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의 위기와 불교의 대안] 4. 불평등과 관련한 불교 교리(2)
[불평등의 위기와 불교의 대안] 4. 불평등과 관련한 불교 교리(2)
  • 이도흠 정의평화불교연대 공동대표
  • 승인 2021.09.06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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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고(苦)와 별업(別業) 중심에서 사회적 고(苦)와 공업(共業)의 종합으로

개인적 고(苦)와 별업(別業) 중심에서 사회적 고(苦)와 공업(共業)의 종합으로

많은 이들이 불교를 개인적 치유와 해탈의 종교로 간주한다. 그동안 고(苦)를 개인적 고로만 국한하여 지멸의 대상으로 삼았다. 하지만,《장아함경》에서 “때에 왕은 곧 좌우에 명령하여 그(도둑)를 묶게 하고 북을 치고 소리로 외쳐 모든 거리를 돌린 뒤 그를 싣고 성을 나가 넓은 들에서 죽였다.…이때부터 비로소 빈궁이 생기고 빈궁이 있은 끝에 비로소 강도가 생기고, 강도가 생긴 뒤에 비로소 무기가 생기고 무기가 생긴 끝에 비로소 살해가 생기고, 살해가 생긴 끝에 곧 안색이 초췌해지고 (사람의) 수명이 짧아졌다.”라고 말한다. 전륜성왕은 도둑을 잡아 가난 때문에 생긴 것이라며 창고의 물품을 내주었지만 이를 이용한 도둑이 생기자 그를 죽여 경계로 삼는다. 그 후에 가난 때문에 절도와 살해가 일어난다고 말하고 있다.

전륜성왕수행경은 이어서 말한다. “때에 성왕은 그 보당(寶幢)을 부수어 사문, 바라문과 온 나라 안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보시하고 그런 후에 수염과 머리를 깎고 세 가지 법의(法衣)를 입고 집을 떠나 도를 닦고 위없는 행[無上行]을 닦아 현세에서 스스로 진리를 깨달아 나고 죽음을 이미 다하고 범행(梵行)이 이미 서고 해야 할 일을 이미 다 갖추어 후생의 목숨[後有]을 받지 않을 것이다.”

물론, 경전의 전체 내용의 핵심은 “여등당근수선행汝等當勤修善行”, 곧 선행을 부지런히 닦으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가난이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사회의 구조적 문제이고 이로 도둑, 살해 등이 일어난다는 인식이 깔려 있으며 전륜성왕이 보당을 부수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보시하고 수행을 하여 열반에 이르고 있다고 끝맺고 있다. 이는 불교가 개인의 고(苦)만이 아니라 슐락 쉬바락사가 말한 사회적 고(social duka)에도 관심을 두었으며 열반이 개인의 수행만이 아니라 가난한 자에 대한 보시와 같은 선행을 종합하여야 한다고 해석할 여지가 있는 대목이다. 개인의 마음과 사회구조, 개인의 업[別業]과 공동의 업[共業], 개인의 윤리와 공동체 윤리는 서로 의존하며 작용한다. 이처럼 개인의 빈부가 별업에 따른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백성 가운데 가난하고 부유한 차이는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구조적 요인과 공업에 의한 것이다. 설혹 별업에 따른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가난한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 열반에 이르는 길이다. 그러기에, “승가의 상호부조는 일정한 공양물을 함께 나누는 발우공양 사례에서 보듯이 그 실천이 수행의 방편이기 보다는 수행 그 자체다.”

福田의 개념

박경준 교수와 종명 스님의 연구를 종합하면,《잡아함경》에서는 “종종(種種)의 공교업처(工巧業處)로 스스로 생활을 영위하라.”라고 말한다.《숫타니파아타》에서는 “이 밭갈이는 이렇게 해서 이루어지고 감로의 과보를 가져온다. 이런 농사를 지으면 온갖 고뇌에서 풀려나게 된다.”라고 말했고,《유마경 ‘방편품’에서는 “법을 굳게 지키어 어른들과 어린이를 가르치며, 모든 생업의 경영이 순조로워 세속적인 이익을 얻지만 그것에 기뻐하지 않았다.”라고 했으며, 또 《법화경》‘법사공덕품’에서도 “그가 설하는 모든 법이 그 뜻을 따르되 다 실상과 같아 서로 위배되지 아니하며, 혹은 세간의 경서나 세상을 다스리는 말씀이나 생업을 돕는 방법을 설할지라도 모두 정법에 따르게 되리라.”라고 했다. 이《법화경》구절을 놓고 천태지의는 “생산업이 모두 실상에 위배되지 않는다.”라며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우바새계경》은 복전(福田)을 부모와 스승에 봉양하는 보은전, 불법승 삼보를 공경하는 공덕전, 가난한 자에게 시여(施與)하는 빈궁전으로 분류하고 있다. 더 나아가 백장은 “하루를 일하지 않으면 하루를 먹지 말라(一日不作 一日不食)”라며 상하가 균등하게 노동할 것을 성문화했다.

분노의 부정에서 자비로운 분노로

분노는 삼독의 하나로 지멸의 대상이다. “분노가 분노에 의해 사라지지 않으며 오로지 자비에 의해서만 사라진다는 것이 영원한 진리”라는《법구경》의 가르침은 원칙적으로 타당하며 지켜져야 한다. 하지만, 테러리스트가 무고한 어린이를 무참히 살해하는 그 상황에서도 우리는 분노하지 않은 채 기도를 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화쟁적 대안은 가능한가.

《대방편경》에서는 500명의 선원 중의 한 사람이 나머지 499명을 죽이고 그들이 가진 것을 빼앗으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선장이 세 차례나 그러지 말라고 그 선원을 설득했지만 실패하자 선장은 499명을 살리기 위하여 무기를 들고 그 선원을 죽인다, 그 선장이 바로 전생의 부처다.

이 경전의 가르침대로, 죽어가는 생명, 억압받고 수탈당하는 중생에 대한 자비심의 연장으로 발생하는 분노, 생명을 살리고 구성원의 분노를 줄이기 위하여 구조적 폭력이나 잘못된 국가와 세계 체제에 대한 분노는 정당하다. 단, ‘정의로운 분노’ 또한 상대편에서 보면 이데올로기일 수 있고 화쟁의 방편이 아니므로 자제해야 하며, 그 분노의 표출은 설득과 협상 등 평화적 방법이 무망한 상황에서 증오와 폭력이 없이 약자들의 고통에 대한 공감과 자비심이 동기인 경우에 한정하여 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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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흠 교수
<화쟁기호학, 이론과 실제 - 화쟁사상을 통한 형식주의와 마르크시즘의 종합>, 인류의 위기에 대한 원효와 마르크스의 대화>, <신라인의 마음으로 삼국유사를 읽는다> 등을 썼고, 틱낫한의 <엄마>를 번역했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상임의장, 계간 <불교평론> 편집위원장, 계간 <문학과 경계> 주간, 한양대 한국학연구소 소장, 정의평화불교연대 상임대표를 역임했다. KCI 등재 학회인 한국시가학회, 한국언어문화학회 회장을 재임했고, 한국기호학회 회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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