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본위화폐] 16. 왜 꼭 똥이어야 하는가
[똥본위화폐] 16. 왜 꼭 똥이어야 하는가
  • 조재원 울산과학기술원 교수
  • 승인 2021.07.12 12: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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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이 만드는 가치는 가장 낮은 곳에서
다른 모든 가치들의 기준이 될 수 있다”

디지털시대, 인공지능 시대는 자본의 시대이다. 두뇌 자본주의라고도 한다. 자본이 인공지능과 로봇을 이용하여 거의 모든 것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다. 인류는 의식주를 제공받고 재미있는 놀이와 게임, 건강을 위한 운동, 경쟁과 모험을 위한 스포츠, 그리고 여행을 하면서 살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것이 풍요로운 시대, 상품과 서비스를 사람들이 쓰지 않으면 풍요로움을 생산하는 사회를 유지할 수 없다. 과거 생산할 사람이 필요했다면 미래는 소비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여전히 어떻게 이런 세상이 오겠는가, 아무리 인공지능이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인간의 역할이 있을 것이라고 믿을 수 있다. 물론 그럴 수 있다. 다만 바둑에서와 같이 다른 모든 분야에서 인공지능 세상이 갑자기 오는 상황을 대비해야할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시대, 자본이 만든 풍요의 시대가 와서 인류는 오직 소비만 하는, 아니 해야만 할 때가 온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소비하는 인류, 소비해야만 하는 인류에게도 차별은 있을 것이다. 자본이 만든 세상에 차별이 없을 리 만무하다. 그리고 인류는 몇 가지 질문과 마주치게 될 것이다. 자본의 시대 풍요의 혜택을 인간이 받아도 되는가? 받아도 된다면, 어떻게 공평하게 나눌 수 있을까?

자본의 시대 풍요의 혜택을 인간이 받아도 되는가? 이 질문을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 질문을 하는 사람은 착한사람이라고 보장해 주고 싶다. 질문하지 않아도 되고 당연시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간다. 하지만 풍요의 시대, 그 혜택을 받아도 되는지 질문하는 사람은 그 질문에 스스로 답하지 못하면 무너질 수 있다. 그만큼 착한 것이다.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 자본이 제공하는 풍요라도 받아도 된다고,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답을 주고 싶다. 영화 한편을 극장에서 봤다고 예를 들어 보자. 사람에 따라 다양한 생각들을 하게 된다. 영화 티켓값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재밌었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아깝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생각한다. 특정 영화를 선택해서 봄으로써 그 영화를 만든 감독이 다음 영화를 만들 수 있도록 하는데 작은 도움을 주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영화티켓을 산 돈이 자신이 번 돈이든 용돈이든 또는 생활비든 관계없다. 어쨌든 그 영화를 선택했고 선택해서 영화티켓을 통해 돈을 지불했고 그 돈은 그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다음 영화를 만드는데 큰 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영화가 재밌으면 좋겠지만 그 영화를 선택한 사람에게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다소 실망을 했다고 하더라도 상관없다. 분명 다음에는 훨씬 멋진 영화를 만들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그렇게 선택해 주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비록 자본이 가져다준 재화이지만 만약 이렇게 생각한다면 재화를 나눌 충분한 이유가 생기게 된다. 자본이 순환하여 재투자되는데 대중의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중이 없다면 자본은 순환의 고리가 금방 끊어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이 제공하는 재화를 대중은 비록 자본을 소유한 자본가가 아니라 하더라도 가져도 되는 것이다. 착한 사람은 미안함을 느끼면 허무에 빠지게 되고, 허무에 빠지면 빠져나오기 힘들다. 정리하면 자본이 대부분의 재화를 생산하는 풍요의 시대, 노동에서 배제된 인간들이 재화를 가질 수 있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대답은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인간의 삶은 이어져야 하고 그 삶 속에 이미 충분한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자본이 생산하는 가치의 기준에 인간의 존재가 들어가 있다면 금상첨화이다. 인간의 존재가 가치의 기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사물이어야 하고 또 나름의 가치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살아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똥을 눈다. 그리고, 똥은 자본의 시대에도 여전히 에너지와 퇴비를 생산하는 신뢰할 수 있는 재료가 된다. 로봇은 인공지능으로 노동을 할 수는 있지만 똥은 누지 못한다. 이런 연유로, 사람의 똥을 매개로 하여 똥이 만들어 내는 모든 가치들을 모아 가치기준을 정할 수 있다. 사람이 누는 똥이 만드는 가치는 가장 낮은 곳에서 다른 모든 가치들의 기준이 되어 줄 수 있다.



재화의 배분 윤리와 정의를 지금껏 노동의 가치에서 찾았다면, 이제 데이터가 자본인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기준 필요하다. 인간 상호 신뢰에 기반한 새로운 가치 질서를 똥본위화폐가 제공한다.



“똥이 공평하고 공정한 재화 분배의 실마리 제공”

공평하게 나눌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인공지능 자본의 시대, 비록 사람의 똥을 매개로 가치기준을 만드는 데는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가치기준이 사람에게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본이 생산하는 수많은 재화를 자본가가 아닌 다수의 대중에게 공평하게 분배해야하는 것은 필요하고도 충분한 이유를 제공하지는 못한다. 생존해야한다는 것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지만, 재화의 생산에 합당한 기여를 하지 않은 사람에게 많은 재화가 돌아가는 것이 과연 정의로운가의 질문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합리적인 근거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자본가가 아닌 대중들은 생존을 위한 재화를 갖는 데 만족해야하고 공평한 재화를 분배받기는 힘들 것이다. 많은 이들이 국가의 역할을 강조할 것이다. 국가가 행하는 법을 통한 정의실현에 큰 기대를 걸이다. 하지만 국가에 큰 기대를 하기는 쉽지 않은데, 지금 현재의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국가는 어쩔 수 없이 자본의 영향을 받으며 자본은 국가의 힘을 이용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많은 국가들이 소득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데 자본의 시대 국가가 그 역할을 성공적으로 하리라 기대하기 어렵다. 국가가 꼭 아니어도 되는 이유가 있다. 디지털 시대에는 모든 것이 연결될 수 있고 연결자체가 힘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중앙집권적 국가가 자본 수익을 공정하고 공평하게 비자본자인 대중에게 나누는 것에 여전히 최적임자라는 논리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자본자체가 자본이 만든 재화의 공평한 분배에 역할을 할 것이라는 자본주의적 믿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믿음에는 조건이 필요한데, 이미 얘기 나누었듯이 자본의 가치 근저에 인간의 노동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미래 인공지능 자본의 시대에는 인간노동은 대부분 사라진다. 국가와 자본으로는 쉽지 않을 것이다. 국가와 자본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극복하고 공평한 소득의 분배를 이루기 위해서는 가치의 기준을 새롭게 만드는 방법이 유일하며 그러려면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가치 또한 만들 수 있는 객관적 사물이 필요하게 된다. 그것은 역시 사람의 똥을 매개로 한 수단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사람의 똥의 가치를 담을 수 있는 돈이 그것이다. 돈은 수단에 불과하지만 돈을 통하지 않으면 코드의 결정이 힘들다. 산다 또는 사지 않는다. 기부한다 또는 기부하지 않는다. 이런 행동의 결정이 곧 코드이다. 코드의 실행은 현실 속에서 그에 해당하는 결과를 만들 수 있다. 돈은 인간의 행동과 현실을 바꿀 가장 기본적인 수단이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디지털 시대의 초연결사회에서는 돈 자체가 새로운 인간관계와 관계로 인한 가치들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똥이 공평하고도 공정한 재화 분배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조건은 있다. 새로운 돈의 코드 형성을 위해, 첫 번째, 새로운 돈은 지금의 돈과 교환되어서는 안 된다. 현재 자본의 질서를 벗어나기 위함이다. 두 번째, 디지털 시대에 걸 맞는 인간관계를 형성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무한한 사회적 가치가 생기기 때문이다.



똥본위화폐 플랫폼 코드: 자본으로 생긴 문제를 자본으로 푼다? 기후재앙을 탄소세 등 현재 화폐 기준 정책과 협약으로 해결하기 결코 쉽지 않다. 자국 이익과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사회 정부 간 협의 통한 해결 보단 새로운 질서 코드를 제공하는 디지털 가치에 기대해 본다.



“똥이 아니면 이일을 해 낼 수 없다.”

자본과 인공지능 노동의 시대, 인간의 노동을 제공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자본 또한 소유하지 못한 대다수 대중은 자본의 풍요를 누릴 수 있고, 자본이 만든 재화 또한 공평하게 분배되어야 할 근거가 만들어졌다고 가정하자.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 노동의 가치가 배제된 인간존엄성 그리고 분배의 정의가 가능해 졌을 때, 인류에게 어떤 변화가 올 것인가? 이것은 인류의 생존과 자본의 정의와는 다른 문제이다. 이를 인류는 자신에게 진지하게 묻고 답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혼란과 새로운 질서가 닥쳐올 것이기 때문이다. 혼란이 꼭 나쁜 것만도 질서가 좋은 것만도 아니다. 혼란 없이 질서의 가치가 드러나기 힘들기도 하다. 큰 혼란 속에서 질서를 찾아가면서 인류는 또 한 번 큰 도전을 시도해야 하고 근본적인 변화를 겪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인류는 진보하기 위해 한걸음 내딛을 것이다. 본격적인 자본의 시대, 자본이 가져다주는 풍요를 누리는 단순한 차원이 아닌, 가치의 기준을 바꾸는 변화의 대가를 자본은 반드시 요구할 것이다. 자본은 인간에게 선택을 강요할 것이다. 자본이 가져다 준 풍요의 시대, 인류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 것이다. 자본의 풍요를 밑거름 삼아 자본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려 노력할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자본을 향한 욕망을 이어갈 수도 있다. 선택의 기로인 것이다. 기후위기, 지구온난화의 예를 들어 이를 이해해 본다. 자본이 가져다 준 풍요의 시대, 경제성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될 것이므로 우리는 화석연료 사용에 더 이상 목매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자본을 향한 욕망은 자본을 벌수만 있다면 지금보다 더 화석연료에 집착하게 될지도 모른다. 지구온난화 뿐만 아니라 여러 다른 이슈들에서도 유사한 선택이 인류 앞에 놓일 것이다. 가치의 기준 세우기, 새로운 가치기준을 담는 돈의 탄생, 풍요의 시대 새로운 정의를 기반으로 한 다양하고 무수한 코드의 조건을 올바르게 프로그래밍 하는 것이 자본과 풍요의 시대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화석연료를 선택하는 코드가 어떤 현실로 연결되는 것이 디지털 시대 두뇌자본주의에 기반하여 꼼꼼하게 설계되어야 한다. 그래야 올바른 선택이 정의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즉, 무엇을 결정하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선택하기 이전에 결정과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게 될지 연관된 모든 것을 프로그래밍 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된다. 모든 프로그램에 두뇌자본주의의 핵심 수단인 돈, 그것도 인간본연의 가치가 담긴 돈이 위치하고 있다. 즉, 똥이 아니면 이일을 해 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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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이 만드는 가치는 가장 낮은 곳에서
다른 모든 가치들의 기준이 될 수 있다”

디지털시대, 인공지능 시대는 자본의 시대이다. 두뇌 자본주의라고도 한다. 자본이 인공지능과 로봇을 이용하여 거의 모든 것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다. 인류는 의식주를 제공받고 재미있는 놀이와 게임, 건강을 위한 운동, 경쟁과 모험을 위한 스포츠, 그리고 여행을 하면서 살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것이 풍요로운 시대, 상품과 서비스를 사람들이 쓰지 않으면 풍요로움을 생산하는 사회를 유지할 수 없다. 과거 생산할 사람이 필요했다면 미래는 소비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여전히 어떻게 이런 세상이 오겠는가, 아무리 인공지능이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인간의 역할이 있을 것이라고 믿을 수 있다. 물론 그럴 수 있다. 다만 바둑에서와 같이 다른 모든 분야에서 인공지능 세상이 갑자기 오는 상황을 대비해야할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시대, 자본이 만든 풍요의 시대가 와서 인류는 오직 소비만 하는, 아니 해야만 할 때가 온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소비하는 인류, 소비해야만 하는 인류에게도 차별은 있을 것이다. 자본이 만든 세상에 차별이 없을 리 만무하다. 그리고 인류는 몇 가지 질문과 마주치게 될 것이다. 자본의 시대 풍요의 혜택을 인간이 받아도 되는가? 받아도 된다면, 어떻게 공평하게 나눌 수 있을까?

자본의 시대 풍요의 혜택을 인간이 받아도 되는가? 이 질문을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 질문을 하는 사람은 착한사람이라고 보장해 주고 싶다. 질문하지 않아도 되고 당연시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간다. 하지만 풍요의 시대, 그 혜택을 받아도 되는지 질문하는 사람은 그 질문에 스스로 답하지 못하면 무너질 수 있다. 그만큼 착한 것이다.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 자본이 제공하는 풍요라도 받아도 된다고,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답을 주고 싶다. 영화 한편을 극장에서 봤다고 예를 들어 보자. 사람에 따라 다양한 생각들을 하게 된다. 영화 티켓값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재밌었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아깝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생각한다. 특정 영화를 선택해서 봄으로써 그 영화를 만든 감독이 다음 영화를 만들 수 있도록 하는데 작은 도움을 주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영화티켓을 산 돈이 자신이 번 돈이든 용돈이든 또는 생활비든 관계없다. 어쨌든 그 영화를 선택했고 선택해서 영화티켓을 통해 돈을 지불했고 그 돈은 그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다음 영화를 만드는데 큰 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영화가 재밌으면 좋겠지만 그 영화를 선택한 사람에게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다소 실망을 했다고 하더라도 상관없다. 분명 다음에는 훨씬 멋진 영화를 만들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그렇게 선택해 주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비록 자본이 가져다준 재화이지만 만약 이렇게 생각한다면 재화를 나눌 충분한 이유가 생기게 된다. 자본이 순환하여 재투자되는데 대중의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중이 없다면 자본은 순환의 고리가 금방 끊어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이 제공하는 재화를 대중은 비록 자본을 소유한 자본가가 아니라 하더라도 가져도 되는 것이다. 착한 사람은 미안함을 느끼면 허무에 빠지게 되고, 허무에 빠지면 빠져나오기 힘들다. 정리하면 자본이 대부분의 재화를 생산하는 풍요의 시대, 노동에서 배제된 인간들이 재화를 가질 수 있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대답은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인간의 삶은 이어져야 하고 그 삶 속에 이미 충분한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자본이 생산하는 가치의 기준에 인간의 존재가 들어가 있다면 금상첨화이다. 인간의 존재가 가치의 기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사물이어야 하고 또 나름의 가치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살아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똥을 눈다. 그리고, 똥은 자본의 시대에도 여전히 에너지와 퇴비를 생산하는 신뢰할 수 있는 재료가 된다. 로봇은 인공지능으로 노동을 할 수는 있지만 똥은 누지 못한다. 이런 연유로, 사람의 똥을 매개로 하여 똥이 만들어 내는 모든 가치들을 모아 가치기준을 정할 수 있다. 사람이 누는 똥이 만드는 가치는 가장 낮은 곳에서 다른 모든 가치들의 기준이 되어 줄 수 있다.

재화의 배분 윤리와 정의를 지금껏 노동의 가치에서 찾았다면, 이제 데이터가 자본인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기준 필요하다. 인간 상호 신뢰에 기반한 새로운 가치 질서를 똥본위화폐가 제공한다.
재화의 배분 윤리와 정의를 지금껏 노동의 가치에서 찾았다면, 이제 데이터가 자본인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기준 필요하다. 인간 상호 신뢰에 기반한 새로운 가치 질서를 똥본위화폐가 제공한다.

“똥이 공평하고 공정한 재화 분배의 실마리 제공”

공평하게 나눌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인공지능 자본의 시대, 비록 사람의 똥을 매개로 가치기준을 만드는 데는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가치기준이 사람에게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본이 생산하는 수많은 재화를 자본가가 아닌 다수의 대중에게 공평하게 분배해야하는 것은 필요하고도 충분한 이유를 제공하지는 못한다. 생존해야한다는 것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지만, 재화의 생산에 합당한 기여를 하지 않은 사람에게 많은 재화가 돌아가는 것이 과연 정의로운가의 질문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합리적인 근거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자본가가 아닌 대중들은 생존을 위한 재화를 갖는 데 만족해야하고 공평한 재화를 분배받기는 힘들 것이다. 많은 이들이 국가의 역할을 강조할 것이다. 국가가 행하는 법을 통한 정의실현에 큰 기대를 걸이다. 하지만 국가에 큰 기대를 하기는 쉽지 않은데, 지금 현재의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국가는 어쩔 수 없이 자본의 영향을 받으며 자본은 국가의 힘을 이용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많은 국가들이 소득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데 자본의 시대 국가가 그 역할을 성공적으로 하리라 기대하기 어렵다. 국가가 꼭 아니어도 되는 이유가 있다. 디지털 시대에는 모든 것이 연결될 수 있고 연결자체가 힘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중앙집권적 국가가 자본 수익을 공정하고 공평하게 비자본자인 대중에게 나누는 것에 여전히 최적임자라는 논리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자본자체가 자본이 만든 재화의 공평한 분배에 역할을 할 것이라는 자본주의적 믿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믿음에는 조건이 필요한데, 이미 얘기 나누었듯이 자본의 가치 근저에 인간의 노동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미래 인공지능 자본의 시대에는 인간노동은 대부분 사라진다. 국가와 자본으로는 쉽지 않을 것이다. 국가와 자본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극복하고 공평한 소득의 분배를 이루기 위해서는 가치의 기준을 새롭게 만드는 방법이 유일하며 그러려면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가치 또한 만들 수 있는 객관적 사물이 필요하게 된다. 그것은 역시 사람의 똥을 매개로 한 수단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사람의 똥의 가치를 담을 수 있는 돈이 그것이다. 돈은 수단에 불과하지만 돈을 통하지 않으면 코드의 결정이 힘들다. 산다 또는 사지 않는다. 기부한다 또는 기부하지 않는다. 이런 행동의 결정이 곧 코드이다. 코드의 실행은 현실 속에서 그에 해당하는 결과를 만들 수 있다. 돈은 인간의 행동과 현실을 바꿀 가장 기본적인 수단이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디지털 시대의 초연결사회에서는 돈 자체가 새로운 인간관계와 관계로 인한 가치들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똥이 공평하고도 공정한 재화 분배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조건은 있다. 새로운 돈의 코드 형성을 위해, 첫 번째, 새로운 돈은 지금의 돈과 교환되어서는 안 된다. 현재 자본의 질서를 벗어나기 위함이다. 두 번째, 디지털 시대에 걸 맞는 인간관계를 형성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무한한 사회적 가치가 생기기 때문이다.

똥본위화폐 플랫폼 코드: 자본으로 생긴 문제를 자본으로 푼다? 기후재앙을 탄소세 등 현재 화폐 기준 정책과 협약으로 해결하기 결코 쉽지 않다. 자국 이익과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사회 정부 간 협의 통한 해결 보단 새로운 질서 코드를 제공하는 디지털 가치에 기대해 본다.
똥본위화폐 플랫폼 코드: 자본으로 생긴 문제를 자본으로 푼다? 기후재앙을 탄소세 등 현재 화폐 기준 정책과 협약으로 해결하기 결코 쉽지 않다. 자국 이익과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사회 정부 간 협의 통한 해결 보단 새로운 질서 코드를 제공하는 디지털 가치에 기대해 본다.

“똥이 아니면 이일을 해 낼 수 없다.”

자본과 인공지능 노동의 시대, 인간의 노동을 제공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자본 또한 소유하지 못한 대다수 대중은 자본의 풍요를 누릴 수 있고, 자본이 만든 재화 또한 공평하게 분배되어야 할 근거가 만들어졌다고 가정하자.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 노동의 가치가 배제된 인간존엄성 그리고 분배의 정의가 가능해 졌을 때, 인류에게 어떤 변화가 올 것인가? 이것은 인류의 생존과 자본의 정의와는 다른 문제이다. 이를 인류는 자신에게 진지하게 묻고 답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혼란과 새로운 질서가 닥쳐올 것이기 때문이다. 혼란이 꼭 나쁜 것만도 질서가 좋은 것만도 아니다. 혼란 없이 질서의 가치가 드러나기 힘들기도 하다. 큰 혼란 속에서 질서를 찾아가면서 인류는 또 한 번 큰 도전을 시도해야 하고 근본적인 변화를 겪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인류는 진보하기 위해 한걸음 내딛을 것이다. 본격적인 자본의 시대, 자본이 가져다주는 풍요를 누리는 단순한 차원이 아닌, 가치의 기준을 바꾸는 변화의 대가를 자본은 반드시 요구할 것이다. 자본은 인간에게 선택을 강요할 것이다. 자본이 가져다 준 풍요의 시대, 인류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 것이다. 자본의 풍요를 밑거름 삼아 자본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려 노력할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자본을 향한 욕망을 이어갈 수도 있다. 선택의 기로인 것이다. 기후위기, 지구온난화의 예를 들어 이를 이해해 본다. 자본이 가져다 준 풍요의 시대, 경제성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될 것이므로 우리는 화석연료 사용에 더 이상 목매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자본을 향한 욕망은 자본을 벌수만 있다면 지금보다 더 화석연료에 집착하게 될지도 모른다. 지구온난화 뿐만 아니라 여러 다른 이슈들에서도 유사한 선택이 인류 앞에 놓일 것이다. 가치의 기준 세우기, 새로운 가치기준을 담는 돈의 탄생, 풍요의 시대 새로운 정의를 기반으로 한 다양하고 무수한 코드의 조건을 올바르게 프로그래밍 하는 것이 자본과 풍요의 시대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화석연료를 선택하는 코드가 어떤 현실로 연결되는 것이 디지털 시대 두뇌자본주의에 기반하여 꼼꼼하게 설계되어야 한다. 그래야 올바른 선택이 정의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즉, 무엇을 결정하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선택하기 이전에 결정과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게 될지 연관된 모든 것을 프로그래밍 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된다. 모든 프로그램에 두뇌자본주의의 핵심 수단인 돈, 그것도 인간본연의 가치가 담긴 돈이 위치하고 있다. 즉, 똥이 아니면 이일을 해 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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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이 만드는 가치는 가장 낮은 곳에서
다른 모든 가치들의 기준이 될 수 있다”

디지털시대, 인공지능 시대는 자본의 시대이다. 두뇌 자본주의라고도 한다. 자본이 인공지능과 로봇을 이용하여 거의 모든 것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다. 인류는 의식주를 제공받고 재미있는 놀이와 게임, 건강을 위한 운동, 경쟁과 모험을 위한 스포츠, 그리고 여행을 하면서 살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것이 풍요로운 시대, 상품과 서비스를 사람들이 쓰지 않으면 풍요로움을 생산하는 사회를 유지할 수 없다. 과거 생산할 사람이 필요했다면 미래는 소비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여전히 어떻게 이런 세상이 오겠는가, 아무리 인공지능이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인간의 역할이 있을 것이라고 믿을 수 있다. 물론 그럴 수 있다. 다만 바둑에서와 같이 다른 모든 분야에서 인공지능 세상이 갑자기 오는 상황을 대비해야할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시대, 자본이 만든 풍요의 시대가 와서 인류는 오직 소비만 하는, 아니 해야만 할 때가 온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소비하는 인류, 소비해야만 하는 인류에게도 차별은 있을 것이다. 자본이 만든 세상에 차별이 없을 리 만무하다. 그리고 인류는 몇 가지 질문과 마주치게 될 것이다. 자본의 시대 풍요의 혜택을 인간이 받아도 되는가? 받아도 된다면, 어떻게 공평하게 나눌 수 있을까?

자본의 시대 풍요의 혜택을 인간이 받아도 되는가? 이 질문을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 질문을 하는 사람은 착한사람이라고 보장해 주고 싶다. 질문하지 않아도 되고 당연시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간다. 하지만 풍요의 시대, 그 혜택을 받아도 되는지 질문하는 사람은 그 질문에 스스로 답하지 못하면 무너질 수 있다. 그만큼 착한 것이다.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 자본이 제공하는 풍요라도 받아도 된다고,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답을 주고 싶다. 영화 한편을 극장에서 봤다고 예를 들어 보자. 사람에 따라 다양한 생각들을 하게 된다. 영화 티켓값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재밌었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아깝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생각한다. 특정 영화를 선택해서 봄으로써 그 영화를 만든 감독이 다음 영화를 만들 수 있도록 하는데 작은 도움을 주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영화티켓을 산 돈이 자신이 번 돈이든 용돈이든 또는 생활비든 관계없다. 어쨌든 그 영화를 선택했고 선택해서 영화티켓을 통해 돈을 지불했고 그 돈은 그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다음 영화를 만드는데 큰 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영화가 재밌으면 좋겠지만 그 영화를 선택한 사람에게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다소 실망을 했다고 하더라도 상관없다. 분명 다음에는 훨씬 멋진 영화를 만들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그렇게 선택해 주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비록 자본이 가져다준 재화이지만 만약 이렇게 생각한다면 재화를 나눌 충분한 이유가 생기게 된다. 자본이 순환하여 재투자되는데 대중의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중이 없다면 자본은 순환의 고리가 금방 끊어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이 제공하는 재화를 대중은 비록 자본을 소유한 자본가가 아니라 하더라도 가져도 되는 것이다. 착한 사람은 미안함을 느끼면 허무에 빠지게 되고, 허무에 빠지면 빠져나오기 힘들다. 정리하면 자본이 대부분의 재화를 생산하는 풍요의 시대, 노동에서 배제된 인간들이 재화를 가질 수 있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대답은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인간의 삶은 이어져야 하고 그 삶 속에 이미 충분한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자본이 생산하는 가치의 기준에 인간의 존재가 들어가 있다면 금상첨화이다. 인간의 존재가 가치의 기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사물이어야 하고 또 나름의 가치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살아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똥을 눈다. 그리고, 똥은 자본의 시대에도 여전히 에너지와 퇴비를 생산하는 신뢰할 수 있는 재료가 된다. 로봇은 인공지능으로 노동을 할 수는 있지만 똥은 누지 못한다. 이런 연유로, 사람의 똥을 매개로 하여 똥이 만들어 내는 모든 가치들을 모아 가치기준을 정할 수 있다. 사람이 누는 똥이 만드는 가치는 가장 낮은 곳에서 다른 모든 가치들의 기준이 되어 줄 수 있다.



재화의 배분 윤리와 정의를 지금껏 노동의 가치에서 찾았다면, 이제 데이터가 자본인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기준 필요하다. 인간 상호 신뢰에 기반한 새로운 가치 질서를 똥본위화폐가 제공한다.



“똥이 공평하고 공정한 재화 분배의 실마리 제공”

공평하게 나눌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인공지능 자본의 시대, 비록 사람의 똥을 매개로 가치기준을 만드는 데는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가치기준이 사람에게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본이 생산하는 수많은 재화를 자본가가 아닌 다수의 대중에게 공평하게 분배해야하는 것은 필요하고도 충분한 이유를 제공하지는 못한다. 생존해야한다는 것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지만, 재화의 생산에 합당한 기여를 하지 않은 사람에게 많은 재화가 돌아가는 것이 과연 정의로운가의 질문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합리적인 근거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자본가가 아닌 대중들은 생존을 위한 재화를 갖는 데 만족해야하고 공평한 재화를 분배받기는 힘들 것이다. 많은 이들이 국가의 역할을 강조할 것이다. 국가가 행하는 법을 통한 정의실현에 큰 기대를 걸이다. 하지만 국가에 큰 기대를 하기는 쉽지 않은데, 지금 현재의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국가는 어쩔 수 없이 자본의 영향을 받으며 자본은 국가의 힘을 이용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많은 국가들이 소득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데 자본의 시대 국가가 그 역할을 성공적으로 하리라 기대하기 어렵다. 국가가 꼭 아니어도 되는 이유가 있다. 디지털 시대에는 모든 것이 연결될 수 있고 연결자체가 힘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중앙집권적 국가가 자본 수익을 공정하고 공평하게 비자본자인 대중에게 나누는 것에 여전히 최적임자라는 논리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자본자체가 자본이 만든 재화의 공평한 분배에 역할을 할 것이라는 자본주의적 믿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믿음에는 조건이 필요한데, 이미 얘기 나누었듯이 자본의 가치 근저에 인간의 노동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미래 인공지능 자본의 시대에는 인간노동은 대부분 사라진다. 국가와 자본으로는 쉽지 않을 것이다. 국가와 자본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극복하고 공평한 소득의 분배를 이루기 위해서는 가치의 기준을 새롭게 만드는 방법이 유일하며 그러려면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가치 또한 만들 수 있는 객관적 사물이 필요하게 된다. 그것은 역시 사람의 똥을 매개로 한 수단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사람의 똥의 가치를 담을 수 있는 돈이 그것이다. 돈은 수단에 불과하지만 돈을 통하지 않으면 코드의 결정이 힘들다. 산다 또는 사지 않는다. 기부한다 또는 기부하지 않는다. 이런 행동의 결정이 곧 코드이다. 코드의 실행은 현실 속에서 그에 해당하는 결과를 만들 수 있다. 돈은 인간의 행동과 현실을 바꿀 가장 기본적인 수단이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디지털 시대의 초연결사회에서는 돈 자체가 새로운 인간관계와 관계로 인한 가치들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똥이 공평하고도 공정한 재화 분배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조건은 있다. 새로운 돈의 코드 형성을 위해, 첫 번째, 새로운 돈은 지금의 돈과 교환되어서는 안 된다. 현재 자본의 질서를 벗어나기 위함이다. 두 번째, 디지털 시대에 걸 맞는 인간관계를 형성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무한한 사회적 가치가 생기기 때문이다.



똥본위화폐 플랫폼 코드: 자본으로 생긴 문제를 자본으로 푼다? 기후재앙을 탄소세 등 현재 화폐 기준 정책과 협약으로 해결하기 결코 쉽지 않다. 자국 이익과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사회 정부 간 협의 통한 해결 보단 새로운 질서 코드를 제공하는 디지털 가치에 기대해 본다.



“똥이 아니면 이일을 해 낼 수 없다.”

자본과 인공지능 노동의 시대, 인간의 노동을 제공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자본 또한 소유하지 못한 대다수 대중은 자본의 풍요를 누릴 수 있고, 자본이 만든 재화 또한 공평하게 분배되어야 할 근거가 만들어졌다고 가정하자.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 노동의 가치가 배제된 인간존엄성 그리고 분배의 정의가 가능해 졌을 때, 인류에게 어떤 변화가 올 것인가? 이것은 인류의 생존과 자본의 정의와는 다른 문제이다. 이를 인류는 자신에게 진지하게 묻고 답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혼란과 새로운 질서가 닥쳐올 것이기 때문이다. 혼란이 꼭 나쁜 것만도 질서가 좋은 것만도 아니다. 혼란 없이 질서의 가치가 드러나기 힘들기도 하다. 큰 혼란 속에서 질서를 찾아가면서 인류는 또 한 번 큰 도전을 시도해야 하고 근본적인 변화를 겪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인류는 진보하기 위해 한걸음 내딛을 것이다. 본격적인 자본의 시대, 자본이 가져다주는 풍요를 누리는 단순한 차원이 아닌, 가치의 기준을 바꾸는 변화의 대가를 자본은 반드시 요구할 것이다. 자본은 인간에게 선택을 강요할 것이다. 자본이 가져다 준 풍요의 시대, 인류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 것이다. 자본의 풍요를 밑거름 삼아 자본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려 노력할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자본을 향한 욕망을 이어갈 수도 있다. 선택의 기로인 것이다. 기후위기, 지구온난화의 예를 들어 이를 이해해 본다. 자본이 가져다 준 풍요의 시대, 경제성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될 것이므로 우리는 화석연료 사용에 더 이상 목매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자본을 향한 욕망은 자본을 벌수만 있다면 지금보다 더 화석연료에 집착하게 될지도 모른다. 지구온난화 뿐만 아니라 여러 다른 이슈들에서도 유사한 선택이 인류 앞에 놓일 것이다. 가치의 기준 세우기, 새로운 가치기준을 담는 돈의 탄생, 풍요의 시대 새로운 정의를 기반으로 한 다양하고 무수한 코드의 조건을 올바르게 프로그래밍 하는 것이 자본과 풍요의 시대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화석연료를 선택하는 코드가 어떤 현실로 연결되는 것이 디지털 시대 두뇌자본주의에 기반하여 꼼꼼하게 설계되어야 한다. 그래야 올바른 선택이 정의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즉, 무엇을 결정하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선택하기 이전에 결정과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게 될지 연관된 모든 것을 프로그래밍 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된다. 모든 프로그램에 두뇌자본주의의 핵심 수단인 돈, 그것도 인간본연의 가치가 담긴 돈이 위치하고 있다. 즉, 똥이 아니면 이일을 해 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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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원
울산과학기술원(UNIST) 도시환경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법명은 원광(圓光).
과학예술융합 연구센터 사이언스월든 센터장을 2015년 이후 맡고 있다. 2016년, 2017년 씽크탱크 Edge 재단에 ‘똥본위화폐’, ‘중용의 비움’ 에세이를 발표했다. 통일부 (사)북한물문제연구회 창립멤버로서 북한주민이 겪고 있는 물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또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 물이 부족하고 수질이 나쁜 작은 마을에 전기없이도 안전한 물을 생산할 수 있는 ‘옹달샘’ 정수기 공급프로젝트를 2006년 이후 진행하고 있다. 저술로는 <이것은 변기가 아닙니다>(2021년, 개마고원)과 <금간 거울 산산조각 내기>(2020년, 파티)가 있다. 사이언스월든 센터 웹: ScienceWalde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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