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의 위기와 불교의 대안] 2. 불평등의 원인
[불평등의 위기와 불교의 대안] 2. 불평등의 원인
  • 이도흠 정의평화불교연대 공동대표
  • 승인 2021.08.24 12: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불평등의 기원과 원인

불평등의 기원

그동안 700만 년의 역사를 가진 인류가 수렵채취 시대에는 평등한 공동체를 유지하다가 농경사회 이후 계급이 갈라지고 불평등이 시작된 것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었다. 하지만, 작년에 이를 뒤집는 논문이 발표되었다. 에이미 보가드(Amy Bogaard) 등 국제연구팀은 유라시아 전역의 150곳에 달하는 고고학 유적지에서 얻은 데이터를 분석하고 지니계수를 측정하였다. 이 결과, 인류가 농경사회 이후에도 8,000년 동안 평등한 공동체를 유지하였으며, 기원 전 4,000년을 기점으로 소가 끄는 쟁기농법을 도입한 이후에 생산성이 10배나 차이가 나면서 불평등이 시작되었다고 밝혔다.

이 주장을 받쳐주면서도 이의 한계를 보완하는 것이 차탈회유크의 사례다. 기원 전 9,400년에서 8,000 년 사이의 신석기 시대에 농경을 한 터키 차탈회유크인들의 동쪽 언덕 유적지를 보면, 집과 곳간의 크기, 소유물이 같았으며, 공공장소, 행정건물, 엘리트의 주택이나 숙소에 관련한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 반면에, 기원 전 8,000년 전에서 7,700 년 전까지 석기시대에서 청동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주거지였던 서쪽 언덕 9야드 20곳의 건물에 있는 2,429개 석재 가공품을 분석 한 결과, 석재도구와 조리 기구에서는 대략 평등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맷돌 등의 도구는 자급자족할 수 없었고 불평등하게 분배되었다.

두 언덕의 차이를 발생한 요인은 무엇인가. 생물고고학(bio-archaeology)을 도입하여 차탈회유크의 유골과 잔존한 동물의 뼈, 곡물,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의 유전자와 단백질에 대해 분석한 클라크 스펜서 라센(Clark Spencer Larsen) 교수 등의 연구에 의하면, 그것은 바로 인구증가다. 중기에 접어들어 차탈회유크인들의 인구가 주변의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공존할 수 있는 임계점을 넘어서자 한정된 자원 이용으로 경쟁심이 생기고, 대변 등의 쓰레기도 순환할 수 있는 양을 넘어서자 전염병이 발생하였다. 노동과 생활에 대한 스트레스가 증가하자 발굴된 93개의 두개골 가운데 25개에서 골절이 발견될 정도로 폭력 또한 증가하였다.

이들 연구를 종합하면, 인류는 700만 년 동안, 농경혁명을 이룬 뒤에도 8,000년 동안 대다수 집단이 평등한 공동체를 유지하였다. 하지만, 공동체의 인구가 주변의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한계치를 넘어서자 공동체의 유대에 균열이 생기고 분배에 대해 불만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여기에 기후변동이나 다른 종족의 약탈 등 외부적 요인도 작용하였다. 그러자 쟁기를 가진 자들이 차츰 공동체의 분배에 불만을 품고 더 많은 몫을 요구하였고, 다른 사람 또한 이들이 완전히 이탈하면 더 손해를 볼 것이기에 이 요구를 수용하였다. 이러면서 사적 소유가 보편화화였다. 개인 차원에서는 소유에 대한 욕망과 협력 사이의 갈등과 타협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사회 차원에서는 계급이 형성되고 계급에 따라 권력과 가치의 분배도 차등적으로 부여되면서 지배와 통치가 일반화했다.

기원전 4,000년 이래 인류는 한정된 자원의 불평등한 분배를 놓고 계급끼리 대립하였다. 지배층이 폭력을 독점하였기에 분노와 저항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기까지 노예, 농노, 농민의 반란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400년 전 자본주의 출현 이후 자본가가 노동자를 임금을 주고 고용을 하는 대신에 그가 생산한 잉여가치를 착취하여 이윤으로 전환하고 다시 이것을 자본으로 축적하였다. 1869년에 46%에 이르던 평균이윤율이 10% 이하로 전락하고 여러 위기를 맞자, 자본과 국가는 신자유주의 체제를 도입하여 노동의 유연성, 공공영역의 사영화, 규제완화, 합법적 금융사기를 통하여 노동자와 서민을 과도하게 착취하였고, 이 결과 인류는 문명사 이래 최악의 불평등과 계급갈등 상태에 있다.

불평등의 원인

이렇게 여러 위기에 놓인 원인은 여러 가지다. 핵심이자 근본 원인은 자본주의 체제와 신자유주의 체제다. 문제는 생산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 있다. 예로 들자면, 세계 식량 생산은 78억 명이 먹고도 남을 정도로 생산되는데, 8억여 명이 기아에 허덕인다. 더 야만적인 것은 이들 8억 명이 충분히 먹고도 남는 양, 4,000억 달러(약 439조 원)어치의 음식물 쓰레기를 매년 버린다는 점이다. 2015년 기준으로 한국의 주택보급률은 102.3%인데 자가 주택비율은 56.8%에 지나지 않는다. 유럽과 쿠바 등을 제외하고 대다수 국가에서는 등록금이 없는 자들은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대학을 갈 수 없고, 이를 통한 계층상승도 불가능하다. 의료복지체계와 공공의료가 확보되지 않은 나라에서는 많은 시민들이 검사비가 없어서 코로나 확진여부를 파악하지 못하였으며 코로나 감염 증상이 나타나도 병원에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죽어갔다.

신자유주의 체제는 극단적인 착취와 수탈을 통해 평균 이윤율의 하락과 장기침체의 극복을 시도하였다. 이 체제는 노동과 자연에 대한 자본의 야만적 착취를 그나마 조금이라도 제어하던 제도와 법, 규정을 규제철폐의 이름으로 무력화하고, 공공영역을 사영화/민영화하였으며, 노동의 유연성의 이름 아래 노동자 민중에 대한 착취를 강화하여 그들을 생존위기에 몰아 놓았으며, 세계화를 단행하여 초국적 자본이 전 세계의 노동자와 자연을 대상으로 착취할 수 있도록 하였다. 자본은 노동자와 양보와 타협을 하는 대신 임금이 싼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거나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였다. 노동자의 가치 자체가 하락하고 노동조합의 힘은 급격히 약해졌다. 더구나 가장 많이 착취를 당하며 가장 열악한 상황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꾸리는 것조차 쉽지 않다. 노동자의 연대는 느슨해지고 노동조합은 더욱 힘을 잃었기에 국가와 자본의 야만에 대한 저항이나 견제는 쉽지 않다. 대중의 지지를 통한 헤게모니 확보도 더욱 어려워졌다. 오히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혐오와 배제가 확산하고 자국 이기주의가 고조하면서 대중들의 극우정당에 대한 지지도는 점점 높아지고 미국, 일본, 러시아, 오스트리아에서는 극우나 권위적인 지도자들이 정권을 잡았다. 이에 국가와 자본의 유착은 심화하고, 민주주의는 퇴행하였으며, 노동은 억압당하고 인권은 후퇴하고 환경은 파괴되었으며, 불평등이 심화하였다.

둘째, “… 자본의 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늘 크기 때문에(r>g), 소득 수준별로 누진적인 글로벌 자본세를 획기적으로 증대하여 부과하는 등 이를 상쇄할 공공정책이나 제도를 집행하지 않는 한 불평등은 심화한다.”

셋째, 장기호황 국면에서 산업적 축적을 위주로 하던 자본축적이 1980년대 이후 장기 불황을 맞아 금융 축적에 의존하며 금융에 기반한 수탈을 하기 때문이다. “1994년 수립된 WTO체제는 1970년대 중반 이후 세계 자본주의가 빠져들기 시작한 장기적인 구조적 과잉축적위기의 타개책으로 추진된 것으로 금융자본의 국제적 이동을 보장하고 개별 국민경제의 세계 자본주의로의 전면적인 통합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 통합을 위한 제도적 장치로 규정할 수 있다. …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촉발한 미국의 금융공황과 이 공황이 촉발한 세계 금융공황은 멀리는 1980년대부터 누적되기 시작하고, 가까이는 2000년대에 이르러 한층 더 ‘허구적·퇴영적 축적’ 성격을 띤 금융적 축적의 모순이 일거에 터져 나온 사태로 평가될 수 있다.” “산업자본이 이윤을 창출하는 과정은 돈(M)-상품(C)-이윤(M′)이기 때문에 노동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 결과 노동계급의 세력화로 인한 임금 인상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없다. 반면, 금융자본의 이윤창출 과정은 돈(M)-이윤(M′)의 형태를 취하기 때문에 노동비용을 그만큼 감소시킬 수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 금융자본이 고용하는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4%에 불과하지만, 금융자본의 이윤은 전체 이윤의 25%에 달하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자본은 장기불황의 위기를 합법을 가장한 금융수탈과 탈취에 의한 축적으로 미봉하고 있다. 맑스의 분석대로, 산업자본가든, 대부자본가든 그들이 차지한 소득의 원천은 노동자가 생산한 잉여가치에서 비롯된 것, 곧 기업과 대부자본의 이윤은 실은 노동자가 생산한 것을 빼앗은 것이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착취는 생산 부문에 그치지 않는다. 자본가의 소비대출은 자본가 소득, 다시 말해 잉여가치 중 재생산에 투여되고 남은 소득이므로 잉여가치에서 보전되지만, 노동자의 소비대출은 노동자 임금에서 이자가 보전된다. 대출금으로 일반적인 상품 구매가 아닌 주식이나 펀드 같은 자산 시장에 참여하는 경우에도 투자 수익이나 손실과 무관하게 대출이자의 원천은 임금이다. 이처럼 이자의 원천이 잉여가치의 일부일 뿐만 아니라 노동자 임금의 일부이기도 하다는 것은 이자를 통한 ‘수탈’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이자는 자본의 확대재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이윤(잉여가치)의 일부를 분배받는 기능을 넘어 미래 노동 소득(임금)에 대한 수탈 구조로 확장될 수 있다.” 금융 수탈의 한 사례로, “MB 정부 3년간 고환율 정책으로 무려 174조 원의 돈이 서민의 주머니에서 빠져나갔다. 그 결과 국민의 97%인 임금노동자와 자영업자의 실질소득은 무려 15.3% 이상 감소했다.” 국가와 자본이 연합하여 ‘탈취에 의한 축적(accumulation by dispossession)’을 하고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아니라 극단의 이익을 위하여 노동자를 정리해고하기에, 대다수 노동자가 생존 위기에 놓였다.

넷째, 후기 자본주의, 특히 신자유주의 체제 이후 ‘자본-국가-보수언론-사법부-종교권력층-전문가집단과 어용지식인’으로 이루어진 기득권 동맹이 견고하게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은 금융수탈과 탈취에 의한 축적을 자행하고 국가는 이를 제도적으로 보장하였다. 대신 자본과 국가 모두 정당성의 위기를 맞았다. 국가는 자본의 강탈과 사기를 견제하기는커녕 이를 방조하고 제도적으로 지원하며, 자본의 편에서 노동자에게 폭력을 가한다. 국가는 자본과 유착관계를 더욱 강화하여 자본에는 퍼주기를 하고 이 부담을 민중에게 가중시키고, 이에 대한 저항을 이데올로기 공세, 포섭, 억압, 배제와 폭력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누그러트리면서 정당성의 위기를 맞고 있다. 조세정책은 불평등 완화와 정반대 방향으로 간다. 언론은 자본에 유리한 프레임을 구성하면서 편파적인 보도를 하고, 종교권력층은 불평등을 교리적으로 합리화한다. 정부와 국회가 구조적 폭력, 곧 노동배제와 정리해고를 합리화하는 법과 제도를 제정하고, 사법부는 자본에 유리한 판결을 하며, 전문가집단과 어용지식인은 불평등을 심화하거나 옹호하는 담론을 구성한다. 이에 기득권 동맹은 자신만이 아니라 자식들의 자본과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유리창을 강화하기 위하여 모든 권력과 자본, 정보를 동원하여 제도와 법을 바꾸고 안 되면 편법을 구사한다. 서민과 노동자 또한 욕망의 증식에 사로잡혀서 탐욕을 키우고 살아남기 위하여 치열하게 경쟁한다. 복지를 행하기는 하지만, 자본의 수익을 어느 정도 보장하고 사회해체를 막고 국가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선에 늘 머문다. 이들은 서로 이권을 주고받으면서 유리창을 견고히 한다.

다섯째, 기술격차 때문이다. 기술격차는 숙련기술을 쌓은 노동자나 전문가에게는 높은 임금을 부여하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실업과 저임금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여섯째, 교육격차 때문이다. 교육격차는 학력에 따라 소득을 차등지급하는 바탕을 형성한다. 문제는 산업화 초기에는 가난한 집안의 학생이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가능하여 교육이 계층 사다리와 사회통합의 역할을 어느 정도 수행했지만, 신자유주의 체제와 세습자본주의 체제에서는 교육이 부의 대물림 수단으로 전락하고 유리창이 더욱 강화한다는 점이다. 상류층의 자녀들은 어릴 때부터 좋은 학교나 학원에서 맞춤 교육을 받고 명문대에 입학할 수 있는 경력과 스펙을 관리하는 데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기득권층은 불평등이 극대화한 상황에서는 부의 세습에 더욱 몰두하고 유리창을 강화한다.

일곱째, 자본과 기득권을 옹호하는 이데올로기와 담론 때문이다. 이런 모든 것을 합리화하는 이데올로기와 담론이 작동한다. 인간의 본성이 이기와 이타, 선과 악이 공존하는데 이기적이고 경쟁적이라고 선전하며, 토끼와 거북이 우화와 같은 담론이 지배한다. 노벨상까지 받은 공유의 희극론은 거의 알려지지 않고 허구인 공유지의 비극론이 명약관화한 사실처럼 군림한다. 분수효과가 타당하고 이것이 경제도 성장시킬 수 있는데, 경제 성장이나 낙수효과론이 서민과 노동자의 파이도 늘릴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한다. 사회주의나 평등한 공동체는 현실성이 전혀 없는 이상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된다. 자본에 유리한 정책들은 경제발전을 도모하는 것으로, 반대로 불리한 정책은 좌파적이거나 경제를 죽이는 것으로, 복지책 등 서민과 노동자를 위한 정책은 빨갱이적 발상이나 포퓰리즘으로, 노동자의 시위는 과격하거나 경제위기를 야기하는 것으로 매도된다.

여덟째, 과학기술과 데이터, 지식의 독점이나 과점 때문이다.

아홉째, 자본과 기득권에 유리한 제도와 법, 규정 때문이다. 자본-국가의 유착이 강화하면서 조세개혁, 부유세 등 불평등을 완화하는 정책이 별로 집행되지 못하였다.

열째, 상층과 하층 사이의 네트워크 차이 때문이다.

열한 째, 진보진영과 노동진영이 대응하는데 실패하였기 때문이다.

.-------------------------------------------------------------------------------------

#이도흠 교수는<화쟁기호학, 이론과 실제 - 화쟁사상을 통한 형식주의와 마르크시즘의 종합>, 인류의 위기에 대한 원효와 마르크스의 대화>, <신라인의 마음으로 삼국유사를 읽는다> 등을 썼고, 틱낫한의 <엄마>를 번역했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상임의장, 계간 <불교평론> 편집위원장, 계간 <문학과 경계> 주간, 한양대 한국학연구소 소장, 정의평화불교연대 상임대표를 역임했다. KCI 등재 학회인 한국시가학회, 한국언어문화학회 회장을 재임했고, 한국기호학회 회장을 지냈다. 원효학술상, 유심학술상 등을 수상했으며, 한국연구재단 우수학자에 선정됐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11길 16 대형빌딩 402호
  • 대표전화 : 02-734-7336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석만
  • 법인명 : 뉴스렙
  • 제호 : 뉴스렙
  • 등록번호 : 서울 아 00432
  • 등록일 : 2007-09-17
  • 발행일 : 2007-09-17
  • 발행인 : 이석만
  • 편집인 : 이석만
  • 뉴스렙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렙. All rights reserved. mail to cetana@gmail.com
  • 뉴스렙「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조현성 02-734-7336 cetana@gmail.com
인터넷신문위원회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