 거래는 한 달에 100회를 넘지 못하지만, 나눔의 거래는 한 달에 약 만회가 넘습니다. 충분히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데이터는 가치롭습니다. 더군다나 공동체 속 가치기준을 서로 토론하고 경제활동을 하는 소통 데이터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똥본위화폐 시스템 속에서 누가 누구와 연결되는지는 큰 의미를 갖는 데이터입니다. 연대와 연결 자체가 힘인 시대 아닙니까.

똥본위화폐는 시스템 구조 특징상 서로의 어려움, 위험 등을 함께 하는 역할을 도울 수 있습니다. 과거두레처럼 작동할 수 있습니다. 현재 농촌 공동체에서 시행하고 있는 선구매 같은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똥본위화폐 시스템 속에서 연결된 동료들은 서로의 위험을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역할로써 최소화하는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물건, 상품, 서비스, 노동 같은 것들을 자유롭게 제안할 수 있으며 그 길을 똥본위화폐가 열어줄 수 있습니다. 자본시장 파생상품과 같은 역할을 담당하면서도 자본이 아닐 수 있는 것이 똥본위화폐입니다. 파생상품을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 취지가 나쁜 것은 아니죠. “자본”이라는 글짜를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자본에 대한 탐욕이 문제겠죠. 똥본위화폐가 자본의 역할을 담당하지만 탐욕을 근원적으로 봉쇄할 수 있기에 가능한 겁니다.

“선호하는 에너지원 선택해 전기 사용한다면”

여기 다른 아이디어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한전에서 보내는 전기를 사용하면서 쓰고 있는 전기가 화력발전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태양광발전 또는 원자력발전으로 만들어 진 것인지 알지 못하며 따지지도 않습니다. 총선, 대선 때가 되면 후보들의 에너지정책 공약을 챙길 수는 있지만 특정후보에게 투표하는데 에너지 정책 선호가 결정적이 아닐 수 있습니다. 에너지 정책에 대한 여론조사도 표본조사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전체 대중들의 뜻을 반영하기 힘듭니다. 이러면 어떨까요? 가정집, 학교, 공공건물의 전기콘센트, 스위치를 지금과 같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기를 만들어내는 자원별로 구별하여 설치하는 겁니다. 사용자는 화력, 태양광, 풍력, 수력, 원자력, 바이오 자원 중 선호하는 에너지원을 선택하여 전기를 사용하는 것이죠. 물론 한전에서 보내는 전기는 구별되지 않겠지만 사용은 선택할 수 있게 하고 선택된 에너지원별 사용량을 기준으로 다른 전기료를 지불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어떤 에너지원으로 만들어진 전기가 얼마만큼 사용되었는지 실시간으로 파악이 가능합니다. 징수된 전기료도 달라지구요. 대중들의 에너지원 선호도가 실시간으로 파악되기 때문에 저절로 에너지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에너지 공동체 형성의 지름길 아닐까요? 이런 데이터가 디지털시대 정신과 공동체 철학이 합쳐진 가치를 담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똥본위화폐와 같은 디지털시대 언어역할을 하는 기호란 이런 것일 겁니다.

똥본위화폐에는 반가운 소식도 있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유니스트 캠퍼스 내 헬스케어센터 가 있는데 조만간 한의원이 들어온다고 하는군요. 한의원 진료 서비스 중 일부 비용을 학교가 부담하는데 이를 똥본위화폐로 대체하는 방안을 학교에서 제안해 왔습니다. 고맙고 또 반가운 소식입니다. 구체적인 실행까지는 여전히 어려움이 있기는 하겠지만 충분히 길을 찾을 수 있을 듯합니다. 곧 다시 소식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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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형성되어가는 것이다. 관심 가는 곳에 마크를 하면 범위가 정해지고, 겹치는 공간에서 소통하는 곳이다. 한번 소통하면 공동체는 한번 형성되어 진다.

“호미 하나로 공동체 만들어야 한다
공동체, 유지와 성장도 쉽지 않다“

공동체는 존재이고 공동체경제는 소통입니다. 존재와 소통의 근본은 가치와 언어입니다.

공동체 경제를 얘기하기 위해서는 먼저 공동체와 경제가 무엇인지 나름의 이해가 필요합니다. 공동체는 반드시 지켜야하는 특정 규율을 갖는 것이 아니라 공통된 관심사 속에서 발견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경제는 내가 가진 가치를 다른 사람과 교환하는 것입니다. 구성원들의 공통점을 발견한 후 존중하고, 일상의 삶 속에서 서로가 가진 것들을 교환하면서 공동의 가치를 늘려가는 것이 공동체 경제입니다.

공동체 정체성은 공동체 밖 세상을 비판하는 것으로부터 얻어지기도 합니다. 이를 통해 효과적으로 공동체를 특징 짓고 공동체의 결속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어떤 측면에서는 외부와의 단절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적어도 저러지 말자는 동의가 결속의 힘이 되니까요. 하지만, 정체성이 높은 공동체라고 하더라도 외부와 계속 단절하면서 공동체를 유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공동체 정체성을 비판을 통해 높였다가도 공동체 유지까지 연결되기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쩔 수 없이 외부와의 연결을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막기는 힘들기 때문에 공동체의 범위를 정하게 됩니다. 범위를 정한 후, 외부의 영향을 받으면서 내부 소통이 이루어집니다. 공동체 정신을 지키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규약, 합의가 아닌, 내부 소통이라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예전에 제가 광주에 있을 때 황대권 선생님을 초청하여 영광 마을 공동체 대해서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 황대권 선생님은 공동체 건설이 두 번째라고 하시면서 첫 번째 마을 공동체를 외부의 힘으로 만들었을 때 공동체 기반이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 지에 대해 얘기를 하셨습니다. 마을 공동체가 국가의 정책으로 이루어지는 경우, 또는 꼭 그렇지 않더라도 건설비용의 많은 부분이 외부 지원으로 이루어진 경우 공동체가 만들어 진 이후 여러 문제들로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 지원 지역, 마을 공동체는 개발사업과 크게 다르지 않고 아무리 좋은 뜻을 가지고 만들었어도 갈등이 생기기 시작하면 해결할 수 있는 뿌리가 없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당시 황대권 선생님은 호미 하나로 공동체는 만들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가진 것이 자기만의 것일 때 애틋하고 그 애틋한 것으로 소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만 공동체의 범위를 정하기도 쉽습니다.

“의식주와 교육이 공동체의 핵심 기반”

국가나 국제적 지원으로 만들어진 공동체가 설립까지는 쉬울 수 있지만 이후 쉽게 없어지는 것을 목격합니다. 자생적으로 생긴 공동체도 공동체 체험, 관광으로 이어가는 경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공동체는 설립 못지않게 유지와 성장도 쉽지 않습니다.

일단 공동체가 만들어진 후 큰 문제 중 하나가 공동체 경제입니다. 먹고 사는 일입니다. 지역공동체인 경우에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공동체의 많은 구성원들이 직장을 이미 가지고 있어 소득이 있다면 지역공동체에서 생활을 하는데 경제적으로 큰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 그 분들은 경제활동 보다는 공동체 정신과 철학이 더 중요하니까요. 하지만 지역공동체 내부에서 많은 구성원들이 생존을 해야 하는 경우라면 공동체 경제가 중요하게 됩니다. 물론 이 경우에도 공동체 내부에서 의식주를 모두 자립할 수 있다면 문제는 어렵지 않습니다. 의식주와 교육이 공동체의 핵심 기반입니다. 많은 공동체가 이를 지향하지만 대개 공동체 바깥세상과의 연결이 공동체 운명과 직결되기도 합니다. 돈이라는 존재가 떠오릅니다. 예외 없이 돈이라는 것이 공동체 혈액이 됩니다. 간디공동체가 실현되어 완전한 자립이 되면 돈이 아닌 다른 혈액이 마을 공동체를 흐르면서 공동체 생명을 유지시킬 수 있지만 말입니다. 공동체 유지비용, 한해 살림을 정산하면서 외부로부터 공동체로 들어온 돈, 즉, 외부와 경제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돈이 전체유지비용의 높은 부분을 차지한다면 공동체가 자립한다고 보기 힘듭니다. 공동체 정신을 지킬 수는 있지만 한계가 있죠.

디지털세대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 팀 버너스 리 교수가 1989년 만든 월드와이드웹(www)으로 연결되어지기 시작한 세상에서 출발했다. 인터넷 연결은 가치를 따진 후 가는 곳이 아니라 선택해서 간 곳에 가치가 생긴다는 팀 버너스 리 교수의 의미웹 로직으로 형성되어왔다. www 세상에서 만들어진 거대기업 구글 비즈니스 모델 기반 빅데이터가 세상을 온통 흔들고 있다. 거대기업에 저항할 수 있는 힘도 누구도 아닌 디지털세대에게만 있다.
디지털세대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 팀 버너스 리 교수가 1989년 만든 월드와이드웹(www)으로 연결되어지기 시작한 세상에서 출발했다. 인터넷 연결은 가치를 따진 후 가는 곳이 아니라 선택해서 간 곳에 가치가 생긴다는 팀 버너스 리 교수의 의미웹 로직으로 형성되어왔다. www 세상에서 만들어진 거대기업 구글 비즈니스 모델 기반 빅데이터가 세상을 온통 흔들고 있다. 거대기업에 저항할 수 있는 힘도 누구도 아닌 디지털세대에게만 있다.

“공동체 경제 중요한 출발점, 돈의 가치기준”

공동체 살림의 차원은 아니지만 공동체 경제소통에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사용하는 돈의 가치기준이라는 것입니다. 소득의 기반을 공동체 외부에 두는 분들도 이 부분에는 예외가 아닙니다. 공동체 정신을 가치기준으로 하는 돈을 만들면 되지 않느냐 하지만 공동체 살림과 유지를 고려하게 되면 이 문제는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공동체 경제를 고민하는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공동체 관련 책들을 읽어 보아도 이 문제는 나타납니다. 많은 공동체들은 공동체 정신을 강조하면서 경제활동, 즉, 교환의 수단으로 돈 아닌 것을 제안합니다. 돈없는 경제 공동체를 목표로 합니다. 인도 오로빌 공동체 예를 들어보면 공동체 창시자인 “마더”라는 분은 돈없는 공동체를 제안하고 강조했습니다. 오로빌 구성원 분들은 언젠가는 그런 공동체를 만드는 목표를 가집니다. 오로빌은 아직 자립을 이루지 못했고 외부 지원(즉, 외부의 돈)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1년 총 예산이 약 50억 정도인데, 자체 충당은 약 15%라고 합니다. 15% 대 85%를 얘기하는 것 역시 돈, 그것도 공동체 내부 가치를 기준으로 하는 돈이 아니라 공동체 외부의 돈(인도 화폐, 유럽 유로, 달러 등)으로 계산한 수치입니다. 경제 가치기준은 공동체 외부로 부터 온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가족공동체 정도라면 돈 없는 경제 활동이 가능하지만 공동체가 확대 되고 공동체 밖 세상과 연결되려면 화폐 없이는 힘듭니다. 외부의 지원 그리고 공동체 외부와의 경제활동 등으로 수익을 얻어 공동체를 잘 유지하고 있다고 해보죠. 이 경우에도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경제활동이 돈으로 이루어지는데 공동체가 사용하는 화폐의 가치가 공동체 밖 세상의 화폐와 같은 것이죠. 그리고 그 돈의 가치가 공동체 정신과 갈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세상의 화폐는 언제든지 자본이 될 수 있는데, 공동체 내부에서 그 화폐를 사용하고 공동체 유지를 위해서 외부의 화폐로 지원을 받는 것이죠. 공동체 만듬 뿐만 아니라 유지, 성장의 혈액이 그런 화폐라면 공동체 정신의 유지가 쉽지 않겠죠. 공동체의 일상이 공동체의 미래가 될 텐데, 일상은 공동체 내부 구성원들의 소통으로 이루어집니다. 소통 중에서 경제활동의 비율이 적지 않은데 알게 모르게 사용하는 소통의 도구, 즉, 화폐가 공동체 철학과 다르다면 곤란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공동체 마을 내부에서 어떤 물건을 살 때도 여전히 우리는 국가화폐를 사용합니다. 지역에서 생산된 배추, 파, 쌀을 마을공동체 사람들끼리 교환 할 때도 다름 아닌 국가화폐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공동체 구성원과 공동체 외부 사람들이 거래할 때도 마찬가지죠. 돈, 화폐라는 것은 도구일 뿐이니까 관계없다고 하기도 합니다. 또는 이를 어느 정도 걱정하면서도 대안이 없지 않느냐 하고 받아들이죠.

“지역화폐 가치 기준, 국가 단위화폐와 다르지 않다”

이런 배경에서 보면, 지역화폐를 공동체가 고려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지역 경제활동으로 만들어진 재화, 특히, 수익이 외부로 흘러나가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한 화폐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아이러니한 것은 지역화폐의 이상적인 취지와는 달리 지역화폐의 가치기준이 외부 국가단위의 화폐와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환전까지 가능합니다. 지역화폐 활성화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지역화폐를 시작하는데 에는 어렵지 않으나 지역화폐의 확대에 혹시 걸림돌이 되는 것은 아닐지요? 지역화폐의 경험이 부족한 사람으로 조심스럽지만 질문을 해 보기도 합니다. 환전을 통해 언제든 현금화가 가능하기 때문에 지역화폐의 출발은 쉬우나 장기적으로 동력을 받아 지역경제에 연결되는 데에 걸림돌이 되는 것이 다름 아닌 환전일 수도 있습니다. 지역화폐의 고민을 십분 공감합니다만…. 지역화폐가 유지되고 있는 지역을 살펴보면 현금을 지역화폐와 교환하고 지역화폐를 다시 현금으로 환전하고 있습니다. 국내도 그렇지만 외국의 지역화폐도 다르지 않습니다. 환전을 허락한다는 것은 지역화폐 가치 기준이 국가화폐 돈의 가치와 같다는 의미입니다. 어떻게 보면 언제든 환전 가능하니 안심하고 사용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지역공동체와 연계되어 발행된 홍성 홍동마을 지역화폐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홍동마을은 3년 전에 3천만 원 정도의 지역화폐를 발행했습니다. 발행 후 2019년 2천만 원 정도가 현금에서 지역화폐로 환전되었고 그 해 다시 1천만 원이 현금으로 환전되었습니다. 2020년 1천만 원이 지역화폐로, 다시 1천만원 정도가 현금으로 환전되었습니다. 주로 사용된 곳은 홍동마을 지역장터였습니다. 마을마켓의 일부 코너, 식당, 맥주호프집, 만화 가게에서 활용이 가능하지만 주 사용처는 장터입니다. 작년, 올해 코로나시기로 장터가 활발하게 운영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홍동마을 지역화폐 “잎”의 가치기준도 국가화폐와 동일합니다. 1원이 1잎인 것이죠.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각도에서 이를 보았으면 하고 제안 드리는 겁니다.

“화폐는 공동체 내부 소통의 ‘언어’”

중요한 공동체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경제 활동이 필수적입니다. 경제활동도 소통이고 소통 외에는 공동체를 지켜나갈 방법은 딱히 없으니까요. 화폐, 돈은 수단일 뿐 뭐 그리 큰 의미를 두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공동체 철학으로 돈 없는 세상을 꿈꾸기 까지 하는 공동체들이 지역화폐에 대해서는 여전히 보수적인 현금화를 유지하는지 저에게는 조금 의아합니다. 현금화가 가능한 것은 지역화폐를 언제든지 환전가능하다는 것 이외에 가치기준을 국가화폐와 동일하게 맞추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화폐에 대해서는 가치의 기준을 새롭게 만들어 가는 것을 사실상 포기한 거죠. 지역의 재화, 소득, 수익이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공동체가치와 가치기준이 아닌 자본의 논리로 운영되는 국가화폐라는 수단과 가치기준을 이용하는 셈이죠. 적으로 적을 제압한다는 위안을 할 수 있지만, 화폐는 공동체 내부 소통의 “언어”임을 간과한 생각입니다. 돈을 쓰면서 소통하는 것이고 한번 소통하면 공동체가 한번 바뀝니다. 할머니가 손주에게 용돈을 주면 돈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돈 속에 할머니의 애정을 담습니다. 이것이 할머니와 손주간의 대화입니다. 말로는 전달하기 힘들 때 할머니들은 용돈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시는 겁니다. 할머니의 소통입니다. 지역공동체의 화폐로 이루어지는 소통은 지역과 공동체의 의미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역화폐 중에서도 환전을 허락하지 않고 화폐가 지닌 가치의 기준이 자본 화폐와 다른 것이 있는지 잘 모릅니다. 있을 것도 같습니다만, 제가 아는 영국 남서부 토트네스 지역화폐, 인도의 오로빌 오라 지역화폐, 한국의 한밭지역화폐, 홍동마을 지역화폐 잎 모두 환전이 가능하고 가치기준도 속한 국가 화폐의 가치기준과 다르지 않습니다. 토트네스 지역의 여러 상점들에서 지역화폐 수령이라는 문구가 여전히 붙어있기는 하지만 이제는 거의 유명무실해 졌습니다. 오로빌의 지역화폐도 이제는 사용되지 않습니다. 작년부터 활성화되고 있는 국내 지역화폐 확산은 지역에서 쓸 수 있는 정부지원금 형태이므로 공동체 성격의 지역화폐는 아닙니다. 국가화폐를 명목상으로도 명확히 내세우고 지역경제를 한계소비성향이라는 지표를 통해 부양하는 효과를 홍보하기도 합니다.

공동체의 철학을 자본이라는 가치기준으로 소통할 수는 없지 않은가. 공동체경제는 가치의 기준을 고민하고 새롭게 세우는 것으로 부터 시작된다. 빅데이터 큰 축의 변화는 데이터 질서를 흔드는 일로부터 시작되는데, 구글 비즈니스 모델 패러다임 변화는 공동체 가치기준 세움으로부터 출발한다.
공동체의 철학을 자본이라는 가치기준으로 소통할 수는 없지 않은가. 공동체경제는 가치의 기준을 고민하고 새롭게 세우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빅데이터 큰 축의 변화는 데이터 질서를 흔드는 일로부터 시작되는데, 구글 비즈니스 모델 패러다임 변화는 공동체 가치기준 세움으로부터 출발한다.

똥본위화폐, 공동체 화폐 가능성과 한계는

이런 배경에서 똥본위화폐를 소개드립니다. 공동체 화폐로서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살펴보고자 합니다. 저의 경험을 우선 하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공동체를 방문 드려 똥본위화폐를 소개드렸더니 취지는 좋으나 지역의 가치를 최상으로 보는 지역공동체에는 적합하지 않다 하십니다. 지역공동체 분들로부터 이런 말씀을 들으니 적잖은 상처가 됩니다. 꽤 긴 시간이 흘렀으나 제 마음에 여전히 그 말씀이 남아있기도 하구요. 하지만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 당시 차마 말하지 못한 대답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똥본위화폐는 지역공동체 화폐라기보다는 세계 공동체 화폐” 입니다. 이 말은 똥본위화폐의 철학이 지역화폐 수준을 뛰어 넘는 그 무엇이라는 뜻이 아니라, 연결의 고리가 유연하여 경계짓기가 쉽지 않다는 특징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즉, 이 말은 다시 해석해 보면 공동체 속에서도 느슨한 연결을 얼마든지 이룰 수 있다는 것이죠. 지역공동체 정신을 살리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자본화폐를 사용하기 보다는 지역을 이해하는 가치를 이용해 달라는 부탁이기도 합니다. 똥본위화폐의 출발은 이렇습니다. 사람의 똥이 가질 수 있는 가치를 한번 제대로 따져 보자는 것이죠. 현재 똥은 더러운 폐기물, 쓰레기 입니다. “쓰레기가 있는 곳에 반드시 시스템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시스템이 더러움도 만들고 쓰레기도 만듭니다. 이 말은 시스템이 바뀌면 쓰레기가 갑자기 자원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이죠. 폐플라스틱도 버려진 플라스틱을 활용할 시스템이 없으니 쓰레기 인 것이죠. 똥도 마찬가지 입니다. 똥은 더럽고 이를 방치하고는 위생을 지키기 어려우니 수세식화장실과 하수처리장을 두어 치워야 할 대상이 됩니다. 수세식화장실과 하수처리장으로 이루어진 시스템에게는 똥은 더러워 처리해야할 쓰레기 입니다. 그런데 시스템이 바뀌어서 만약 똥을 수세식화장실을 통해 하수처리장으로 보내지 않아도 된다고 상상해 보았으면 합니다. 사람의 똥으로 에너지도 만들고 퇴비도 만들구요. 생각하는 시스템은 수세식화장실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니 물 절약은 덤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시스템은 비비시스템입니다. 수세식화장실이 도입되기 전 오랫동안 해오던 방식에 과학기술을 합쳐 완성된 시스템입니다. 수세식화장실보다 더 깨끗하고 위생적이며 에너지와 퇴비까지 덤으로 만듭니다. 그래서 똥을 누는 모든 사람에게 하루 10꿀씩 줍니다. 꿀은 똥본위화폐의 화폐 단위입니다. 화폐이므로 당연히 경제활동 교환에 이용할 수 있습니다. 플랫폼이 이미 만들어져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은 하루 한 사람의 똥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치를 10꿀이라 정하고 모든 사람들은 쉽게 그 가치를 상상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가치를 모두가 공유할 수 있고 비록 가치의 규모가 다를 수 있지만 서로 다른 가치기준을 이해해 주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자본이라는 가치가 아무리 소중하지만 쉽게 이해 못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한 사람의 하루 똥 10꿀 가치를 다른 가치들의 가격 매김 기준으로 삼습니다. 누군가에는 사과 하나의 가격이 2꿀일 수 있고 20꿀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커피 한잔의 가격이 5꿀이기도 하고 20꿀 일수도 있구요. 세계 경제의 두번째 보이지 않는 손이 생긴 겁니다. 가격을 매기는 것만으로도 소통이 됩니다. 한 사람이 하루에 누는 똥의 가치를 기준으로 다른 가격을 매기니, 매겨지는 가격은 사람마다 다르고 마을마다 다르며 국가마다 다를 겁니다. 한 가족 내에서도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지역성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것 아닐지요? 지역을 넘어 가치의 기준이 확대되기 때문에 지역 특색과 정체성을 지킬 수 없다는 비판은 억울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똥본위화폐가 활성화되면 지역 경제 활동 결과 생성되는 재화, 수익들이 외부로 유출 될 수 있다고 우려하십니다. 그 이유 때문에 지금의 지역화폐를 선호하는 것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똥본위화폐는 다른 장점이 있습니다. 재화와 수익들이 외부로 나가는 것은 일부 받아들이고 지역 공동체 소통의 의미를 대신 왕성하게 만들어내는 것이죠. 화폐를 언어로 하는 소통도 적지 않다는 거죠. 화폐 언어 소통을 통해 지역의 가치들을 새롭게 계속해서 일상 속에서 만들어 내는 것과 재화와 수익을 지역 속에 지키는 것을 동시에 고려하자는 제안을 드리는 겁니다. 또 다른 측면도 있습니다. 소통의 결과, 데이터라는 것이 공동체소통 속에서 만들어 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데이터가 지역공동체 가치와 무슨 연관이 있겠냐고 반문하실 수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공동체가 완전한 자립을 이루어 홀로 설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공동체 밖 세상과 소통할 수밖에 없고 이 소통에는 디지털 시대 데이터가 반드시 역할을 하게 됩니다.

똥본위화폐, 전자화폐 적용되기 어렵다?

똥본위화폐에 대해서 이런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똥본위화폐 가치는 어느 정도 인정하겠는데 공동체 특성상 IT 기술과 스마트폰이 익숙하지 않고 전자화폐가 적용되기 어렵다는 것이죠. 홍동마을, 순천 교육공동체 등에서 겪은 경험입니다. 이 점은 2가지 방향에서 해결책을 찾고자 합니다. 첫 번째는 현재 IT 기술이 워낙 발전 되어 있기 때문에 핸드폰을 굳이 사용하지 않고도 거래가능한 장치를 만들 수 있습니다. 생각하고 상상하면 얼마든지 기술로 구현이 가능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QR을 이용한 거래도 가능하고 핸드폰 없이 별도의 카드를 만들어 카드만으로도 거래가 가능합니다. 전자 형태로 거래가 이루지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고 선호하지 않은 분들이 있는 것 이해하지만, 전자형태의 거래가 소통이라는 점을 들어 이해를 구하고 싶습니다. 소통은 선택을 동반하며 선택된 데이터는 공동체의 정신, 철학과 직결됩니다.

이것이 공동체 밖 세상 속으로 스며들게 됩니다. 공동체 정신의 유지뿐만 아니라 그 철학의 긍정적인 외부 영향 역할을 전자화폐가 데이터를 통해 이룰 수 있다는 것이죠.

전자화폐이기 때문에 똥본위화폐가 가질 수 있는 특징적 기능이 하나 있습니다. 똥본위화폐는 매일 사라집니다. 매일 7%씩 사라져서 한 달 후에는 오늘 받은 돈이 없어집니다. 저장되지 않는 화폐가 돈일 수 있냐고 질문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돈은 교환의 수단이기도 하지만 가치 저장의 도구이기도 하다는 것이죠. 저장할 수 있어야 모아 두었다고 미래 요긴하게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리 있는 질문이고 당연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답은 간단합니다. 똥본위화폐는 사라지지만 기존 화폐들과는 다르게 저장됩니다. 사라짐을 택하고 자연 속에 대신 저장되는 것이죠. 자연 속에 저장될 때 모든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다시 흘러가게 됩니다. 모든 생명은 죽음을 통해 자연 속으로 돌아감으로써 자연스럽게 존재할 수 있습니다. 돈도 예외가 아니고 돈의 본래 철학이 그러하다고 믿습니다. 당연함을 넘어 자연스러움을 따르는 것이 똥본위화폐입니다. 그런데 왜 한 달 이냐구요? 생명의 주기 중 하나를 택한 것입니다. 사람마다 누는 똥의 양이 다르고 성상이 달라 생산될 수 있는 에너지양이 다를 텐데 왜 모두에게 동일하게 10꿀을 지불하는지 질문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대안적인 기본소득 개념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보편 기본소득은 정부와 세금에 그 근간을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똥본위화폐는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고 알아가는 차원에서 세금과 정부 없이 운영될 수 있다는 특징을 가집니다. 똥본위화폐 시스템에 참여하는 것으로 모든 사람이 동일한 돈을 받습니다. 그리고 받은 10꿀 중 3꿀은 동료와 나눕니다. 나누지 않아도 3꿀은 시스템 속으로 돌아갑니다. 동료는 자신이 정하는데 누구라도 관계없습니다. 가족, 친구, 공동체 동료뿐만 아니라 공동체를 이해하는 외부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느슨하지만 돈의 흐름을 통해 동료와 연결됩니다. 나의 돈이 나눠지기도 하지만 동료의 돈이 나에게로 흘러 들어오기도 합니다. 이렇게 소통합니다.

똥본위화폐의 역할은?

많은 지역 공동체가 국가의 지원을 받습니다. 국가 지원이 잘못된 것이 당연히 아닙니다. 공동체가 국가의 발전, 성장, 건전한 구조에 일익을 담당할 수 있죠. 다만 공동체를 만듬 뿐만 아니라 유지에 정부의 지원이 너무 크게 작용하는 경우, 공동체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공동체만의 정신, 경제 활동, 가치 기준이 있고 이를 기반으로 해서 경제활동과 공동체 내부 소통이 이루어집니다. 정부지원을 받으면 그만큼 지원의 배경이 생기고 때로는 공동체의 철학과 다른 요청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요? 아마 많은 공동체가 이를 고민하고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국가의 높고 넓은 가치를 존중하면서도, 공동체의 가치를 지키는 것은 공동체 내부의 소통이라는 점을 이해한다면 소통의 도구를 소중하게 다루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소통을 일상 속에서 쉼 없이 만들어 내는 똥본위화폐의 역할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현대사회는 인류세(anthropocene)라고 합니다. 최근에는 자동화시대가 성큼 가다오면서, 인류세를 지나 탈인류세(neganthropocene)에 이미 접어 들었다고 합니다. 기계에게 자리를 내어주고는 물리학적으로 설명이 어려운 네거티브(마이너스) 엔트로피가 인류에게 주어진 겁니다. 화석연료를 통해 극으로 치달았던 인간욕망이 인류세를 만들었다면 자본주의의 극단에서 인간은 설 자리조차 잃어간다는 겁니다. 탈인류세의 특징이죠. 기후재앙이 인류세의 대표적 현상이었다면 탈인류세 시대에는 인류 위기가 아닐까 합니다. 노동하는 인간은 사라지고, 탈인류세 시대에는 데이터를 만들어 내는 것이 어쩌면 가장 의미 있는 행동이 될 수도 있을 듯 합니다. 가치의 기준이 노동에서 데이터로 바뀌어 가는 듯합니다. 탈인류세 시대는 인류세가 겪었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인류 존재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무섭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어떤 직종과 직업은 여전히 살아남을 것이라는 예측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입니다. 지금은 진보적인 정책인 기본소득이 탈 인류세 시대에는 가장 보수적인 정책이 될 가능성도 높아 보입니다. 빅데이터, 인간노동 가치기준의 쇠퇴, 인공지능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탈인류세 시대 공동체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고민하게 됩니다.

대중이 일상 삶 속에서 선택할 수 있어야 진정한 민주주의이다.
대중이 일상 삶 속에서 선택할 수 있어야 진정한 민주주의이다.

“탈인류세 시대에는 공동체 삶이 디지털 시대 기호”

인류세 사회에서는 공동체의 의미가 뚜렷합니다.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세상을 비판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존재가치가 있었습니다. 기후재앙과 성장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노동의 가치를 주장해 왔습니다. 기후변화 재앙을 비판하고 그 실천을 녹색과 환경 공동체 속에서 찾을 수 있었고 경제성장 자본주의 반대편에 농촌 공동체가 위치하면서 정체성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탈인류세 시대에도 여전히 녹색, 환경, 노동가치가 중요할 것입니다. 다만, 탈인류세 시대를 특징 지을 이데올로기에는 지금의 공동체가 발견할만한 정체성 논리가 모호합니다. 무엇이 가치 있는 노동인지 정의하기 힘들어지며, 자본가와 노동자의 경계 또한 무너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과도기에 존재하는 배달 긱스 노동자는 로봇, 드론 등으로 대체되고 생산시설들이 대부분 자동화되면 인간이 노동자로 설 자리는 사실상 사라집니다. 누가 자본가인지도 모호합니다. 모든 사람이 자본가가 되면 말이죠. 너무 극단적인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결과입니다. 팬데믹 시기 많은 사람들은 이미 투자하고 있으며 주식뿐만 아니라 파생상품, 암호화폐 등 자본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노동자들의 반대편에 있다고 느꼈던 재벌 기업의 횡포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분노했지만 지금 그런 분위기는 바뀌고 있습니다. 기업가, 자본가들에 대한 이해를 확보할까요? 아니 지역공동체, 정신공동체란 말이 여전히 존재할까요?

“지금 공동체, 디지털세대 대중에게 선택받을 수 있을까”

인류세 시대 공동체는 삶을 지탱하는 정신과 철학으로 정체성을 증명하고 존재가치를 확인했다면, 탈인류세 시대에는 공동체 삶이 디지털 시대 기호로써 표현됩니다. 대중들은 공동체의 정신과 삶, 즉, 내용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 공동체를 동경하고 닮고 싶어 했습니다. 대개는 공동체의 상징적인 존재인 정신적 지도가가 있기도 하죠. 대중들은 삶에 지쳤을 때 삶의 의미를 공동체에서 찾기도 합니다. 인류세를 살고 있기에 시대정신을 대변하는 공동체에서 길을 찾고자 합니다. 탈인류세 시대 대중도 이런 경향이 완벽히 사라지지는 않을 겁니다. 다만 탈인류세 시대 주역은 1989년 이후 태어난 디지털세대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인류 역사상 한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디지털세대 대중은 시대정신에 여전히 매료되고 지지하겠지만, 큰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 해석하지 않고 그냥 좋아 하는 것입니다. 해석하지 않고 그냥 좋아하는 것이 해석 후 좋아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며 그게 시대를 바꿀 정도로 대단한 것인가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다릅니다. 디지털세대가 가치를 찾아가는 방식을 배우지 않으면 그들을 절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이해하려면 1989년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1989년 몇 개월 정도의 오차는 있지만 지형정보시스템 GIS발명, 베를린장벽과 구소련 붕괴 등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혁명적인 사건은 영국 옥스포드 대학 팀 버너스 리 교수에 의해 만들어진 월드와이드웹 www의 발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류역사에서 여러가지 큰 변화를 일으킨 위대한 발명들이 있었지만 www 만큼 획기적인 것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팀 버너스 리 교수는 www를 html언어도 만들면서 고민을 했다고 합니다. www 로직을 “semantic web/의미웹”으로 할지, “hermeneutic web/해석웹”으로 할지 고민했다는 군요. 결국 그는 semantic web, 즉, 의미웹을 택했답니다. 의미웹은 인터넷 상에서 연결된 정보를 택하는 기준이 그냥 좋아서 입니다. 어떤 사이트가 좋아 보여서 택하면 그것으로 끝난 겁니다. 좋은 게 좋은 겁니다. 더 이상 묻지 않는다는 것이죠. 반면 해석웹은 다릅니다. www 언어의 로직 자체가 해석을 한 이후에 갈 곳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즉, 왜 그곳이 좋은지 묻는 것이죠. 1989

년 www 설계 당시 팀 버너스 리 교수가 의미웹을 선택한 결과는 실로 엄청납니다. 2007년 미국의 버블경제 붕괴 이후 2008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 구글 비즈니스모델을 통해, www 의미웹 선택의 결과가 빅데이터로 이어졌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된 것이죠. 이제 우리는 모두가 빅데이터의 위력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2008년 이전에는 그 위력을 전문가들조차 잘 모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공동체를 얘기하다 왜 갑자기 빅데이터냐구요? 시간이 지날 수 록 탈인류세 시대 대중은 디지털세대로 대부분 채워질 겁니다. 공동체 정신과 가치가 여전히 살아남기 위해서는 공동체도 나름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죠. 공동체도 대중과 함께 하고, 대중을 위한 것이고, 대중이기도 한 것 아닐지요? 그들에게 메시지를 줄 수 없다면 아무리 숭고한 정신과 철학을 가진 공동체라 하더라도 존재하기 힘들 겁니다. 디지털세대의 선택은 해석적이지 않습니다. 선택된 것에 의미를 두는 경향이 뚜렷합니다. 선택하여 연결되어 인연이지 특별한 이유가 있어 연결되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언어는 태어나면서 부터 디지털이었고 그들이 매일 살고 있는 세상도 www 기반의 디지털 세상입니다. 그들은 선택해서 간 곳에 많은 다른 동료들이 모이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선택해서 가는 곳, 그곳에 의미가 있는 것이면 왜 그곳에 의미가 있는지 해석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아날로그 세대와 다른 가장 큰 차이입니다. 지금의 공동체가 과연 디지털세대 대중들에게 여전히 선택받을 수 있을까요? 즉, 디지털언어로 소통하는 그들에게서 공동체가 선택받을 수 있을까 하는 질문입니다. 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www 의미웹 인터넷 바다에 공동체도 뛰어들어야 합니다. 어떻게요? 당연히 지금과 같이 공동체 정신과 삶을 보여 주어야죠. 디지털세대 대중인 젊은 세대가 소통하는 방식으로 공동체도 소통해야 합니다. 그들은 오직 디지털언어에만 반응합니다. 디지털언어에 정신과 철학도 담고 삶의 모습도 얼마든지 담을 수 있습니다. 삶과 정신이 멋지고 가치롭다고 하여 그것을 표현한 디지털언어가 저절로 멋지고 가치롭게 되지는 않습니다. 여기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를 똥본위화페가 역할을 담당할 것이며 어쩌면 공동체 창구의 하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형성된 데이터로부터 공동체의 정신과 매력이 드러나야 합니다. 그것이 공동체 생존의 열쇠가 될 것입니다.

우공이산(愚公移山), 거대한 폭포도 작은 물방울로부터 출발했다. 공동체 생명도 지금 존재를 드러낼 때이다. 소통으로 형성해야 한다. 공동체 경제 소통으로 시작해 보자.
우공이산(愚公移山), 거대한 폭포도 작은 물방울로부터 출발했다. 공동체 생명도 지금 존재를 드러낼 때이다. 소통으로 형성해야 한다. 공동체 경제 소통으로 시작해 보자.

“데이터는 새로운 석유…탈인류세 시대 공동체 역할 모색”

공동체는 지역에 정체성과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류세든 탈인류세든 관계없이 정체성을 가지고 생존할 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충분히 동의합니다. 하지만 공동체 속에서 만들어지는 가치 축적과 소통을 통해 만들어지는 언어가 빅데이터 자체를 흔들 수만 있다면 그것은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특징인 동시에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동체 내부에서 일어나는 소통이 데이터로 변환될 수 있어야 됩니다. 구글 같은 거대기업 사업모델 논리가 만들어 내는 빅테이터가 공동체의 가치를 기반으로 하는 소통이 생산하는 데이터가 빅데이터의 거대 판을 흔들 수 있는 수준 까지 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렇게 되면 공동체 간에 연계도 가능한데, 이런 공동체 역할에 똥본위화폐가 일부 담당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데이터는 새로운 석유라고 하지 않습니까. 탈인류세 시대 공동체의 역할은 새로운 시대적 아픔에 귀 기울이고 해결책을 새롭게 모색해야 합니다. 공동체의 가치도 재해석될 것입니다.

똥본위화폐의 현재를 한번 살펴보죠. 똥본위화폐의 뜻과 철학이 좋다면 왜 활발하게 활용되지 못할까요? 똥본위화폐를 받아 주는 곳이 아직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똥본위화폐가 있어도 이를 지불하고 구입할 상품과 서비스가 아쉽게도 거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현금화를 허락하는 순간 똥본위화폐의 고유한 특징과 철학은 사라집니다. 똥본위화폐로 구매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나려면 똥본위화폐의 가치를 이해하고 자신이 가진 소중한 것들을 내어 놓는 사람들이 늘어나야 합니다. 시간이 필요 합니다. 당장 실현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보다는 천천히 그 가능성을 열어가야 합니다. 반응은 연애편지처럼 늘 지연되어 도착하니까요. 기다리는 시간도 가치로운 데이터가 될 수 있습니다. 인내를 가지고 기다리되 노력도 해야 합니다. 다음과 같은 방향을 가지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똥본위화폐 가능성은 ‘덜 사용된 재화’”

똥본위화폐 가능성은 “덜 사용된 재화” 속에서 발견됩니다. 여전히 먹을 수 있고 내일이면 유통기한이 지나 먹을 수 없는 것, 여전히 사용할 수 있지만 유행이 지나 잘 팔리지 않는 것도 덜 사용된 재화입니다. 이런 “덜 사용된 재화”를 똥본위화폐 거래에 내어 놓는 것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작은 물꼬는 큰 흐름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농촌과 도시가 맞닿아 있는 곳에서는 덜 사용된 재화가 농촌에서 도시로, 도시에서 농촌으로 제공될 수 있습니다. 덜 사용된 재화의 교환을 똥본위화폐 돈으로써 중재하는 것뿐만 아니라 교환과정에서 책정되는 가격은 데이터가 되어 이런 경제활동의 매력으로 부각될 것입니다.

똥본위화폐는 10꿀 중 3꿀을 나누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종의 느슨한 연대를 시스템을 통해 실현하고 있습니다. 사실 똥본위화폐 꿀 나눔도 일종의 거래이며 거래는 데이터로 축적됩니다. 현재 똥본위화폐 가맹자는 약 800명 쯤 되는데, 실질적인 거래는 한 달에 100회를 넘지 못하지만, 나눔의 거래는 한 달에 약 만회가 넘습니다. 충분히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데이터는 가치롭습니다. 더군다나 공동체 속 가치기준을 서로 토론하고 경제활동을 하는 소통 데이터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똥본위화폐 시스템 속에서 누가 누구와 연결되는지는 큰 의미를 갖는 데이터입니다. 연대와 연결 자체가 힘인 시대 아닙니까.

똥본위화폐는 시스템 구조 특징상 서로의 어려움, 위험 등을 함께 하는 역할을 도울 수 있습니다. 과거두레처럼 작동할 수 있습니다. 현재 농촌 공동체에서 시행하고 있는 선구매 같은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똥본위화폐 시스템 속에서 연결된 동료들은 서로의 위험을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역할로써 최소화하는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물건, 상품, 서비스, 노동 같은 것들을 자유롭게 제안할 수 있으며 그 길을 똥본위화폐가 열어줄 수 있습니다. 자본시장 파생상품과 같은 역할을 담당하면서도 자본이 아닐 수 있는 것이 똥본위화폐입니다. 파생상품을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 취지가 나쁜 것은 아니죠. “자본”이라는 글짜를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자본에 대한 탐욕이 문제겠죠. 똥본위화폐가 자본의 역할을 담당하지만 탐욕을 근원적으로 봉쇄할 수 있기에 가능한 겁니다.

“선호하는 에너지원 선택해 전기 사용한다면”

여기 다른 아이디어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한전에서 보내는 전기를 사용하면서 쓰고 있는 전기가 화력발전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태양광발전 또는 원자력발전으로 만들어 진 것인지 알지 못하며 따지지도 않습니다. 총선, 대선 때가 되면 후보들의 에너지정책 공약을 챙길 수는 있지만 특정후보에게 투표하는데 에너지 정책 선호가 결정적이 아닐 수 있습니다. 에너지 정책에 대한 여론조사도 표본조사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전체 대중들의 뜻을 반영하기 힘듭니다. 이러면 어떨까요? 가정집, 학교, 공공건물의 전기콘센트, 스위치를 지금과 같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기를 만들어내는 자원별로 구별하여 설치하는 겁니다. 사용자는 화력, 태양광, 풍력, 수력, 원자력, 바이오 자원 중 선호하는 에너지원을 선택하여 전기를 사용하는 것이죠. 물론 한전에서 보내는 전기는 구별되지 않겠지만 사용은 선택할 수 있게 하고 선택된 에너지원별 사용량을 기준으로 다른 전기료를 지불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어떤 에너지원으로 만들어진 전기가 얼마만큼 사용되었는지 실시간으로 파악이 가능합니다. 징수된 전기료도 달라지구요. 대중들의 에너지원 선호도가 실시간으로 파악되기 때문에 저절로 에너지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에너지 공동체 형성의 지름길 아닐까요? 이런 데이터가 디지털시대 정신과 공동체 철학이 합쳐진 가치를 담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똥본위화폐와 같은 디지털시대 언어역할을 하는 기호란 이런 것일 겁니다.

똥본위화폐에는 반가운 소식도 있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유니스트 캠퍼스 내 헬스케어센터 가 있는데 조만간 한의원이 들어온다고 하는군요. 한의원 진료 서비스 중 일부 비용을 학교가 부담하는데 이를 똥본위화폐로 대체하는 방안을 학교에서 제안해 왔습니다. 고맙고 또 반가운 소식입니다. 구체적인 실행까지는 여전히 어려움이 있기는 하겠지만 충분히 길을 찾을 수 있을 듯합니다. 곧 다시 소식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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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원
울산과학기술원(UNIST) 도시환경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법명은 원광(圓光).
과학예술융합 연구센터 사이언스월든 센터장을 2015년 이후 맡고 있다. 2016년, 2017년 씽크탱크 Edge 재단에 ‘똥본위화폐’, ‘중용의 비움’ 에세이를 발표했다.
통일부 (사)북한물문제연구회 창립멤버로서 북한주민이 겪고 있는 물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또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 물이 부족하고 수질이 나쁜 작은 마을에 전기없이도 안전한 물을 생산할 수 있는 ‘옹달샘’ 정수기 공급프로젝트를 2006년 이후 진행하고 있다.
저술로는 <이것은 변기가 아닙니다>(2021년, 개마고원)과 <금간 거울 산산조각 내기>(2020년, 파티)가 있다. 사이언스월든 센터 웹: ScienceWalde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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