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24. 가을편지
[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24. 가을편지
  • 전재민 시인
  • 승인 2021.08.24 10: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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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날리는 잎새처럼

멀리 달아나 버린 마음자리

빈자리 달래 줄 편지를 쓴다.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그 이름

물위에 떨어지는 단풍 담아 놓고

하지 못한 말을 담아 본다.
 

이젠 반백이 되어 버린 모습으로

우리 자주 다니던 덕수궁 돌담길

혹여 라도 그대 나오지 않으려나 달려가

내 발자욱 소리만 귓가에 들려온다 해도.



#작가의 변
수십 년 만에 폭염이니 백년 만에 폭우니, 해마다 여름이면 산불에 몸살을 앓아 한국보다도 공기 질이 안 좋아 공기청정기를 구입해야 하는 캐나다 밴쿠버.
30도를, 아니 40도를 넘기는 날씨는 영상 8도의 추운 날씨가 됐다. 낮에도 흐린 날에는 영상 16도로 이젠 샤워할 때도 찬물보다는 따뜻한 온수가 편안함을 준다. 좀 더우면 덥다고 난리, 좀 쌀쌀하면 춥다고 난리, 인간의 심리는 늘 변덕이 심한 듯하다. 더위에 정신없을 땐 더위만 벗어나고 싶었다. 냉동고에 들어가서 단 5분 만에 추워서 견디지 못하고 나와 버리면서 말이다.
어릴 적 변소는 서까래 같은 둥근 나무를 둥근 통 위에 걸쳐 놓은 곳이었다. 지금도 캐나다 시골 고속도로 휴게소에 가면 푸세식이다. 그래도 시멘트로 되어 있고 변기가 있어서, 비록 내려다보면 별로 기분 좋을 것이 없고 악취 때문에 숨쉬기도 힘들다. 그런 변소가 추운겨울이면 얼어서 빙판처럼 변한다.
당연히 전등도 없이 깜깜한 변소를 가려면 성냥을 들고 가 성냥을 그어 위치를 확인하고 자리를 잡아야 한다. 물론 그렇게 앉아 어둠속에 있으면 마음은 편안했던 것 같다. 몽달귀신이야기나 집을 지킨다는 구렁이 이야기를 떠올리면 무섭기도 했다. 본채와 화장실은 한참을 떨어져 있어서 외양간 옆이니 소만이 의지가 되던 그런 화장실은 소리를 질러도 어머니가 달려오기가 쉽지 않은 곳이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 학교도 푸세식이었다. 학교에서 덩치가 가장 크다는 이유로 다른 학생과 한 조가 되어 화장실에서 푼 똥물을 학교 밭에 뿌리는 일을 한 적이 있다. 많이 하면 집에 일찍 보내준다는 선생님의 꼬임에 넘어가서 17통인가 푼 적이 있다. 온 몸에 똥냄새가 밴 것 같던 그날은 빨리 벗어나고 싶어 친구와 미친 듯이 푸고 나른 것 같다. 집에서는 한 번도 푼 적이 없는 그 똥을 아버지가 늘 퍼서 밭에 뿌렸다.
살다보면 아버지 어머니에게 한 번도 맞아 보지 못한 뺨을 중학교 음악선생님한테 노래 시험시간에 노래를 못한다고 장난하느냐며 맞았듯이 처음 겪은 일이 참으로 많았던 것 같다. 호롱불에서 살다가 백열전구가 마당에 켜지던 날은 세상을 그 백열전구가 다 밝히는 것처럼 하늘의 별들도 보이지 않았다. 물동이에 두레박으로 물을 퍼서 담아 이고 오는 누나를 졸졸 따라 다닌 기억도, 물 지개를 지고 오르막을 올라가던 친구네 형도 기억 속에 박제된 세상이다. 이젠 당연히 수도꼭지만 돌리면 시원하게 물이 쏟아진다. 그렇게 힘들게 물동이에 물을 길어 다가 독을 채우는 일이 콩쥐팥쥐 이야기에만 있던 일이 아닌 현실이었던 날이 있었다. 한석봉이 호롱불을 끄고 어머니와 어둠에서 글을 쓰고 떡을 썰던 시절처럼 호롱불을 끄면 세상은 어둠이 되어 버리던 날도 있었다.
아프카니스탄 난민 2만 명 이상을 캐나다에서 받기로 했다고 한다. 캐나다는 인심도 좋지, 세계의 난민은 다 받아들이는 것 같다는 옆지기 말처럼, 캐나다는 이민도 받지만 난민도 참 많이 받는다. 이민은 돈을 내고 오는 것이고 난민은 정부에서 모든 것을 다 책임진다는 뜻이다. 그만큼 캐나다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부담하는 세금이 늘어난다는 뜻이기도 하다. 코로나19로 1년 반을 실업자가 된 사람들에게 돈을 퍼주고, 자영업자에게 지원하고 아직도 돈이 있어 난민을 받는 것일까? 아니 부채일 가능성이 많다. 은행에서 빌려 쓰고 세금을 걷어서 갚는 것이다. 물론 세계적인 추세이긴 하지만 부동산 가격의 급등으로 덩달아 월세까지 올라 반지하 2베드룸도 2천불 가까이 하는 요즘, 모든 물가가 오르니 임금이 오히려 줄어든 느낌이다. 치과치료를 하면서 방역비라고 10불 또는 15불을 차지(charge)하는 치과가 많다고 한다. 그 사람들이야 편하게 손님에게 방역 비용을 전가해 버리면 되지만, 월급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은 왜 방역비를 받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려움은 나눌수록 가벼워지고, 행복 또한 함께할수록 더욱 기뻐진다. 하지만 어려웠던 시간을 잊으면 안 된다. 으리으리한 집 호화맨션에 산다고 마음도 호화찬란한 것은 아니니 말이다. 화장실이 아닌 변소, 해우소에서 더욱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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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날리는 잎새처럼

멀리 달아나 버린 마음자리

빈자리 달래 줄 편지를 쓴다.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그 이름

물위에 떨어지는 단풍 담아 놓고

하지 못한 말을 담아 본다.
 

이젠 반백이 되어 버린 모습으로

우리 자주 다니던 덕수궁 돌담길

혹여 라도 그대 나오지 않으려나 달려가

내 발자욱 소리만 귓가에 들려온다 해도.

#작가의 변
수십 년 만에 폭염이니 백년 만에 폭우니, 해마다 여름이면 산불에 몸살을 앓아 한국보다도 공기 질이 안 좋아 공기청정기를 구입해야 하는 캐나다 밴쿠버.
30도를, 아니 40도를 넘기는 날씨는 영상 8도의 추운 날씨가 됐다. 낮에도 흐린 날에는 영상 16도로 이젠 샤워할 때도 찬물보다는 따뜻한 온수가 편안함을 준다. 좀 더우면 덥다고 난리, 좀 쌀쌀하면 춥다고 난리, 인간의 심리는 늘 변덕이 심한 듯하다. 더위에 정신없을 땐 더위만 벗어나고 싶었다. 냉동고에 들어가서 단 5분 만에 추워서 견디지 못하고 나와 버리면서 말이다.
어릴 적 변소는 서까래 같은 둥근 나무를 둥근 통 위에 걸쳐 놓은 곳이었다. 지금도 캐나다 시골 고속도로 휴게소에 가면 푸세식이다. 그래도 시멘트로 되어 있고 변기가 있어서, 비록 내려다보면 별로 기분 좋을 것이 없고 악취 때문에 숨쉬기도 힘들다. 그런 변소가 추운겨울이면 얼어서 빙판처럼 변한다.
당연히 전등도 없이 깜깜한 변소를 가려면 성냥을 들고 가 성냥을 그어 위치를 확인하고 자리를 잡아야 한다. 물론 그렇게 앉아 어둠속에 있으면 마음은 편안했던 것 같다. 몽달귀신이야기나 집을 지킨다는 구렁이 이야기를 떠올리면 무섭기도 했다. 본채와 화장실은 한참을 떨어져 있어서 외양간 옆이니 소만이 의지가 되던 그런 화장실은 소리를 질러도 어머니가 달려오기가 쉽지 않은 곳이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 학교도 푸세식이었다. 학교에서 덩치가 가장 크다는 이유로 다른 학생과 한 조가 되어 화장실에서 푼 똥물을 학교 밭에 뿌리는 일을 한 적이 있다. 많이 하면 집에 일찍 보내준다는 선생님의 꼬임에 넘어가서 17통인가 푼 적이 있다. 온 몸에 똥냄새가 밴 것 같던 그날은 빨리 벗어나고 싶어 친구와 미친 듯이 푸고 나른 것 같다. 집에서는 한 번도 푼 적이 없는 그 똥을 아버지가 늘 퍼서 밭에 뿌렸다.
살다보면 아버지 어머니에게 한 번도 맞아 보지 못한 뺨을 중학교 음악선생님한테 노래 시험시간에 노래를 못한다고 장난하느냐며 맞았듯이 처음 겪은 일이 참으로 많았던 것 같다. 호롱불에서 살다가 백열전구가 마당에 켜지던 날은 세상을 그 백열전구가 다 밝히는 것처럼 하늘의 별들도 보이지 않았다. 물동이에 두레박으로 물을 퍼서 담아 이고 오는 누나를 졸졸 따라 다닌 기억도, 물 지개를 지고 오르막을 올라가던 친구네 형도 기억 속에 박제된 세상이다. 이젠 당연히 수도꼭지만 돌리면 시원하게 물이 쏟아진다. 그렇게 힘들게 물동이에 물을 길어 다가 독을 채우는 일이 콩쥐팥쥐 이야기에만 있던 일이 아닌 현실이었던 날이 있었다. 한석봉이 호롱불을 끄고 어머니와 어둠에서 글을 쓰고 떡을 썰던 시절처럼 호롱불을 끄면 세상은 어둠이 되어 버리던 날도 있었다.
아프카니스탄 난민 2만 명 이상을 캐나다에서 받기로 했다고 한다. 캐나다는 인심도 좋지, 세계의 난민은 다 받아들이는 것 같다는 옆지기 말처럼, 캐나다는 이민도 받지만 난민도 참 많이 받는다. 이민은 돈을 내고 오는 것이고 난민은 정부에서 모든 것을 다 책임진다는 뜻이다. 그만큼 캐나다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부담하는 세금이 늘어난다는 뜻이기도 하다. 코로나19로 1년 반을 실업자가 된 사람들에게 돈을 퍼주고, 자영업자에게 지원하고 아직도 돈이 있어 난민을 받는 것일까? 아니 부채일 가능성이 많다. 은행에서 빌려 쓰고 세금을 걷어서 갚는 것이다. 물론 세계적인 추세이긴 하지만 부동산 가격의 급등으로 덩달아 월세까지 올라 반지하 2베드룸도 2천불 가까이 하는 요즘, 모든 물가가 오르니 임금이 오히려 줄어든 느낌이다. 치과치료를 하면서 방역비라고 10불 또는 15불을 차지(charge)하는 치과가 많다고 한다. 그 사람들이야 편하게 손님에게 방역 비용을 전가해 버리면 되지만, 월급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은 왜 방역비를 받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려움은 나눌수록 가벼워지고, 행복 또한 함께할수록 더욱 기뻐진다. 하지만 어려웠던 시간을 잊으면 안 된다. 으리으리한 집 호화맨션에 산다고 마음도 호화찬란한 것은 아니니 말이다. 화장실이 아닌 변소, 해우소에서 더욱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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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날리는 잎새처럼

멀리 달아나 버린 마음자리

빈자리 달래 줄 편지를 쓴다.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그 이름

물위에 떨어지는 단풍 담아 놓고

하지 못한 말을 담아 본다.
 

이젠 반백이 되어 버린 모습으로

우리 자주 다니던 덕수궁 돌담길

혹여 라도 그대 나오지 않으려나 달려가

내 발자욱 소리만 귓가에 들려온다 해도.



#작가의 변
수십 년 만에 폭염이니 백년 만에 폭우니, 해마다 여름이면 산불에 몸살을 앓아 한국보다도 공기 질이 안 좋아 공기청정기를 구입해야 하는 캐나다 밴쿠버.
30도를, 아니 40도를 넘기는 날씨는 영상 8도의 추운 날씨가 됐다. 낮에도 흐린 날에는 영상 16도로 이젠 샤워할 때도 찬물보다는 따뜻한 온수가 편안함을 준다. 좀 더우면 덥다고 난리, 좀 쌀쌀하면 춥다고 난리, 인간의 심리는 늘 변덕이 심한 듯하다. 더위에 정신없을 땐 더위만 벗어나고 싶었다. 냉동고에 들어가서 단 5분 만에 추워서 견디지 못하고 나와 버리면서 말이다.
어릴 적 변소는 서까래 같은 둥근 나무를 둥근 통 위에 걸쳐 놓은 곳이었다. 지금도 캐나다 시골 고속도로 휴게소에 가면 푸세식이다. 그래도 시멘트로 되어 있고 변기가 있어서, 비록 내려다보면 별로 기분 좋을 것이 없고 악취 때문에 숨쉬기도 힘들다. 그런 변소가 추운겨울이면 얼어서 빙판처럼 변한다.
당연히 전등도 없이 깜깜한 변소를 가려면 성냥을 들고 가 성냥을 그어 위치를 확인하고 자리를 잡아야 한다. 물론 그렇게 앉아 어둠속에 있으면 마음은 편안했던 것 같다. 몽달귀신이야기나 집을 지킨다는 구렁이 이야기를 떠올리면 무섭기도 했다. 본채와 화장실은 한참을 떨어져 있어서 외양간 옆이니 소만이 의지가 되던 그런 화장실은 소리를 질러도 어머니가 달려오기가 쉽지 않은 곳이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 학교도 푸세식이었다. 학교에서 덩치가 가장 크다는 이유로 다른 학생과 한 조가 되어 화장실에서 푼 똥물을 학교 밭에 뿌리는 일을 한 적이 있다. 많이 하면 집에 일찍 보내준다는 선생님의 꼬임에 넘어가서 17통인가 푼 적이 있다. 온 몸에 똥냄새가 밴 것 같던 그날은 빨리 벗어나고 싶어 친구와 미친 듯이 푸고 나른 것 같다. 집에서는 한 번도 푼 적이 없는 그 똥을 아버지가 늘 퍼서 밭에 뿌렸다.
살다보면 아버지 어머니에게 한 번도 맞아 보지 못한 뺨을 중학교 음악선생님한테 노래 시험시간에 노래를 못한다고 장난하느냐며 맞았듯이 처음 겪은 일이 참으로 많았던 것 같다. 호롱불에서 살다가 백열전구가 마당에 켜지던 날은 세상을 그 백열전구가 다 밝히는 것처럼 하늘의 별들도 보이지 않았다. 물동이에 두레박으로 물을 퍼서 담아 이고 오는 누나를 졸졸 따라 다닌 기억도, 물 지개를 지고 오르막을 올라가던 친구네 형도 기억 속에 박제된 세상이다. 이젠 당연히 수도꼭지만 돌리면 시원하게 물이 쏟아진다. 그렇게 힘들게 물동이에 물을 길어 다가 독을 채우는 일이 콩쥐팥쥐 이야기에만 있던 일이 아닌 현실이었던 날이 있었다. 한석봉이 호롱불을 끄고 어머니와 어둠에서 글을 쓰고 떡을 썰던 시절처럼 호롱불을 끄면 세상은 어둠이 되어 버리던 날도 있었다.
아프카니스탄 난민 2만 명 이상을 캐나다에서 받기로 했다고 한다. 캐나다는 인심도 좋지, 세계의 난민은 다 받아들이는 것 같다는 옆지기 말처럼, 캐나다는 이민도 받지만 난민도 참 많이 받는다. 이민은 돈을 내고 오는 것이고 난민은 정부에서 모든 것을 다 책임진다는 뜻이다. 그만큼 캐나다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부담하는 세금이 늘어난다는 뜻이기도 하다. 코로나19로 1년 반을 실업자가 된 사람들에게 돈을 퍼주고, 자영업자에게 지원하고 아직도 돈이 있어 난민을 받는 것일까? 아니 부채일 가능성이 많다. 은행에서 빌려 쓰고 세금을 걷어서 갚는 것이다. 물론 세계적인 추세이긴 하지만 부동산 가격의 급등으로 덩달아 월세까지 올라 반지하 2베드룸도 2천불 가까이 하는 요즘, 모든 물가가 오르니 임금이 오히려 줄어든 느낌이다. 치과치료를 하면서 방역비라고 10불 또는 15불을 차지(charge)하는 치과가 많다고 한다. 그 사람들이야 편하게 손님에게 방역 비용을 전가해 버리면 되지만, 월급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은 왜 방역비를 받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려움은 나눌수록 가벼워지고, 행복 또한 함께할수록 더욱 기뻐진다. 하지만 어려웠던 시간을 잊으면 안 된다. 으리으리한 집 호화맨션에 산다고 마음도 호화찬란한 것은 아니니 말이다. 화장실이 아닌 변소, 해우소에서 더욱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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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민(Terry)
캐나다 BC주 밴쿠버에 살고 있는 ‘셰프’이자, 시인(詩人)이다. 경희대학교에서 전통조리를 공부했다. 1987년 군 전역 후 조리학원을 다니면서 한식과 중식도 경험했다. 캐나다에서는 주로 양식을 조리한다. 법명은 현봉(玄鋒).
전재민은 ‘숨 쉬고 살기 위해 시를 쓴다’고 말한다. ‘나 살자고 한 시 쓰기’이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고, 감동하는 독자가 있어 ‘타인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밥만으로 살 수 없고, 숨 만 쉬고 살 수 없는 게 사람이라고 전재민은 말한다. 그는 시를 어렵게 쓰지 않는다. 사람들과 교감하기 위해서다. 종교인이 직업이지만, 직업인이 되면 안 되듯, 문학을 직업으로 여길 수 없는 시대라는 전 시인은 먹고 살기 위해 시를 쓰지 않는다. 때로는 거미가 거미줄 치듯 시가 쉽게 나오기도 하고, 숨이 막히도록 쓰지 못할 때도 있다. 시가 나오지 않으면 그저 기다린다. 공감하고 소통하는 사회를 꿈꾸며 오늘도 시를 쓴다.
2017년 1월 (사)문학사랑으로 등단했다. 2017년 문학사랑 신인 작품상(아스팔트 위에서 외 4편)과 충청예술 초대작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문학사랑 회원이자 캐나다 한국문인협회 이사, 밴쿠버 중앙일보 명예기자이다. 시집 <밴쿠버 연가>(오늘문학사 2018년 3월)를 냈고, 계간 문학사랑 봄호(2017년)에 시 ‘아는 만큼’ 외 4편을 게재했다.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 밴쿠버 중앙일보에 <전재민의 밴쿠버 사는 이야기>를 연재했고, 밴쿠버 교육신문에 ‘시인이 보는 세상’을 기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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