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택주가 푸는 평화 살림] ⑨ 점령군과 해방군? 스스로 해방하자!
[변택주가 푸는 평화 살림] ⑨ 점령군과 해방군? 스스로 해방하자!
  • 변택주
  • 승인 2021.07.18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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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초 언론 머리기사를 ‘점령군’과 ‘해방군’이 꾸몄다. 불을 지핀 사람은 광복회장 김원웅이다. 1945년 이 땅에 들어온 미군이 점령군인지 해방군인지 하는 얘기와 점령군 노릇을 한 건 정작 소련군이라커니 하는 이야기들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나는 미군이 더 우리나라 사람들을 괴롭혔는지 소련군이 더 그랬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이 꼭지에서도 다뤘듯이 미군이 스스로 점령군이라고 내세웠던 것은 사실이다.

해방은 무슨 말인가?
억눌림에서 벗어남이다.

1945년 9월 8일 서울에 들어온 미군은 군정을 선포하고 나서 일본 총독과 경찰국장, 국장급을 해임한다. 해임된 간부들을 도로 미군정 ‘고문’으로 앉히고, 일본인 실무자들은 업무를 계속하도록 한다. 미군이 해방군이었다면 일본 사람들을 몰아낸 자리에 조선 사람을 앉혔을 것이다.

1945년 9월 7일 태평양미국육군총사령부포고제1호 조선주민에 포고함(출처=국가기록원)



유럽에서 서방 연합군은 달랐다. 프랑스뿐 아니라 적대국인 이탈리아에 들어선 연합군도 ‘점령’이라고 하지 않고 ‘해방’이라고 했으며, 소련도 동유럽과 북한에 발을 들어가면서 해방이라고 했다. 점령이라는 말에는 우리가 너희를 억누를 힘을 가지고 있으니 따르지 않으면 가만 놔두지 않겠다는 뜻이 담겼다. 실제로 조선에 들어온 미군 포고문에는 이 뜻이 고스란히 담긴다. 말이 생각을 지배한다.

해방은 억눌림에서 벗어난다는 말이다. 스스로 얽매임까지 벗어던져야 비로소 해방이다. 그런데 점령군이 일본군에서 미군에게 옮아갔을 뿐이라면 해방이라고 할 수 있을까. 8·15를 지나고 일흔일곱 해를 보낸 우리는 참으로 해방되었을까?

선진국 대열에 들어 있는 나라, 국방력이 세계 6위라는 나라가 전시작전권을 다른 나라에 맡기고 있다. 한쪽에서는 전작권을 어서 찾아와야 한다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전작권 그늘에서 밀려날까 봐 애를 태우고 있다. 선진국이고 국방력이 세계 6위인 나라에 전작권을 넘겨줘서는 안 된다고 하는 이들이 여태 있는 까닭이 어디에 있을까? 해양 세력인 미국과 일본 대륙 세력인 중국과 러시아가 맞부딪치며 끊임없는 갈등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 우리처럼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우리와는 달리 흔들리지 않는 나라가 있다. 스위스다. 스위스는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에 둘러싸여 우리와 많이 닮았으나 어려움을 넘어 새 역사를 써가고 있는지 오래다. 한국 갤럽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나라(2019년 5월)’로 미국(16.0%)과 호주(12%)에 이어 스위스와 캐나다가 9%로 공동 3위에 올랐다고 했다. 스위스는 20년 동안 꾸준히 3위에 머물러 있다. 까닭이 어디에 있을까. 국민소득이 8만 달러를 넘고, 강대국이 받아들인 영세중립국이라 전쟁이 날 확률이 낮으며, 정부가 나라 사람들 뜻을 거스르지 않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1815년 유럽 지도.(출처=위키피디아)



스위스는 처음부터 평화로웠을까? 유럽 강대국에 둘러싸인 스위스는 여러 겨레가 모여 사는 복잡한 나라로 둘레 나라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바로 스위스로 옮겨 붙었다. 15세기 종교혁명이 일어나 가톨릭과 개신교로 나뉜 유럽 사회는 종교 갈등이 정치, 군사 갈등으로 퍼져나갔다. 스위스는 가톨릭과 개신교 이해가 맞붙는 시험대가 되고, 주정부(칸톤) 동맹 연합이 흩어질 위기를 맞는다.

이때 주정부 지도자들이 만나 종교는 주마다 자유롭게 고르되, 나라 밖에선 종교 다툼에 휩싸이지 말고 중립을 지키기로 하면서 동맹을 이어간다. 이렇게 나라 안에서는 종교가 서로 다름을 받아들이고, 밖에서는 다른 유럽 나라 사이에서 일어나는 종교 분쟁에서 중립을 지키는 것을 외교 뿌리로 삼으면서 자결주의 중립이라는 틀이 선다.

1617년 유럽에서는 30년 종교전쟁이 일어난다. 스위스는 자결주의에 따라 전쟁하는 나라들이 쳐들어오면 반드시 무찌르겠다고 으르댄다. 둘레 강대국들은 요충지인 스위스를 치려다가 전력이 흐트러질 것을 겁내 물러선다.

무장중립이 힘을 떨쳤다고 여긴 주정부 지도자들은 중립을 바탕에 둔 군사방위협정을 맺는다. 이 협정으로 중립을 내세운 스위스는 30년 전쟁이 끝난 1647년 베스트팔렌 조약에서 중립국으로 승인받는다. 그러나 프랑스 대혁명을 겪은 유럽은 곧 나폴레옹 전쟁에 휘말린다. 나폴레옹 군대를 물리치지 못한 스위스는 전쟁터가 되어야 했다. 1812년 나폴레옹 군이 물러가자 스위스는 다시 중립을 선언한다. 빈회의(1815년)에서 강대국들은 스위스를 영세중립국으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영세중립은 ① 조약 또는 국내법으로 나라를 지켜야 할 때를 빼고는 어떤 전쟁에 끼어들지 않고, 중립을 지키며 ② 동맹 조약과 같은 전쟁에 끼어 들 수 있는 의무를 지는 조약을 맺지 않으며 ③ 둘레에 있는 다른 나라들은 스위스가 나라를 지킬 수 있도록 중립을 보장하는 것이다.

영세중립국은 전쟁에 끼어들지 않고,
전쟁에 끼어들 의무 조약을 맺지 않아

안타깝게도 산업화를 이루면서 여러 주정부가 개신교로 탈바꿈하고, 신교 진보세력이 정권을 잡으면서 신·구교 갈등이 되살아나 급기야 1847년 내란이 일어난다. 자칫 동맹이 흩어질지도 모른다고 받아들인 신교 진보세력은 가톨릭과 개신교, 보수와 진보가 어깨동무하고 중립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침내 소수인 보수 구교 사람들 뜻을 웬만한 것은 다 받아들여 연정을 이룬다. 결이 다른 스위스 사람들이 어울리며 스스로 해방했다.



빈 회의 참석자들을 묘사한 기록화. 가운데 앉아 있는 인물이 의장을 맡은 오스트리아 재상 클레멘스 폰 메테르니히(출처=위키피디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 스위스는 무장중립 정책에 따라 방어 요새를 짓고 누구도 스위스 땅을 지나갈 수 없다고 막아선다. 전쟁하는 나라들도 헤이그협정에 따라 스위스 중립을 받아들인다고 밝힌다. 그런데 문제는 안에서 일어났다. 독일계 군 최고사령관이 프로이센을 감싸자 프랑스계가 분노하며 국론이 찢어진다. 다행스럽게도 스위스 연방은 문제를 일으킨 각료를 해임하며 사람들 마음을 다시 모을 수 있도록 화합을 이루어내어 다시 어려움에서 벗어난다. 다시 제 잇속에 얽매이는 것을 물리치고 다시 맞은 해방이다.

이어 일어난 제2차 세계대전 일주일 만에 프랑스 마지노선은 무너지고 독일군이 프랑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를 손아귀에 넣으며 스위스를 에워싼다. 히틀러는 스위스를 쳐들어가려고 한다. 그러나 스위스는 슬기롭게 프랑스계 장군은 총사령관으로 임명해 제1차 세계대전 때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배수진을 치고 알프스 곳곳에 있는 2만 3천여 개에 이르는 지하 요새를 고치고는, 독일군이 쳐들어오면 오래도록 큰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드잡이하자 히틀러는 뜻을 굽힌다.

인구 780만인 스위스는 남한 40%밖에 안 되는 작은 나라다. 지하자원이 없어 사람이 자산이라는 것이며, 둘러싸인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에 시달려 왔다는 것이 한국과 닮았다. 1848년 연방제를 하며 산업화를 이루기 전까지 스위스는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로 살아남으려고 이 나라 저 나라 싸움터로 남자들을 용병으로 보내야 했다.

용맹스러운 스위스 용병 신의는 1527년 부르고뉴 왕 샤를 5세가 로마를 침략한 ‘로마약탈’에서 드러났다. 근위병 189명 가운데 147명이 교황 클레멘스 2세를 끝까지 지키다 목숨을 잃었으며, 다른 이들은 교황을 피란시켰다. 스위스 용병은 프랑스에서 다시 빛난다. 1792년 파리 베르사유 궁전에 혁명 군중이 쳐들어갔을 때 루이 16세와 왕족들을 도망시키며 스위스 호위군 800여 명이 죽는다. 그러나 유럽 강대국들이 너나없이 스위스 용병을 부르면서 스위스 용병들이 서로를 죽이는 비극이 벌어진다. 특히 30년 동안이나 이어진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에서 스위스 용병들이 프랑스군과 네덜란드군으로 나뉘어 싸운 끝에 모두 죽고 마는 비극이 일어났다. 그 뒤로 스위스는 중립을 선언하고 교전하는 나라 가운데 어느 한쪽에게만 용병을 보내기로 한다.

서로 뜻을 살리는 정치로 누구에게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결을 맺어야

강대국에 둘러싸여 늘 바깥 세력 위협을 받아오고 살기 어려워 용병을 보낼 수밖에 없던 가난한 나라 스위스는 1815년 유럽 국제사회에게 영세중립국으로 받아들인 뒤로, 영세중립국을 ‘평화’라는 이미지와 묶어낸다. 아울러 용병 대신 시계 만드는 기술을 비롯한 여러 기술을 발달시킨다. 그렇게 얻는 이미지가 영세중립국, 평화와 인도주의 나라, 틀림없고 부지런한 기술 나라다. 이 바탕에서 스위스는 세계 금융을 휘어잡는다. 비밀 지키기를 내세운 마음 놓을 수 있는 중립국 이미지로 탈바꿈한 스위스는 작고 여린 중립국에서 단단한 중립국으로 태어난다.



스위스의 23개 준국가 KANTON들의 주기.



끝으로 작은 나라 스위스가 독립을 이어가면서 나라 사람들이 다리 쭉 뻗고 살 수 있도록 하는 힘을 짚어본다.

첫째, 다른 뜻을 아울러 서로 살리는 정치를 했다. 안으로는 여러 겨레 문화와 이해가 엇갈리는 것을 아우르고, 밖으로는 위기를 넘어서는 외교를 펼친다. 둘째, 누구에게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결을 맺는 전통이다. 살아온 문화가 다른 여러 겨레가 자결주의로 뭉쳐 중립을 굳게 지켜냈다. 끊임없이 바뀌는 둘레 정세에 흔들릴 수밖에 없는 작은 나라 한계를 넘어 독립을 이어간다. 셋째, 국민투표로 직접민주주의를 한다. 병역의무제, 방위세, 방공호 건설과 기본소득 주기나 임금 제도 따위를 국민투표로 정한다. 징병제는 국민투표에서 85%가 넘는 지지를 받는다. 이 바탕에서 핵무기를 피할 방공호를 3,500개나 만든다. 넷째, 나라 지키기가 나라 사람 힘만으로는 어렵다는 걸 깨달아 스위스가 결을 지켜 스스로 설 수 있어야만 유럽 평화를 불러들일 수 있다며 둘레 강대국을 설득해 영세중립국이 된다.

이처럼 스위스 사람들은 안으로는 결이 다른 사람들이 서로가 품은 뜻을 꼬집거나 비틀어 깎아내리지 않고 도두봤다. 특히 힘을 가진 쪽이 힘이 달리는 쪽이 내놓는 뜻을 서슴없이 받아들였다. 밖으로는 끊임없이 우리는 중립을 해야 살 수 있다면서 어느 편도 들지 않을 수 있도록 뜻을 모아달라고 했다. 이 간절함이 스스로 세우고 평화로 달려 나가도록 만들었다. 이보다 더 나은 해방이 어디에 있을까.

미군이 점령군이냐 아니냐를 다투기보다 서로 살릴 수 있도록 서로 다른 이들이 머리 맞대고 뜻을 모아 우리 스스로 해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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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9월 7일 태평양미국육군총사령부포고제1호 조선주민에 포고함(출처=국가기록원)

유럽에서 서방 연합군은 달랐다. 프랑스뿐 아니라 적대국인 이탈리아에 들어선 연합군도 ‘점령’이라고 하지 않고 ‘해방’이라고 했으며, 소련도 동유럽과 북한에 발을 들어가면서 해방이라고 했다. 점령이라는 말에는 우리가 너희를 억누를 힘을 가지고 있으니 따르지 않으면 가만 놔두지 않겠다는 뜻이 담겼다. 실제로 조선에 들어온 미군 포고문에는 이 뜻이 고스란히 담긴다. 말이 생각을 지배한다.

해방은 억눌림에서 벗어난다는 말이다. 스스로 얽매임까지 벗어던져야 비로소 해방이다. 그런데 점령군이 일본군에서 미군에게 옮아갔을 뿐이라면 해방이라고 할 수 있을까. 8·15를 지나고 일흔일곱 해를 보낸 우리는 참으로 해방되었을까?

선진국 대열에 들어 있는 나라, 국방력이 세계 6위라는 나라가 전시작전권을 다른 나라에 맡기고 있다. 한쪽에서는 전작권을 어서 찾아와야 한다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전작권 그늘에서 밀려날까 봐 애를 태우고 있다. 선진국이고 국방력이 세계 6위인 나라에 전작권을 넘겨줘서는 안 된다고 하는 이들이 여태 있는 까닭이 어디에 있을까? 해양 세력인 미국과 일본 대륙 세력인 중국과 러시아가 맞부딪치며 끊임없는 갈등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 우리처럼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우리와는 달리 흔들리지 않는 나라가 있다. 스위스다. 스위스는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에 둘러싸여 우리와 많이 닮았으나 어려움을 넘어 새 역사를 써가고 있는지 오래다. 한국 갤럽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나라(2019년 5월)’로 미국(16.0%)과 호주(12%)에 이어 스위스와 캐나다가 9%로 공동 3위에 올랐다고 했다. 스위스는 20년 동안 꾸준히 3위에 머물러 있다. 까닭이 어디에 있을까. 국민소득이 8만 달러를 넘고, 강대국이 받아들인 영세중립국이라 전쟁이 날 확률이 낮으며, 정부가 나라 사람들 뜻을 거스르지 않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1815년 유럽 지도.(출처=위키피디아)
1815년 유럽 지도.(출처=위키피디아)

스위스는 처음부터 평화로웠을까? 유럽 강대국에 둘러싸인 스위스는 여러 겨레가 모여 사는 복잡한 나라로 둘레 나라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바로 스위스로 옮겨 붙었다. 15세기 종교혁명이 일어나 가톨릭과 개신교로 나뉜 유럽 사회는 종교 갈등이 정치, 군사 갈등으로 퍼져나갔다. 스위스는 가톨릭과 개신교 이해가 맞붙는 시험대가 되고, 주정부(칸톤) 동맹 연합이 흩어질 위기를 맞는다.

이때 주정부 지도자들이 만나 종교는 주마다 자유롭게 고르되, 나라 밖에선 종교 다툼에 휩싸이지 말고 중립을 지키기로 하면서 동맹을 이어간다. 이렇게 나라 안에서는 종교가 서로 다름을 받아들이고, 밖에서는 다른 유럽 나라 사이에서 일어나는 종교 분쟁에서 중립을 지키는 것을 외교 뿌리로 삼으면서 자결주의 중립이라는 틀이 선다.

1617년 유럽에서는 30년 종교전쟁이 일어난다. 스위스는 자결주의에 따라 전쟁하는 나라들이 쳐들어오면 반드시 무찌르겠다고 으르댄다. 둘레 강대국들은 요충지인 스위스를 치려다가 전력이 흐트러질 것을 겁내 물러선다.

무장중립이 힘을 떨쳤다고 여긴 주정부 지도자들은 중립을 바탕에 둔 군사방위협정을 맺는다. 이 협정으로 중립을 내세운 스위스는 30년 전쟁이 끝난 1647년 베스트팔렌 조약에서 중립국으로 승인받는다. 그러나 프랑스 대혁명을 겪은 유럽은 곧 나폴레옹 전쟁에 휘말린다. 나폴레옹 군대를 물리치지 못한 스위스는 전쟁터가 되어야 했다. 1812년 나폴레옹 군이 물러가자 스위스는 다시 중립을 선언한다. 빈회의(1815년)에서 강대국들은 스위스를 영세중립국으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영세중립은 ① 조약 또는 국내법으로 나라를 지켜야 할 때를 빼고는 어떤 전쟁에 끼어들지 않고, 중립을 지키며 ② 동맹 조약과 같은 전쟁에 끼어 들 수 있는 의무를 지는 조약을 맺지 않으며 ③ 둘레에 있는 다른 나라들은 스위스가 나라를 지킬 수 있도록 중립을 보장하는 것이다.

영세중립국은 전쟁에 끼어들지 않고,
전쟁에 끼어들 의무 조약을 맺지 않아

안타깝게도 산업화를 이루면서 여러 주정부가 개신교로 탈바꿈하고, 신교 진보세력이 정권을 잡으면서 신·구교 갈등이 되살아나 급기야 1847년 내란이 일어난다. 자칫 동맹이 흩어질지도 모른다고 받아들인 신교 진보세력은 가톨릭과 개신교, 보수와 진보가 어깨동무하고 중립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침내 소수인 보수 구교 사람들 뜻을 웬만한 것은 다 받아들여 연정을 이룬다. 결이 다른 스위스 사람들이 어울리며 스스로 해방했다.

빈 회의 참석자들을 묘사한 기록화. 가운데 앉아 있는 인물이 의장을 맡은 오스트리아 재상 클레멘스 폰 메테르니히(출처=위키피디아)
빈 회의 참석자들을 묘사한 기록화. 가운데 앉아 있는 인물이 의장을 맡은 오스트리아 재상 클레멘스 폰 메테르니히(출처=위키피디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 스위스는 무장중립 정책에 따라 방어 요새를 짓고 누구도 스위스 땅을 지나갈 수 없다고 막아선다. 전쟁하는 나라들도 헤이그협정에 따라 스위스 중립을 받아들인다고 밝힌다. 그런데 문제는 안에서 일어났다. 독일계 군 최고사령관이 프로이센을 감싸자 프랑스계가 분노하며 국론이 찢어진다. 다행스럽게도 스위스 연방은 문제를 일으킨 각료를 해임하며 사람들 마음을 다시 모을 수 있도록 화합을 이루어내어 다시 어려움에서 벗어난다. 다시 제 잇속에 얽매이는 것을 물리치고 다시 맞은 해방이다.

이어 일어난 제2차 세계대전 일주일 만에 프랑스 마지노선은 무너지고 독일군이 프랑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를 손아귀에 넣으며 스위스를 에워싼다. 히틀러는 스위스를 쳐들어가려고 한다. 그러나 스위스는 슬기롭게 프랑스계 장군은 총사령관으로 임명해 제1차 세계대전 때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배수진을 치고 알프스 곳곳에 있는 2만 3천여 개에 이르는 지하 요새를 고치고는, 독일군이 쳐들어오면 오래도록 큰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드잡이하자 히틀러는 뜻을 굽힌다.

인구 780만인 스위스는 남한 40%밖에 안 되는 작은 나라다. 지하자원이 없어 사람이 자산이라는 것이며, 둘러싸인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에 시달려 왔다는 것이 한국과 닮았다. 1848년 연방제를 하며 산업화를 이루기 전까지 스위스는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로 살아남으려고 이 나라 저 나라 싸움터로 남자들을 용병으로 보내야 했다.

용맹스러운 스위스 용병 신의는 1527년 부르고뉴 왕 샤를 5세가 로마를 침략한 ‘로마약탈’에서 드러났다. 근위병 189명 가운데 147명이 교황 클레멘스 2세를 끝까지 지키다 목숨을 잃었으며, 다른 이들은 교황을 피란시켰다. 스위스 용병은 프랑스에서 다시 빛난다. 1792년 파리 베르사유 궁전에 혁명 군중이 쳐들어갔을 때 루이 16세와 왕족들을 도망시키며 스위스 호위군 800여 명이 죽는다. 그러나 유럽 강대국들이 너나없이 스위스 용병을 부르면서 스위스 용병들이 서로를 죽이는 비극이 벌어진다. 특히 30년 동안이나 이어진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에서 스위스 용병들이 프랑스군과 네덜란드군으로 나뉘어 싸운 끝에 모두 죽고 마는 비극이 일어났다. 그 뒤로 스위스는 중립을 선언하고 교전하는 나라 가운데 어느 한쪽에게만 용병을 보내기로 한다.

서로 뜻을 살리는 정치로 누구에게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결을 맺어야

강대국에 둘러싸여 늘 바깥 세력 위협을 받아오고 살기 어려워 용병을 보낼 수밖에 없던 가난한 나라 스위스는 1815년 유럽 국제사회에게 영세중립국으로 받아들인 뒤로, 영세중립국을 ‘평화’라는 이미지와 묶어낸다. 아울러 용병 대신 시계 만드는 기술을 비롯한 여러 기술을 발달시킨다. 그렇게 얻는 이미지가 영세중립국, 평화와 인도주의 나라, 틀림없고 부지런한 기술 나라다. 이 바탕에서 스위스는 세계 금융을 휘어잡는다. 비밀 지키기를 내세운 마음 놓을 수 있는 중립국 이미지로 탈바꿈한 스위스는 작고 여린 중립국에서 단단한 중립국으로 태어난다.

스위스의 23개 준국가 KANTON들의 주기.
스위스의 23개 준국가 KANTON들의 주기.

끝으로 작은 나라 스위스가 독립을 이어가면서 나라 사람들이 다리 쭉 뻗고 살 수 있도록 하는 힘을 짚어본다.

첫째, 다른 뜻을 아울러 서로 살리는 정치를 했다. 안으로는 여러 겨레 문화와 이해가 엇갈리는 것을 아우르고, 밖으로는 위기를 넘어서는 외교를 펼친다. 둘째, 누구에게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결을 맺는 전통이다. 살아온 문화가 다른 여러 겨레가 자결주의로 뭉쳐 중립을 굳게 지켜냈다. 끊임없이 바뀌는 둘레 정세에 흔들릴 수밖에 없는 작은 나라 한계를 넘어 독립을 이어간다. 셋째, 국민투표로 직접민주주의를 한다. 병역의무제, 방위세, 방공호 건설과 기본소득 주기나 임금 제도 따위를 국민투표로 정한다. 징병제는 국민투표에서 85%가 넘는 지지를 받는다. 이 바탕에서 핵무기를 피할 방공호를 3,500개나 만든다. 넷째, 나라 지키기가 나라 사람 힘만으로는 어렵다는 걸 깨달아 스위스가 결을 지켜 스스로 설 수 있어야만 유럽 평화를 불러들일 수 있다며 둘레 강대국을 설득해 영세중립국이 된다.

이처럼 스위스 사람들은 안으로는 결이 다른 사람들이 서로가 품은 뜻을 꼬집거나 비틀어 깎아내리지 않고 도두봤다. 특히 힘을 가진 쪽이 힘이 달리는 쪽이 내놓는 뜻을 서슴없이 받아들였다. 밖으로는 끊임없이 우리는 중립을 해야 살 수 있다면서 어느 편도 들지 않을 수 있도록 뜻을 모아달라고 했다. 이 간절함이 스스로 세우고 평화로 달려 나가도록 만들었다. 이보다 더 나은 해방이 어디에 있을까.

미군이 점령군이냐 아니냐를 다투기보다 서로 살릴 수 있도록 서로 다른 이들이 머리 맞대고 뜻을 모아 우리 스스로 해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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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택주
“배운 걸 세상에 돌리지 않으면 제구실하지 않는 것”이란 법정 스님 말씀에 따라 이 땅에 평화가 깃들기를 바라면서 ‘으라차차영세중립코리아’에 몸담고 있다. 나라 곳곳에 책이 서른 권 남짓한 꼬마평화도서관을 열고 있다. 평화 그림책을 소리 내어 읽기 놀이하면서 쉬운 겨레말 쓰기 놀이도 한다. 법명은 지광(智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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