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23. 가시를 드러낸 너처럼
[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23. 가시를 드러낸 너처럼
  • 전재민 시인
  • 승인 2021.08.17 10: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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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가 많아 가시를 송곳니처럼 드러내고 살지


내 가시가 나를 찌를 때도 있지만
마음속 상처를 감추기 위해
빨간 장미처럼 꽃을 피우지도 못하고
드라큘라 손톱 같은 가시를 드러내고 살지.


#작가의 변
폭염주의보, 산불은 아직도 현재 진행 중, 붉은 해를 본 밴쿠버 하늘.
어제도 한 달 전에 줌을 통해 면접을 보고, 주 3일을 하는데도 베네핏를 준다는 직장에 아무래도 주방을 봐야 할 것 같아 주방 구경 좀 하자고 미리 약속을 일주일 전에 하고 인터넷 사이트에서 찾은 주소로 찾아 간 그곳엔 주방은 없고 조그만 쪽문만 있어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다. 여기가 아닌가, 다른 뭐 주방 있을 만한 곳이 없나 하고 찾아보니, 없다. 그러는 와중에 안에서 누군가가 내려와서 문을 열어 주고 옆에 있던 남녀가 들어간다. 하여 안에서 내려온 직원한테 이곳에 주방 투어 하러 왔다고 하니 벙 찐 직원, 그래서 약속한 주방요원 제프를 만나기로 했다고 하니까 그제야 메인 스트리트 1050에 있다고 여긴 헤드오피스라고 말해 준다. 그럼 여기서 어떻게 가나 난감해 하고 있으니 건너편에 가서 3번 버스 타면 거기까지 간다고 해서 건너편에 가보니 3번 버스는 정류장 버스목록에 보이지 않았다.
기억을 더듬으니 메인 스트리트에 가면 3번 버스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서 걷는데 밴쿠버에 이렇게 번화한 거리가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고, 좁은 인도에 양쪽으로 좌판을 벌인 노숙자 또는 부랑자들이 있고 지나다니는 사람도 정말 많았다. 밴쿠버에 살지만 이곳은 정말 외국에 왔다는 생각이 들게 하고 정신이 번쩍 들게 할 정도로 평온하지 않은 거리이다. 20년 전에 이 길에 있는 교회지하에서 케터링 일을 잠시 하던 때가 생각이 났다.
그때는 정말 날마다 사건이 한 건씩은 일어났다. 칼부림 사건은 수시로 일어났고 저녁에 퇴근하면 골목마다 여자들이 자고 가라고 붙잡는 곳도 정말 많았다. 지금은 밤에도 많은 사람들이 헤스팅 스트리트 인도에서 밤을 지새운다. 정부에서 많은 노숙자 쉼터를 만들고, 많은 단체에서도 노숙자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고 쉼터를 제공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노숙을 한다. 그중엔 속박 받는 숙소보다 노숙을 원하는 사람도 있고 마약 등을 하려고 노숙을 하는 사람도 있다. 오늘도 걷다보니 한쪽에 마약하고 완전히 맛이 간 사람도 보이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8년 전에 다니던 카지노에서 총주방장에게 2달만 레이크루이스 5성급 호텔에서 경험 좀 하게 일을 하고 돌아오면 안 되겠느냐고 하니 안 된다는 주방장한테 사표를 던지고 알버타 주에 가서 일을 하면서 돌아오면 다시 일을 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쉽게 자리를 잡을 수 없었고, 다시 사스케치완 주에 가서 몇 달을 일을 하고 돌아 와서 쉬고 있을 때 지금 현재 일하고 있는 곳인 노숙자 쉼터와 음식 제공하는 곳에 친구가 주방매니저로 있었는데 와 달라 정말 여러 번 말한 게 생각이 나서 와서 일을 시작하게 됐다. 지금은 그 친구가 함께 일하지 않는다. 3년 전에 권고사직당하고 나 또한 힘든 직장생활이 시작됐다. 처음 이곳에 일하기전 선입견 때문에 일하기를 꺼리게 됐고 마치 나도 노숙자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늘 이 근처 다른 스트리트에서 일을 하지만 오랜만에 헤스팅을 걸으니 옛날 기억도 떠오르고 다른 세계에 온 것 같기도 하다. 어느 날은 출근길에 친구 차 조수석에 타고 이곳을 지나다 사진을 찍었는데 계란을 차에 던져서 앞 유리가 잘 안보인적도 있다. 친구는 절대 사진 찍지 말라고, 돌 던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메인 스트리트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버스를 타고 내리라는 곳에서 내려 전화를 하니 주방에서 찾기 힘들다고 나온다고 거기 있으라고 하고 그렇게 만나서 구경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금 일하는 곳은 대기업 같고 오늘 구경한 곳은 중소기업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밴쿠버엔 정부지원으로 노숙자 쉼터를 운영하는 곳이 많다.
예전에 미국 이민 가서 청소부로 일해서 접시닦이로 일해 성공한 신화적인 이야기가 많았다. 이민25년이 지난 지금 이민자로서 느끼는 것은 이곳에서도 이곳 학위를 취득해야 괜찮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민 1세대는 뿌리를 내리기 위한 거름이다. 밴쿠버는 대부분이 렌트로 사는 것이 트랜드였다. 최근엔 이민자들부터 아파트나 하우스를 먼저 산 사람들이 부동산 뻥튀기로 인해 평생 일해도 만져보지 못할 돈을 벌었다. 이래저래 상처가 많은 이민자는 마음에 가시를 세울 수밖에 없다. 그 가시에 내가 찔리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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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가 많아 가시를 송곳니처럼 드러내고 살지

내 가시가 나를 찌를 때도 있지만
마음속 상처를 감추기 위해
빨간 장미처럼 꽃을 피우지도 못하고
드라큘라 손톱 같은 가시를 드러내고 살지.

#작가의 변
폭염주의보, 산불은 아직도 현재 진행 중, 붉은 해를 본 밴쿠버 하늘.
어제도 한 달 전에 줌을 통해 면접을 보고, 주 3일을 하는데도 베네핏를 준다는 직장에 아무래도 주방을 봐야 할 것 같아 주방 구경 좀 하자고 미리 약속을 일주일 전에 하고 인터넷 사이트에서 찾은 주소로 찾아 간 그곳엔 주방은 없고 조그만 쪽문만 있어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다. 여기가 아닌가, 다른 뭐 주방 있을 만한 곳이 없나 하고 찾아보니, 없다. 그러는 와중에 안에서 누군가가 내려와서 문을 열어 주고 옆에 있던 남녀가 들어간다. 하여 안에서 내려온 직원한테 이곳에 주방 투어 하러 왔다고 하니 벙 찐 직원, 그래서 약속한 주방요원 제프를 만나기로 했다고 하니까 그제야 메인 스트리트 1050에 있다고 여긴 헤드오피스라고 말해 준다. 그럼 여기서 어떻게 가나 난감해 하고 있으니 건너편에 가서 3번 버스 타면 거기까지 간다고 해서 건너편에 가보니 3번 버스는 정류장 버스목록에 보이지 않았다.
기억을 더듬으니 메인 스트리트에 가면 3번 버스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서 걷는데 밴쿠버에 이렇게 번화한 거리가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고, 좁은 인도에 양쪽으로 좌판을 벌인 노숙자 또는 부랑자들이 있고 지나다니는 사람도 정말 많았다. 밴쿠버에 살지만 이곳은 정말 외국에 왔다는 생각이 들게 하고 정신이 번쩍 들게 할 정도로 평온하지 않은 거리이다. 20년 전에 이 길에 있는 교회지하에서 케터링 일을 잠시 하던 때가 생각이 났다.
그때는 정말 날마다 사건이 한 건씩은 일어났다. 칼부림 사건은 수시로 일어났고 저녁에 퇴근하면 골목마다 여자들이 자고 가라고 붙잡는 곳도 정말 많았다. 지금은 밤에도 많은 사람들이 헤스팅 스트리트 인도에서 밤을 지새운다. 정부에서 많은 노숙자 쉼터를 만들고, 많은 단체에서도 노숙자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고 쉼터를 제공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노숙을 한다. 그중엔 속박 받는 숙소보다 노숙을 원하는 사람도 있고 마약 등을 하려고 노숙을 하는 사람도 있다. 오늘도 걷다보니 한쪽에 마약하고 완전히 맛이 간 사람도 보이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8년 전에 다니던 카지노에서 총주방장에게 2달만 레이크루이스 5성급 호텔에서 경험 좀 하게 일을 하고 돌아오면 안 되겠느냐고 하니 안 된다는 주방장한테 사표를 던지고 알버타 주에 가서 일을 하면서 돌아오면 다시 일을 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쉽게 자리를 잡을 수 없었고, 다시 사스케치완 주에 가서 몇 달을 일을 하고 돌아 와서 쉬고 있을 때 지금 현재 일하고 있는 곳인 노숙자 쉼터와 음식 제공하는 곳에 친구가 주방매니저로 있었는데 와 달라 정말 여러 번 말한 게 생각이 나서 와서 일을 시작하게 됐다. 지금은 그 친구가 함께 일하지 않는다. 3년 전에 권고사직당하고 나 또한 힘든 직장생활이 시작됐다. 처음 이곳에 일하기전 선입견 때문에 일하기를 꺼리게 됐고 마치 나도 노숙자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늘 이 근처 다른 스트리트에서 일을 하지만 오랜만에 헤스팅을 걸으니 옛날 기억도 떠오르고 다른 세계에 온 것 같기도 하다. 어느 날은 출근길에 친구 차 조수석에 타고 이곳을 지나다 사진을 찍었는데 계란을 차에 던져서 앞 유리가 잘 안보인적도 있다. 친구는 절대 사진 찍지 말라고, 돌 던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메인 스트리트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버스를 타고 내리라는 곳에서 내려 전화를 하니 주방에서 찾기 힘들다고 나온다고 거기 있으라고 하고 그렇게 만나서 구경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금 일하는 곳은 대기업 같고 오늘 구경한 곳은 중소기업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밴쿠버엔 정부지원으로 노숙자 쉼터를 운영하는 곳이 많다.
예전에 미국 이민 가서 청소부로 일해서 접시닦이로 일해 성공한 신화적인 이야기가 많았다. 이민25년이 지난 지금 이민자로서 느끼는 것은 이곳에서도 이곳 학위를 취득해야 괜찮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민 1세대는 뿌리를 내리기 위한 거름이다. 밴쿠버는 대부분이 렌트로 사는 것이 트랜드였다. 최근엔 이민자들부터 아파트나 하우스를 먼저 산 사람들이 부동산 뻥튀기로 인해 평생 일해도 만져보지 못할 돈을 벌었다. 이래저래 상처가 많은 이민자는 마음에 가시를 세울 수밖에 없다. 그 가시에 내가 찔리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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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가 많아 가시를 송곳니처럼 드러내고 살지


내 가시가 나를 찌를 때도 있지만
마음속 상처를 감추기 위해
빨간 장미처럼 꽃을 피우지도 못하고
드라큘라 손톱 같은 가시를 드러내고 살지.


#작가의 변
폭염주의보, 산불은 아직도 현재 진행 중, 붉은 해를 본 밴쿠버 하늘.
어제도 한 달 전에 줌을 통해 면접을 보고, 주 3일을 하는데도 베네핏를 준다는 직장에 아무래도 주방을 봐야 할 것 같아 주방 구경 좀 하자고 미리 약속을 일주일 전에 하고 인터넷 사이트에서 찾은 주소로 찾아 간 그곳엔 주방은 없고 조그만 쪽문만 있어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다. 여기가 아닌가, 다른 뭐 주방 있을 만한 곳이 없나 하고 찾아보니, 없다. 그러는 와중에 안에서 누군가가 내려와서 문을 열어 주고 옆에 있던 남녀가 들어간다. 하여 안에서 내려온 직원한테 이곳에 주방 투어 하러 왔다고 하니 벙 찐 직원, 그래서 약속한 주방요원 제프를 만나기로 했다고 하니까 그제야 메인 스트리트 1050에 있다고 여긴 헤드오피스라고 말해 준다. 그럼 여기서 어떻게 가나 난감해 하고 있으니 건너편에 가서 3번 버스 타면 거기까지 간다고 해서 건너편에 가보니 3번 버스는 정류장 버스목록에 보이지 않았다.
기억을 더듬으니 메인 스트리트에 가면 3번 버스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서 걷는데 밴쿠버에 이렇게 번화한 거리가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고, 좁은 인도에 양쪽으로 좌판을 벌인 노숙자 또는 부랑자들이 있고 지나다니는 사람도 정말 많았다. 밴쿠버에 살지만 이곳은 정말 외국에 왔다는 생각이 들게 하고 정신이 번쩍 들게 할 정도로 평온하지 않은 거리이다. 20년 전에 이 길에 있는 교회지하에서 케터링 일을 잠시 하던 때가 생각이 났다.
그때는 정말 날마다 사건이 한 건씩은 일어났다. 칼부림 사건은 수시로 일어났고 저녁에 퇴근하면 골목마다 여자들이 자고 가라고 붙잡는 곳도 정말 많았다. 지금은 밤에도 많은 사람들이 헤스팅 스트리트 인도에서 밤을 지새운다. 정부에서 많은 노숙자 쉼터를 만들고, 많은 단체에서도 노숙자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고 쉼터를 제공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노숙을 한다. 그중엔 속박 받는 숙소보다 노숙을 원하는 사람도 있고 마약 등을 하려고 노숙을 하는 사람도 있다. 오늘도 걷다보니 한쪽에 마약하고 완전히 맛이 간 사람도 보이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8년 전에 다니던 카지노에서 총주방장에게 2달만 레이크루이스 5성급 호텔에서 경험 좀 하게 일을 하고 돌아오면 안 되겠느냐고 하니 안 된다는 주방장한테 사표를 던지고 알버타 주에 가서 일을 하면서 돌아오면 다시 일을 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쉽게 자리를 잡을 수 없었고, 다시 사스케치완 주에 가서 몇 달을 일을 하고 돌아 와서 쉬고 있을 때 지금 현재 일하고 있는 곳인 노숙자 쉼터와 음식 제공하는 곳에 친구가 주방매니저로 있었는데 와 달라 정말 여러 번 말한 게 생각이 나서 와서 일을 시작하게 됐다. 지금은 그 친구가 함께 일하지 않는다. 3년 전에 권고사직당하고 나 또한 힘든 직장생활이 시작됐다. 처음 이곳에 일하기전 선입견 때문에 일하기를 꺼리게 됐고 마치 나도 노숙자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늘 이 근처 다른 스트리트에서 일을 하지만 오랜만에 헤스팅을 걸으니 옛날 기억도 떠오르고 다른 세계에 온 것 같기도 하다. 어느 날은 출근길에 친구 차 조수석에 타고 이곳을 지나다 사진을 찍었는데 계란을 차에 던져서 앞 유리가 잘 안보인적도 있다. 친구는 절대 사진 찍지 말라고, 돌 던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메인 스트리트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버스를 타고 내리라는 곳에서 내려 전화를 하니 주방에서 찾기 힘들다고 나온다고 거기 있으라고 하고 그렇게 만나서 구경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금 일하는 곳은 대기업 같고 오늘 구경한 곳은 중소기업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밴쿠버엔 정부지원으로 노숙자 쉼터를 운영하는 곳이 많다.
예전에 미국 이민 가서 청소부로 일해서 접시닦이로 일해 성공한 신화적인 이야기가 많았다. 이민25년이 지난 지금 이민자로서 느끼는 것은 이곳에서도 이곳 학위를 취득해야 괜찮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민 1세대는 뿌리를 내리기 위한 거름이다. 밴쿠버는 대부분이 렌트로 사는 것이 트랜드였다. 최근엔 이민자들부터 아파트나 하우스를 먼저 산 사람들이 부동산 뻥튀기로 인해 평생 일해도 만져보지 못할 돈을 벌었다. 이래저래 상처가 많은 이민자는 마음에 가시를 세울 수밖에 없다. 그 가시에 내가 찔리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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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민(Terry)
캐나다 BC주 밴쿠버에 살고 있는 ‘셰프’이자, 시인(詩人)이다. 경희대학교에서 전통조리를 공부했다. 1987년 군 전역 후 조리학원을 다니면서 한식과 중식도 경험했다. 캐나다에서는 주로 양식을 조리한다. 법명은 현봉(玄鋒).
전재민은 ‘숨 쉬고 살기 위해 시를 쓴다’고 말한다. ‘나 살자고 한 시 쓰기’이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고, 감동하는 독자가 있어 ‘타인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밥만으로 살 수 없고, 숨 만 쉬고 살 수 없는 게 사람이라고 전재민은 말한다. 그는 시를 어렵게 쓰지 않는다. 사람들과 교감하기 위해서다. 종교인이 직업이지만, 직업인이 되면 안 되듯, 문학을 직업으로 여길 수 없는 시대라는 전 시인은 먹고 살기 위해 시를 쓰지 않는다. 때로는 거미가 거미줄 치듯 시가 쉽게 나오기도 하고, 숨이 막히도록 쓰지 못할 때도 있다. 시가 나오지 않으면 그저 기다린다. 공감하고 소통하는 사회를 꿈꾸며 오늘도 시를 쓴다.
2017년 1월 (사)문학사랑으로 등단했다. 2017년 문학사랑 신인 작품상(아스팔트 위에서 외 4편)과 충청예술 초대작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문학사랑 회원이자 캐나다 한국문인협회 이사, 밴쿠버 중앙일보 명예기자이다. 시집 <밴쿠버 연가>(오늘문학사 2018년 3월)를 냈고, 계간 문학사랑 봄호(2017년)에 시 ‘아는 만큼’ 외 4편을 게재했다.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 밴쿠버 중앙일보에 <전재민의 밴쿠버 사는 이야기>를 연재했고, 밴쿠버 교육신문에 ‘시인이 보는 세상’을 기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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