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본위화폐] 15. 시대의 난제, 자본과의 협상
[똥본위화폐] 15. 시대의 난제, 자본과의 협상
  • 조재원 울산과학기술원 교수
  • 승인 2021.07.05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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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법을 통해 복지를 편다. 사회주의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중심 국가도 예외 아니다. 디지털 시대 자본의 복잡한 논리를 국가가 모두 통제하기 쉽지 않다. 빅데이터 자본 논리는 국가 통제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정체를 쉽게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사회 공동선을 자발적으로 행하는 새로운 개념의 자본이 탄생하면 좋겠다.



앞에서 똥을 통해 자연이라는 존재를 알게 되고, 자연생태 속 존재 미생물과의 협상을 얘기한바 있다. 이제 디지털시대, 인공지능의 시대, 자본이라는 오래된 개념을 새삼 이해하게 되었고, 새로운 시대를 위한 가치기준을 두고 자본과 어려운 협상을 앞두고 있다. 우리는 미생물과의 협상 과정과 결과를 자본과의 협상에서 밑거름 삼아야 한다.

“미래사회는 자본이 더 지배하고 자본이 가치 기준 심화”

자본과의 협상을 위해 자본이 인간사회와 겪어온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간사회의 변화 속에서 자본은 다른 형태로 인간과 늘 함께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재화는 부족하지만 일자리가 많을 때, 사회는 구성원을 통제하면서 열심히 일할 것을 설득한다. 경제가 성장기에 본격적으로 접어들 때이다. 이 시기 자본은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 재화가 풍족해지고 일자리도 여전히 많을 때, 즉, 경제성장이 한참 진행되고 있을 때, 부의 편중이 나타나게 되며 사회는 이데올로기에 빠져드는 듯하다. 자본의 존재가 드러나기 시작할 때이다. 재화는 풍족하지만 일자리가 모자라기 시작할 때, 미래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감으로 보다 많은 부를 확보하려는 경쟁이 치열하게 되며 기존 질서들에 대한 회의를 가지기 시작한다. 지금이 그런 시대이다. 자본의 이제 존재감을 마음껏 보이고 있다. 미래 사회, 재화는 풍족하나 일자리가 사라지게 된다면, 경쟁할 필요 자체가 없어지고 인간 존엄성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모든 것을 덮게 된다. 자본은 이제 모든 것을 얘기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노동을 거치지 않은 재화들로 세상이 채워지게 되면, 재화를 만드는 기여하지 않았던 인간이 재화를 가져도 되는지 의문을 가지게 된다. 즉, ‘밥값은 하고 사나’라는 질문을 대다수의 일반 대중은 하게 된다. 대신,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재화를 왜 나누어야 하는지 불만을 가질 수 있다. 풍요로운 시대에도 이렇듯 사람들은 더 많은 자본을 소유하기 위해 경쟁하게 된다. 현재 사회도 그러하지만, 다가올 미래사회에서는 자본이 더 많은 것들을 지배하고 자본 자체가 가치 기준이 되는 상황은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람들은 이따금 자본주의를 희화하지만 사회 시스템 코드는 대부분 자본에 맞춰져있다.

“자본을 국가가 감당할 수 있을까”

국가는 소득 분배의 정의를 넘어 이제 자본의 정의를 이야기해야할 듯하다. 국가의 생존전략인 셈이다. 국가는 자본의 힘을 조절하고 중재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것처럼 보인다. 국가는 법을 통해 그 역할을 한다. 필요하면 법을 만드는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지만 그렇게 규정하는 것 또한 법이다. 국가 단위의 소득을 나누는 정의, 분배의 정의는 국가들이 가진 법들로 다양하게 실현되어 왔다. 여기서 의구심 하나를 가지게 된다. 비록 국가가 지금껏 소득 분배의 정의를 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실현하려 노력해 왔지만, 미래 자본이 거의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될 때도 여전히 자본을 국가가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다.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소득이라는 것이 과거에는 주로 인간노동에서 비롯되었고, 현재는 인간노동과 자본이 함께 만들어 내고 있다면, 미래에는 대부분의 소득이 자본으로부터 기인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사회정의의 이데올로기로서의 자본주의 정도로 자본을 이해해 왔다면, 현재 그리고 다가올 미래에는 자본이라는 개념이 국가라는 개념과 충돌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만약 국가가 자본을 감당할 수 없게 된다면, 국가 대신 도대체 누가 자본의 정의를 조절할 수 있는 것일까?



사회가 연결되는 '블록'과 '체인'이라는 강력한 형태가 있다. 블록이 쌓이고 체인처럼 얽매이는 거다. 이 논리를 이용하여 만들어진 디지털 화폐가 비트코인이다. 자본의 기존 중앙집중 운영 형태 극복을 위해 만들어졌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비트코인은 더한 괴물이 되어가고 있다. 블록과 체인 가상화폐를 극복하는 새로운 화폐와 자본 탄생은 과연 불가능할까? 희망은 있다. 누군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대중 관계 속에서 형성되면 말이다.



자본이 가진 힘을 상대하기 힘든 국가는 강한 국가에 의지하고 또는 다른 국가들과 연합하여 대응하기도 한다. 국가는 국가가 승인한 은행을 통해 화폐를 발행하고 가능한 수준에서 관리함으로써 연계된 자본을 관장한다. 그런데 국가에 따라서는 화폐와 자본을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하게 되어가고 있다. 앞으로 이런 추세는 더 심해질 수 있다. 기축통화를 발행하는 미국이 있고, 미국과 함께 하면서 자본의 힘을 유지하려는 나라(예, 일본 등)가 있으며, 연합하여 대응하려는 나라들(예, 유럽연합)도 있다. 또 기축통화인 달러가 조절하고 있는 국가 간 힘의 질서, 즉, 패권을 자신에게로 돌리려 노력하는 국가도 있다. 중국이 그렇다. 국가 간의 관계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정작, 미국은 자본이라는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기축통화를 발생하고 다른 국가들과의 관계에서 패권을 가진다고 해서 미국은 자국 내 자본이라는 존재를 둘러싼 질서와 변수들을 모두 감당해 낼 능력을 가지고 있고 앞으로도 쭉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자본을 설명하고 분석하는 이론의 수만큼이나 가능한 시나리오는 다양하며 불확실성이 높고 어쩌면 정확하게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다. 그것이 자본의 실체이기도 하다. 자본의 실체는 불확실하고 그 진실은 다양할 수밖에 없다. 패권국가에 기대고 국가들이 연합하는 것만으로 자본에 대응할 수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자본을 협상테이블에 불러들일 수는 있어도 협상의 어젠더를 무엇으로 할지 오리무중이다. 협상자체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자본이라는 무소불이의 힘을 국가중심의 중앙집중형 화폐 조절이 아닌 다른 형태로 조절해 보고자한 시도가 있었다. 블록체인 기반의 비트코인 등으로 대표되는 가상화폐, 암호화폐가 그것이다. 기존 화폐와의 가장 큰 차이점은 모든 거래가 인터넷 상에 공개되지만 철저하게 무기명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중앙집중적으로 관리되는 현재의 화폐와는 달리 이용자 간에 자유롭게 비밀을 유지한 채 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다. 국가의 도움 없이도 얼마든지 거래가 가능한 것이다. 음성거래의 부작용이 생길 수 있기는 하지만, 수수료나 세금의 부담 없이 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큰 장점을 가진다. 만약 블록체인 기반의 화폐가 통용된다면, 국가나 중앙은행 차원의 통제로 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거래를 할 수 있어 국가 중심의 화폐 자본주의를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국가, 정부들은 당연히 이를 경계할 것이고 국가 차원에서 규제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앞으로는 예측하기 쉽지 않다.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는 새로운 시대의 화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있는 반면, 유행처럼 번졌다가는 결국 사라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다.

“국가중심 화폐 통제 벗어나 새 형태 자본형성 꿈꾸는 암호화폐”

국가중심의 화폐 통제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태의 자본형성을 꿈꾸고 있는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폐를 통해 성공여부를 떠나 화폐 자체에 대한 관심을 우리는 가지게 되었다. 화폐의 기능을 하려면, 경제활동을 위해 교환이 가능해야 하며, 저장이 가능하여 축적할 수 있어야 한다. 또 하나 화폐가 되기 위해서는 가치의 기준을 가져야 한다. 블록체인 기반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은 전자화폐로써 인터넷 기반으로 주고받을 수 있고 송금도 가능하다. 또한 자신의 계좌 속에 모을 수 있다. 블록체인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이 두 가지가 가능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끝으로 이해가 쉽지 않은 것이 있는데 비트코인의 생성과 가치기준을 마련하는 방식이다. 국가와 중앙은행이 판단하여 일정량의 화폐를 발행하는 것이 기존의 통화를 관리하는 방식이라면, 블록체인 암호화폐는 특정 수학문제 답을 얻기 위해 컴퓨터를 이용하여 일정시간 가동해야만 일정량의 화폐가 생긴다. 기존 화폐들의 가치기준은 통화량 조절을 통해 정해진다면 비트코인은 컴퓨터가 특정 수학문제를 풀기 위해 소요되는 비용이 가치의 기준이 된다. 비트코인이란 돈을 벌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상품과 서비스를 비트코인을 가진 사람에게 제공하고 비트코인을 받든지, 컴퓨터를 이용하여 직접 비트코인을 만들어 내야 한다. 화폐를 지불하여 비트코인을 구입할 수도 있다. 환전으로 이해하면 된다. 환율 변화로 수익을 얻기 위해 환전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일반인들은 대개 여행할 때 여행국 화폐로 바꾸기 위해 환전한다. 비트코인은 사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재 투자의 목적으로 대부분 환전되고 있다. 이렇듯 비트코인은 특정 가치기준을 갖도록 만들어졌지만 실질적인 가치는 비트코인과 현재 통용되는 화폐와의 환율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 비트코인을 받고 물건과 서비스를 구입할 수 있는 곳이 드물기도 하지만, 국가주도형 중앙집중관리를 벗어난 화폐 거래를 지향했었던 비트코인은 환율변화로 인한 가치의 변동이 워낙 심해서 거래에 이용되기 어려운 현실이다. 현재의 불안정을 극복하고 화폐로써 자리 잡을 수 있을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듯 하다.



디지털 시대 사회문제는 지금과는 다르게 해결될 것이다. 지금까지 어려웠던 소외와 갈등도 의외로 쉽게 해결 가능할지 모른다. 디지털 코드는 디지털 시대 연결망 관계 속에서 형성되고, 코드는 디지털 사회 질서를 끊임없이 만든다. 잊어서는 안되는 진실은 이 질서 형성의 주역은 다름 아닌 1989년 이후 태어난 디지털 세대라는 것이다.



“비트코인, 인공지능 자본 시대의 핵심 문제 해결할까”

만약 비트코인이 활성화된다면 인공지능 자본 시대의 핵심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가? 자본이 소득을 만들어내는 미래사회 소득분배를 해결하는 열쇠를 제공하는 것에는 비트코인도 한계를 드러낸다. 기축통화의 가치와 비트코인의 가치가 연동하여 운영된다면, 완벽하지는 않지만 국가와 중앙은행의 조절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에는 많은 전문가들이 동의하는 듯 하다. 하지만 여기서 비트코인의 태생적 한계를 잊어서는 안 된다. 비트코인은 논리적으로 명확한 가치기준을 갖고 있지만 그 가치의 기준에는 인간의 존엄성을 담을 수 있는 근거는 없다는 점이다. 그런 이유로 자본이 생산한 수익을 소수의 자본가가 왜 비자본가인 다수의 대중과 나누어야 하는지의 명확한 근거를 제공하지 못한다. 국가와 은행 주도의 중앙집중적인 자본관리는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는 비트코인도 다수의 대중에서 자본의 수익을 배분할 수 있는 근거 제공부분에서는 한계를 드러낸다. 국가도, 인간존엄성과 자연이라는 개념도, 새롭게 고안된 가상화폐도 인간노동이 배제된 인공지능 자본주의 시대, 자본의 소득을 다수의 대중에서 배분할 수 있는 논리와 근거를 제공하는데 실패하였다. 이쯤 되면 남은 해결책은 이제 없어 보인다. 이 시점, 우리는 미생물과 협상했었던 경험을 살려야 한다. 즉, 힘들고 성가신 상대를 극복하려면 오히려 제대로 만나야 한다는 사실이다. 거리를 두고 피하면서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문제를 일으킨 머리로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자본이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곳을 서성이지 말고 자본 속으로 들어가 보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를 제대로 안 이후에는 나 자신이 변해야 한다. 상대를 파악하고 그것에 대처할 수 있도록 나 자신을 변화시키면 길이 열릴 수도 있다. 자본이라는 것의 표면은 달콤해 보인다. 그래서 모두들 이곳에 모여든다. 다만 그 뿌리를 제대로 이해해야만 달콤함으로 인해 병들지 않는다. 자본의 뿌리, 그것은 가치의 기준이다. 가치의 기준이 뚜렷하고 올바르다면 자본을 마다할 이유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자본과 함께 할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다. 자본이 작동하는 코드를 알고 그 도구인 돈을 이해하면 자본에 한걸음 다가갈 수 있다. 돈이 특정 방향의 일을 하게 만드는 조건을 자본의 코드 속에 집어넣는 것이다. 교환의 수단인 돈을 이해하고 그 돈이 집행되는 코드의 조건들을 잘 설계할 수만 있다면 세상은 바뀔 수 있다. 지금 돈은 그 코드가 결정되는 조건이 대부분 자본의 축적에 맞추어져 있다. 이는 간단한 예로 이해할 수 있다. 돈으로 좀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자연스러울까? 아니면 돈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선택일까? 너무나 당연하다. 돈은 돈을 더 버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돈의 자연스러움이다. 코드가 애당초 그렇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 자본가들을 설득해서 돈이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지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한계가 있다. 돈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은, 인간이라는 코드로 보면 자연스럽지만, 자본의 코드로 바라보면 극히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자본의 자연스러움을 다른 방향으로 바꾸려면, 돈을 가지고 이루어지는 코드의 조건, 즉, 돈이 다른 옷을 입고 다르게 흘러가도록 조건을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코드 조건의 변경은 돈이 지니고 있는 가치의 기준이 바뀔 때 훨씬 용이해진다.

“돈 속 가치 기준 바꿀 수밖에 없다”

돈을 수단으로 이루어지는 코드를 좀 더 살펴보자. 상품이나 서비스의 가격을 보면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상품, 서비스가 만들어지게 된 재료, 과정, 그리고, 인간의 노동을 생각하게 된다.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구입할지 결정하고 돈을 지불한다. 구입을 결정하든지 또는 구입을 결정하지 않는 것이 이진법 코드이다. 하지만 코드만 보아서는 안 되며 코드에는 그 결정을 하게 되는 배경과 상황이 있게 마련이다. 즉, 코드는 조건과 반드시 함께 한다. 코드의 실행 수단도 필요한데 이 경우 돈이다. 구입결정, 가격, 돈, 상황 등이 모두 맞물려 경제활동이 일어나고 있다. 앞서 얘기한대로 코드 조건을 만들어 가는데 아직은 인간노동의 가치가 고려되고 있지만 다가올 미래사회에서는 인간노동의 가치를 경제코드 속에 담기 어려워 질 것이며 어쩌면 불가능해질지도 모른다. 상황을 되돌리는 것은 이제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앞서 제안되었던 것이 가치기준의 새로운 장만이다. 필요한 상품, 서비스 등은 재료가 마련되고 노동(인간노동 또는 기계/자본 노동)이 가해지기 위해 자본이 필요하다.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측과 얻어내려는 측이 생겨 가격이 형성된다. 거래과정에서 재료, 노동, 자본의 가치가 각각 역할을 하게 된다. 재료의 가치가 가격의 일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며 노동과 자본의 가치도 가격 결정에 기여한다. 여기서, 가격결정에 기여하는 재료, 노동, 자본이 아닌 다른 것이 있을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가치의 기준이다. 여러 번 강조되었지만 가치의 기준 자체가 변하지 않는다면 코드의 조건, 즉, 경제활동의 상황을 변화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가치의 기준을 인위적으로, 새롭게, 인간의 존엄성을 고려할 수 있는 코드 조건을 담아 만들어내는 것은 당연히 어렵다. 하지만 이를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영원히 돌아가기 힘든 비가역적 흐름이 자본이라는 본질 속에 존재한다.

미래 디지털 자본시대에서 경제 코드가 결정되는 상황과 조건을 인간중심으로 유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은 가치의 기준을 새롭게 마련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고 믿는다. 이는 가치가 교환되는 수단, 즉, 돈 속에서 오직 실현될 수 있다. 돈 속에 담겨 있는 가치 기준을 바꿀 수밖에 없다. 현재 기축통화인 달러 속에서 이를 실현하기는 불가능하다. 달러 속에는 오랜 자본의 관습과 강력한 국가 헤게모니가 담겨있다. 국가중심의 통화에 저항하면서 만들어져 시험되고 있는 비트코인은 그 가치기준이 공감되기 쉽지 않고 달러와 다방면에서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 새로운 돈의 탄생이 필요한 배경이다. 자본, 디지털사회, 인공지능 노동, 인간존엄성 등으로 조합될 미래사회 상황을 코드의 조건으로 만들어 이를 돈 속에 담을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가장 인간적인 사회가 디지털 기술과 새로운 디지털 자본이 만든 질서로 가능한 사회를 기대한다. 디지털 기술과 자본으로 형성된 질서가 인간 존엄을 우리 사회에 돌려준다.



“자본 속에 인간존엄성 가치기준 담아야”

똥은 사람과 자연의 경계에 위치한다. 똥이 새로운 가치기준을 담을 수 있다는 근거이며 자연스러운 인간행동의 코드 조건에 관여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람에서 나와 자연으로 가지만 똥은 모습을 바꿔 자연에서 인간으로 가기도 한다. 물이 수증기가 되고 액체와 고체가 되어 생태계를 순환하듯, 똥은 사람과 자연을 오간다. 물이 어느 곳에도 존재하듯 똥도 어디에나 있다. 사람들의 똥에서 나온 질소는 강물, 바닷물, 빗물에도 있고, 비료와 식물에도 있으며 사람과 동물의 몸을 이루는 단백질이 된다. 똥은 미생물의 도움을 받아 바이오에너지로 변화되기도 한다. 똥은 엄청난 메타포를 지닐 수 있다. 똥을 보면 사람이 떠오르며, 퇴비, 강물, 바닷물, 메탄, 지구온난화, 식물, 동물이 겹쳐져 생각나기도 한다. 즉, 똥을 보면 모든 것들을 떠 올릴 수 있다. 이는 똥이 돈이 될 수 있는 충분한 조건을 갖고 있음을 증명해준다. 똥이 갖고 있는 크고 작은 가치들을 모아 돈이라는 개념 속으로 넣을 수만 있다면 말이다. 모든 것을 떠 올리는 똥이 돈이 될 수 있다면 사람뿐만 아니라 똥이 메타포를 제공하는 모든 생명들을 코드 속에서 설계할 수 있다. 그런 상황과 조건 속에서 코드를 결정할 때마다 인간과 생명의 존엄성을 떠 올리게 되고 그 가치가 판단의 기준이 될 것이다. 예를 들면, 한 사람이 하루에 누는 똥이 만들어내는 바이오에너지의 가치를 기준으로 화폐가 만들어 진다면, 사람들은 빵을 먹고 커피 한잔을 마실 때도, 난방비를 낼 때도, 버스와 택시를 탈 때도, 통신비를 지불하고 인터넷 서비스 요금을 지불할 때도 하루에 한 사람이 누는 똥이 만드는 바이오에너지가 갖는 가치를 기준으로 가격을 생각할 것이다. 지금 우리가 커피한잔을 카페에서 마시면서 비싸다 또는 싸다라고 생각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커피를 마시면서 매번 커피한잔의 가격이 결정된 가치의 기준을 생각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그 기준을 암암리에 가지고 있다. 가치기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커피가 싸다, 비싸다 판단하는 것이다. 알바를 해서 번 돈의 시급, 즉, 한 시간 알바를 한 노동이 가져다 준 돈이 커피 값의 높고 낮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인간노동이 가치기준이 되는 예이다. 높은 연봉을 받는 사람에게는 커피한잔 가격은 싸게 느껴질 것이다. 돈 자체가 가치기준이 되는 경우이다. 카페의 주인은 커피원두가격, 전기료, 커피머신 기기비용, 종업원 인건비, 가계 임대, 다른 카페들의 커피 가격 등을 모두 고려하여 커피 가격을 결정하겠지만 커피한잔을 마시는 사람들은 자신의 노동, 돈 자체의 가치가 기준이 된다.

미래사회 카페를 한번 상상해 보자. 알바가 하던 모든 일은 이제 인공지능 로봇이 담당하고 있다. 거의 모든 공장에서도 인공지능 로봇이 노동자를 대신해서 일한다. 교육도 인터넷 기반으로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서비스된다. 대학도 예외가 아니다. 미래사회 인간들은 특별히 노동을 사회에 제공하지 않는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대부분의 물리적노동, 행정, 정신노동을 제공하기 때문에 굳이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거는 불명확할 수 있지만 어쨌든 인간들은 충분한 소득을 매달 지불받는다고 가정해 보자. 최고의 커피를 만드는 방법이 입력된 로봇이 커피를 만들어 서비스하는 카페에서 사람들이 커피 한잔을 주문할 때 커피가격이 싸다, 비싸다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무인택시를 타고 집에서 쇼핑몰까지 가고 택시비를 내면서 가격이 싼지 비싼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는가? 이 모든 것의 이전에 가격은 어떤 기준으로 누가 매길 수 있는가? 모든 것이 모호해진다. 인공지능, 로봇을 포함한 사회의 인프라는 오직 자본이기 때문이다. 노동도 자본이 담당한다. 자본이 자본을 재생산하게 된다. 앞장에서 토론했듯이, 자본가가 왜 자본을 제공하지 않은 다수의 대중에게 수익을 나누어야 하는지 근본적인 의문이 생기게 된다. 앞서 가능성을 얘기한대로, 법으로 소득배분을 정하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 있지만 법도 자연스러운 근거를 갖고 있어야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 인간노동이 사라진 세상에서 법도 명분을 잃을 수 있다. 해결은 오직 하나, 자본 속에 인간존엄성을 떠 올릴 수 있는 가치기준을 담는 것이다. 그 외는 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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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법을 통해 복지를 편다. 사회주의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중심 국가도 예외 아니다. 디지털 시대 자본의 복잡한 논리를 국가가 모두 통제하기 쉽지 않다. 빅데이터 자본 논리는 국가 통제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정체를 쉽게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사회 공동선을 자발적으로 행하는 새로운 개념의 자본이 탄생하면 좋겠다.

앞에서 똥을 통해 자연이라는 존재를 알게 되고, 자연생태 속 존재 미생물과의 협상을 얘기한바 있다. 이제 디지털시대, 인공지능의 시대, 자본이라는 오래된 개념을 새삼 이해하게 되었고, 새로운 시대를 위한 가치기준을 두고 자본과 어려운 협상을 앞두고 있다. 우리는 미생물과의 협상 과정과 결과를 자본과의 협상에서 밑거름 삼아야 한다.

“미래사회는 자본이 더 지배하고 자본이 가치 기준 심화”

자본과의 협상을 위해 자본이 인간사회와 겪어온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간사회의 변화 속에서 자본은 다른 형태로 인간과 늘 함께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재화는 부족하지만 일자리가 많을 때, 사회는 구성원을 통제하면서 열심히 일할 것을 설득한다. 경제가 성장기에 본격적으로 접어들 때이다. 이 시기 자본은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 재화가 풍족해지고 일자리도 여전히 많을 때, 즉, 경제성장이 한참 진행되고 있을 때, 부의 편중이 나타나게 되며 사회는 이데올로기에 빠져드는 듯하다. 자본의 존재가 드러나기 시작할 때이다. 재화는 풍족하지만 일자리가 모자라기 시작할 때, 미래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감으로 보다 많은 부를 확보하려는 경쟁이 치열하게 되며 기존 질서들에 대한 회의를 가지기 시작한다. 지금이 그런 시대이다. 자본의 이제 존재감을 마음껏 보이고 있다. 미래 사회, 재화는 풍족하나 일자리가 사라지게 된다면, 경쟁할 필요 자체가 없어지고 인간 존엄성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모든 것을 덮게 된다. 자본은 이제 모든 것을 얘기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노동을 거치지 않은 재화들로 세상이 채워지게 되면, 재화를 만드는 기여하지 않았던 인간이 재화를 가져도 되는지 의문을 가지게 된다. 즉, ‘밥값은 하고 사나’라는 질문을 대다수의 일반 대중은 하게 된다. 대신,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재화를 왜 나누어야 하는지 불만을 가질 수 있다. 풍요로운 시대에도 이렇듯 사람들은 더 많은 자본을 소유하기 위해 경쟁하게 된다. 현재 사회도 그러하지만, 다가올 미래사회에서는 자본이 더 많은 것들을 지배하고 자본 자체가 가치 기준이 되는 상황은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람들은 이따금 자본주의를 희화하지만 사회 시스템 코드는 대부분 자본에 맞춰져있다.

“자본을 국가가 감당할 수 있을까”

국가는 소득 분배의 정의를 넘어 이제 자본의 정의를 이야기해야할 듯하다. 국가의 생존전략인 셈이다. 국가는 자본의 힘을 조절하고 중재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것처럼 보인다. 국가는 법을 통해 그 역할을 한다. 필요하면 법을 만드는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지만 그렇게 규정하는 것 또한 법이다. 국가 단위의 소득을 나누는 정의, 분배의 정의는 국가들이 가진 법들로 다양하게 실현되어 왔다. 여기서 의구심 하나를 가지게 된다. 비록 국가가 지금껏 소득 분배의 정의를 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실현하려 노력해 왔지만, 미래 자본이 거의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될 때도 여전히 자본을 국가가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다.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소득이라는 것이 과거에는 주로 인간노동에서 비롯되었고, 현재는 인간노동과 자본이 함께 만들어 내고 있다면, 미래에는 대부분의 소득이 자본으로부터 기인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사회정의의 이데올로기로서의 자본주의 정도로 자본을 이해해 왔다면, 현재 그리고 다가올 미래에는 자본이라는 개념이 국가라는 개념과 충돌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만약 국가가 자본을 감당할 수 없게 된다면, 국가 대신 도대체 누가 자본의 정의를 조절할 수 있는 것일까?

사회가 연결되는 '블록'과 '체인'이라는 강력한 형태가 있다. 블록이 쌓이고 체인처럼 얽매이는 거다. 이 논리를 이용하여 만들어진 디지털 화폐가 비트코인이다. 자본의 기존 중앙집중 운영 형태 극복을 위해 만들어졌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비트코인은 더한 괴물이 되어가고 있다. 블록과 체인 가상화폐를 극복하는 새로운 화폐와 자본 탄생은 과연 불가능할까? 희망은 있다. 누군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대중 관계 속에서 형성되면 말이다.
사회가 연결되는 '블록'과 '체인'이라는 강력한 형태가 있다. 블록이 쌓이고 체인처럼 얽매이는 거다. 이 논리를 이용하여 만들어진 디지털 화폐가 비트코인이다. 자본의 기존 중앙집중 운영 형태 극복을 위해 만들어졌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비트코인은 더한 괴물이 되어가고 있다. 블록과 체인 가상화폐를 극복하는 새로운 화폐와 자본 탄생은 과연 불가능할까? 희망은 있다. 누군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대중 관계 속에서 형성되면 말이다.

자본이 가진 힘을 상대하기 힘든 국가는 강한 국가에 의지하고 또는 다른 국가들과 연합하여 대응하기도 한다. 국가는 국가가 승인한 은행을 통해 화폐를 발행하고 가능한 수준에서 관리함으로써 연계된 자본을 관장한다. 그런데 국가에 따라서는 화폐와 자본을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하게 되어가고 있다. 앞으로 이런 추세는 더 심해질 수 있다. 기축통화를 발행하는 미국이 있고, 미국과 함께 하면서 자본의 힘을 유지하려는 나라(예, 일본 등)가 있으며, 연합하여 대응하려는 나라들(예, 유럽연합)도 있다. 또 기축통화인 달러가 조절하고 있는 국가 간 힘의 질서, 즉, 패권을 자신에게로 돌리려 노력하는 국가도 있다. 중국이 그렇다. 국가 간의 관계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정작, 미국은 자본이라는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기축통화를 발생하고 다른 국가들과의 관계에서 패권을 가진다고 해서 미국은 자국 내 자본이라는 존재를 둘러싼 질서와 변수들을 모두 감당해 낼 능력을 가지고 있고 앞으로도 쭉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자본을 설명하고 분석하는 이론의 수만큼이나 가능한 시나리오는 다양하며 불확실성이 높고 어쩌면 정확하게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다. 그것이 자본의 실체이기도 하다. 자본의 실체는 불확실하고 그 진실은 다양할 수밖에 없다. 패권국가에 기대고 국가들이 연합하는 것만으로 자본에 대응할 수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자본을 협상테이블에 불러들일 수는 있어도 협상의 어젠더를 무엇으로 할지 오리무중이다. 협상자체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자본이라는 무소불이의 힘을 국가중심의 중앙집중형 화폐 조절이 아닌 다른 형태로 조절해 보고자한 시도가 있었다. 블록체인 기반의 비트코인 등으로 대표되는 가상화폐, 암호화폐가 그것이다. 기존 화폐와의 가장 큰 차이점은 모든 거래가 인터넷 상에 공개되지만 철저하게 무기명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중앙집중적으로 관리되는 현재의 화폐와는 달리 이용자 간에 자유롭게 비밀을 유지한 채 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다. 국가의 도움 없이도 얼마든지 거래가 가능한 것이다. 음성거래의 부작용이 생길 수 있기는 하지만, 수수료나 세금의 부담 없이 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큰 장점을 가진다. 만약 블록체인 기반의 화폐가 통용된다면, 국가나 중앙은행 차원의 통제로 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거래를 할 수 있어 국가 중심의 화폐 자본주의를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국가, 정부들은 당연히 이를 경계할 것이고 국가 차원에서 규제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앞으로는 예측하기 쉽지 않다.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는 새로운 시대의 화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있는 반면, 유행처럼 번졌다가는 결국 사라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다.

“국가중심 화폐 통제 벗어나 새 형태 자본형성 꿈꾸는 암호화폐”

국가중심의 화폐 통제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태의 자본형성을 꿈꾸고 있는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폐를 통해 성공여부를 떠나 화폐 자체에 대한 관심을 우리는 가지게 되었다. 화폐의 기능을 하려면, 경제활동을 위해 교환이 가능해야 하며, 저장이 가능하여 축적할 수 있어야 한다. 또 하나 화폐가 되기 위해서는 가치의 기준을 가져야 한다. 블록체인 기반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은 전자화폐로써 인터넷 기반으로 주고받을 수 있고 송금도 가능하다. 또한 자신의 계좌 속에 모을 수 있다. 블록체인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이 두 가지가 가능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끝으로 이해가 쉽지 않은 것이 있는데 비트코인의 생성과 가치기준을 마련하는 방식이다. 국가와 중앙은행이 판단하여 일정량의 화폐를 발행하는 것이 기존의 통화를 관리하는 방식이라면, 블록체인 암호화폐는 특정 수학문제 답을 얻기 위해 컴퓨터를 이용하여 일정시간 가동해야만 일정량의 화폐가 생긴다. 기존 화폐들의 가치기준은 통화량 조절을 통해 정해진다면 비트코인은 컴퓨터가 특정 수학문제를 풀기 위해 소요되는 비용이 가치의 기준이 된다. 비트코인이란 돈을 벌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상품과 서비스를 비트코인을 가진 사람에게 제공하고 비트코인을 받든지, 컴퓨터를 이용하여 직접 비트코인을 만들어 내야 한다. 화폐를 지불하여 비트코인을 구입할 수도 있다. 환전으로 이해하면 된다. 환율 변화로 수익을 얻기 위해 환전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일반인들은 대개 여행할 때 여행국 화폐로 바꾸기 위해 환전한다. 비트코인은 사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재 투자의 목적으로 대부분 환전되고 있다. 이렇듯 비트코인은 특정 가치기준을 갖도록 만들어졌지만 실질적인 가치는 비트코인과 현재 통용되는 화폐와의 환율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 비트코인을 받고 물건과 서비스를 구입할 수 있는 곳이 드물기도 하지만, 국가주도형 중앙집중관리를 벗어난 화폐 거래를 지향했었던 비트코인은 환율변화로 인한 가치의 변동이 워낙 심해서 거래에 이용되기 어려운 현실이다. 현재의 불안정을 극복하고 화폐로써 자리 잡을 수 있을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듯 하다.

디지털 시대 사회문제는 지금과는 다르게 해결될 것이다. 지금까지 어려웠던 소외와 갈등도 의외로 쉽게 해결 가능할지 모른다. 디지털 코드는 디지털 시대 연결망 관계 속에서 형성되고, 코드는 디지털 사회 질서를 끊임없이 만든다. 잊어서는 안되는 진실은 이 질서 형성의 주역은 다름 아닌 1989년 이후 태어난 디지털 세대라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 사회문제는 지금과는 다르게 해결될 것이다. 지금까지 어려웠던 소외와 갈등도 의외로 쉽게 해결 가능할지 모른다. 디지털 코드는 디지털 시대 연결망 관계 속에서 형성되고, 코드는 디지털 사회 질서를 끊임없이 만든다. 잊어서는 안되는 진실은 이 질서 형성의 주역은 다름 아닌 1989년 이후 태어난 디지털 세대라는 것이다.

“비트코인, 인공지능 자본 시대의 핵심 문제 해결할까”

만약 비트코인이 활성화된다면 인공지능 자본 시대의 핵심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가? 자본이 소득을 만들어내는 미래사회 소득분배를 해결하는 열쇠를 제공하는 것에는 비트코인도 한계를 드러낸다. 기축통화의 가치와 비트코인의 가치가 연동하여 운영된다면, 완벽하지는 않지만 국가와 중앙은행의 조절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에는 많은 전문가들이 동의하는 듯 하다. 하지만 여기서 비트코인의 태생적 한계를 잊어서는 안 된다. 비트코인은 논리적으로 명확한 가치기준을 갖고 있지만 그 가치의 기준에는 인간의 존엄성을 담을 수 있는 근거는 없다는 점이다. 그런 이유로 자본이 생산한 수익을 소수의 자본가가 왜 비자본가인 다수의 대중과 나누어야 하는지의 명확한 근거를 제공하지 못한다. 국가와 은행 주도의 중앙집중적인 자본관리는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는 비트코인도 다수의 대중에서 자본의 수익을 배분할 수 있는 근거 제공부분에서는 한계를 드러낸다. 국가도, 인간존엄성과 자연이라는 개념도, 새롭게 고안된 가상화폐도 인간노동이 배제된 인공지능 자본주의 시대, 자본의 소득을 다수의 대중에서 배분할 수 있는 논리와 근거를 제공하는데 실패하였다. 이쯤 되면 남은 해결책은 이제 없어 보인다. 이 시점, 우리는 미생물과 협상했었던 경험을 살려야 한다. 즉, 힘들고 성가신 상대를 극복하려면 오히려 제대로 만나야 한다는 사실이다. 거리를 두고 피하면서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문제를 일으킨 머리로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자본이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곳을 서성이지 말고 자본 속으로 들어가 보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를 제대로 안 이후에는 나 자신이 변해야 한다. 상대를 파악하고 그것에 대처할 수 있도록 나 자신을 변화시키면 길이 열릴 수도 있다. 자본이라는 것의 표면은 달콤해 보인다. 그래서 모두들 이곳에 모여든다. 다만 그 뿌리를 제대로 이해해야만 달콤함으로 인해 병들지 않는다. 자본의 뿌리, 그것은 가치의 기준이다. 가치의 기준이 뚜렷하고 올바르다면 자본을 마다할 이유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자본과 함께 할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다. 자본이 작동하는 코드를 알고 그 도구인 돈을 이해하면 자본에 한걸음 다가갈 수 있다. 돈이 특정 방향의 일을 하게 만드는 조건을 자본의 코드 속에 집어넣는 것이다. 교환의 수단인 돈을 이해하고 그 돈이 집행되는 코드의 조건들을 잘 설계할 수만 있다면 세상은 바뀔 수 있다. 지금 돈은 그 코드가 결정되는 조건이 대부분 자본의 축적에 맞추어져 있다. 이는 간단한 예로 이해할 수 있다. 돈으로 좀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자연스러울까? 아니면 돈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선택일까? 너무나 당연하다. 돈은 돈을 더 버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돈의 자연스러움이다. 코드가 애당초 그렇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 자본가들을 설득해서 돈이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지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한계가 있다. 돈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은, 인간이라는 코드로 보면 자연스럽지만, 자본의 코드로 바라보면 극히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자본의 자연스러움을 다른 방향으로 바꾸려면, 돈을 가지고 이루어지는 코드의 조건, 즉, 돈이 다른 옷을 입고 다르게 흘러가도록 조건을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코드 조건의 변경은 돈이 지니고 있는 가치의 기준이 바뀔 때 훨씬 용이해진다.

“돈 속 가치 기준 바꿀 수밖에 없다”

돈을 수단으로 이루어지는 코드를 좀 더 살펴보자. 상품이나 서비스의 가격을 보면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상품, 서비스가 만들어지게 된 재료, 과정, 그리고, 인간의 노동을 생각하게 된다.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구입할지 결정하고 돈을 지불한다. 구입을 결정하든지 또는 구입을 결정하지 않는 것이 이진법 코드이다. 하지만 코드만 보아서는 안 되며 코드에는 그 결정을 하게 되는 배경과 상황이 있게 마련이다. 즉, 코드는 조건과 반드시 함께 한다. 코드의 실행 수단도 필요한데 이 경우 돈이다. 구입결정, 가격, 돈, 상황 등이 모두 맞물려 경제활동이 일어나고 있다. 앞서 얘기한대로 코드 조건을 만들어 가는데 아직은 인간노동의 가치가 고려되고 있지만 다가올 미래사회에서는 인간노동의 가치를 경제코드 속에 담기 어려워 질 것이며 어쩌면 불가능해질지도 모른다. 상황을 되돌리는 것은 이제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앞서 제안되었던 것이 가치기준의 새로운 장만이다. 필요한 상품, 서비스 등은 재료가 마련되고 노동(인간노동 또는 기계/자본 노동)이 가해지기 위해 자본이 필요하다.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측과 얻어내려는 측이 생겨 가격이 형성된다. 거래과정에서 재료, 노동, 자본의 가치가 각각 역할을 하게 된다. 재료의 가치가 가격의 일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며 노동과 자본의 가치도 가격 결정에 기여한다. 여기서, 가격결정에 기여하는 재료, 노동, 자본이 아닌 다른 것이 있을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가치의 기준이다. 여러 번 강조되었지만 가치의 기준 자체가 변하지 않는다면 코드의 조건, 즉, 경제활동의 상황을 변화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가치의 기준을 인위적으로, 새롭게, 인간의 존엄성을 고려할 수 있는 코드 조건을 담아 만들어내는 것은 당연히 어렵다. 하지만 이를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영원히 돌아가기 힘든 비가역적 흐름이 자본이라는 본질 속에 존재한다.

미래 디지털 자본시대에서 경제 코드가 결정되는 상황과 조건을 인간중심으로 유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은 가치의 기준을 새롭게 마련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고 믿는다. 이는 가치가 교환되는 수단, 즉, 돈 속에서 오직 실현될 수 있다. 돈 속에 담겨 있는 가치 기준을 바꿀 수밖에 없다. 현재 기축통화인 달러 속에서 이를 실현하기는 불가능하다. 달러 속에는 오랜 자본의 관습과 강력한 국가 헤게모니가 담겨있다. 국가중심의 통화에 저항하면서 만들어져 시험되고 있는 비트코인은 그 가치기준이 공감되기 쉽지 않고 달러와 다방면에서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 새로운 돈의 탄생이 필요한 배경이다. 자본, 디지털사회, 인공지능 노동, 인간존엄성 등으로 조합될 미래사회 상황을 코드의 조건으로 만들어 이를 돈 속에 담을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가장 인간적인 사회가 디지털 기술과 새로운 디지털 자본이 만든 질서로 가능한 사회를 기대한다. 디지털 기술과 자본으로 형성된 질서가 인간 존엄을 우리 사회에 돌려준다.
가장 인간적인 사회가 디지털 기술과 새로운 디지털 자본이 만든 질서로 가능한 사회를 기대한다. 디지털 기술과 자본으로 형성된 질서가 인간 존엄을 우리 사회에 돌려준다.

“자본 속에 인간존엄성 가치기준 담아야”

똥은 사람과 자연의 경계에 위치한다. 똥이 새로운 가치기준을 담을 수 있다는 근거이며 자연스러운 인간행동의 코드 조건에 관여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람에서 나와 자연으로 가지만 똥은 모습을 바꿔 자연에서 인간으로 가기도 한다. 물이 수증기가 되고 액체와 고체가 되어 생태계를 순환하듯, 똥은 사람과 자연을 오간다. 물이 어느 곳에도 존재하듯 똥도 어디에나 있다. 사람들의 똥에서 나온 질소는 강물, 바닷물, 빗물에도 있고, 비료와 식물에도 있으며 사람과 동물의 몸을 이루는 단백질이 된다. 똥은 미생물의 도움을 받아 바이오에너지로 변화되기도 한다. 똥은 엄청난 메타포를 지닐 수 있다. 똥을 보면 사람이 떠오르며, 퇴비, 강물, 바닷물, 메탄, 지구온난화, 식물, 동물이 겹쳐져 생각나기도 한다. 즉, 똥을 보면 모든 것들을 떠 올릴 수 있다. 이는 똥이 돈이 될 수 있는 충분한 조건을 갖고 있음을 증명해준다. 똥이 갖고 있는 크고 작은 가치들을 모아 돈이라는 개념 속으로 넣을 수만 있다면 말이다. 모든 것을 떠 올리는 똥이 돈이 될 수 있다면 사람뿐만 아니라 똥이 메타포를 제공하는 모든 생명들을 코드 속에서 설계할 수 있다. 그런 상황과 조건 속에서 코드를 결정할 때마다 인간과 생명의 존엄성을 떠 올리게 되고 그 가치가 판단의 기준이 될 것이다. 예를 들면, 한 사람이 하루에 누는 똥이 만들어내는 바이오에너지의 가치를 기준으로 화폐가 만들어 진다면, 사람들은 빵을 먹고 커피 한잔을 마실 때도, 난방비를 낼 때도, 버스와 택시를 탈 때도, 통신비를 지불하고 인터넷 서비스 요금을 지불할 때도 하루에 한 사람이 누는 똥이 만드는 바이오에너지가 갖는 가치를 기준으로 가격을 생각할 것이다. 지금 우리가 커피한잔을 카페에서 마시면서 비싸다 또는 싸다라고 생각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커피를 마시면서 매번 커피한잔의 가격이 결정된 가치의 기준을 생각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그 기준을 암암리에 가지고 있다. 가치기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커피가 싸다, 비싸다 판단하는 것이다. 알바를 해서 번 돈의 시급, 즉, 한 시간 알바를 한 노동이 가져다 준 돈이 커피 값의 높고 낮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인간노동이 가치기준이 되는 예이다. 높은 연봉을 받는 사람에게는 커피한잔 가격은 싸게 느껴질 것이다. 돈 자체가 가치기준이 되는 경우이다. 카페의 주인은 커피원두가격, 전기료, 커피머신 기기비용, 종업원 인건비, 가계 임대, 다른 카페들의 커피 가격 등을 모두 고려하여 커피 가격을 결정하겠지만 커피한잔을 마시는 사람들은 자신의 노동, 돈 자체의 가치가 기준이 된다.

미래사회 카페를 한번 상상해 보자. 알바가 하던 모든 일은 이제 인공지능 로봇이 담당하고 있다. 거의 모든 공장에서도 인공지능 로봇이 노동자를 대신해서 일한다. 교육도 인터넷 기반으로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서비스된다. 대학도 예외가 아니다. 미래사회 인간들은 특별히 노동을 사회에 제공하지 않는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대부분의 물리적노동, 행정, 정신노동을 제공하기 때문에 굳이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거는 불명확할 수 있지만 어쨌든 인간들은 충분한 소득을 매달 지불받는다고 가정해 보자. 최고의 커피를 만드는 방법이 입력된 로봇이 커피를 만들어 서비스하는 카페에서 사람들이 커피 한잔을 주문할 때 커피가격이 싸다, 비싸다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무인택시를 타고 집에서 쇼핑몰까지 가고 택시비를 내면서 가격이 싼지 비싼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는가? 이 모든 것의 이전에 가격은 어떤 기준으로 누가 매길 수 있는가? 모든 것이 모호해진다. 인공지능, 로봇을 포함한 사회의 인프라는 오직 자본이기 때문이다. 노동도 자본이 담당한다. 자본이 자본을 재생산하게 된다. 앞장에서 토론했듯이, 자본가가 왜 자본을 제공하지 않은 다수의 대중에게 수익을 나누어야 하는지 근본적인 의문이 생기게 된다. 앞서 가능성을 얘기한대로, 법으로 소득배분을 정하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 있지만 법도 자연스러운 근거를 갖고 있어야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 인간노동이 사라진 세상에서 법도 명분을 잃을 수 있다. 해결은 오직 하나, 자본 속에 인간존엄성을 떠 올릴 수 있는 가치기준을 담는 것이다. 그 외는 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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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원
울산과학기술원(UNIST) 도시환경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법명은 원광(圓光).
과학예술융합 연구센터 사이언스월든 센터장을 2015년 이후 맡고 있다. 2016년, 2017년 씽크탱크 Edge 재단에 ‘똥본위화폐’, ‘중용의 비움’ 에세이를 발표했다.
통일부 (사)북한물문제연구회 창립멤버로서 북한주민이 겪고 있는 물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또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 물이 부족하고 수질이 나쁜 작은 마을에 전기없이도 안전한 물을 생산할 수 있는 ‘옹달샘’ 정수기 공급프로젝트를 2006년 이후 진행하고 있다.
저술로는 <이것은 변기가 아닙니다>(2021년, 개마고원)과 <금간 거울 산산조각 내기>(2020년, 파티)가 있다. 사이언스월든 센터 웹: ScienceWalde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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